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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한 안개 속의 추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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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방의 웅장한 목조 요새를 빠져나온 진소하의 걸음은 비틀거렸다.


비바람은 잦아들었으나, 젖은 삼베 무복 아래로 느껴지는 육체의 한계는 비참할 정도로 명확했다. 사웅의 대도에 꿰뚫렸던 우측 쇄골 아래 광명혈(光明穴)은 자가 소생의 비술로 간신히 지혈되었으나, 뼈와 살이 뜯겨 나간 상처 부위는 매서운 칼바람이 스칠 때마다 뼛속을 후벼 파는 극통을 뿜어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외상이 아니었다.


“쿠학……!”


소하가 마른나무 밑동을 짚으며 거친 기침과 함께 검붉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진흙 바닥에 떨어진 피 위로 미세한 김이 피어올랐다. 단전 깊은 곳에 안착한 사웅의 철도기공(鐵刀氣功) 내력 십 분의 일. 일류 고수의 거칠고 폭렬한 순양의 진기가 소하의 차가운 음의 경맥 내부에서 길을 잃고 요동치고 있었다.


스스로 내공을 연마해 다스릴 수 없는 구양역맥(九陽津液)의 체질. 타인의 내력을 흡수해 억지로 수명을 늘렸으나, 그 힘이 전신 경맥을 타고 폭주하려 할 때마다 심장 주변에 박힌 마지막 삼도은침(三道銀針)이 비명 지르듯 진동했다.


‘남은 수명은 이제 겨우 백 일…… 아니, 자가 소생의 대가로 심장 수명이 한 달이나 단축되었으니 구십 일 남짓인가.’


소하는 이를 악물며 흐릿해지는 시야를 다잡았다. 곁에서 숨을 죽인 채 소하를 부축하던 개방의 정보꾼 풍개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눈치를 보았다. 철도방주 사웅의 무쇠 대도를 은침 한 자루로 폭사시키고, 그의 목숨을 살려두며 방주의 도장까지 빼앗아 온 소년의 광기 서린 기개에 완전히 압도당한 기색이었다.


“소, 소하 도령…… 이대로 강남성 관부의 눈을 피해 망우곡으로 들어가는 게 안전하겠소? 청낭방의 이류 살수들이 이미 가객들의 소문을 듣고 사방에 깔렸을 텐데.”


“그들이 아는 것은 철도방에서 자폭하려다 실패한 미치광이 의원 소년뿐이다. 오가는 청풍서점에 묶어두었으니, 뇌진의 귀에 내 생존이 들어가는 데는 시간이 걸려.”


소하는 차갑게 속삭이며 품속에 넣은 철도방주 도장을 손 끝으로 매만졌다. 가문의 원수 독수 뇌진을 단죄하고 두 번째 사혈을 개방하기 전까지, 이 굳어가는 육체를 어떻게든 안정시켜야 했다.


***


음침하고 습한 기운이 상시 자욱한 약초 골짜기, 망우곡(忘憂谷).


황실 태의원의 서슬 퍼런 감시가 미치지 않는 이 피난처의 초입은 평소보다 더 짙은 안개에 잠겨 있었다. 소하는 풍개를 강남성 외곽으로 돌려보낸 뒤, 홀로 피칠갑이 된 몸을 이끌고 망우곡 깊은 곳에 위치한 낡은 목조 약방, 망우의원의 문을 밀어젖혔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약방 내부의 은은한 등불 아래서 한 소녀가 급히 뛰어내려왔다. 양 갈래로 단정하게 땋은 머리에 수수한 무명옷을 입은 소녀, 소란(小蘭)이었다.


“소하야!”


소란의 눈동자가 소하의 피투성이 무복과 창백하게 질린 안색을 확인하는 순간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울음기를 삼키며 소하의 무너지는 몸을 단단히 부축했다.


“약방이 습격당해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어…… 도대체 어디서 이 지경이 되도록 몸을 굴린 거야? 심장의 은침이 또 울리고 있잖아!”


“소란, 시끄럽다. 한천초(寒天草)를…….”


소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약방 바닥에 주저앉았다. 전신의 모세혈관이 터질 듯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사웅의 내공이 경맥의 벽을 찢어발기며 단전을 강타하려 하고 있었다.


소란은 군말 없이 주방으로 달려가 가마솥의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망우곡 가장 깊숙한 음침한 절벽 틈새에서 목숨을 걸고 채취해 온 극음(極陰)의 보명 약초, 한천초의 마른 줄기들이 끓는 물속에서 서서히 녹아내렸다. 자욱한 한방 약재의 향과 함께 얼음처럼 차가운 냉기가 약방 내부를 채우기 시작했다.


“어서 마셔. 경맥의 열기를 식혀야 해.”


소란이 건넨 탕약을 소하는 단숨에 들이켰다.


치이이익!


식도를 타고 내려간 한천초의 극음의 진액이 위장 내부에서 기화되며 전신의 경맥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단전을 불태우던 사웅의 철도기공 열독이 차가운 한천초의 기운에 가로막혀 일시적으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전신 피부 위로 기괴하게 솟구쳤던 붉은 혈관들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안정을 되찾았다.


“하아…….”


소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가에서 차가운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전신의 통증이 마비되듯 잦아들었으나, 가슴팍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끝은 여전히 서늘했다.


“겨우 하루치 생명줄을 연장한 것에 불과해. 단전 내부에 가둬둔 사웅의 내공과 한천초의 냉기가 충돌하며 매일 밤 경맥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고 있어. 두 번째 사혈을 정밀하게 개방하기 전까지는 이 가혹한 균열을 멈출 수 없다.”


소란은 찢어진 청낭포(靑囊袍) 도포 자락을 말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다. 소하의 목덜미와 손목에 가득한 은침 자국들, 그리고 심장 부근에 희미하게 남은 마지막 삼도은침의 흉터가 소년이 겪어온 처절한 생존 투쟁의 흔적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내일 만독수림(萬毒樹林) 초입에 가서 한천초를 더 캐올게. 네가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독무를 뚫고 갈 수 있어.”


“만독수림 깊은 곳은 들어가지 마라. 피부가 녹아내리는 자색 독무가 깔려 있어 일반인은 한 호흡만으로 폐가 썩어 들어간다.”


소하는 차갑게 경고하며 약실 구석에 놓인 녹슨 청동 침통을 집어 들었다. 은침들을 하나씩 꺼내 연마석에 갈아내는 그의 눈빛은 고요하면서도 날카로웠다.


***


같은 시각, 망우곡 초입의 빽빽한 대나무 숲.


자욱한 안개 사이로 기괴하게 허리가 굽은 왜소한 체구의 사내가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초록색 얇은 가죽옷을 입고 얼굴에 기괴한 회색 안대를 찬 사내, 황실 태의원 소속 은침 살수단 벽혈위(碧血衛)의 전문 추적자 사마귀(沙魔鬼)였다.


그의 발치에는 사냥개 크기의 기이한 영물, 추향견(追香犬) 한 마리가 코를 지면에 바짝 댄 채 킁킁거리고 있었다.


“쉬익…… 쉬이익.”


사마귀의 입술 사이로 기괴한 마찰음이 흘러나왔다.


“찾았다…… 황실 태의원의 비전 사향 향료. 일반 의원들은 은침의 소독약으로 착각하지만, 우리 추향견의 코는 속일 수 없지. 갈홍의 청동 침통 표면에 미세하게 스며든 그 특유의 향이 이 음침한 골짜기로 흘러들어오고 있구나.”


사마귀의 손가락 끝에는 얇고 예리한 비사침(飛蛇針) 세 자루가 기분 나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무공은 일류 초입의 추적 및 암습 특화. 독수 뇌진의 명령을 받고 진소하의 특이 혈맥을 생포하기 위해 강남 무림의 모든 정보망을 뒤흔들며 이곳까지 당도한 것이다.


“진소하…… 철도방주 사웅을 제압하고 되살아난 괴물 소년이라 들었다. 하지만 단전이 스스로 폭발하는 시한부 상태라면, 내 냄새를 피할 방법은 없으리라.”


사마귀는 추향견의 목줄을 짧게 쥐며 안개 속으로 신형을 감추었다. 그의 발걸음에서는 흙먼지 하나 일지 않았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망우의원 앞마당.


소하가 밤새 은침을 소독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마당 한구석의 진흙 바닥 위에 미세하게 반짝이는 붉은 기운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소하가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 진흙 속에 반쯤 묻힌 물건을 집어 들었다. 손바닥 크기의 붉은색 철패, 벽혈령(碧血令)이었다. 철패 표면에는 태의원 특유의 음양 각인과 함께 미세하게 진동하는 기공의 파동이 남아 있었다.


‘벽혈위의 징표……!’


소하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 철패가 마당에 떨어져 있다는 것은, 적들의 추격자가 이미 망우곡의 방어 장막을 뚫고 의원 턱밑까지 당도했음을 의미했다.


소하는 코를 찌르는 미세한 사향 냄새를 포착했다. 자신의 손에 들린 녹슨 청동 침통의 표면을 더듬던 그의 머릿속에 번개 같은 깨달음이 스쳤다.


‘스승 갈홍의 침통…… 이 표면에 황실 태의원의 밀정들이 사용하는 특수 추적 향료가 아주 미세하게 스며들어 있었군. 내가 침통을 열고 진기를 주입할 때마다 향료가 기화되어 추적자들의 사냥개에게 좌표를 제공했던 것이다.’


소하는 지체 없이 마당 구석에 말려두었던 한천초의 생즙을 짜내어 청동 침통 표면에 골고루 발랐다. 한천초 특유의 극음의 한기가 향료의 미세한 냄새를 완벽하게 얼려 차단했다. 추적의 메커니즘을 역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늦었을지 모른다. 사냥개는 이미 골짜기 내부로 진입했다.


“소하야! 나 약초 채집하러 다녀올게!”


약방 문을 열고 나온 소란이 백초망태기를 어깨에 메며 밝게 웃었다. 그녀의 동선은 망우곡 깊숙한 곳, 만독수림의 초입으로 향하고 있었다.


“소란, 가지 마라.”


소하가 급히 경고하려 했으나, 소란은 이미 가벼운 경공 보법을 밟으며 안개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쿵, 쿵, 쿵.


그 순간 소하의 귀가 미세하게 떨렸다.


청맥심술(聽脈心術).


바람의 흐름을 뚫고, 대나무 숲의 사스락거리는 소리를 넘어, 약방 뒤편 만독수림 초입 방향에서 비정상적으로 느리고 음산한 두 개의 심장 박동 소리가 포착되었다. 하나는 짐승의 거친 호흡, 다른 하나는 인간의 기형적으로 축축한 숨소리.


‘사마귀……!’


소하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며 서늘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적은 소란의 동선을 이미 파악하고 만독수림 입구에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을 끌어내기 위해 소란을 인질로 잡으려는 비열한 계책이었다.


“살고 싶어 발악하는 내 영역에…… 감히 발을 들였구나.”


소하는 청낭포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안개 속으로 신형을 날렸다. 어깨의 상처가 찢어지는 통증이 밀려왔으나, 생존을 향한 광기 어린 투지가 그의 전신 경맥을 타고 차갑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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