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다리 위의 매복
산성비가 남긴 독성 안개가 제13구역의 외곽 강철 다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밤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다리 아래로 흐르는 하수도의 오염물질은 썩은 냄새를 풍기며 기괴한 거품을 일으켰다. 이 다리는 지상 슬럼가의 주민들에게서 긁어모은 수명을 압축하여 중층 구역으로 이송하는 제국의 핵심 요충지, ‘시간 배터리 충전 기지’로 연결되는 유일한 육로였다.
신채준은 다리 초입의 거대한 강철 H빔 그늘에 몸을 숨겼다. 가죽 코트 ‘데스 딜레이’의 깃이 밤바람에 펄럭였다. 그의 오른손목에 채워진 오 영감의 수제 수명 보존 시계는 여전히 쩍 갈라진 유리막 사이로 푸른색 스파크를 지직거리며 불안정한 금속성 노이즈를 내뿜고 있었다.
[경고: 작동 오차율 22.4% 초과]
[남은 수명: 12시간 35분 12초]
박형식의 경고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차율이 20%를 초과한 상태에서 ‘임팩트 딜레이’를 무리하게 가동했다간, 축적된 충격이 방출되지 못하고 심장 내부로 역류해 즉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가죽 장갑 속에 감춰진 그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는 여전히 촉각을 완전히 상실한 채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채준은 왼손으로 대검의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 마비된 오른손 손가락들은 검의 가드 부분에 억지로 걸쳐 지탱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면 이 다리의 허리를 끊어놓을 수 있어.”
다리의 철제 교각 아래, 폭파 전문가 최태만이 고글을 이마에 걸친 채 미친 듯이 손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초소형 고폭 에테르 점착 폭탄 세트가 들려 있었다. 태만이 특수한 화학 약품을 배합해 만든 사제 폭탄으로, 제국군의 중장갑 차량조차 하부를 관통해 궤멸시킬 수 있는 저항군의 비장의 무기였다. 태만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차가운 철골 표면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 뒤편에서는 거구의 방패 전사 김철구가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강철 방패를 바닥에 짚은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전투 전차의 측면 장갑판을 떼어내 만든 방패는 슬럼가의 온갖 거친 역사를 대변하듯 무수한 총탄 흔적과 그을음으로 가득했다. 철구는 말없이 채준의 백발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오차율이 폭주하는 시계를 차고 최전방 방패를 자처한 채준을 향한 묘한 경외감과 걱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자욱한 안개 너머로 기괴하고 무거운 엔진음이 강철 다리 전체를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벌써 온다고? 제장, 아직 1시도 안 됐잖아!”
최태만이 경악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배동수가 확보했던 수송대의 출발 시간은 분명 새벽 1시였다. 하지만 지금은 겨우 12시 40분을 넘긴 시각이었다. 제국 집행부대가 저항군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이송 일정을 임의로 앞당긴 것이 분명했다.
안개 속에서 두 줄기의 서치라이트 불빛이 칼날처럼 자욱한 어둠을 찢어발겼다. 붉은색 제국 군부의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중장갑 수송 차량이 강철 다리 위로 무섭게 진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송 차량의 전면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육중한 실루엣이 버티고 서 있었다.
두께 20cm에 달하는 붉은색 전신 방탄 장갑 슈트. 관절을 움직일 때마다 유압 실린더가 삐걱거리는 기계음을 내뿜는 거구의 괴물. 제국 집행부 제13지부의 최정예 화력 담당이자 중장갑 척탄병인 백산이었다. 그의 거대한 기계식 의수에는 무식한 크기의 다연장 고폭 유탄 발사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그의 옆에는 차가운 푸른색 기계 안경을 쓴 제국 장교, 임시 집행관 한준이 홀로그램 단말기를 쥔 채 서늘한 눈빛으로 다리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태만아! 당장 터뜨려!”
김철구가 다급하게 소리쳤.
최태만은 비명을 지르며 품속에서 수동 기폭 장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빨간색 버튼을 미친 듯이 눌러댔다.
딸깍! 딸깍! 딸깍!
하지만 교각 아래에 장치된 에테르 폭탄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안 돼! 신호가 완전히 죽었어! 저 새끼들이 전자기 교란 장치를 가동하고 있어!”
최태만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한준이 홀로그램 단말기를 조작하며 방출한 광역 전자기 교란 신호가 사제 폭탄의 무선 주파수를 완벽하게 차단해 버린 것이었다. 함정이 발동하기도 전에 무력화되는 최악의 순간이었다.
“지상의 쥐새끼들이 냄새를 풍기는군.”
붉은색 장갑 슈트의 바이저 너머로 백산의 흉포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저항군이 매복해 있는 철골 그늘을 정확히 바라보며 거대한 다연장 유탄 발사기의 포구를 치켜들었다.
“전부 쓸어버려라.”
한준의 차가운 명령과 함께, 백산의 포구가 붉은색 화염을 뿜어냈다.
콰콰콰쾅—!
연속으로 사출된 네 발의 고폭 유탄이 다리 상판을 일시에 초토화했다. 폭음과 함께 대기를 찢는 열풍이 휘몰아쳤고, 강철 다리의 상판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며 사방으로 시뻘건 쇳가루와 파편이 비산했다. 매복해 있던 저항군 대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다리 위의 유일한 엄폐물이었던 구형 철제 드럼통과 방벽들이 단 한 번의 포격으로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크윽! 전부 내 뒤로 숨어!”
김철구가 이를 악물며 전방으로 뛰어 나갔다. 그는 자신의 거대 강철 방패를 지면에 박아 넣으며 ‘금강 방벽’의 충격 분산 이능력을 전개했다. 방패 표면이 푸르스름한 충격 흡수 오라로 뒤덮였다.
콰아아앙!
백산이 발사한 다섯 번째 유탄이 철구의 방패 정면에서 폭발했다. 엄청난 화학적 화염과 폭압이 방패를 짓눌렀다.
“아아악!”
철구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백산의 포격은 단순한 물리적 충격이 아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열의 열량이 방패의 장갑판을 순식간에 붉게 달구며 녹여버리기 시작했다. 철구의 양팔 근육이 포격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투두둑 찢어지며 선혈이 분출했다. 거대했던 강철 방패는 흉측하게 찌그러지고 뒤틀려 제 기능을 상실했다.
설상가상으로, 수송 차량의 상단 해치가 열리며 한준이 조종하는 자동 포탑 2기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푸른색 기계 안경과 동조된 포탑들이 공중에서 빠르게 기동하며, 안개와 연기 속에서 방황하는 저항군 대원들을 향해 치명적인 레이저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피융! 피융!
“아아악! 내 다리!”
퇴로마저 가로막힌 다리 위에서 저항군 대원들이 차례차례 쓰러졌다. 백산과 한준의 중화기 화력 연동은 좁은 다리 위의 전장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단 1분만 지체해도 대원들 전체가 몰살당할 위기였다.
신채준은 무너진 철골 잔해 너머로 그 참상을 지켜보았다. 그의 가슴속 딜레이 포켓이 요동쳤다. 손목시계의 경고등은 이제 피처럼 붉은 빛을 내뿜으며 자폭의 임계점을 경고하고 있었다.
‘지금 능력을 쓰면 심장이 터진다.’
이성적인 계산은 퇴각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퇴각하는 순간, 아라를 살릴 기회도, 자신의 심장을 고칠 보정 태엽을 얻을 기회도 영원히 사라진다. 등가교환의 법칙은 잔인했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그에 걸맞은 목숨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채준은 가죽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잔해 속에서 걸어 나왔다. 백발의 머리칼이 붉은 화염의 열기에 흩날렸다. 그의 차가운 은빛 눈동자가 백산의 포구를 똑바로 응시했다. 적의 화력이 강력할수록, 그것은 자신을 살릴 가장 거대한 연료가 될 터였다.
채준은 대검을 비껴 쥔 채, 백산의 다음 포격 탄도를 향해 거침없이 몸을 던졌다.
백산이 붉은색 전신 중장갑 슈트를 삐걱거리며 ‘지상의 쥐새끼들이 감히 제국의 시간에 손을 대느냐!’라며 거대 유탄포를 채준의 안면에 조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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