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독의 덫
습하고 무거운 공기가 허파를 짓눌렀다. 사방을 가득 메운 자색의 독무(毒霧)는 숲의 경계를 지우고, 축축한 이끼 냄새와 썩은 흙냄새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이곳은 망우곡에서도 가장 깊고 음침한 금지의 영역, 만독수림(萬毒樹林)이었다.
진소하는 수풀 사이에 몸을 웅크린 채 숨소리마저 극도로 죽이고 있었다. 그의 눈길이 향한 곳은 독무가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바위 바위틈이었다.
그곳에는 소란이 어깨에 백초망태기를 멘 채 서성이고 있었다. 그녀는 소하의 뒤틀린 경맥을 식혀줄 한천초를 더 캐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까지 걸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소란은 알지 못했다. 그녀가 딛고 서 있는 바위 밑 덩굴 사이, 가늘고 예리한 은색 실이 뱀처럼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마비 덫이다.’
소하의 창백한 얼굴이 서리발처럼 차갑게 굳어졌다.
태의원의 살수 사마귀가 소란을 미끼로 삼아 쳐놓은 덫이었다. 1mm의 오차도 없이 정밀하게 짜인 마비 침들이 덩굴 속에 숨어 소란의 발목을 겨누고 있었다. 만약 소란이 저 실을 밟는 순간, 수십 개의 독침이 그녀의 전신 기혈을 관통해 그 자리에서 육체를 얼려버릴 터였다.
소하는 숨을 들이쉬었다. 단전 깊은 곳에서 사웅에게서 빼앗은 철도기공의 잔열이 요동쳤다. 광명혈을 개방하며 겨우 백 일로 늘려놓은 수명이었으나, 한독과 열독이 경맥 속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며 매일 밤 뼈마디를 으스러뜨리는 통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경맥의 미세한 균열이 벌어지는 고통이 밀려왔지만, 소하는 이빨을 악물었다.
‘정면으로 나가 소란을 부르면 사마귀가 즉시 움직인다. 덫을 먼저 무력화해야 한다.’
소하는 허리춤에서 녹슨 청동 침통을 더듬었다. 한천초 생즙을 발라 사향 향료의 냄새를 완벽하게 차단한 침통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소하는 침통에서 가장 얇고 정밀한 은침 한 자루를 꺼내 손가락 끝에 쥐었다.
기공 침술, 탄지기침(彈指氣針).
소하는 눈을 감았다. 시각을 차단하자 만독수림의 기괴한 바람 소리와 독무의 미세한 흔들림이 피부의 모공을 통해 삼차원 지도로 그려졌다. 청맥심술(聽脈心術)의 감각이 극대화되며, 저 멀리 대나무 뒤편에 숨은 사마귀의 비정상적으로 축축하고 느린 심장 박동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두근. 두근.
사마귀는 소란이 덫을 밟아 비명을 지르는 순간만을 집요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림없다.’
소하가 손가락 끝에 미세한 진기를 실어 은침을 튕겼다.
픽-!
소리 없는 파공음과 함께 날아간 은침이 소란의 발밑 덩굴 속, 은색 실의 매듭을 정확히 꿰뚫었다.
찰칵!
매듭이 끊어지며 덩굴 속에 장전되어 있던 마비 독침 수십 개가 소란의 반대편 허공을 향해 사정없이 뿜어져 나갔다. 타타타탁! 썩은 고목나무에 독침들이 박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앗……!”
소란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주저앉았다. 갑작스러운 덫의 발동에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쉬익……! 어떤 쥐새끼냐!”
대나무 숲 어둠 속에서 쇳소리 같은 기괴한 노성이 터져 나왔다. 초록색 가죽옷을 입은 곱추 형색의 사내, 사마귀가 수풀을 헤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은 회색 안대에 가려져 있었으나, 코와 귀를 실룩이며 사방의 기척을 탐지하려 했다. 그의 곁에 있던 사냥개 크기의 영물, 추향견(追香犬)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추향견은 갈팡질팡했다. 평소라면 소하의 청동 침통에서 풍겨 나왔어야 할 태의원의 비전 사향 향료 냄새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한천초 생즙으로 코팅된 침통은 차가운 냉기만을 내뿜을 뿐, 아무런 냄새도 흘려보내지 않고 있었다.
“사향의 냄새가 없다? 어떻게 내 추향을 차단한 것이냐!”
사마귀가 당황하여 비사침 세 자루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며 소리쳤다.
소하는 숲의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창백한 안색에 낡은 삼베 무복을 걸친 그의 모습은 마치 만독수림의 원혼 같았다. 소하는 소란을 향해 나직하게 속삭였다.
“소란, 뒤돌아보지 말고 의원으로 뛰어라. 이놈은 내가 처리한다.”
“소, 소하야! 하지만 네 몸이……!”
“가라.”
소하의 서늘하고 단호한 명령에 소란은 입술을 깨물며 백초망태기를 움켜쥐고 망우의원 방향으로 빠르게 기동했다. 사마귀가 소란을 쫓기 위해 신형을 움직이려 하자, 소하가 자신의 손가락 끝에서 미세한 진기를 뿜어내며 사마귀의 이목을 끌었다.
“네놈의 사냥감은 여기 있다, 황실의 사냥개야.”
사마귀의 회색 안대 너머로 탐욕스러운 살기가 번뜩였다.
“쉬익…… 진소하! 뇌진 분타주님이 네놈의 특이 혈맥을 산 채로 가져오라 하셨다. 사지 중 두 곳만 성하면 생포하는 데 지장 없겠지!”
사마귀가 허리춤에서 두 자루의 쌍도를 뽑아 들었다. 일류 무사(一流武士) 특유의 서슬 퍼런 검강이 쌍도 날을 타고 흘러나왔다. 사마귀쌍도술(沙魔鬼雙刀術)의 초식이 전개되자, 바람을 찢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만독수림 전체를 흔들었다.
스사사사삭!
사마귀가 신형을 회전시키며 폭풍처럼 돌진해 왔다. 그의 쌍도가 자색 독무를 가르며 소하가 서 있는 허공을 난도질했다. 무자비한 검풍이 소하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소하는 뒤로 물러서며 탄지기침으로 은침 세 자루를 동시에 날렸다. 하지만 사마귀는 일류 무사였다. 그의 회전하는 쌍도 검강막에 소하의 은침들이 팅, 팅 소리를 내며 무력하게 튕겨 나갔다.
파아앗!
회전하는 쌍도의 잔풍이 소하의 청낭포 소맷자락을 찢어발겼다. 소하의 하얀 wrist 위로 붉은 선혈이 배어 나왔다. 미세한 칼자국이었으나, 일류 무인의 기운이 담긴 자상은 소하의 뒤틀린 경맥을 자극해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타오르는 듯한 열독을 유발했다.
“커흑…….”
소하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단전 내부에서 사웅의 내공과 한천초의 냉기가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며 전신 세포를 불태우려 했다. 피부가 병적으로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크하하! 겨우 그 정도 무력으로 사웅 방주를 속여 사혈을 뚫었단 말이냐! 네놈의 그 기묘한 잔머리도 내 칼날 앞에서는 고기방패에 불과하다!”
사마귀가 광소하며 다시 쌍도를 치켜들었다.
소하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사마귀를 노려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며 기괴한 광기 어린 실소가 새어 나왔다.
“과연 그럴까.”
소하는 전신의 모공을 강제로 열었다. 단전 깊은 곳에서 팽창하던 구양진액의 뜨거운 열기를 전신 피부로 폭발시키듯 방출했다. 체내에 축적되어 있던 만독초의 치명적인 독소들이 순양의 열기와 반응하여 기화되기 시작했다.
공법, 약무무(藥霧霧).
푸쉬이이익!
소하의 전신 피부에서 자색의 짙은 독무가 화산의 스팀처럼 뿜어져 나왔다. 만독수림 자체의 자색 독무와 소하가 뿜어낸 약무무의 독기가 결합하자, 주변 반경 10보 안이 순식간에 눈앞의 손가락조차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보랏빛 장막으로 뒤덮였다.
깨갱-!
추향견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소하가 뿜어낸 약무무 내부의 고농도 만독초 기화 성분이 영물의 극도로 예민한 후각과 기관지를 순식간에 태워버린 것이다. 추향견은 코에서 검은 피를 흘리며 무력화되었다.
“이, 이게 무슨……! 내 코가 얼어붙는다! 숨을 쉴 수 없어!”
사마귀 역시 경악하며 비틀거렸다. 약무무의 지독한 마비 독기가 그의 호흡기를 파고들어 뇌 신경을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회색 안대 너머로 거대한 사마귀 환각이 보이는 듯, 그는 허공을 향해 비명을 지르며 쌍도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쉬익! 쉭! 콰과광!
사마귀가 환각 속에서 대나무들을 난도질하며 미쳐 날뛰었다. 사방으로 튕겨 나가는 대나무 파편들 속에서, 소하는 완벽하게 움직임을 멈췄다.
소하는 청낭포 후드를 깊게 눌러쓴 채, 독무 속에서 완벽하게 기척을 지웠다. 그의 숨소리는 귀숨법(歸숨법)에 의해 완벽한 가사 상태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소하는 오직 심안(心眼)과 청맥심술의 감각만을 가동했다.
보이지 않는 독무 속에서, 사마귀의 거친 호흡 소리와 미쳐 날뛰는 쌍도의 궤적이 소하의 머릿속에 삼차원의 뼈대로 선명하게 투영되었다.
‘지금이다.’
소하는 녹슨 청동 침통에서 만독초 즙액이 묻은 자성 은침 두 자루를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탄지기침, 곡선침격(曲線針擊).
소하가 손가락 끝을 가볍게 튕겼다.
쉭-!
은침 두 자루가 강풍을 타고 날아가다, 공기 중의 자기장을 타고 스스로 궤적을 미세하게 꺾어 사마귀의 사각지대로 파고들었다.
푹! 푹!
“끄아아악!”
사마귀가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은침들이 그의 양쪽 무릎 뒤편 급소인 위중혈(委中穴)에 정확히 박힌 것이었다. 은침 끝에 묻어 있던 만독초의 치명적인 마비 독소가 그의 족태양방광경을 타고 순식간에 전신 중추신경으로 퍼져 나갔다.
3초.
단 3초 만에 사마귀의 하반신이 완벽하게 동결되었다. 쌍도를 쥔 그의 팔 역시 마비 독기에 마비되어 바닥으로 털썩 떨어졌다.
보랏빛 독무가 서서히 걷히며, 소하가 어둠 속에서 고요히 걸어 나왔다. 소하의 전신 피부는 약무무의 과도한 시전 부작용으로 인해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허연 김이 스팀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극도의 탈수 증상으로 인해 그의 입술은 가뭄 난 논바닥처럼 찢어져 피가 고여 있었다.
소하는 무릎을 꿇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마귀의 앞으로 다가갔다.
스르릉.
소하가 침통에서 가장 길고 예리한 대침 한 자루를 꺼내 사마귀의 목덜미 아문혈(啞門穴)에 서늘하게 대었다. 침 끝이 사마귀의 살결을 파고들며 핏방울이 맺혔다.
“쉬익…… 으, 윽…… 진소하…….”
사마귀가 마비된 턱을 겨우 움직이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소하를 올려다보았다. 소하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에는 생존을 향한 서늘하고 광기 어린 집착만이 도사리고 있었다.
“누가 보냈지.”
소하의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다. 마치 지옥 밑바닥에서 긁어 올린 듯한 음성이었다.
“독수…… 뇌진 분타주님이…… 네놈의 구양역맥을 산 채로 포획해…… 황실 태의령 조충헌(趙充憲) 대인께 바치라 하셨다…….”
“그게 전부인가.”
소하가 침 끝을 1mm 더 밀어 넣었다. 아문혈의 신경이 자극받자 사마귀의 전신이 발작하듯 떨렸다.
“으아악! 기, 기다려! 진짜 처형단이 오고 있다! 내 벽혈령이 끊어지는 순간…… 태의원에서 파견한 최정예 처형 집행관 귀살(歸殺) 대인과 그의 처형단이 망우곡을 쓸어버릴 것이다! 네놈은 결코 살아남지 못해!”
소하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귀살. 가문을 참살할 때 은침을 날리던 그 악마들의 이름 중 하나였다.
“좋은 정보군.”
소하가 은침을 가차 없이 사마귀의 아문혈 깊숙이 찔러 넣었다.
“끄어어억……!”
사마귀의 눈동자가 위로 뒤집히며 그의 호흡이 완벽하게 멈췄다. 일류 무사의 육체가 만독초의 마비독과 사혈 관통으로 인해 차가운 시체로 변해갔다. 소하는 사마귀의 품을 뒤져 그의 붉은색 벽혈령 철패를 탈취했다.
그 순간이었다.
사마귀의 숨통이 완전히 끊어지자, 소하의 손에 들린 벽혈령 철패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철패 내부에 새겨져 있던 태의원의 생명 각인 진법이 깨어지며, 붉은 철패가 눈이 멀 것 같은 선홍색 광채를 뿜어냈다.
삐이이이이이-!
귀를 찢을 듯한 고주파의 공명음이 만독수림을 넘어 망우곡 전체의 하늘로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태의원 본원과 강남성 관부에 침입자의 사망과 좌표를 실시간으로 알리는 역모 경보 진법의 발동이었다.
소하는 붉게 빛나는 철패를 꽉 쥐며 찢어질 듯한 단전의 통증을 느꼈다. 강남성 판관 팽무도의 대규모 군대와 귀살의 처형단이 이 경보를 듣고 망우곡으로 진격을 시작할 터였다.
소하의 입술 틈새로 붉은 피가 다시 한번 흘러내렸지만, 그의 입꼬리는 기괴하게 찢어지며 광기 어린 웃음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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