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에서 피어난 붉은 빛
지독한 악취와 얼음처럼 차가운 폐수가 온몸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신채준은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렸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마 씨 영감의 거친 거친 숨소리와 발밑에서 철벅거리는 오염된 물소리만이 그가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이정표였다. 가슴팍 뼈 안쪽에서 비틀린 ‘딜레이 포켓’이 비명을 지르며 불규칙한 열기를 토해낼 때마다, 채준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핏물을 억지로 삼켜냈다.
오른손목에 채워진 오 영감의 수제 수명 보존 시계는 완전히 쩍 갈라진 유리막 사이로 푸른색 스파크를 튀기며 제멋대로 요동치고 있었다. 지연 한계치를 계측하는 센서는 이미 불통이었다. 백산의 유탄 폭격을 정면으로 흡수하고 마철두의 바위 주먹을 지연시킨 대가는 가혹했다. 체내의 세포들이 급격히 노화하며 삐걱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마비된 오른손 검지와 중지는 이제 손가락이라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굳어 버렸다.
"조금만 버티게, 신 씨…… 거의 다 왔네……!"
마 씨 영감의 목소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채준의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차가운 하수구 폐수 속으로 의식이 가라앉는 순간, 그의 귓가에 남은 것은 젖어버린 제국군 무전기 너머로 지직거리며 울리던 강태석의 잔혹한 사살 명령뿐이었다.
***
쿵. 쿵. 쿵.
기계 태엽이 어긋나며 물리는 듯한 둔탁한 금속음이 머릿속을 울렸다. 채준은 반사적으로 눈을 뜨려 했으나, 눈꺼풀이 납덩이라도 매단 것처럼 무거웠다.
"움직이지 마세요. 지금 억지로 힘을 쓰면 세포 결합이 완전히 와해됩니다."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여성의 목소리가 머리맡에서 들려왔다.
채준은 간신히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비쳐든 것은 낡은 콘크리트 천장과 그 아래를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는 붉은 녹슨 강철 빔들이었다. 사방에서 눅눅한 곰팡이 냄새와 기름때, 그리고 쇠비린내가 뒤섞여 풍겨왔다. 제13구역 지하 하수도 깊숙한 곳에 숨겨진 저항군 '아워 글래스' 제13지부의 비밀 은신처였다.
"아직 의식이 온전치 않을 텐데, 대단한 정신력이군요."
목소리의 주인이 채준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피가 군데군데 튄 하얀 의사 가운을 대충 걸치고, 헝클어진 머리칼을 뒤로 묶어 올린 여성. 저항군의 지하 의무병, 한소희였다. 그녀의 손끝에는 차가운 은빛 에너지가 실핏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한소희는 수술대 옆에 놓인 철제 보관함에서 푸른빛을 뿜어내는 반투명한 겔을 꺼냈다. 제국의 특수 구급 수송선에서나 간신히 노획할 수 있는 초고가 생명 보존제, ‘수명 보존용 나노 동결 겔’이었다.
"가슴의 충격 지연 장치가 폭주하면서 심장 주변의 모세혈관과 장기 세포들이 분자 단위로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오 영감님이 이식해 놓은 장치 코어가 누전되면서 생체 전류를 마구잡이로 빨아들이고 있더군요. 지금부터 응급 처치를 시작할 테니, 비명이 나오더라도 참으세요."
한소희가 차가운 나노 동결 겔을 채준의 찢어진 가죽 코트 안쪽, 시퍼렇게 멍들고 타들어 간 가슴팍에 아낌없이 도포했다.
"……윽!"
겔이 피부에 닿는 순간, 채준은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극심한 저체온의 극통을 느꼈다. 뜨겁게 불타오르던 심장 장치 주변으로 얼음 송곳 수천 개가 동시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동결 겔의 강력한 차가움이 전신의 신경 세포를 일시적으로 동결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소희가 양손을 채준의 가슴 위에 얹었다. 그녀가 가진 미약한 생체 시간 역행계 이능력이 푸른 실선이 되어 동결 겔과 공명했다. 찢어지고 파열되었던 심장 주변의 세포들이 강제로 정지된 시간 속에 묶였다. 피를 토하던 기침이 멈추고, 미친 듯이 날뛰던 부정맥이 서서히 고요를 되찾았다. 완전한 치유는 아니었으나, 세포의 붕괴를 임시로 고정해 죽음을 유예하는 처절한 동결이었다.
"후우……."
한소희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한 걸음 물러섰다. 채준은 전신의 감각이 약물과 동결 겔로 인해 무뎌진 상태에서도, 가슴을 짓누르던 살인적인 압박감이 다소 가라앉았음을 느꼈다.
"고맙다, 고…… 할 처지는 아니군."
채준이 갈라진 목소리로 나직하게 읊조렸다. 오른손가락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감사는 넣어두세요. 우리 대장님이 자네를 꼭 살려놓으라고 신신당부했으니까."
한소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은신처의 무거운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거대한 그림자가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키 190cm에 달하는 거구, 전신에 흉터가 가득한 사내의 어깨에는 붉은색 저항군의 띠가 선명하게 감겨 있었다. 그의 양손에는 불법 개조된 유압식 충격 강화 너클이 장착되어 있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묵직한 위압감이 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저항군 '아워 글래스' 제13지부의 돌격대장, 강철민이었다.
"정신이 드나, 해결사."
강철민이 수술대 앞으로 다가와 팔짱을 꼈다. 그의 사나운 눈빛에는 채준에 대한 깊은 경계심과 의구심이 서려 있었다.
"네가 지하 투기장에서 백건우를 반시체로 만들고, 하수구를 무너뜨려 마철두와 백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한 신채준이군. 소문대로 괴물 같은 녀석이야."
채준은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가슴팍의 심장 시계 장치가 찌르르하는 전자기 노이즈를 내뿜으며 강한 스파크를 튕겼다.
팟!
"아앗!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요!"
한소희가 기겁하며 채준의 어깨를 강제로 눌러 눕혔다. 채준은 짓눌린 채 강철민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오 영감님은…… 어떻게 됐지?"
은신처가 습격당했을 때, 채준은 투기장에 갇혀 있었다. 오 영감이 목숨을 걸고 자신을 수술해 주었던 그 정비소가 파괴되었다는 사실은 하수구로 도망치기 전 이미 들은 바였다. 하지만 노인의 생사만큼은 제발 오보이기를 바랐다.
강철민의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너클을 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게 됐다. 우리가 정보원들을 보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정비소는 완전히 불탔고…… 오 영감님은 수거부대 대장 강태석의 손에 살해당했다."
쿵.
채준의 심장 속 태엽이 멈춰 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차가운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억눌린 살기가 뿜어져 나오며 은신처 내부의 공기가 순간적으로 싸늘하게 식어 내렸다. 한소희가 몸을 미세하게 떨 정도로 서늘한 살기였다.
오 영감. 그 고집불통 노인은 채준 남매에게 단순한 의사가 아니었다. 쓰레기통 같은 세상에서 망가진 가슴을 열고 딜레이 포켓을 이식해 살려준 은인이자, 정신적 아버지였다.
"누구냐."
채준의 목소리는 낮고 낮아, 마치 지하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짐승의 으르렁거림 같았다.
"오 영감님의 비밀 정비소 위치는 저항군의 마스터 통신망조차 모르는 극비였다. 강태석의 사냥개들이 그곳을 정확히 짚고 들어온 건 우연이 아니야. 누군가 밀고한 거다."
강철민은 채준의 차가운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주머니 속에서 소형 홀로그램 무전기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너희 남매와 우리 지부의 비밀 연결 통로를 알고 있는 놈은 단 한 명뿐이었지."
무전기가 켜지며 푸른빛 홀로그램 화면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 안에는 다 떨어진 저항군 옷을 입고 비굴한 눈빛으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사내의 신상 정보가 나타났다.
"정태수."
강철민이 그 이름을 뱉었다.
"그 나약한 자식이 수명 부족으로 방전되어 죽어갈 때, 강태석이 달콤한 제안을 던졌더군. 저항군의 비밀 루트와 오 영감님의 은신처 좌표를 넘겨주면, 제국 원로원의 직인이 찍힌 '고급 수명 연장 카드'를 대가로 주겠다고 말이야."
채준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마비된 오른손가락 뼈마디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삐걱거렸다.
오 영감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신 남매를 사지로 몰아넣은 원흉이 고작 수명 몇 년을 더 구걸하기 위해 동료를 판 비겁한 배신자였다니.
그때, 저항군 해커 서민우의 도청 장치와 연동된 무전기 너머로 노이즈 섞인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정태수가 수거부대와 실시간으로 교신 중인 음성이었다.
- 치익…… 대장님, 정태수입니다. 약속했던 수명 카드는 준비되셨습니까? 저항군 제13지부의 새로운 임시 대피소 좌표도 확보했습니다. 오늘 밤 암시장 배후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 잊지 않으셨겠지요? 치익…….
정태수의 비굴하고 탐욕스러운 목소리가 은신처 내부를 울렸다.
강철민이 무전기를 끄며 채준을 바라보았다.
"그 자식이 지금 우리 대원들의 목숨 전체를 강태석에게 팔아넘기려 하고 있다.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채준의 눈동자가 은빛 스파크를 일으키며 차갑게 불타올랐다. 배신자의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치러야 할 인과의 대가는 오직 죽음뿐이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