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 위의 스나이퍼
공간을 진공으로 가르며 무시무시한 전자기 레일건 탄환이 채준의 미간을 향해 직사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리도 없었고, 전조도 없었다. 대기를 찢는 초음속의 파열음은 탄환이 목표를 관통한 뒤에야 찾아오는 법이었다. 백산의 전신 중장갑 슈트를 날려버리고 적진을 붕괴시킨 직후, 승리의 전율이 다리 위를 감싸던 찰나에 날아든 절체절명의 저격 기습이었다.
‘위험해.’
채준의 척추를 타고 내려온 본능적인 살기가 뇌리를 강타했다. 그의 심장 속 ‘딜레이 포켓’이 반응하기도 전, 채준은 억지로 상체를 뒤틀었다.
스으으윽—!
미간을 향해 날아들던 은빛 탄환이 채준의 왼쪽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살갗이 찢어지며 붉은 선혈이 뿜어 나왔고, 채준이 입고 있던 낡은 가죽 코트 ‘데스 딜레이’의 깃이 힘없이 찢겨 나갔다.
콰아아앙!
탄환이 스쳐 지나간 뒤에야 고막을 찢는 격렬한 supersonic boom이 다리 상판을 흔들었다. 채준의 등 뒤에 있던 수송 장갑차의 두꺼운 철판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리며 쇠 가루가 사방으로 튀었다.
“저격이다! 모두 엎드려!”
최태만이 비명을 지르며 박살 난 철판 잔해 뒤로 몸을 던졌다. 양팔의 근육이 파열된 채 쓰러져 있던 김철구 역시 신음하며 기어갔다. 다리 위는 순식간에 다시 지옥 같은 긴장감으로 얼어붙었다.
“은하야! 적의 위치는?”
채준이 찢어진 뺨의 피를 왼손등으로 훔쳐내며 소리쳤. 그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는 여전히 감각이 죽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왼손 역시 백산의 포격 열량을 흡수한 여파로 피부 일부가 푸른빛의 딱딱한 시간 결정으로 변해 굳어가고 있었다.
저항군의 저격수 정은하가 박살 난 장갑차 바퀴 뒤에 엄폐한 채, 개조된 전자기 가속 저격총의 조준경에 눈을 밀착했다. 그녀의 단발머리가 불규칙한 바람에 사납게 흩날렸다. 바람의 흐름을 읽는 그녀의 이능력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지만, 은하의 미간은 이내 절망적으로 찌푸려졌다.
“안 보여……! 기류 장막 은신막이 옥상 고지대 전체를 덮고 있어. 바람의 흐름이 완전히 왜곡되어 있어서 정확한 좌표를 딸 수가 없어!”
“제장, 제국의 엘리트 저격수인가!”
최태만이 머리를 감싸 쥐며 절규했다.
다리 위를 뒤덮은 자욱한 연무 너머, 약 300미터 떨어진 고지대의 옥상 그늘.
얼굴 전체를 덮는 차가운 푸른색 기계식 헬멧을 쓴 사내가 소리 없이 서 있었다. 제국 엘리트 저격수, 독수리(코드명)였다. 그의 손에 들린 제국 정예 요원용 초장거리 전자기 가속 레일건 저격총의 포구가 푸른색 전자기 스파크를 미세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독수리의 귀에 꽂힌 통신기 너머로 차갑고 지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채준, 그의 시간 지연막 작동에는 정확히 0.01초의 물리적 인지 지연이 존재한다. 방금 백산의 포격을 무리하게 흡수하느라 그의 심장 오차율은 이미 22.4%를 초과했어. 왼손 피부의 결정화 상태로 보아 세포 노화 페널티도 극에 달해 있다.
제국 정보장교 서희재였다. 그녀는 멀리 떨어진 감시실에서 전투용 실시간 분석 안경을 쓴 채, 채준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데이터로 연산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한계다. 그 방패의 틈새를 노려라. 먼저 그의 눈과 귀가 되는 저항군 대원들부터 차례로 침묵시켜라. 저격수 정은하의 미간을 조준해라.
“라져.”
독수리가 차갑게 중얼거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바람의 흐름을 통제해 탄환의 마찰력을 제로로 만드는 그의 이능력이 레일건의 초속과 결합했다.
쉬이이익!
진공을 찢는 은빛 사선이 다시 한번 다리 위를 향해 사출되었다. 목표는 정은하의 이마였다.
채준의 눈동자가 급격히 수축했다. 보이지 않는 적의 살기가 정은하를 향해 뻗어나가는 것이 그의 본능에 걸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오른손목에 채워진 오 영감의 수제 수명 보존 시계는 여전히 오차율 22.4%를 가리키며 붉은 스파크를 내뿜고 있었다.
[위험: 지연 가동 시 자폭 위험성 극대화]
[남은 수명: 12시간 30분 11초]
여기서 능력을 더 썼다간 뇌세포가 타버리거나 심장이 폭발할 터였다. 하지만 동료의 죽음을 방관할 수는 없었다. 채준은 이를 악물며 마비되지 않은 왼손 손가락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강하게 짚었다.
‘뇌신경 시간 가속(Cranial Nerve Time Acceleration)— 기동!’
콰아아아앙!
그의 머릿속에서 미세한 신경 전류가 폭발하듯 솟구쳤다. 관자놀이 부근의 혈관들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고, 채준의 시야가 순식간에 뒤틀렸다.
주변의 모든 색상이 빛바랜 흑백의 세계로 변했다. 다리 위를 흐르던 자욱한 연무와 흩날리는 먼지들이 공중에서 멈춘 듯 아주 느리게 기어가기 시작했다. 흐르는 시간이 100배로 느려진 초현실적인 세계. 그 정적 속에서 대기 중을 흐르는 바람의 기류가 하얀색 리본 형상으로 투시되어 보였다.
동시에 채준의 은빛 눈동자가 적의 사격을 예측하기 위해 번뜩였다.
‘사선 예측 (Death Line Prediction).’
스으으으—
흑백으로 변한 세계의 허공 위로, 고지대 옥상에서부터 정은하의 이마를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나오는 선명한 핏빛 붉은 선이 가상 투시되어 떠올랐. 그것은 독수리가 쏜 레일건 탄환이 0.1초 뒤에 궤멸시킬 파괴의 경로였다.
“으, 윽……!”
뇌신경을 한계까지 가속한 대가는 가혹했다. 가속 시간 1초당 10분의 수명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극단적인 페널티. 채준의 왼쪽 눈에서 붉은 선혈이 눈물처럼 흘러내렸고, 코끝으로 뜨거운 코피가 울컥 쏟아졌다. 머리가 용광로에 처박힌 듯한 극심한 편두통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려 했다.
하지만 채준은 굳어버린 다리를 강제로 움직였다. 100배로 느려진 세계 속에서, 그의 육체는 시간의 점성에 막힌 듯 무겁게 움직였다. 결정화된 왼손 피부가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채준은 몸을 던졌다. 그의 가죽 코트 ‘데스 딜레이’가 흑백의 허공을 가르며 넓게 펼쳐졌다.
그는 정은하의 어깨를 밀쳐내며 그녀를 콘크리트 잔해 뒤편으로 강하게 굴려버렸다.
쉬이이익!
그 직후, 독수리의 특수 철갑탄이 정은하가 서 있던 공간을 정확히 관통했다. 은빛 탄환의 마찰 기류가 채준의 가죽 코트 자락을 다시 한번 찢어발겼다.
“아윽……!”
정은하가 영문도 모른 채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시간 가속이 해제되자마자, 채준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입에서 검붉은 피가 한 움큼 쏟아져 나왔다. 뇌 과열로 인해 눈앞이 시커멓게 멀어 가고 있었다.
—신채준이 저격 궤적을 예측하고 동료를 구했다. 그의 반사 신경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있어. 하지만 방금 그 기술로 그의 뇌는 완전히 타들어 가기 직전이다. 독수리, 딜레이 포켓의 인지 사각지대를 다시 노려라. 이번엔 신채준 본인의 심장이다.
서희재의 냉혹한 분석 지시가 독수리의 헬멧 내부로 전송되었다.
독수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음 탄환을 장전했다. 그의 손끝에서 바람의 기류가 소용돌이치며 철갑탄의 탄도를 비틀 준비를 마쳤다.
채준은 대검을 바닥에 짚은 채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다시 한번 자신을 향해 뻗어 나오는 치명적인 핏빛 사선이 보였다.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채준은 떨리는 숨을 들이쉬며, 결정화되어 푸른빛을 내뿜는 자신의 왼손을 전방으로 천천히 뻗었다. 지연율 30%의 힘을 손바닥에 집중하며, 날아오는 탄환을 맨손으로 직접 붙잡아 딜레이 포켓에 가둘 태세를 갖추었다. 오차율 22.4%의 시계가 그의 손목에서 폭발적인 전자기 스파크를 튀겼다.
그리고 마침내, 독수리의 세 번째 레일건 탄환이 공간을 진공으로 찢으며 채준의 손바닥을 향해 직사로 쏘아졌다.
바로 그 순간.
채준의 왼손바닥에 은빛 탄환이 닿기 직전, 탄환 주변을 감싸고 있던 하얀색 바람의 기류가 기괴하게 비틀리기 시작했다.
독수리의 기류 제어 능력이 탄환의 표면을 강타한 것이었다. 직선으로 날아오던 은빛 철갑탄의 궤적이 채준의 손바닥을 비웃듯 불규칙하게 꺾이며, 그의 목덜미를 향해 예리한 호선을 그리며 휘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
채준의 은빛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물리 법칙을 비틀어 휘어져 들어오는 탄환의 궤적은, 그의 손바닥이 닿을 수 없는 완벽한 사각지대를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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