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의 심장소리
제13구역의 하늘은 언제나 녹슨 철가루 색이었다. 머리 위를 가득 메운 거대한 제국의 강철 톱니바퀴 장막이 불길한 기계음을 내며 맞물려 돌아갈 때마다, 슬럼가의 하루는 가차 없이 깎여 나갔다. 이곳의 인간들에게 시간은 흐르는 자연의 섭리가 아니었다. 손목에 이식된 디지털 숫자로 표시되는, 오직 지배층만이 독점하는 절대적인 화폐이자 생명 그 자체였다.
치익, 치이익.
낡은 광장 확성기에서 쇠 긁는 소리와 함께 불쾌한 노이즈가 울려 퍼졌다. 하역장의 부랑민들과 고철 노동자들이 일제히 일손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윽고 흘러나온 목소리는 지독하리만큼 매끄럽고 기름졌다. 제13구역의 배급을 통제하는 부패한 하급 관리, 최만호의 목소리였다.
"지상 제13구역 주민 여러분께 제국 집행부의 지시 사항을 전달합니다. 제국 원로원의 긴급 시간 수급 조정령에 따라, 금일부로 주민 여러분께 공급되는 일일 표준 수명 배급량을 기존 대비 50% 삭감합니다. 다시 한번 전달합니다. 금일 배급량은 기존의 절반인 12시간으로 제한되며, 미납된 노역 시간이 존재하는 구역은 즉시 배급이 일시 중단..."
광장이 순식간에 차가운 침묵에 잠겼다. 이윽고 울분 섞인 절규와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번져 나갔다.
"절반이라니! 하루에 12시간만 주면 잠도 자지 말고 일만 하라는 소리냐!"
"제국 놈들이 우리 피를 말려 죽이려고 작정을 했구나!"
하지만 그들의 분노는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광장 상공을 선회하는 제국 집행부의 정찰 드론들이 붉은색 감시 렌즈를 번뜩이자, 주민들은 이내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가냘픈 손목 시계를 확인했다. 그들의 이마와 손목에 새겨진 붉은 바코드는 가차 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남은 수명이 1년도 채 되지 않는 자들, 제국의 가장 밑바닥에서 소모품처럼 부려지는 ‘필터(Filter)’ 등급의 하루살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고철 하역장 한구석에서 신채준은 묵묵히 쇠망치를 휘둘렀다. 쾅! 쾅! 낡은 증기 피스톤의 실린더가 그의 완력에 처참하게 찌그러졌다. 덥수룩한 검은 머리칼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내려 낡은 가죽 코트의 깃을 적셨다.
"윽..."
갑자기 가슴팍 안쪽에서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스쳐 지나갔다. 채준은 망치를 내려놓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장 부근의 피부 너머로 미세한 푸른빛 실핏줄 같은 에너지가 주기적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딜레이 포켓(지연된 영혼).
과거 그의 망가진 가슴을 열고 오 영감이 이식해 준 불안정한 시간 지연 장치. 그것은 가해지는 모든 물리적 타격을 시간의 주머니에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방출하는 절대적인 이능력의 원천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심장을 매초 갉아먹는 시한부의 저주이기도 했다. 심장이 고동칠 때마다 삐걱거리는 기계음이 귓가를 맴돌았다.
"채준아, 무리하지 마라."
언제 다가왔는지, 폐기물 처리장의 주인인 김 사장이 이 빠진 파이프 담배를 뻑뻑 빨며 무뚝뚝하게 말을 건넸다. 그의 낡은 가죽 조끼에서는 기름 냄새와 녹슨 철 냄새가 섞여 풍겼다.
"김 사장님."
채준이 거친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다.
"가불이 필요합니다. 24시간 표준 수명 칩으로 딱 이틀 치만이라도 부탁드립니다. 이자율은 얼마를 얹으셔도 좋습니다."
김 사장은 파이프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가 길게 내뿜었다. 자욱한 연기 너머로 노인의 퉁명스럽지만 쓸쓸한 눈빛이 비쳤다.
"나라고 안 주고 싶겠냐만... 방금 최만호 그 부패한 뚱보 놈이 배급을 절반으로 깎겠다고 선포한 걸 듣지 않았더냐. 당장 우리 하역장의 압착기랑 용접기 돌릴 수명 칩도 모자란 판국이다. 지금 내 손에 쥔 수명도 겨우 사흘 치가 전부야. 미안하다, 채준아."
김 사장은 채준의 어깨를 툭툭 치며 쓸쓸히 돌아섰다. 채준은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표준 수명 칩의 잔량은 넉넉했지만, 그가 필요한 것은 자신의 수명이 아니었다. 그의 삶의 유일한 이정표이자 혈육인 동생, 신아라를 위한 것이었다.
채준은 하역장 구석에 버려진 구형 생체 배터리 셀들을 긁어모았다. 어떻게든 내부의 나노 입자 흐름을 역공학으로 정렬해 작동시켜 보려 했지만, 이미 셀의 핵심 전극이 완전히 타버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쓸모없는 고철 더미가 그의 손 안에서 바스러졌다. 시간적 한계가 그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채준은 서둘러 제13구역 연명 치료실로 향했다. 어둡고 침울한 병동 내부에는 인공호흡기의 기계음과 환자들의 가냘픈 신음소리만이 가득했다. 병실 안쪽, 창백하다 못해 투명한 피부를 가진 가녀린 소녀가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잠들어 있었다. 채준의 동생, 신아라였다.
그녀의 머리맡에 걸린 수명 감시 모니터가 불길한 적색 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남은 수명: 18시간 42분 11초]
배급 삭감의 여파로 생명 유지 장치의 전력이 급격히 방전되고 있었다. 이대로 18시간이 지나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아라의 호흡기는 멈추고 뇌세포는 즉각 괴사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채준 씨."
피로가 가득한 얼굴의 병동 간호사 민지혜가 다가와 안타까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최 씨 관리인이 조금 전 다녀갔어요. 내일 아침까지 충전용 수명 칩을 가져오지 않으면, 아라의 산소호흡기 전원을 강제로 차단하겠대요. 제국의 지침이라 어쩔 수 없다면서요..."
채준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주먹을 쥔 그의 오른손 뼈마디가 하얗게 동여매어졌다.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지만, 그는 이성을 잃지 않았다. 제국의 법과 관리들을 상대로 정면으로 들이받는 것은 지금 단계에선 자살행위였다. 돈이 없으면 수명을 살 수 없고, 수명이 없으면 죽어야 하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룰.
치료실을 빠져나온 채준이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서자, 음침한 네온사인 불빛 아래에서 가죽 코트를 깊게 눌러쓴 사내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암시장의 악명 높은 불법 브로커였다.
"신채준, 네 동생 상태가 아주 급박하다고 들었는데."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은빛으로 빛나는 불법 수명 칩들이 장난스럽게 튀었다.
"용건만 말해."
채준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아주 심플한 의뢰야. 제13구역 동쪽 장벽 너머, 가장 치명적인 금지 구역인 '철의 무덤' 깊은 곳에 가라앉은 제국 1세대 전투 드로이드의 기어 코어가 필요해. 제국의 감시 레이더가 득실거리는 곳이지. 그걸 회수해 오면 아라를 한 달 동안 연명시키고도 남을 대량의 수명 칩을 즉시 지불하겠네. 어때, 거래하겠나?"
철의 무덤. 수만 볼트의 잔류 전기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흐르고, 제국 집행부대의 순찰 레이더망이 24시간 감시하는 최악의 사지였다. 한 걸음만 잘못 디디면 전신이 타버리거나 제국의 도망자 사냥꾼들에게 해체당할 터였다.
하지만 채준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아라의 남은 시간은 이제 18시간.
"거래하지."
채준은 가죽 코트 '데스 딜레이'의 깃을 바짝 올렸다. 그의 심장 부근에서 지연된 영혼의 태엽이 불길하고 비장한 기계음을 내며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루살이의 심장소리가 녹슨 슬럼가의 밤공기를 차갑게 찢어발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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