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선 가문의 비록
귀를 찢는 고주파의 공명음이 안개 자욱한 만독수림의 밤공기를 사정없이 갈라발겼다. 사마귀의 숨통이 끊어짐과 동시에 그의 품에서 꺼낸 벽혈령(碧血令) 철패가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지고 있었다. 철패의 균열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선홍색 광채는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황실 태의원과 강남성 관부에 침입자의 좌표를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주술적 기공 진법의 폭주였다.
“커흑……!”
진소하는 가슴을 움켜쥐며 마른 피를 토해냈다. 단전 깊은 곳에서 사웅의 철도기공 내력과 한천초의 극음 냉기가 미친 듯이 소용돌이쳤다. 약무무(藥霧霧)를 극한으로 펼치느라 전신의 모공이 열리고 수분이 전부 기화해 버린 탓에, 목구멍은 불타는 숯을 삼킨 듯 뜨거웠고 온몸의 경맥은 가뭄 난 논바닥처럼 갈라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심장 주변에 박힌 마지막 삼도은침(三道銀針)이 맥박의 대폭주를 억누르며 불길하게 진동했다. 이미 두 개의 은침이 소모된 상태에서 남은 것은 단 하나. 이 마지막 생명선마저 흔들린다면 단전은 스스로 팽창해 육체를 산산조각 낼 터였다.
‘시간이 없다. 관군의 사냥개들과 태의원의 집행관 귀살(歸殺)이 이 경보를 듣고 망우곡으로 몰려올 것이다.’
소하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붉게 타오르는 벽혈령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도망치기 전, 이 추적의 쐐기를 역용하기로 결심했다. 소하는 사마귀의 시체 곁에 굴러다니던 들쥐 한 마리를 낚아챘다. 그리고 벽혈령을 들쥐의 몸에 단단히 묶은 뒤, 만독수림 반대편의 늪지대 구렁텅이로 던져버렸다. 붉은 빛을 내뿜는 쥐가 덤불 속으로 사라지자, 추적자들의 일차적인 방향은 왜곡될 것이 분명했다.
“소란, 내 말을 똑똑히 들어라.”
소하는 나무 뒤에 숨어 벌벌 떨고 있는 약초꾼 소녀 소란을 향해 돌아섰다. 그의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거칠었지만 서늘한 이성이 깃들어 있었다.
“지금 즉시 망우곡을 벗어나 내가 일러둔 연화동(蓮華洞)의 비밀 석실로 숨어라. 그곳은 천연 석련화의 정기가 가득해 추향견도 냄새를 맡지 못한다. 내가 상황을 정리하고 갈 때까지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마라.”
“소, 소하야! 하지만 네 몸이…… 전신에 피가 흐르고 있잖아! 한천초 약탕을 마시지 않으면 너는 죽어!”
“내 걱정은 하지 마라. 살아서 돌아간다. 반드시.”
소란은 눈물을 훔치며 소하가 건넨 청낭포(靑囊袍) 자락을 꽉 쥔 채 어둠 속으로 달아났다. 소란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소하는 허리춤의 녹슨 청동 침통을 매만졌다. 침통 표면은 한천초 생즙으로 코팅되어 사향 향료의 누출을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다. 사마귀를 제압하며 소모된 은침은 이제 105개.
‘두 번째 사혈, 은백혈(隱白穴)을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강남 약선 가문의 비록이 필요해.’
소하는 사마귀를 심문해 알아낸 정보를 뇌리에 되새겼다. 구양역맥의 두 번째 사혈 좌표와 이를 뚫을 정밀한 침술 각도가 적힌 신농의경 사본(神農醫經 寫本)이 강남 약선 가문(江南 藥仙 家門)의 비밀 서고 깊은 곳에 비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소하는 붉게 물든 안개를 뚫고 신형을 날려 강남성 내당의 깊은 음지로 향했다.
***
강남성 내당의 중심부에 위치한 강남 약선가 저택(江南 藥仙家 邸宅)은 웅장하면서도 고풍스러운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백 장에 달하는 높은 담장과 화려한 기와지붕은 정통 의가 세가로서의 권위를 대변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침입자를 용납하지 않는 서슬 퍼런 살기가 깔려 있었다.
저택의 담장 주변에는 제갈세가(諸葛世家)의 진법가가 직접 설계한 정밀한 경보 진법이 흐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미세한 기공의 실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가벼운 바람 이외의 생명체가 닿는 순간 저택 전체에 경보 종소리가 울리게 되어 있었다. 담장 밑에는 날카로운 가시 덩굴 기관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침입자의 발목을 노렸다.
스사사사삭.
소하는 저택 뒤편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몸을 밀착시켰다. 단전의 열독이 심장을 찌를 때마다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허벅지의 통증이 극심했다. 수명이 약 90일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의 육체는 매 순간 붕괴의 전조를 보내고 있었다.
‘제갈세가의 경보 진법이라. 정공법으로는 뚫을 수 없다.’
소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청맥심술(聽脈心術)을 가동했다. 시각을 지워버리자 밤바람의 흐름과 담장을 흐르는 미세한 기공 파동의 진동음이 고막을 타고 삼차원의 선으로 그려졌다.
윙, 윙, 윙.
기공의 실들이 진동하는 고유의 주기가 청각을 통해 뇌리로 들어왔다. 소하는 그 진동의 파형이 일시적으로 낮아지며 서로 교차하는 찰나의 빈틈을 정확하게 계산해 냈다.
‘지금이다.’
소하는 깃털처럼 가볍게 신형을 띄워 담장을 넘었다. 진법의 기공 실들이 그의 삼베 무복을 스치기 직전, 몸을 비틀어 그 사이를 통과했다. 그러나 담장을 내려서는 찰나,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가시 덩굴 기관의 날카로운 가시 하나가 소하의 왼쪽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스윽.
“윽……!”
소하가 신음소리를 삼키며 바닥에 착지했다. 얇은 무복 바지를 뚫고 들어온 가시독이 상처를 타고 스며들었다. 상처 자체는 미세했으나, 가시독의 한기가 허벅지를 흐르는 족궐음간경의 미세한 맥락을 자극해 경맥에 일시적인 자상을 입혔다. 허벅지 근육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마비 통증이 올라왔다.
소하는 급히 청심결(靑心決)을 마음속으로 독송하며 폭주하려는 체내의 열독을 억눌렀다. 그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저택의 정원 깊숙한 곳에 위치한 비밀 서고의 목조 건물로 은밀하게 침투했다.
비밀 서고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나, 소하는 사마귀의 시체에서 훔친 붉은 벽혈령 철패의 끝부분을 문의 비밀 홈에 밀어 넣었다. 황실 태의원의 인장과 약선 가문의 진법 장치가 미세하게 공명하며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약선 가문이 태의원의 하부 조직과 깊은 유착 관계를 맺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
소하는 소리 없이 내부로 잠입했다. 서고 안은 수백 년 묵은 오래된 종이 냄새와 말린 약재의 씁쓸한 향이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방의 서가에는 기경팔맥과 침술에 관한 비급들이 가득했다. 소하는 청맥심술로 서고 내부의 미세한 공기 흐름을 역추적했다. 가장 깊숙한 곳, 자단목으로 주조된 둥근 상자 안에 비단으로 감싸인 고서가 놓여 있었다.
[신농의경 사본(神農醫經 寫本)].
소하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가죽 표지를 들추자, 붉은 먹으로 그려진 구양역맥의 두 번째 사혈, 은백혈의 정확한 좌표와 침을 찌르는 각도가 상형문자와 함께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찾았다. 이것만 있으면 내 단전의 대폭주를 다시 삼백 일 동안 유예시킬 수 있어.’
소하가 책을 품속에 신속하게 집어넣는 순간이었다.
쿵-!
무거운 쇠사슬 소리와 함께 서고의 거대한 철제 이중 문이 스스로 닫히며 잠겼다. 사방의 창문에서 강철 창살이 내려앉아 탈출로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어떤 쥐새끼가 감히 약선 가문의 비록을 탐내는가 했더니, 병약한 해골 바가지 같은 도둑놈이었군.”
서고의 어두운 모퉁이, 거대한 책장 뒤편에서 서늘하면서도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은빛 도포를 휘날리며 한 처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흑발 아래로 이슬처럼 맑고 예리한 안광이 빛나고 있었고, 에메랄드빛 장포를 입은 그녀의 손끝에는 가문 비전의 비취 은침(翡翠 銀針) 세 자루가 정밀하게 장전되어 있었다.
약선 가문의 적통 천재 소저, 벽연(碧蓮)이었다.
벽연은 소하의 창백한 안색과 손목, 목덜미에 가득한 기이한 은침 자국을 단숨에 알아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그 기괴한 침 자국…… 네놈이 바로 강남 삼류 문파의 맹주 사웅을 속여 사혈을 뚫었다는 그 미치광이 의원 소년이로구나. 가문의 비기를 탐낸 대가는 오직 죽음뿐이다.”
벽연의 손가락 끝에서 서슬 퍼런 약선조화경(藥仙調和勁)의 진기가 비취 은침을 타고 흘러나왔다. 일류 초입의 침술 대가다운 압도적인 기세가 좁은 서고 내부를 무겁게 짓눌렀다.
소하는 피가 고인 입술을 비틀어 올리며 청동 침통을 손에 꽉 쥐었다. 소매 속에서 수십 개의 미세 은침이 백혈 침우(百血 針雨)의 자세로 장전되며 쩌적 소리를 냈다. 소하의 눈동자에 생존을 향한 서늘한 광기가 다시 한번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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