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을 삼키는 방패
“지상의 쥐새끼들이 감히 제국의 시간에 손을 대느냐!”
백산의 포효가 강철 다리의 안개를 찢어발겼다. 두께 20cm에 달하는 그의 붉은색 전신 방탄 장갑 슈트가 유압 실린더의 기계음을 내뿜으며 요동쳤다. 채준의 코앞, 불과 1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백산의 거대한 다연장 유탄 발사기가 불길한 오렌지빛으로 달아올랐다.
초근접 사격. 피할 곳은 없었다. 다리 상판은 이미 이전 포격으로 인해 완전히 초토화되어 엄폐물 하나 남지 않은 상태였다. 뒤편에는 양팔의 근육이 파열되어 쓰러진 김철구와 기폭 장치가 먹통이 되어 절망하는 최태만이 있었다. 채준이 물러서는 순간, 그들 모두가 고폭 유탄의 화염 속에 증발할 터였다.
지직, 지지직!
채준의 오른손목에 채워진 오 영감의 수제 수명 보존 시계가 날카로운 전자기 스파크를 튕겼다. 쩍 갈라진 유리막 사이로 붉은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경고: 작동 오차율 22.4% 초과]
[남은 수명: 12시간 35분 02초]
박형식의 경고가 뇌리를 스쳤다. 오차율 20% 초과. 이 상태에서 능력을 썼다간 지연된 충격이 방출되지 못하고 심장 내부로 역류해 즉사한다. 게다가 가죽 장갑 속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는 감각이 완전히 죽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대검을 제대로 쥘 수조차 없는 나락의 상태.
하지만 채준은 물러서지 않았다. 왼손으로 대검의 손잡이를 부서져라 움켜쥐고, 마비된 오른손가락들을 대검 끝날에 용접된 ‘단분자 커터 폐기 칼날’의 가드 부분에 걸쳐 지탱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목숨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것이 이 차가운 제국이 지배하는 세상의 등가교환 법칙이었다.
콰아아앙—!
백산의 다연장 포구가 마침내 불을 뿜었다.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오렌지빛 화염과 함께 고폭 유탄이 채준의 안면을 향해 직사되었다. 폭발의 충격파와 함께, 김철구의 강철 방패마저 순식간에 녹여버렸던 가공할 만한 고열의 열량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그 찰나의 순간, 채준은 눈을 감았다.
흡— 호, 호, 호.
도진 스님에게 배웠던 ‘심장 박동 동기화 호흡법’이 가동되었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요동치던 채준의 심장 박동수가 강제로 분당 40회 이하로 뚝 떨어졌다. 요동치던 혈류가 얼어붙듯 느려지자, 채준의 인지 속도가 극대화되며 날아오는 폭발의 화염이 멈춘 듯 아주 천천히 기어오기 시작했다.
채준은 마비되지 않은 왼손을 전방으로 뻗었다. 손끝이 타오르는 화염의 끝자락에 닿는 순간, 머릿속으로 차가운 공식을 전개했다.
‘물리 충격 지연 제어법(Physical Impact Delay Control).’
웅웅웅!
채준의 왼손바닥 앞 10cm 허공에서 공간이 비틀렸다. 은빛의 반투명한 격자무늬 시간 장막이 전개되며, 날아오던 유탄의 폭발 충격파가 그대로 시간의 주머니 속에 갇혀 멈춰 섰다. 하지만 진짜 위협은 충격 뒤에 도사린 ‘고열’이었다.
화르륵! 치이이익!
백산의 유탄이 뿜어내는 수천 도의 열량이 지연 장벽을 타고 채준의 손끝으로 흘러들었다. 물리적 충격은 시간 속에 묶어둘 수 있었지만, 에너지가 지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적 페널티는 고스란히 채준의 육체가 감당해야 했다.
“크으으윽……!”
채준의 입에서 짓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가죽 코트 ‘데스 딜레이’의 왼소매가 열기에 타들어가며 시커먼 재로 변했다. 왼손의 피부가 고열에 익어가며 순식간에 푸른빛의 딱딱한 시간 결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세포가 급격히 노화되며 굳어가는 공포스러운 감각이 팔뚝을 타고 올라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부정맥이 고동쳤다. 오차율이 폭주하는 시계 장치가 채준의 심장 근육을 쇠붙이처럼 갉아먹었다. 장기가 안에서부터 익어가는 듯한 극통에 채준의 머리카락 끝부분이 더욱 희끗희끗하게 세어 들어갔다.
여기서 충격을 그대로 두면 심장이 먼저 터진다. 흘려보내야 했다.
‘엔트로피 지연 분배 법칙(Entropy Delay Distribution Law).’
채준은 이를 악물고 흡수한 충격과 열량의 흐름을 전신으로 분산시켰다. 왼손 끝에서 시작된 가공할 물리력이 갈비뼈를 타고, 척추를 지나, 그의 두 발끝으로 흘러내려 갔다.
콰구구구궁!
채준이 딛고 서 있던 강철 다리의 상판이 엄청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쩍쩍 갈라지며 주저앉았다. 충격이 지면으로 접지 분산되며 심장으로 집중되던 즉사의 위기는 면했지만, 전신의 뼈마디가 유리처럼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 혈관이 터져 눈과 코에서 검붉은 선혈이 울컥 쏟아져 내렸다.
[위험: 충격 축적량 99% 도달]
[자폭 임계점 도달 1초 전]
“이, 이 괴물 같은 녀석이…… 포격을 맨몸으로 지연시키고 있다고?”
붉은색 바이저 너머로 백산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이 자랑하던 절대적인 화력이 채준의 손바닥 앞에서 은빛 격자에 갇힌 채 단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는 광경은, 그의 오만한 이성을 무참히 깨부수었다. 백산은 다급하게 유탄 발사기를 재장전하려 유압 실린더를 작동시켰다.
하지만 채준이 더 빨랐다.
“돌려주지.”
채준이 백발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은빛 눈동자를 번뜩였다. 지연 주머니 속에 가두어 두었던 백산의 모든 포격 물리 충격과 타오르는 고열의 에너지가 그의 왼주먹 한 점으로 무섭게 응축되었다. 주먹 주변의 대기가 열기로 인해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채준은 그대로 백산의 흉판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키네틱 릴리스 (Kinetic Release)—!’
콰아아아아앙—!
다리 전체를 무너뜨릴 것 같은 가공할 만한 충격 폭풍이 채준의 주먹 끝에서 터져 나갔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다섯 발 분량의 고폭 유탄 에너지가 단 0.1초 만에 백산의 정면을 향해 역방향으로 휘몰아쳤다. 대기를 찢는 굉음과 함께 푸른색 시계 문자판 형상의 폭풍이 사방을 뒤덮었다.
“크아아아악!”
백산의 비명이 폭풍 속에 묻혔다. 두께 20cm에 달하던 그의 육중한 붉은색 방탄 장갑 슈트가 가슴팍부터 시작해 사방으로 산산조각 나며 찢겨 나갔다. 슈트를 지탱하던 유압 파이프들이 터져 나가며 뜨거운 기름과 증기가 분출했다.
500kg이 넘는 백산의 거구가 허공으로 붕괴하듯 날아가 다리 상판 위를 수십 미터나 굴렀다. 그 뒤편에 대기하고 있던 수송 장갑차의 전면 유리창이 충격파에 완전히 박살 났고, 한준이 제어하던 자동 포탑 2기 역시 과부하로 폭발하며 다리 아래 오염된 폐수 속으로 추락했다.
적진의 완벽한 붕괴였다. 강철 다리 위는 순식간에 적들의 비명과 찢어진 철판 잔해, 그리고 자욱한 연무로 가득 찼다.
“하아…… 하아……”
채준은 대검을 지팡이 삼아 짚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전신에서 뜨거운 수증기가 피어올랐고, 결정화된 왼손 피부가 삐걱거리며 떨어져 나갔다. 오른손목의 시계는 겨우 경고음을 멈추었지만, 그의 잔여 수명은 이제 12시간대의 벼랑 끝으로 내몰려 있었다.
“해냈…… 해냈어! 기지 정문이 열렸다!”
최태만이 무너진 수송 차량의 틈새로 보이는 충전 기지의 내부 입구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백산의 거구가 날아가 부딪친 여파로 수송 차량의 뒷문이 찌그러지며 강제로 열려 있었다. 그 안에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은빛의 시간 결정들과 보정 태엽이 잠들어 있을 터였다.
하지만 기쁨은 찰나였다.
채준의 척추를 타고 극도의 소름 끼치는 살기가 번뜩였다.
스으으으—
자욱한 안개와 화약 연기 너머, 다리 맞은편 고지대의 어두운 옥상 그늘에서 기이한 은빛 궤적이 그려졌다. 바람의 기류가 찢어지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무음의 저격.
쉬이이익!
소리보다 빠른 속도로, 공간을 진공으로 가르며 무시무시한 전자기 레일건 탄환이 채준의 미간을 향해 직사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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