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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파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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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망의 붉은 사슬들이 끊어진 통신선 너머에서 다시금 선우의 의식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블랙햇이 설계한 방화벽은 기계교단 메인 서버의 방대한 연산력을 실시간으로 수급받고 있었다. 켄의 보조가 끊긴 지금, 가상 공간에 홀로 남겨진 선우의 은빛 아바타는 거대한 붉은색 격자 장벽에 가로막혀 사방이 옥죄어오는 압박감을 느꼈다. 왼손가락의 황실 마스터 링은 전력 잔량 10% 미만을 가리키며 차갑게 점멸하고 있었다. 추가적인 광역 연산은 곧 뇌 세포의 영구적인 나노 침식을 의미했다.


선우는 차갑게 가라앉은 이성으로 연산 경로를 재조정했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했다. 그는 가상망의 직접적인 데이터 대결을 피하고, 기지 내부의 물리적 전력선 주파수를 역이용하는 우회로를 개척하기로 했다.


‘고스트 해킹 기법(Ghost Hacking)을 심부 전송선으로 전환한다.’


그는 자신의 의식 파동을 자칼 기지의 구형 발전기가 뿜어내는 저주파 잡음 신호와 동조시켰다. 블랙햇의 추적 사슬이 그의 잔상을 맹렬히 덮쳤으나, 선우의 의식은 이미 데이터의 흐름을 타고 가상망의 가장 어두운 심부, 물리적 현실의 경계선으로 미끄러져 나간 뒤였다.


스으으읍.


선우는 현실의 육체로 눈을 떴다. 매캐한 탄화 그리스 냄새와 차가운 오존향이 코끝을 찔렀다. 미각을 잃어버린 혀끝에는 오직 쇠붙이를 씹는 듯한 텁텁함만이 맴돌았다. 그는 자칼 갱단의 본거지인 폐기 선박실 지하 3층 통로의 어둠 속에 밀착해 있었다. 왼쪽 손가락 끝은 감각이 완전히 사라진 채 은빛 회로 패턴이 가늘게 새겨져 차갑게 굳어 있었다.


망막 UI 상에 켄과의 연결이 끊겼음을 알리는 적색 노이즈가 조용히 명멸했다. 이제부터는 오직 홀로 움직여야 했다. 다행히 가상망을 탈출하기 직전 확보한 민아의 감금 좌표는 선우의 뇌 신경망에 황금빛 궤적으로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목표 좌표: 지하 3층 제2독실. 직선거리 45미터.]


선우는 그림자처럼 어두운 복도를 따라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폐기된 거대 수송선의 내부를 개조해 만든 기지는 사방이 녹슨 철판과 조잡하게 덧댄 구리 전선으로 가득했다.


철컥, 철컥.


복도 모퉁이 너머에서 규칙적이고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는 벽면에 몸을 바짝 붙이고 숨을 죽였다. 기계의 속삭임 청취 능력이 그의 귓가에 차가운 전류의 마찰음을 전해왔다.


세 명의 경비병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기계교단의 하부 조직인 자칼 갱단의 엘리트 대원들이었다. 머리 뒷부분에 이식된 개조 등급 2단계의 신경 통제 칩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감정과 자아를 거세당하고, 오직 자칼의 명령에만 기계적 효율성으로 반응하는 사이보그 인형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고출력 플라즈마 소총이 쥐어져 있었다.


선우는 마스터 링을 가볍게 튕기며 무선 오버라이드를 시도했다. 그러나 망막에 붉은 경고등이 들어왔다.


[경고: 기지 내부 국소 전자기 차폐 장벽 가동 중. 무선 해킹 신호 차단.]


블랙햇이 물리 세계의 통신망마저 완벽히 차단해 둔 것이 분명했다. 무선 제어가 불가능하다면 물리적인 접촉과 직접적인 동력 간섭뿐이었다.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세 명의 경비병의 붉은 광학 센서가 동시에 선우를 포착했다. 그들의 신경 칩이 위험 요소를 인지하고 플라즈마 소총의 충전 트리거를 당기려 했다. 소총의 총구가 붉은빛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포격음이 울리는 순간 기지 전체에 경보가 퍼질 터였다.


선우는 주저 없이 왼손 바닥을 전방으로 펼쳤다.


“무선 동력 강탈(Energy Siphon), 흡수.”


웅—!


선우의 목소리가 낮게 울림과 동시에, 마스터 링이 강렬한 은빛 진동을 일으켰다. 경비병들의 플라즈마 소총 배터리에서 방출되던 무선 전력 주파수가 공중에서 기괴하게 꺾이며 선우의 반지로 빨려 들어왔다. 소총 총구의 붉은 광채가 순식간에 사그라지며 차가운 회색빛으로 방전되었다.


무기가 무력화되었음에도 경비병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신경 칩이 공포를 원천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즉각 소총을 버리고 허리춤에서 고주파 진동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사이보그 신체의 출력을 폭주시킬 때 발생하는 기계음을 내며 선우를 향해 육탄전으로 들이닥쳤다.


선우는 오른손 손톱 끝으로 자신의 마비된 왼손가락 마디를 강하게 그었다. 굳어버린 은빛 피부 틈새로 은빛이 감도는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그 순간, 선우의 가슴속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치솟았다. 혈관 속의 메디컬 나노 머신들이 상처를 인지하고 급격히 동조하느라 그의 뇌 신경을 강하게 자극했다.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차가운 오한과 가벼운 현기증이 그의 시야를 순간적으로 흐려놓았다. 힘을 쓸 때마다 인간의 육체가 기계로 변해가는 가혹한 대가였다.


하지만 선우는 이빨을 악물며 첫 번째 경비병의 단검 찌르기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그리고 그의 몸이 스쳐 지나가는 찰나, 자신의 피 묻은 왼손 손가락을 경비병의 목덜미에 노출된 기계 의수 관절 포트에 정확히 밀착시켰다.


“나노 오버라이드(Nano Override).”


치이이익!


선우의 은빛 피가 닿는 순간, 붉은 액체가 살아있는 미세 회로로 변하며 경비병의 기계 의체 내부로 거미줄처럼 침투했다. 초고속으로 전파된 나노 입자들이 신경 칩의 제어권을 장악했다. 경비병의 오른팔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자신의 목을 강제로 조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경비병이 양방향에서 단검을 찔러왔다. 선우는 몸을 낮추며 그들의 다리 관절 사이의 노출된 전선망에 피 묻은 손을 얹었다. 나노 오버라이드 신호가 그들의 하반신 신경망을 타고 무섭게 흘러들었다.


[경고: 이물질 침투 감지. 시스템 강제 재부팅 시도 10%…… 20%…….]


경비병들의 뇌 속 신경 칩이 오염을 감지하고 시스템 복구를 위해 재부팅 프로토콜을 가동하려 했다. 마비가 풀리면 다시 공격해올 터였다.


선우는 마스터 링의 주파수를 미세하게 변조하여 방출했다.


‘루프 상태로 묶어라.’


링에서 뿜어져 나온 고유 주파수가 적들의 신경 칩 재부팅 신호와 공명하며 연산 회로를 영구적인 무한 대기 상태로 고정해버렸다. 세 명의 경비병은 단검을 쥔 채 그대로 허공에서 굳어버렸다. 그들의 안구 센서는 초점을 잃고 둔탁한 회색으로 변했다.


선우는 벽을 짚으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각혈은 면했으나 메디컬 나노의 소모로 인해 전신에 힘이 빠져나갔다.


그는 굳어버린 경비병들을 지나쳐 복도 끝의 육중한 강철 문 앞으로 다가갔다. 지하 3층 제2독실. 민아가 갇혀 있는 곳이었다. 선우는 가상망에서 미리 탈취해 두었던 보안 코드를 문 옆의 패널에 입력했다.


스으으윽.


강철 문이 좌우로 열리며 어두운 제어실의 내부가 드러났다.


방 중앙의 낡은 철제 의자에 민아가 전자기 구속구에 결박된 채 앉아 있었다. 그녀의 갈색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탐사복 곳곳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선우를 발견한 그녀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커졌다.


“선우 씨……! 안 돼, 들어오지 마!”


민아가 필사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제어실 천장의 강철 패널들이 일제히 열리며 기계음이 울렸다.


위이이잉—!


어두운 허공 속에서 수십 개의 붉은색 레이저 조준선이 일제히 내려앉아 선우의 창백한 얼굴과 가슴팍을 정밀 조준했다. 붉은 빛무리들이 그의 제복 위에서 핏빛 점들처럼 어지럽게 일렁였다. 기지 전체의 경보 차단에는 성공했으나, 이 방 자체가 거대한 덫이었던 것이다.


짝, 짝, 짝.


제어실 깊은 어둠 속에서 조소 섞인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육중한 강철 의족이 바닥을 딛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전신에 황금색 사이보그 장갑을 두른 거구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칼 갱단의 보스, 자칼이었다. 그의 한쪽 어깨 아래에는 거대한 회전형 칼날이 조용히 회전하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플라즈마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어서 와라, 천 년 전의 유령 황태자님.”


자칼이 황금색 가면 너머로 비열한 안광을 번뜩이며 선우의 가슴에 권총을 조준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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