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의 그림자 사냥
빗줄기가 지상 제13구역을 가린 거대한 강철 톱니바퀴 장막 사이로 무겁게 흘러내렸다. 강철 다리 위, 사방으로 흩어진 제국 수송 장갑차의 잔해와 매캐한 화약 연기 너머로 신채준은 단분자 대검을 짚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우윽……!”
입안 가득 비릿한 선혈이 울컥 고였다가 빗물 섞인 흙바닥 위로 툭툭 떨어졌다. 백산의 다연장 유탄 폭발을 왼손으로 무리하게 흡수했던 대가였다. 채준의 왼손 피부는 이미 손목에서부터 팔뚝 아래까지 푸른빛의 딱딱한 시간 결정으로 변해 굳어가고 있었다. 손가락 끝은 감각을 완전히 잃은 채 얼음처럼 차가운 한기만을 내뿜었고,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는 지난 전투의 여파로 여전히 영구 마비된 상태였다. 양손의 감각이 정상적이지 않은 최악의 육체적 한계.
손목에 채워진 오 영감의 수제 수명 보존 시계는 유리막이 쩍 갈라진 틈새 사이로 푸른색 전자기 스파크를 튀기며 미친 듯이 붉은 경고등을 점멸했다.
[경고: 작동 오차율 22.4% 초과]
[위험: 지연 가동 시 심장 장치 폭주 위험 최고조]
[남은 수명: 12시간 19분 12초]
남은 수명은 반나절 남짓. 하지만 채준은 자신의 몸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방금 통신 무전병 송아름의 무전기를 통해 들려온 연명 치료실의 습격 소식, 그리고 동생 아라를 노리는 제국 과학원 하부 생체 자원 회수팀의 흉포한 목소리가 그의 뇌리를 송곳처럼 후벼팠기 때문이다.
“채준아! 그 몸으로 혼자 가겠다는 건 자살행위야!”
정은하가 저격총을 거두며 채준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채준은 차갑게 가라앉은 은빛 눈동자로 그녀의 손을 밀쳐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억눌린 살기와 복수심이 서리처럼 서려 있었다.
“은하 씨, 최태만 씨. 두 사람은 배동수 씨와 함께 노획한 에테르 정제액과 나노 동결 겔을 비밀 기지로 호송해 주십시오. 아라를 구하는 건…… 나 혼자 갑니다.”
“하지만……!”
“명령입니다. 놈들이 아라의 특이 유전자를 노리고 움직였다면, 내가 갈 때까지 아라의 목숨을 끊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체되면 병동의 다른 사람들이 전부 몰살당합니다.”
채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뒤틀리는 갈비뼈의 극통을 이성으로 누르며 빗속으로 몸을 던졌다. 굳어버린 오른손가락을 가죽 코트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고, 오직 대검을 쥔 왼손의 완력과 째깍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만을 의지한 채 폭풍처럼 질주했다. 머리카락 끝부분이 하얗게 세어 들어가는 노화의 감각이 전신을 옥죄었지만, 아라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
제13구역 연명 치료실 입구.
평소 슬럼가의 병약한 주민들이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하루하루 목숨을 구걸하던 그 차갑고 습한 병동은, 이미 비명과 피비린내로 가득 찬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철컥, 콰직!
채준이 부서진 뒷문을 밀치고 복도로 들어서자마자 코끝을 찌른 것은 짙은 구리 냄새와 타버린 오존 향이었다. 바닥에는 수명을 강제로 적출당해 목덜미의 붉은색 ‘필터(Filter)’ 등급 바코드가 완전히 꺼진 채 죽어 있는 주민들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 제국 과학원 하부 생체 자원 회수팀의 무자비한 도살 흔적이었다.
“채, 채준 씨……? 안 돼요…… 들어오면 안 돼요……!”
복도 한구석, 머리가 깨진 채 쓰러져 있던 병동 간호사 민지혜가 채준의 가죽 코트 자락을 보며 피 묻은 손을 뻗었다. 그녀의 눈에는 공포와 절망이 가득했다.
“민지혜 간호사님. 아라는 어디 있습니까?”
“생체 회수팀 놈들이…… 403호 병실의 전자기 차단막을 부수고 진입했어요. 늑대 가죽을 쓴 괴물과……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사신 같은 놈이…… 주민들을 가차 없이 죽이면서 아라를 생포하겠다고…….”
그 순간, 복도 끝의 그림자가 기이하게 일렁였다.
채준은 민지혜를 엄폐물 뒤로 밀어 넣으며 본능적으로 가슴의 ‘딜레이 포켓(지연된 영혼)’을 가동했다. 하지만 오차율 22.4%를 초과한 심장 장치는 가동되자마자 갈비뼈 안쪽에서 날카로운 금속성 마찰음과 함께 시퍼런 불꽃을 뿜어냈다.
“우윽!”
뜨거운 열량이 허파를 타고 올라와 각혈이 터졌지만, 채준은 주머니에서 ‘기계 무덤의 낡은 전투 고글’을 꺼내 눈에 밀착했다. 고글의 측면 스위치를 딸깍이자, 야간 투시막 너머로 복도의 전자기 흐름과 미세한 열 감지 신호가 붉은 실루엣으로 떠올랐다.
복도의 어둠이 비정상적으로 짙어지고 있었다.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생체 주파수를 주변의 음영 영역과 동조시켜 완전한 무(無)를 구현하는 이능력, ‘그림자 동화계’였다.
‘놈이다. 오 영감님의 진료소를 습격해 치명상을 입혔던 그 자식.’
과거 오 영감을 살해한 주범이자 제국 과학원의 특수 요원, 흑사(코드명)가 이 어둠 속에 잠복해 있었다.
스으으으—
공기의 흐름이 완전히 끊겼다. 고글 화면에 흐르던 전자기 노이즈가 한순간 일직선으로 정렬되었다. 흑사가 그림자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이었다. 소리도, 온도도 감지되지 않는 절대적인 정적.
채준은 대검을 쥔 왼손에 힘을 주었다. 결정화된 왼손 피부가 삐걱거리며 기괴한 통증을 유발했지만, 뇌세포를 쥐어짜며 사선 예측(Death Line Prediction)의 연산을 시작했다.
‘지금 흑사의 본체는 물질이 아닌 파동으로 흩어져 있다. 대검을 무작위로 휘두르는 것은 전력 낭비다. 놈이 실체화되어 나를 타격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잡아야 한다.’
채준은 일부러 등을 보이며 복도 중앙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그 순간, 채준의 머리 뒤편 그림자가 낫처럼 길게 뻗어 나오며 날카로운 형상을 취했다. 소리도 없이, 흑사가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와 채준의 목덜미를 향해 스치기만 해도 심장을 마비시키는 고농축 신경독 주입 단검을 찔러왔다.
고글 화면 우측 상단에 붉은 점이 번쩍였다. 흑사의 심장에 흐르는 미세한 생체 전류 신호가 포착된 것이었다.
쉬이익!
채준은 몸을 돌리며 단분자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하지만 흑사는 비웃듯 다시 한번 몸을 흐트러뜨리며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었다. 대검의 묵직한 참격이 허공을 크게 가르며 병동 벽면의 콘크리트만을 부수어 놓았다.
“쥐새끼가 제법 눈이 밝군. 하지만 제국의 기술로 분석된 네 몸으로는 내 그림자의 궤적을 쫓을 수 없다.”
어둠 속에서 흑사의 왜곡된 기계 음성이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동시에 채준의 사각지대인 왼쪽 어깨 뒤편에서 검은 연기 같은 슈트가 실체화되었다. 흑사의 신경독 단검이 소리보다 빠른 속도로 채준의 가슴팍, 정확히 딜레이 포켓의 제어 장치를 조준하고 쇄도했다.
왼손의 결정화 마비로 인해 대검을 돌려 막을 시간은 단 0.01초도 남아있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
채준은 눈을 부릅뜨며 가슴의 심장 장치를 강제로 동조시켰다.
‘임팩트 딜레이(Impact Delay)……!’
키이이이잉—!
귀를 찢는 듯한 고주파 비명과 함께 채준의 피부 표면에서 은빛의 반투명한 시계 기어 문양이 장막처럼 전개되었다.
탁!
흑사의 고농축 신경독 단검 끝날이 채준의 가슴 가죽 코트 표면 1mm 앞에서 단단한 시간의 벽에 막혀 그대로 정지했다. 단검이 가진 물리적 전진 운동에너지가 시간의 주머니 속에 갇혀 봉인된 것이었다.
“……?! 타격을 정지시켰다고?!”
흑사의 푸른색 안광 센서가 경악으로 흔들렸다.
하지만 흑사의 단검 표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고농축 신경 독소 가스가 공기 중으로 유출되었다. 채준의 코와 입을 통해 독 가스가 유입되자마자, 폐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호흡 곤란과 함께 전신에 일시적인 마비가 들이닥쳤.
“커헉……!”
채준은 기침을 토해내면서도 흑사의 단검을 쥔 손목을 마비되지 않은 왼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딜레이 포켓에 저장해 두었던 백산의 유탄 폭발 잔류 충격의 일부를 왼손바닥을 통해 역방향으로 방출했다.
콰아아앙!
“윽!”
강력한 충격파가 흑사의 가슴을 강타하며 그의 그림자 동화계를 강제로 깨뜨렸다. 흑사는 복도 벽면으로 밀려나며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 짧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 채준은 대검을 비껴 쥐며 흑사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사선으로 참격을 내질렀다. 단분자 초진동 날이 흑사의 은밀 슈트를 찢고 어깨뼈를 깊숙이 갈라놓았다.
치이이익!
슈트 내부의 냉각제와 흑사의 검붉은 피가 복도 벽면에 낭자하게 튀었다. 흑사는 어깨가 반쯤 찢겨 나가는 치명상을 입고 벽에 기대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흑사는 고통 속에서도 광기 어린 비웃음을 지으며 채준을 올려다보았다.
“하하…… 큭큭…… 과연 소문대로 괴물 같은 무력이군, 신채준. 하지만 어쩌지? 너의 그 잘난 심장 장치의 주파수 데이터는…… 이미 우리 과학원의 분석 장치에 완벽하게 복제당했다.”
“뭐라고?”
채준의 은빛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흑사는 피 묻은 왼손을 뻗어 복도 벽면의 타일 뒤에 숨겨져 있던 비밀 레이저 가동 레버를 힘껏 당겼다.
철컥! 웅웅웅웅—!
병동 복도 천장과 벽면 곳곳에서 붉은색 고출력 레이저 격자망이 가동되며 채준의 전후좌우 퇴로를 완벽하게 가두기 시작했다.
동시에 복도 깊은 곳, 아라가 누워 있는 403호 병실 방향에서 거대한 쇠문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처참한 기계 파괴 소음이 병동 전체를 뒤흔들었다.
쿵! 쿠구구구궁!
늑대의 포효소리와 함께 아라의 산소호흡기 전력 시스템이 강제로 정지되는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아라를 생포하려는 맹견의 육중한 발걸음 소리였다. 아라의 생명 유지 장치가 완전히 정지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1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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