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눈동자
네뷸라 정크야드의 심장부, 게토-9의 자유 시장은 언제나처럼 매캐한 중수소 타는 냄새와 정제되지 않은 윤활유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허공에 매달린 수천 개의 홀로그램 광고판은 붉고 푸른 노이즈를 내뿜으며 깜빡였고, 그 아래로는 삐걱거리는 기계 의수를 단 하층민들과 정체불명의 밀수업자들이 뒤엉켜 쓰레기더미 같은 부품 상자를 뒤지고 있었다.
“에테르-플라이어의 보조 추진기를 살리려면 고밀도 나노 주입액이랑 절연 코일이 필수적이야. 바스 영감의 정비창에 있는 고물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민아는 입가를 낡은 먼지 마스크로 가린 채, 실용적인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고고학 탐사복의 지퍼를 단단히 채웠다. 그녀의 품속에는 천 년 전 제국의 유적지에서 가져온 고대 제국 홀로그램 나침반이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하며 숨겨져 있었다. 그녀가 이곳 자유 시장에 은밀히 잠입한 이유는 단 하나, 교단의 추격을 피해 정박한 함선을 수리할 부품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시장 모퉁이에 자리 잡은 고철 상점의 녹슨 가판대 위에 은빛 실선이 흐르는 구형 제어 칩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민아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부품의 상태를 살피려던 찰나였다.
스으으읍.
갑작스럽게 고막을 찌르는 미세한 파열음과 함께, 차갑고 무거운 녹색 가스가 민아의 발밑에서 뿜어져 나왔다. 자칼 갱단이 무법지대의 암시장에서 즐겨 쓰는 특수 마비 가스였다.
“윽……! 이, 이건…….”
민아는 황급히 코를 막으려 했으나, 이미 가스가 호흡기를 타고 폐부 깊숙이 스며든 뒤였다. 온몸의 신경계가 실시간으로 마비되며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절망적인 무력감이 그녀를 덮쳤다. 손에 쥐고 있던 주파수 스캐너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거친 마찰음을 냈다.
스윽.
어둠 속에서 황동색 사이보그 장갑을 두르고 가죽 코트를 걸친 사내들이 소리 없이 들이닥쳤다. 자칼 갱단의 행동대원들이었다. 그들의 붉은색 외눈 의안이 마비된 민아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보스의 명령이다. 상처 하나 없이 온전하게 모셔라. 황태자놈을 낚을 가장 확실한 미끼니까.”
그들은 민아를 거칠게 들어 올려 검은색 차폐막이 쳐진 대형 호버 밴에 밀어 넣었다. 문이 닫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호버 밴은 소음조차 내지 않고 게토-9의 어두운 골목길 너머로 사라졌다.
***
동시간, 바스의 우주선 정비창.
유선우는 에테르-플라이어의 메인 제어 콘솔 앞에 서서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은빛 광채를 내뿜던 마스터 링의 배터리 잔량은 이제 겨우 15% 수준. 극도로 방전된 반지는 그의 창백한 피부 아래로 차가운 오한을 지속적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나노 침식률 15% 돌파.
그 가혹한 페널티는 선우의 육체를 조용히 좀먹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미 혀의 감각이 마비되어 물맛조차 느끼지 못하는 미각 상실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고, 왼쪽 손가락 끝은 감각이 완전히 거세된 채 차가운 은빛 금속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선우는 마비된 손끝을 쥐었다 펴며 감각을 되살리려 했으나, 손끝에서는 오직 차가운 기계의 진동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파르르.
그때, 선우의 마스터 링과 연결되어 있던 민아의 생체 신호가 실시간 망막 UI 상에서 붉은색 노이즈를 일으키며 완전히 단절되었다.
‘신호가 끊겼다. 단순한 통신 장애가 아니군.’
선우의 눈동자가 차가운 금빛으로 일렁였다. 천 년 전 제국의 정통 황태자로서 지닌 ‘기계의 속삭임 청취’ 능력이 그의 귀에 불길한 전류의 비명을 전해왔다. 민아가 들고 갔던 주파수 스캐너의 고유 파동이 급격한 과부하 폭발을 일으키며 소멸한 흔적이었다.
“켄. 즉시 게토-9의 가상망을 열어라.”
선우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정비창 구석에서 수십 개의 모니터 화면과 광섬유 케이블에 둘러싸여 있던 지하 해커 켄이 고글을 치켜올리며 기괴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개조 등급 2단계의 신경 칩을 이식받은 그의 관자놀이에서 푸른색 데이터 스파크가 튀었다.
“전하, 자유 시장의 폐쇄회로망에 접속했습니다! 하지만 자칼 갱단 놈들이 정밀한 차폐막을 쳐놔서 일반적인 추적으로는 신호가 잡히지 않습니다. 저 비열한 사이보그 마피아 놈들이 기어이 전하의 반지를 노리고 덫을 놓은 겁니다!”
“상관없다. 내가 직접 들어가지.”
선우는 주저 없이 척추 뒤쪽의 신경 포트에 켄이 건넨 다이렉트 케이블을 연결했다. 그리고 자신의 뇌 신경망에 이식된 해킹 보조 장치, ‘해킹 터미널 AI 키퍼’를 기동했다.
[키퍼 프로토콜 가동. 가상 IP 우회 노드 생성 완료. 고스트 해킹 기법(Ghost Hacking)을 시작합니다.]
지이잉—!
선우의 의식이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 게토-9의 복잡하고 지저분한 가상 데이터망 내부로 침투했다. 가상 공간 속에서 선우의 아바타는 반투명한 은빛 고스트 형상으로 변해, 자칼 갱단이 구축해 둔 조잡한 보안 방화벽 사이를 연기처럼 소리 없이 관통했다.
선우는 ‘전자기 공명 해독술’을 병행하여 자칼의 경비 드론들과 통신망이 방출하는 미세한 전자기 노이즈를 대화하듯 해독해 들어갔.
[……미끼는 확실하게 물었다. 폐기 선박실 본거지로 이동 중…… 황태자놈이 반지를 순순히 넘기지 않으면…….]
도청에 성공한 순간, 선우는 민아가 타고 있는 호버 밴의 좌표를 특정했다. 그는 가상망 내에서 즉각 근처를 지나가던 정박지의 자동 경비 로봇들의 제어 코드를 강제 탈취하려 시도했다. 경비 로봇을 조종해 납치 차량의 궤도를 들이받아 멈추기 위함이었다.
[경고: 물리적 방화벽 감지. 강제 제어권 획득 실패.]
자칼 갱단이 미리 설치해 둔 물리적 전파 차단 격벽이 선우의 제어 주파수를 강하게 튕겨냈다.
“비열한 쥐새끼들이 꼼수를 부렸군.”
설상가상으로, 적들은 자신들의 통신이 도청당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기지 내부의 산업용 신호 추적 차단기(Jammer)를 풀 출력으로 가동했다. 켄의 모니터 위에 영사되던 가상 지도가 붉은색 정전기 노이즈와 함께 빠르게 붕괴하기 시작했다.
“제장! 전하, 차단 강도가 너무 강합니다! 추적 신호가 완전히 끊어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켄이 비명을 질렀다.
선우는 이를 악물었다. 방전 직전인 마스터 링의 잔여 에너지를 무리하게 끌어올렸다. 그의 뇌 신경망이 비명을 지르며 연산 부하를 호소했지만, 선우는 멈추지 않았다.
웅—!
선우의 손가락에서 뿜어진 은빛 전자기 펄스가 가상 링크를 타고 적들의 원격 데이터 노드 내부로 침투했다. 링의 초월적인 나노 입자 제어력이 차단기의 연산 장치를 내부에서부터 과부하시켜 강제로 다운시켰다. 붕괴해가던 가상 지도가 기적적으로 다시 선명하게 정렬되었다.
[키퍼: 자칼 갱단 납치 차량의 이동 경로 추적 완료. 최종 목적지—게토-9 북부 폐기 선박실 좌표 확정.]
“잡았다.”
선우는 가상망에서 의식을 철수하며 현실로 돌아왔다. 그의 눈동자가 찬란한 금빛으로 폭주하듯 일렁였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극심한 신경 과부하의 대가로 뇌를 찌르는 듯한 두통이 몰아쳤다. 선우는 차가운 은빛 피가 코끝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삐이이이—!
정비창의 메인 콘솔과 켄의 불법 단말기들이 일제히 찢어지는 듯한 비상 경보음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모니터 전체가 핏빛처럼 붉은색 노이즈로 오염되며 거대한 경고 문구가 영사되었다.
[비상 경보: 궤도 구역 대형 중력 반응 감지.]
[기계교단 이단심문소 소속 2등 심문관 발락의 직속 순양함 ‘여명의 빛’호, 정크야드 상공 진입 완료.]
화면 가득히 정크야드의 회색 하늘을 찢고 내려오는 거대한 검은색 순양함의 실루엣이 투영되었다.
“이, 이럴 수가…… 교단의 순양함이 벌써 이 무법지대 경계선까지 들어왔다고요? 정크야드 전체를 통째로 봉쇄할 작정입니다!”
켄의 얼굴이 공포로 하얗게 질려갔다.
민아를 납치한 자칼의 음모, 그리고 정크야드 전체를 소멸시키기 위해 다가오는 기계교단의 거대 함대. 두 개의 거대한 어둠이 동시에 선우의 숨통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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