강철의 포위망
자칼의 본거지였던 폐기 선박실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굉음 속에서, 유선우는 간신히 민아를 부축해 탈출했다.
어깨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은빛 피가 제복을 적시고 있었지만, 선우의 신경을 가장 날카롭게 찌르는 것은 왼손의 지독한 감각 상실이었다. 자칼을 소멸시키기 위해 감행한 영거리 EMP 방출의 대가는 가혹했다. 황실 마스터 링은 푸른 광채를 완전히 잃은 채 차갑게 식어 있었고, 배터리 잔량은 완벽한 0%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노 침식률 15.2%.
왼쪽 손가락 전체가 촉각을 잃고 은빛 금속처럼 딱딱하게 굳어 들어가는 감각은 끔찍한 고독감을 자극했다. 입안에 고인 은빛 피를 삼키며, 선우는 붉은 안개로 물든 게토-9의 어두운 골목길을 응시했다.
“선우 씨, 손이…… 어깨가 너무 심해요. 제발 저를 내려놓고……”
민아가 마비 가스의 여파로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의 갈색 머리는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눈가에는 자신 때문에 선우가 몸을 망가뜨렸다는 죄책감의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대를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선우는 감각이 없는 왼손을 재킷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오른팔로 민아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비틀거리는 걸음이었지만, 그의 눈동자만큼은 얼음처럼 차가운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자칼의 단말기에서 확인했던 발락 심문관의 소탕 명령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교단의 대규모 강습 부대인 ‘아이언 이글 특수기동대’가 이미 정크야드 지표면에 착륙했다. 목적지는 명확했다. 선우 일행의 유일한 은신처이자 고대 수송선이 대기 중인 바스의 정비창이었다.
***
두 사람은 삼엄한 감시망을 피해 간신히 바스의 우주선 정비창으로 복귀했다. 정비창 내부는 이미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하! 무사하셨군요!”
낡은 저항군 전투 장갑복을 입은 카일 대위가 소총을 든 채 황급히 다가왔다. 그의 굳건한 턱선에는 숨길 수 없는 피로와 투지가 서려 있었다. 그 뒤편에서는 늙은 정비사 바스가 삐걱거리는 기계 의수를 움직이며 에테르-플라이어의 하부 동력선을 점검하고 있었다.
“카일 대위, 상황은.”
선우가 민아를 임시 침대에 눕히며 물었다.
“최악입니다. 교단의 강습함들이 정박지 상공의 중력 장막을 찢고 진입했습니다. 이미 이단자 지하 대피소 구역이 놈들의 무차별 포격으로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지상 수색 대장 고든이 이끄는 중장갑차 부대가 이 정비창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습니다.”
카일의 보고에 선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칼이 죽기 전 교단에 신호를 송출한 여파였다.
그때, 제어실 구석에서 통신 패드를 만지고 있던 저항군 간부 카인이 정중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왔다. 깔끔한 장교복을 입은 그의 눈빛은 평소처럼 예리했으나, 선우의 ‘기계의 속삭임 청취’ 감각이 미세하게 요동쳤다. 비록 마스터 링은 방전되어 기계를 직접 제어할 수는 없었지만, 선우의 뇌파는 본능적으로 카인의 몸에서 방출되는 불규칙한 초고주파 신호를 포착했다.
‘외부 무선망으로 데이터를 송출하고 있군. 아주 은밀하고 정교하게.’
선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카인을 주시했다. 카인은 선우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채, 카일 대위에게 말을 건넸다.
“대위님, 기지 외곽의 바리케이드는 이미 한계입니다. 교단의 장갑차들을 막기 위해선 병력을 분산 배치해야 합니다. 제가 동쪽 통로의 제어권을 맡아 방어선을 조율하겠습니다.”
카인의 제안은 지극히 합리적으로 들렸지만, 선우는 직감했다. 저자는 방어선의 취약점을 교단에 실시간으로 넘겨주기 위해 동쪽 통로를 자처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심증만으로 아군을 처단할 수는 없었다. 적들의 물리적 진격이 코앞이었다.
“동쪽은 카인 간부에게 맡기지.”
선우가 나직하게 말했다. 카인은 고개를 숙이며 물러섰지만, 그의 입가에 스친 비열한 미소를 선우는 놓치지 않았다.
“바스, 에테르-플라이어의 기동은 언제쯤 가능한가.”
선우의 질문에 바스가 루페를 낀 눈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제길, 엔진의 하이퍼드라이브 정렬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두 시간은 더 필요해요. 게다가 전하의 반지가 완전히 방전되어 함선의 코어와 동조화를 시킬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없었다. 고든의 중장갑 부대가 정비창 외벽을 무너뜨리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민아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숨을 헐떡였다.
“선우 씨…… 내 작업실에 도굴용으로 쓰던 이족보행 고철 수집 로봇이 있어. 4미터 크기의 육중한 고철 판기로 되어 있어서, 장갑만 보강하면 놈들의 포격을 막아줄 방패로 쓸 수 있을 거야.”
“고철 수집기라니, 그걸로 교단의 군용 장갑차를 막겠다는 겁니까?”
카일 대위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선우의 생각은 달랐다.
“가능하다. 고대 제국의 나노 제어 회로를 그 고철 기체에 덧씌울 수 있다면.”
선우는 민아의 안내를 받아 정비창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거대한 이족보행 로봇 앞으로 걸어갔다. 온갖 고철 판기를 조잡하게 덧대어 만든 투박한 기체. 자아가 없는 단순한 중작업용 기계였다.
문제는 마스터 링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무선으로 나노 제어 패킷을 송출할 수 없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인 직접 주입.
선우는 주저 없이 어깨의 상처 부위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붕대 틈새로 은빛이 감도는 붉은 피가 울컥 뿜어져 나왔다. 선우는 피 묻은 오른손을 고철 로봇의 메인 동력 전선망과 제어 칩 포트에 그대로 밀착시켰다.
“아, 선우 씨! 무슨 짓을……!”
민아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선우는 고통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의 혈관 속에 상주하는 황실 전용 ‘메디컬 나노 군집’과 오리진 유전자 데이터가 혈액을 매개로 고철 로봇의 메인 프레임 내부로 무섭게 침투해 들어갔다.
지직! 지지직—!
녹슨 구리 전선망을 타고 은빛 나노 회로가 거미줄처럼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자아가 없던 고철 기체의 붉은색 광학 렌즈가 격렬하게 깜빡이더니, 이내 불안정하지만 찬란한 금빛 안구로 변환되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황실 유전자 데이터 동조 완료. 기체 임시 오버라이드 승인.]
[임시 명칭: 스크랩 골렘-01 (Scrap Golem-01). 기동합니다.]
“장갑판을 전면에 배치해라. 우리의 방패가 되어라.”
선우의 명령에 스크랩 골렘-01이 육중한 발걸음을 옮기며 정비창 입구의 좁은 골목길 전면에 우뚝 섰다. 전면에 덧댄 고밀도 티타늄 고철 방패가 은빛 나노 회로의 빛을 받으며 단단하게 응축되었다.
콰아아아앙—!
그 순간, 정비창 외벽이 무시무시한 폭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며 무너져 내렸다. 자욱한 흙먼지 너머로, 아이언 이글 특수기동대의 중장갑차 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상 수색 대장 고든이 이끄는 장갑차들의 육중한 엔진 소리가 정비창 내부를 짓누르듯 울려 퍼졌다.
“이단자들을 단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섬멸하라! 배후의 황태자는 생포한다!”
고든의 우직하고 거친 목소리가 무전망을 타고 흘러나왔다. 장갑차들의 전면 포탑이 일제히 정렬되더니, 정비창 안쪽을 향해 무차별 플라즈마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슈우우웅— 쾅! 쾅!
붉은색 플라즈마 포탄들이 비명처럼 날아와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피난민들이 모여 있는 이단자 지하 대피소 입구를 덮치려 했다.
“스크랩 골렘, 방어!”
선우가 뇌파로 명령했다.
스크랩 골렘-01이 거대한 고철 방패를 지면에 박아 넣으며 전면에 나섰다. 선우의 피 속 나노 입자들이 골렘의 티타늄 장갑 표면에서 강렬한 전자기 왜곡 주파수를 발산했다.
콰아앙—!
날아오던 플라즈마 포탄들이 골렘의 방패에 부딪히는 순간, 포탄의 궤적이 미세하게 굴절되며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폭발의 충격파가 정비창 전체를 뒤흔들었지만, 골렘의 육중한 육탄 방어막은 무너지지 않고 버텨냈다.
“지금이다! 격발하라!”
카일 대위가 소리쳤다. 저항군 선발대원들이 장갑차의 진격 경로를 겨냥해 미리 매설해 두었던 전술 지뢰를 일제히 격발시켰다.
쾅! 쿠구구궁!
폭발과 함께 고든의 선두 장갑차 바퀴가 날아가며 좁은 골목길 입구가 장갑차 잔해로 가로막혔다. 적들의 진격 속도가 일시적으로 무력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교단의 진정한 공포는 화력이 아니었다.
쿵. 쿵.
자욱한 화염과 흙먼지 너머로, 대지를 흔드는 기괴하고 무거운 발소리가 다가왔다.
“비켜라, 약해빠진 고철 무리여.”
차가운 기계음이 섞인 둔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걸어 나온 존재는 거대한 강철 판금 장갑으로 전신을 무장한 괴물이었다.
철의 집행관 크론.
신체의 60% 이상을 기계로 대체한 개조 등급 4단계에 육박하는 전신 사이보그 처형인이었다. 그의 어깨 위에는 스치기만 해도 장갑을 녹여버리는 초고열 플라즈마 중력 도끼가 붉은빛을 발산하며 진동하고 있었다. 크론은 인간의 감정이 완전히 거세된 눈빛으로 저항군 진지를 내려다보았다.
“이단 정화 프로토콜을 집행한다.”
크론이 거대한 중력 도끼를 허공으로 치켜들었다가, 그대로 바닥을 향해 내리찍었다.
쿠우우우웅—!
도끼가 지면에 닿는 순간, 단순한 타격을 넘어선 초중력의 광역 지진파 충격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바닥의 금속 데크들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솟구쳤고, 저항군이 구축해 둔 겹겹의 바리케이드가 단 한 번의 격돌로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으아아악!”
“대피해라!”
최전선에서 사격 태세를 취하고 있던 카일 대위의 소대원 5명이 중력 충격파에 휩쓸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붕괴하며 즉사했다. 피와 비명이 자욱한 먼지 속을 채웠다.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저항군의 방어선이 완벽하게 붕괴한 것이다.
크론은 피비린내 나는 연기 속을 유유히 걸어 나오며, 쓰러진 저항군 대원들의 목을 무자비하게 밟아 뭉갰다. 그의 시선이 마침내 골렘 뒤에 서 있는 유선우를 향해 고정되었다.
“반역의 황태자 유선우. 네놈의 뇌를 회수하겠다.”
크론이 다시 한번 중력 도끼를 치켜들며 선우를 향해 돌격해왔다. 그의 육중한 강철 장갑이 움직일 때마다 지면이 파손되는 굉음이 정비창을 가득 채웠다.
선우는 마비된 왼손을 꽉 쥐며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뇌의 과부하로 인해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각혈이 다시 한번 그의 목구멍을 넘어 흘러내렸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 순간, 선우의 뒤편에서 거대한 은빛 티타늄 합금 장갑으로 덮인 중장갑 인간형 로봇이 바람을 가르며 뛰어내렸다.
쿠웅—!
가디언 아틀라스였다.
아틀라스는 부러진 방패를 전면에 세우며 크론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의 금빛 안구가 무섭게 점멸하며, 가슴의 나노 제너레이터 코어가 고출력으로 포효했다.
“황태자 전하의 안위를 침해하는 모든 적대 개체를 배제한다.”
아틀라스가 거대한 중력 제어 실드를 전방으로 전개하며, 크론이 내리찍는 플라즈마 중력 도끼를 정면으로 받아내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지상 최강의 처형인과 고대 황실의 전투 가디언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순간, 눈을 멀게 할 정도의 핏빛 전자기 스파크가 정비창 전체를 집어삼키며 폭발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