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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환의 역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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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덜미를 향해 휘어져 들어오는 은빛 철갑탄. 그것은 단 0.01초 뒤에 신채준의 생명을 끊어놓을 제국의 사선(死線)이었다.


‘뇌신경 시간 가속(Cranial Nerve Time Acceleration)’으로 인해 100배로 느려진 흑백의 세계 속에서, 채준의 심장은 터질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관자놀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극심한 편두통이 뇌를 송곳으로 쑤시는 듯했고, 왼쪽 눈과 코에서는 뜨거운 선혈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가죽 코트 ‘데스 딜레이’의 깃을 적셨다.


[경고: 작동 오차율 22.4% 초과]

[위험: 지연 가동 시 심장 장치 폭주 위험 최고조]

[남은 수명: 12시간 19분 45초]


손목에 채워진 오 영감의 수제 수명 보존 시계가 붉은 전자기 스파크를 튀기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채준은 물러설 수 없었다. 아니, 물러설 공간조차 없었다. 독수리가 쏜 세 번째 레일건 탄환은 바람의 기류를 타고 기괴한 호선을 그리며 그의 왼손바닥 방어막을 완전히 우회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임팩트 딜레이(Impact Delay)’로는 이 휘어지는 탄도를 막을 수 없다. 궤적 자체가 그의 방어막 사각지대를 파고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리 법칙을 비틀어 침투하는 적의 지략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벡터 리버설(Vector Reversal).’


채준은 떨리는 숨을 들이쉬며, 푸른빛의 딱딱한 시간 결정으로 변해 굳어가고 있는 왼손을 비틀었다. 백산의 유탄 열량을 흡수했던 대가로 왼손 피부는 이미 기형적으로 결정화되어 촉각을 상실한 상태였다. 주먹을 쥘 때마다 결정의 틈새가 쩍쩍 갈라지며 투명한 진물이 흘러나왔고, 뼈마디가 통째로 부서지는 듯한 극통이 어깨까지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채준은 그 고통을 이성으로 짓눌렀다. 그의 은빛 눈동자가 허공에 멈춘 듯 느리게 회전하는 탄환의 기류 리본을 정밀하게 포착했다. 탄환의 회전 방향, 공기의 밀도, 그리고 탄도가 가진 운동에너지의 벡터값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0.001초 만에 연산되었다.


탄환이 그의 목덜미 피부에 닿기 정확히 0.01초 전.


“……역류해라.”


채준이 나직하게 읊조림과 동시에 왼손바닥을 허공을 향해 강하게 뻗었다.


키이이이이잉—!


가슴속 깊은 곳에 박힌 ‘딜레이 포켓’의 은빛 태엽들이 비명을 지르며 역회전하기 시작했다. 손목시계의 유리막이 추가로 쩍 갈라지며 사방으로 거친 불꽃이 튀었다. 그와 동시에, 채준의 목덜미 바로 앞 10cm 허공에서 공간이 푸른빛 물결처럼 비틀렸다.


콰아아아앙!


휘어져 들어오던 레일건 철갑탄이 공기 장막에 부딪히며 엄청난 폭음과 함께 그 자리에 딱 멈춰 섰다. 탄환이 가진 초음속의 전진 운동에너지가 시간의 주머니 속에 갇혀 강제로 봉인된 것이었다. 탄환의 끝날이 공기를 찢으며 회전하던 마찰열이 채준의 얼굴에 뜨거운 열풍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채준은 멈춰 선 탄환을 향해 왼손가락을 튕기며 벡터 역전 공식을 대입했다.


스으으으—


시간 속에 가두어졌던 철갑탄이 기이한 은빛 스파크를 일으키며 허공에서 제자리 회전을 시작했다. 탄환의 물리적 운동 방향과 속도 벡터가 정반대인 180도로 완전히 재설정되는 순간이었다. 탄환의 끝날이 이제 채준이 아닌, 저 멀리 고지대의 독수리의 둥지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지연 해제.


슈우우우웅—!


쿠과과광!


시간의 굴레에서 풀려난 철갑탄이 날아왔던 기류 궤적을 그대로 타고 대역류를 시작했다. 독수리가 탄도를 제어하기 위해 만들어 두었던 보이지 않는 진공의 바람 통로가, 이제는 그를 파멸시킬 가장 완벽한 유도 궤도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300미터 밖 고지대 옥상 그늘.


레일건의 조준경을 통해 채준의 목덜미가 뚫리는 광경을 기다리고 있던 독수리의 푸른색 헬멧 안구 센서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투영되었다. 자신이 쏜 탄환이 정반대의 방향으로, 그것도 레일건의 사출 속도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공간을 찢으며 역류해 오고 있었다.


“……?! 배, 백터가 역류한—!”


독수리가 경악하며 몸을 피하려 했으나, 기류를 타고 역류하는 탄환의 속도는 이미 음속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콰아아아앙!


역류한 철갑탄이 독수리의 레일건 포구를 정확히 관통하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레일건 내부에 충전되어 있던 전자기 에너지가 연쇄 폭발하며 옥상 고지대의 강철 기둥들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독수리의 전신 슈트가 폭풍에 휩싸여 먼지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저격 거점 전체가 불타는 잔해가 되어 다리 아래로 추락했다.


동시에, 제국 감시실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정보장교 서희재의 실시간 분석 안경 화면이 지직거리며 노이즈로 가득 찼다.


[경고: 저격수 독수리 바이오 신호 정지]

[전술 분석 데이터 오프라인]


“……말도 안 돼. 벡터의 물리 방향 자체를 뒤집었다고? 그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서희재가 차가운 분석 안경을 치켜올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녀의 단정하게 빗어 넘긴 단발머리 사이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채준의 데이터는 분명 한계 수치를 가리키고 있었으나, 그가 보여준 인과 역전의 무력은 제국의 예측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


다리 위, 시간 가속이 완전히 해제되자마자 채준은 단분자 대검을 지면에 짚으며 무릎을 꿇었다.


“우욱……!”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부정맥과 함께 검붉은 피가 바닥으로 울컥 쏟아졌다. 왼손 피부의 결정화 상태는 이제 손목을 넘어 팔뚝 아래까지 푸른 수정처럼 딱딱하게 굳어 들어가고 있었다. 감각이 완전히 사라진 왼손가락 끝에서는 차가운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오른손가락의 마비에 이어 왼손마저 결정화로 굳어가는 상태. 채준은 삐걱거리는 몸을 억지로 지탱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채준아! 괜찮아?!”


정은하가 콘크리트 잔해 뒤에서 달려 나와 채준의 어깨를 부축했다.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에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백발이 된 채 피를 흘리는 채준을 향한 깊은 경외감과 충격이 서려 있었다.


“저격수는…… 처리했다.”


채준이 갈라진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그의 은빛 눈동자는 여전히 차갑고 이성적인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군, 해결사. 그 괴물 같은 저격수를 제국의 탄환으로 역폭사시키다니.”


최태만이 부서진 장갑차 바퀴 사이로 기어 나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철민의 반파된 방패 뒤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저항군 대원들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엄폐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시간이 없다. 수송 차량 내부를 수색해라.”


채준의 지시에 배동수가 신속하게 움직였다. 배동수는 쇠지렛대를 들고 반파된 제국 수송 장갑차의 뒷문을 강제로 뜯어냈다. 치이이익 하는 증기 배출음과 함께 장갑차 내부의 잠금장치가 풀리며 차가운 인공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곳에는 제국의 고급스러운 은빛 차폐 상자들이 정갈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찾았다! 진짜 에테르 약물들이야!”


배동수가 상자 하나를 열어젖히며 외쳤다. 상자 안에는 푸른빛 오라를 은은하게 내뿜는 ‘저순도 에테르 정제액’ 병들이 가득 차 있었고, 그 옆에는 상처의 시간을 일시적으로 동결시켜 출혈을 막아주는 초고가의 일급 응급 물질, ‘수명 보존용 나노 동결 겔’ 팩들이 빛나고 있었다.


“이 정도 양이면 아라의 생명 유지 장치를 가동하고도 남을 자금이다! 박형식이 말한 보정 태엽도 이 안쪽 기밀실에 보관되어 있을 거다!”


대원들이 환호하며 은빛 상자들을 신속하게 이동식 카트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동생 아라의 생명선을 연장할 정제액과 자신의 심장 폭주를 막아줄 보정 태엽을 마침내 손에 쥔 순간이었다. 채준은 가슴팍의 통증이 미세하게 가라앉는 듯한 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기쁨은 찰나에 불과했다.


지직…… 지지직!


대원들의 보초 무전을 담당하던 송아름의 통신기에서 귀를 찢는 듯한 노이즈와 함께 다급한 전선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치익! 대장님! 채준 형님! 들리십니까?! 송아름입니다! 지금 비상 상황입니다!


무전기 너머 송아름의 목소리는 평소의 침착함을 완전히 잃은 채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름아, 무슨 일인가? 수송대는 이미 확보했다.”


배동수가 통신기를 쥐고 다급하게 물었다.


—치익! 그게 아닙니다! 강태석의 정예 생체 회수팀이 움직였습니다! 늑대 유전자를 이식받은 맹견과 그림자 암살자 흑사 놈들이…… 지금 여동생 아라 씨가 잠들어 있는 제13구역 연명 치료실을 기습했습니다! 병동 복도가 완전히 점령당했습니다!


“뭐라구?!”


강철민이 너클을 쥔 주먹을 꽉 쥐며 경악했다. 채준의 은빛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사납게 흔들렸다.


—치익! 놈들이 병원 내부의 전자기 방어벽을 강제로 무력화하고 아라 씨의 병실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병동 간호사 민지혜 씨가 비밀 통신망으로 연결해 준 실시간 음성을 패치하겠습니다! 들어보십시오!


송아름이 다급하게 주파수를 전환하자, 무전기 스피커 너머로 쇠비린내 나는 연명 치료실 내부의 비명과 파괴음이 노이즈 섞인 잔상과 함께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안 돼요! 환자들의 산소호흡기 전원을 건드리지 마세요! 제발……!


민지혜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수술용 메스가 바닥에 떨어지는 쟁그랑 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흉포한 숨소리와 함께 쇠를 긁는 듯한 기계 음성이 고막을 찔렀다.


—치익…… 쥐새끼들의 은신처 좌표는 이미 확보했다. 이 병동에 숨겨진 신채준의 여동생, 특이 뇌파를 가진 신아라를 즉시 확보해라! 저항군 놈들은 현장에서 즉각 도살한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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