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과 폐수 속의 탈출
하수구 입구의 철망 바로 앞, 거대한 바위 같은 실루엣이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아 서며 대지를 짓밟았다. 마철두였다.
“신채준, 오 영감의 똥개 녀석. 네까짓 게 투기장의 제왕을 꺾었다고 우쭐대지 마라. 강태석 대장님께서 네 가슴팍에 박힌 쓰레기를 아주 간절히 원하신다.”
마철두가 흉포하게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양손의 단분자 가시 클로를 맞부딪쳤다. 쇳소리가 어둠 속에서 날카롭게 튀었다. 그의 피부는 이미 거친 회색빛의 돌 질감으로 변해 있었다. ‘화강암 피부 경화’가 전신을 단단히 감싸고 있는 상태였다.
채준은 입가로 흘러내리는 코피를 왼손등으로 훔쳐냈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는 촉각이 완전히 사멸해 힘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대검 손잡이를 쥔 왼손의 악력만으로는 저 무지막지한 돌덩어리를 단숨에 베어낼 수 없었다. 갈비뼈의 미세 골절 부위는 숨을 쉴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극통을 유발했다.
“형, 형님…….”
뒤에 선 진우가 채준의 코트 자락을 잡고 바들바들 떨었다. 피난하던 주민들도 하수구 입구에 가로막힌 채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진우야, 내 뒤에 바짝 붙어라.”
채준이 나직하게 읊조리는 순간, 하수구 통로 저편의 어둠 속에서 무겁고 기계적인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 쿵, 쿵. 발걸음이 울릴 때마다 지면의 흙먼지가 잘게 흔들렸다.
“비켜라, 마철두. 대장님은 그놈의 심장만 멀쩡하면 된다고 하셨다. 사지 중 몇 개는 날려버려도 상관없겠지.”
어둠을 가르고 나타난 것은 높이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군인이었다. 두께 20cm는 되어 보이는 육중한 전신 방탄 장갑을 두른 사내, 중장갑 척탄병 백산이었다. 그의 양손에는 제국 군부용 다연장 고폭 유탄 발사기가 들려 있었고, 포구는 이미 채준의 가슴을 조준하고 있었다.
“죽어라, 슬럼가의 쥐새끼들.”
백산이 포효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슈우우웅— 쾅! 쾅! 쾅! 쾅!
포구를 떠난 네 발의 고폭 유탄이 하수구 입구 주변의 콘크리트 벽을 사정없이 타격했다.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오렌지빛 화염과 함께 사방으로 찢어진 강철 파편과 뜨거운 열풍이 휘몰아쳤다. 무고한 주민들의 비명소리가 폭음 속에 묻혔다.
채준은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 피하면 등 뒤의 진우와 주민들은 흔적도 없이 불타버릴 터였다.
그는 왼손으로 오른손목의 균열이 간 시계 테두리를 강하게 움켜쥐며 앞으로 나섰다. 시계의 깨진 유리막 사이로 푸른색 스파크 노이즈가 미친 듯이 점멸했다. 지연 한계치를 계측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임팩트 딜레이(Impact Delay)……!”
채준이 마음속으로 지연 공식을 전개함과 동시에 왼손을 전방으로 뻗었다.
화아아악!
채준의 전방 30cm 허공에서 날아오던 폭발의 충격파와 타오르는 고열의 에너지가 푸른빛 물결처럼 비틀리며 그대로 멈춰 섰다. 쏟아지는 파편들이 시간의 주머니 속에 갇혀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기괴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크으윽……!”
채준의 가슴뼈 안쪽에서 시퍼런 불꽃이 튀며 심장이 터질 듯한 과부하가 걸렸다. 작동 오차율을 계산할 수 없는 상태에서 백산의 포격 물리 충격을 정면으로 흡수하자, 장기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이 전신을 엄습했다. 머리카락 끝부분이 더욱 하얗게 세어 들어갔고, 눈과 코에서 붉은 선혈이 동시에 흘러내렸다.
“이 녀석이 충격을 흡수하고 있다! 마철두, 지금이다!”
백산이 소리치며 유탄 발사기를 재장전했다.
“알고 있다!”
마철두가 대지를 박차고 돌진했다. 그의 회색빛 화강암 주먹이 채준의 옆구리를 향해 쇄도했다. 채준은 왼손으로 단분자 대검을 휘둘러 막으려 했으나, 마비된 오른손가락이 미끄러지며 파지법의 균형이 깨졌다.
칭—!
대검이 마철두의 단단한 바위 피부에 부딪혀 비껴 나갔다. 그 틈을 타 마철두의 묵직한 돌 주먹이 채준의 가슴을 정면으로 가격했다.
퍼억!
“커헉……!”
채준의 몸이 뒤로 밀려나며 무릎을 꿇었다. 가슴에 가해진 마철두의 무식한 타격 물리력마저 딜레이 포켓 속으로 흡수되었지만, 손목시계의 경고등은 이미 미친 듯이 붉은빛을 뿜어내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경고: 과부하 임계점 98%…… 99%……]
[위험: 즉시 방출하지 않으면 심장 장치 폭발]
심장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전신의 관절이 비틀리고, 에너지를 억누르던 왼쪽 팔의 감각마저 일시적으로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체내에 축적된 에너지가 임계점을 초과해 역류하려 하고 있었다.
마철두와 백산이 사방의 출구를 완전히 차단한 채 다가오고 있었다. 주민들을 구하고 자신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채준은 고개를 들어 하수구 입구 천장의 노후화된 콘크리트 지반을 바라보았다. 방사능 누출로 인해 이미 균열이 갈 대로 간 고철 기둥들이 천장을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적들을 직접 쓰러뜨릴 수 없다면, 지형을 무너뜨린다.’
채준은 마지막 남은 생체 전류를 뇌신경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마비되어 가는 왼손바닥을 적들이 아닌, 머리 위의 천장 지지대를 향해 내뻗었다.
“키네틱 릴리스(Kinetic Release)……! 방출!”
쿠아아아아앙—!!!
채준의 손바닥에서 푸른색 시계 문자판 형상의 폭풍과 함께, 그동안 모아두었던 백산의 유탄 폭발력과 마철두의 바위 주먹 충격 에너지가 단 한 번에 천장을 향해 뿜어져 나갔다.
지포를 찢는 듯한 엄청난 충격파가 노후화된 콘크리트 천장을 직격했다. 지지대 역할을 하던 강철 빔들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부러졌고, 수십 톤에 달하는 거대한 돌덩어리와 고철 잔해들이 사정없이 무너져 내렸다.
“우왓?! 퇴로가 무너진다! 대피해!”
마철두와 백산의 당황한 목소리가 거대한 붕괴 소음에 묻혔다. 쿠릉,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엄청난 양의 흙먼지와 돌더미가 하수구 입구를 완전히 덮어버리며 적들의 시야와 포위망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채준은 방출 반동으로 인해 뒤로 날아가 빗물이 고인 진흙바닥 위를 굴렀다. 전신의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신 씨! 정신 차려!”
그때, 짙은 흙먼지 속에서 쥐가죽 모자를 쓴 늙은 사내가 나타나 채준의 왼팔을 잡아끌었다. 지하 수로의 인도자, 마 씨였다. 그의 등 뒤에는 진우와 살아남은 주민들이 필사적으로 하수구 안쪽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마 씨…… 영감…….”
“말하지 마! 녀석들이 돌더미를 치우고 들어오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해!”
마 씨는 채준의 무거운 몸을 짊어지고 오염된 폐수가 흐르는 깊은 하수 수로 안쪽으로 몸을 던졌다. 차갑고 비릿한 방사능 폐수가 채준의 찢어진 가죽 코트 속으로 스며들며 상처를 아리게 찔렀다.
채준은 물살에 휩쓸려 가며 서서히 정신을 잃어갔다.
흐려지는 의식의 틈새 속에서, 빗물에 젖어 물에 빠진 채 죽어가는 수거대 대원의 칼라 무전기에서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익숙하고 포악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치이익…… 제13구역 전 대원 들어라. 신채준을 발견하는 즉시 사살해라. 쥐새끼 한 마리도 살려두지 마라. 총동원령이다. 치익…….
강태석의 살기 어린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채준의 세계는 완벽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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