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하는 시간의 낙인
“지이이잉— 치익!”
손목에서 터진 전자기 스파크가 핏빛 모래 바닥을 벌겋게 태웠다. 오 영감이 온갖 고철을 기워 만든 수제 수명 보존 시계의 전면 유리가 사선으로 쩍 갈라진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균열의 틈새로 흘러나온 푸른 전기 노이즈가 가죽 장갑을 낀 채준의 오른손을 사정없이 지졌다.
[경고: 작동 오차율 38.2% 초과]
[경고: 지연 리미터 계측 불가]
[남은 수명: 14시간 26분 04초]
가슴뼈 안쪽, 심장에 이식된 ‘딜레이 포켓(지연된 영혼)’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전신으로 살인적인 열기를 뿜어냈다. 백건우의 묵직한 강철 주먹에 가슴을 정면으로 강타당한 여파였다. 갈비뼈 두 대가 어긋나 허파를 찌르는 듯한 극통이 호흡을 가로막았다. 목구멍까지 울컥 치밀어 오르는 비릿한 혈향을 채준은 턱을 악물며 강제로 삼켜냈다.
“하하하! 그까짓 싸구려 초시계 하나 부서졌다고 벌벌 기는 꼴이라니! 13구역의 전설적인 해결사라는 놈의 밑천이 고작 이것뿐이었나?”
원형 철창 너머, 은빛 합금 피막으로 전신을 무장한 백건우가 쿵, 쿵 대지를 울리며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이 모래바닥을 디딜 때마다, 그가 흡수한 충격 에너지가 접지면을 통해 지면으로 분산되며 쿠르릉거리는 미세한 진동을 일으켰다. 무적의 방패. 외부에서 가해지는 그 어떤 물리적 타격도 땅으로 흘려보내 무화시키는 괴물.
공중의 VIP 관람석 유리창 너머로 최 씨 영감이 와인잔을 흔들며 탐욕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가슴팍에서 깜빡이는 맥박 감지기의 불빛이 아라의 산소호흡기 전원선과 무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채준의 머릿속을 차갑게 옥죄었다.
‘최 씨를 직접 죽일 수는 없다. 아라의 목숨줄이 저 영감의 맥박에 걸려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 철창 안에서 백건우를 완벽하게 깨부수고 판돈을 독식해 최 씨의 목을 죄어야 한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는 여전히 감각이 죽어 굳어 있었다. 대검 손잡이를 쥔 왼손의 악력만으로는 저 무지막지한 은빛 괴물의 가드를 뚫을 수 없었다. 게다가 시계의 유리가 깨져 지연 한계치를 초과하는 순간 심장이 폭발해 즉사한다. 남은 시간은 단 1분 남짓.
채준은 차갑게 연산했다.
‘백건우의 금강불괴 피부는 외부 타격을 지면으로 분산시킨다. 하지만 관절을 움직이는 순간, 팔꿈치와 어깨 접합부의 은빛 피막이 미세하게 갈라지는 0.1밀리미터의 틈새가 생긴다. 타격을 밖에서 가하는 게 아니라, 그 틈새를 통해 충격을 내부 장기로 직접 주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적의 반응 속도를 완벽히 초월해야 했다.
채준은 왼손으로 오른손목의 균열이 간 시계 테두리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뇌신경 세포를 강제로 불태우는 금기의 공식을 전개했다.
“오버클록 2x(Overclock 2x). 기동.”
화아아악!
채준의 온몸에서 뜨거운 푸른색 증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 끝부분이 순식간에 회색빛으로 하얗게 세어 들어갔고, 뇌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편두통이 관자놀이를 찔렀다. 영구적인 세포 노화의 대가. 수명 1년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페널티였지만, 그의 눈동자는 이제 완전한 은빛 시계 문자판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잔재주냐!”
백건우가 포효하며 은빛 철권을 내질렀다. 가속된 백건우의 주먹이 공기를 찢으며 채준의 안면으로 쇄도했다.
보인다.
오버클록으로 2배 가속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날아오는 주먹의 궤적과 백건우의 어깨 관절 틈새가 실시간으로 스캔 되듯 채준의 시야에 박혔다.
채준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백건우의 주먹을 정면으로 허용했다.
콰아아앙!
“지연율 30% 단계(Delay Rate 30% Stage), 흡수.”
백건우의 무시무시한 연타가 채준의 어깨와 복부에 사정없이 꽂혔다. 뼈가 바스러지는 충격음이 터져 나왔지만, 가해진 물리적 운동에너지의 30%가 채준의 피부 표면에서 푸른빛 물결로 변하며 ‘딜레이 포켓’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머지 70%의 충격이 장기를 흔들며 극통을 유발했지만, 채준은 ‘심장 박동 동기화 호흡법’으로 심장 박동수를 분당 40회 이하로 억누르며 버텨냈다.
손목시계의 임계 게이지가 95%를 가리키며 붉은색 노이즈를 미친 듯이 뿜어냈다. 폭발 직전의 에너지 배터리.
“검을 놓치고 미쳐버린 모양이군! 맨몸으로 내 주먹을 받다니!”
백건우가 승리를 확신하며 가드를 풀고 마지막 비장의 철권을 내지르기 위해 어깨를 크게 뒤로 뺐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채준은 쥐고 있던 단분자 대검을 일부러 모래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무방비 상태를 가장한 미끼. 백건우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가며 주먹을 뻗는 찰나, 채준의 신체가 잔상을 남기며 백건우의 품 안쪽 사각지대로 파고들었다.
2배로 가속된 속도 속에서 채준의 마비되지 않은 왼손 주먹이 백건우의 몸을 향해 번개처럼 세 번 움직였다.
탁, 탁, 탁!
가벼운 접촉음이었다. 채준의 주먹은 백건우의 단단한 가슴팍 대신, 그가 주먹을 지르며 일시적으로 피막이 얇아진 오른쪽 어깨 접합부, 왼쪽 팔꿈치 안쪽 관절, 그리고 흉골 중앙의 미세한 틈새를 정확히 스치고 지나갔.
“...?”
백건우가 멈칫했다. 채준의 약하디약한 세 번의 주먹질은 그의 은빛 피부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내 백건우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채준의 주먹이 닿았던 세 곳의 피부 표면에 희미한 은빛 시계 태엽 문양이 낙인처럼 새겨져 째깍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지연 폭파(Delayed Detonation). 낙인 이식 완료.”
채준이 피 묻은 입술을 올리며 차갑게 속삭였다.
“이딴 모기 물린 듯한 낙인 장난이 내 금강불괴를 뚫을 수 있을 거라— 컥!”
백건우가 분노하며 채준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강철 같은 손가락이 채준의 목뼈를 부러뜨릴 듯 조여왔다. 숨이 막히고 시야가 붉게 물들어가는 극단의 한계 속에서도 채준은 백건우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숫자를 읊조렸다.
“3. 2. 1.”
째깍.
10초의 타이머가 끝났다.
동시에 백건우의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괴한 태엽 소리가 울려 퍼졌다. 채준이 임팩트 딜레이로 가슴 주머니에 가두어 두었던 백건우 본인의 무시무시한 철권 물리 에너지와 폭발적인 운동에너지가, 낙인이 찍힌 세 군데의 관절 틈새를 타고 내부 장기로 역류해 한 번에 폭발했다.
콰콰콰콰콰콰앙!
“끄아아아아악!”
백건우의 비명이 철창 내부를 찢었다. 외부 타격에는 무적이었던 그의 은빛 피부 안쪽, 뼈와 근육에서부터 수십 대의 누적 물리 충격이 동시다발적으로 연쇄 대폭발을 일으켰다.
푸드득! 콰직!
백건우의 피부 안쪽에서 뼈가 유리가 깨지듯 기형적으로 으스러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그의 어깨와 팔꿈치 접합부에서 은빛 피막이 쩍쩍 갈라지며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내부에서부터 붕괴한 거구의 신체가 힘없이 꺾이며 핏빛 모래밭 위로 무겁게 쓰러졌다. 철창 전체가 그 충격의 여파로 반쯤 무너져 내리며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사방을 덮었다.
무패의 챔피언이 마침내 파멸했다.
투기장 내부가 순간 차가운 정적에 휩싸였다. 슬럼가 부랑민 자치회 ‘하루살이’ 주민들이 모여 있던 관람석에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경악의 침묵이 흐르다, 이내 폭발적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
채준은 Ragged한 숨을 몰아쉬며 무너진 철창 벽에 기대어 섰다. 머리카락 끝은 하얗게 바랬고, 오른팔은 감각이 완전히 죽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VIP 석의 최 씨를 향해 차갑게 빛났다. 판돈은 이제 그의 것이었다. 아라를 구할 수 있었다.
쾅! 콰르릉!
그 순간, 투기장 입구의 거대한 철제 출입문이 강력한 전자기 폭발과 함께 산산조각 나며 날아갔다.
자욱한 먼지 구름을 뚫고, 붉은색 안광을 번뜩이는 사이보그 사냥개들이 으르렁거리며 투기장 내부로 쏟아져 들어왔. 그 뒤를 이어 검은색 군용 슈트를 입고 고압 전류 채찍을 쥔 강태석의 수거부대 대원들이 철창 사방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반역자 신채준을 포획해라! 저항하는 쥐새끼들은 현장에서 즉시 수명을 적출한다!”
붉은색 수색 레이더 불빛이 투기장의 모래밭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채준의 안면을 똑바로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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