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실의 탐욕스러운 눈동자
제3창고 뒷골목의 허물어진 콘크리트 잔해 너머로 붉은색 서치라이트가 사납게 대기를 훑었다. 빗줄기를 뚫고 쏟아지는 제국 집행부대의 서치라이트는 슬럼가의 밤을 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규칙적이고 묵직한 군화 소리가 물웅덩이를 짓밟는 소리가 골목 양편에서 좁혀왔다.
채준은 가죽 코트 '데스 딜레이'의 자락을 단단히 여미며 벽면의 좁은 배수관 틈새로 몸을 밀어 넣었다. 코트 등 뒤에 묶인 나무 상자, 제국 원로원의 문양이 박힌 저순도 에테르 정제액 상자가 그의 척추를 묵직하게 짓눌렀다. 이재현과의 격렬한 사투 끝에 얻어낸 전리품이었지만, 그것을 지켜내기 위한 대가는 가혹했다.
왼쪽 뺨의 자상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상처를 자극해 아릿한 통증을 유발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번져오는 살인적인 열기였다. 이재현의 초고속 단검들을 지연 주머니에 가두느라 딜레이 포켓이 한계 이상으로 과열되어 있었다. 오른손목에 채워진 수명 보존 시계가 미세하게 진동하며 경고음을 흘렸다.
[남은 수명: 14시간 48분 32초]
아라의 산소호흡기가 방전되기까지 남은 골든타임과 정확히 맞물려 흘러가는 잔인한 숫자였다. 게다가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는 완전히 감각이 죽어 굳어 있었다. 대검을 쥐는 파지법조차 어색해진 상태에서 정면 돌파는 자살행위였다.
채준은 어둠 속에 완전히 동화된 채 숨을 죽였다. 순찰대의 서치라이트가 그가 숨은 배수관 바로 앞을 아슬아슬하게 비추고 지나갔다. 군화 소리가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채준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슬럼가의 복잡한 옥상 개구멍과 낡은 환기구 통로를 타고 내달렸다. 오직 동생을 살려야 한다는 차가운 이성만이 그의 움직임을 지배하고 있었다.
***
제13구역 변두리에 위치한 연명 치료실의 뒷문은 습한 안개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철문 옆 낡은 가로등 아래, 헐렁한 경비복을 입은 조 경비가 가죽 벨트에 매달린 진압봉을 만지작거리며 연신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채준이 소리 없이 안개 속에서 걸어 나오자, 조 경비는 깜짝 놀라며 진압봉으로 손을 뻗었다.
"누, 누구... 신 씨인가?"
채준은 대답 대신 마비되지 않은 왼손을 뻗어 품속에서 구겨진 싸구려 담배 한 갑을 꺼냈다. 슬럼가에서는 수명 칩만큼이나 가치 있는 기호품이었다. 담배 갑이 조 경비의 주머니 속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조 경비의 눈이 탐욕스럽게 번쩍였다.
"쉿, 목소리 낮추게. 강태석의 수거부대 녀석들이 암시장에서 대판 싸움이 났다며 온 동네를 잡듯 뒤지고 있네. 자네 뺨의 상처는 또 뭔가?"
"아라를 보러 왔습니다."
채준이 갈라진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조 경비는 주머니 속의 담배를 만지작거리며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안쪽에 최 씨 영감이 오늘따라 예민하네. 수명 장부를 검사한다며 눈을 번뜩이고 있으니 얼른 들어가서 약만 주입하고 나오게. 들키면 나도 감당 못 하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낡은 뒷문이 살짝 열렸다. 채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연명 치료실의 어둡고 차가운 복도 안으로 몸을 숨겼다.
연명실 내부는 마치 거대한 기계 무덤 같았다.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산소호흡기의 단조로운 기계음과 방전 직전의 수명 배터리들이 내뿜는 불규칙한 전자음이 기괴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붉은색 수명 바코드를 목덜미에 켠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노인들이 병상에 무기력하게 누워 있었다. 이곳은 치료를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제국이 지상민들의 마지막 생체 에너지를 빨아먹기 위해 임시로 모아둔 가축 수용소에 불과했다.
채준은 환기구의 그늘진 사각지대를 밟으며 아라가 누워 있는 403호 병실로 향했다.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빳빳한 간호사 복장의 민지혜가 주사기를 든 채 주변을 경계하다가, 채준의 그림자를 보고 황급히 문을 열어주었다.
"신 씨! 어서 들어와요."
민지혜의 눈가에는 극도의 피로와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채준의 등 뒤에 묶인 제국 원로원의 정제액 상자를 보고는 작게 숨을 들이켰다.
"진짜로 구해왔군요... 아라의 산소호흡기 배터리가 이제 한 시간도 남지 않았어요. 관리인 최 씨가 계속 수명 칩을 가져오지 않으면 당장 전원을 내리겠다고 협박해서 겨우 말려두고 있었어요."
"고마워요, 지혜 씨."
채준은 서둘러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침대 위에는 가녀린 체구의 아라가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투명할 정도로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그녀의 숨소리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채준은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가락을 왼손으로 받쳐가며 조심스럽게 상자의 봉인을 뜯었다. 상자가 열리자 차가운 증기와 함께 푸른빛을 내뿜는 저순도 에테르 정제액 앰플이 모습을 드러냈다. 슬럼가의 조잡한 희석액과는 차원이 다른, 제국 귀족들의 생명선과도 같은 순수한 약물이었다.
민지혜의 도움을 받아 정밀 주입기에 약물을 옮겨 담은 채준은 아라의 가느다란 팔에 연결된 링거 라인에 바늘을 꽂았다.
치이이익.
약물이 튜브를 타고 아라의 정맥으로 흘러 들어가는 순간, 아라의 목덜미에 새겨진 희미한 수명 게이지가 서서히 녹색 빛을 되찾기 시작했다. 거칠고 불규칙했던 호흡이 한결 차분하게 가라앉았고, 창백했던 뺨에 아주 미세한 온기가 감돌았다.
채준은 동생의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가슴뼈 깊은 곳에서 타오르던 딜레이 포켓의 발열도 동생의 안정된 숨소리와 함께 서서히 식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평화는 찰나에 불과했다.
철컥.
병실 문이 등 뒤에서 닫히며 잠금장치가 무겁게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채준은 즉각 몸을 돌렸다.
어둠이 짙게 깔린 병실 입구, 기름진 대머리에 돋보기안경을 코끝에 걸친 노인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연명 치료실의 총괄 관리인 최 씨였다. 그의 손에는 채준이 아라에게 약물을 주입하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찍힌 태블릿 단말기가 들려 있었다.
"아름다운 남매의 정이로군 그래, 신채준."
최 씨가 단말기 화면을 손가락으로 툭툭 튕기며 기름진 목소리를 흘렸다.
"이재현을 꺾고 제국 원로원의 에테르를 훔쳐 오다니, 실력은 여전해. 하지만 무단 침입에 불법 약물 밀수라니. 이 영상 하나면 너뿐만 아니라 네 동생까지 당장 제국 집행부에 끌려가 즉결 해체당할 텐데, 감당할 수 있겠나?"
채준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가운 서리처럼 굳어졌다. 그의 왼손이 자연스럽게 허리춤에 매달린 대검 손잡이로 향했다. 오른손가락은 마비되었지만, 왼손만으로도 저 비열한 노인의 목뼈를 부러뜨리는 것은 0.1초도 걸리지 않는 일이었다.
채준이 살기를 뿜으며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최 씨는 비웃으며 자신의 가슴팍에 달린 기계를 가리켰다.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해결사 양반."
최 씨가 단말기의 버튼 하나를 누르자, 아라의 산소호흡기 제어 화면에 불길한 적색 경고등이 들어왔다.
"내 심장 박동 감지기가 이 병실의 메인 전력 그리드와 무선으로 연동되어 있거든. 내 심장이 멈추거나 내 맥박이 급격히 떨어지면, 아라의 산소호흡기 전원이 즉시 차단되고 고압 전류가 흘러가 저 가녀린 뇌 세포를 완전히 태워버릴 테니까. 어디 한번 내 목을 꺾어 보시지?"
채준의 발걸음이 허공에서 우뚝 멈췄다. 그의 이성이 차갑게 주파수를 연산했다. 최 씨의 가슴팍에서 미세한 전자기 신호가 실제로 아라의 호흡기 제어 장치와 공명하고 있었다. 무력으로 단죄할 수 없는, 철저히 계산된 인질극의 덫이었다.
민지혜가 사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최 씨의 앞을 가로막았다.
"관리인님, 제발 그만두세요! 아라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예요! 약물은 제가 주입한 걸로 해 주세요!"
"닥쳐, 민 간호사!"
최 씨가 사납게 소리치며 민지혜를 밀쳐냈다.
"네가 이 시한부 자식의 침입을 도운 것도 다 기록되어 있어. 조용히 하지 않으면 당장 집행부에 밀고해 네 남은 수명을 전부 몰수하고 중층 구역의 지하 광산으로 유배 보내버릴 테니까!"
민지혜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슬럼가에서 수명 몰수는 곧 즉사를 의미했다. 힘없는 약자들의 서글픈 현실이 병실의 무거운 공기 속에 짓눌려 있었다.
최 씨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서 다 해진 종이 한 장을 꺼내 채준의 발밑으로 툭 던졌다.
"아라의 호흡기를 계속 돌리고 싶다면, 내일 밤 열리는 불법 지하 투기장 '철창의 지배자'에 출전해라."
"투기장...?"
"그래. 내 이름으로 네놈에게 막대한 판돈을 걸 테니, 거기서 무조건 이겨서 내 수명을 불려 오란 말이다. 만약 도망치거나 지는 순간... 네 동생의 수명 배터리는 그 즉시 0이 될 거야."
최 씨의 손가락이 아라의 산소호흡기 전원 스위치 위에 닿아 있었다. 비열하게 번뜩이는 그의 탐욕스러운 눈동자가 채준의 숨통을 조여왔다.
채준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차갑게 연산했다. 지금은 숙여야 할 때였다. 하지만 이 비열한 노인의 수명 배터리가 다하는 날, 그 대가는 뼈째로 돌려주리라 다짐했다.
채준은 마비된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바닥의 서약서를 주워 올렸다. 그리고 최 씨를 쏘아보며 거칠게 서명했다.
최 씨가 서약서를 가로채며 아라의 전원 스위치에서 손을 뗐다.
"현명한 선택이군. 내일 밤 철창 안에서 기대하마, 신채준."
최 씨가 비열한 웃음소리를 남기며 병실을 빠져나갔고, 채준은 어둠 속에서 아라의 가녀린 숨소리를 들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새로운 지옥의 문이 그를 향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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