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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풍령의 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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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의 동굴, 연화동을 나서는 진소하의 발걸음은 여전히 삐걱거리고 있었다.


두 번째 사혈인 은백혈을 개방한 대가로 파열되었던 발목 힘줄은 완벽히 아물지 않아,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정강이 뼈마디가 어긋나는 듯한 둔탁한 극통이 뇌리를 찔렀다. 소란이 밤새 눈물을 흘리며 정성껏 기워준 푸른 도포, 청낭포(靑囊袍)는 석두의 선혈 자국이 검붉은 얼룩으로 군데군데 남아 있었으나, 소하는 그것을 개의치 않고 몸에 걸쳤. 그 비장한 흔적이야말로 소하가 살아서 중원 낙양성으로 향해야 할 처절한 이유이자 맹세였기 때문이다.


“스승님, 페이스를 조금 늦추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발목의 기혈이 아직 완전히 안착하지 못했습니다.”


뒤를 따르던 제자 허팽이 무거운 약상자를 짊어진 채 이마의 땀을 닦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스승에 대한 경외감과 걱정이 가득 배어 있었다. 소하의 곁을 묵묵히 지키던 약초꾼 소녀 소란 역시 소하의 창백하게 질린 뺨과 찢어진 청낭포 자락을 바라보며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쓸데없는 소리 마라. 한빙 석판의 한독이 심장을 완전히 얼리기 전에 낙양성으로 가야 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


소하가 차갑고 냉소적인 어조로 말을 잘랐다. 그의 가슴팍 안쪽에서는 뇌진의 독무에 노출되어 미세하게 부식된 한빙 석판(寒氷 石板)이 차가운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단전의 구양 열독을 억누르기 위한 보명 기물이었으나, 장기 착용으로 인해 전신 경맥에 침착된 한독은 수시로 소하의 가슴뼈를 안쪽에서부터 때려 부수며 각혈을 유도하고 있었다. 소하는 품속에 하연옥이 양도해 준 대황상단 금패(大黃商團 金牌)를 묵직하게 거머쥐며, 강남 무림을 완전히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흑풍령(黑風嶺)의 가파른 산길을 응시했다.


흑풍령은 그 이름처럼 검은 바위산들이 기괴한 뼈대처럼 솟아오른 험준한 고개였다.


고개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에서 칼날 같은 돌풍이 사정없이 몰아쳤다. 흑풍령의 거센 바람은 단순한 자연의 흐름이 아니었다. 좁은 절벽 바위 구멍 사이를 통과하며 증폭된 바람은 쇳소리 같은 비명을 질렀고, 공기 중에 떠도는 정전기와 강한 자기장의 흐름을 뒤흔들고 있었다. 소하의 예리한 감각은 흑풍령의 정전기 기류가 가슴속 한빙 석판과 반응하며 미세한 기혈 뒤틀림을 유발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바람이 너무 강합니다. 이 지형에서는 얇은 은침을 던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소하.”


청운검파의 후기지수 유원이 장검 자루를 쥔 채 주위를 경계하며 경고했다. 유원의 말이 맞았다. 흑풍령의 돌풍은 낙석을 굴려버릴 정도로 강력하여, 가벼운 은침을 탄지기침으로 튕겨봤자 공기의 저항에 밀려 궤적을 잃고 절벽 아래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질 터였다. 소하의 원거리 침술 무공이 완벽하게 봉쇄되는 최악의 전장이었다.


스으으읍- 팟!


그때, 몰아치는 돌풍의 결이 기괴하게 찢어졌다.


바람 소리를 뚫고 서리발 같은 차가운 살기가 소하의 목덜미를 스쳤다. 소하의 청맥심술(聽脈心術)이 공기를 가르는 미세한 검기의 파동을 포착한 순간, 허공에서 붉은 매화꽃잎 모양의 검강 수십 개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조심해라!”


유원이 포효하며 청영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유원은 정순한 도가 내공을 전개해 청운십삼검의 검막을 펼치며 소하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붉은 검강들을 겨우 튕겨냈다. 그러나 흑풍령의 무자비한 돌풍에 디딤발이 미끄러지며 유원은 중심을 잃고 벼랑 끝으로 밀려났다.


“크윽……!”


유원이 신형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바람을 타고 날아온 검강의 파편이 그의 오른쪽 어깨를 깊숙이 베고 지나갔다. 선혈이 분출되며 유원이 무릎을 꿇었다. 흑풍령의 혹독한 기후 속에서는 일류 검객인 유원조차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자욱한 흙먼지와 붉은 매화 검기 속에서, 화려한 매화 문양이 새겨진 도포를 입은 사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돈과 명예를 쫓아 화산파를 배신하고 벽혈위의 객경이 된 타락한 검객, 매화검(梅花劍)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현상금을 노리는 탐욕스러운 광기와 자신의 정교한 도가 검술에 대한 오만한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크크크, 명문정파의 개들이 쥐새끼 한 마리를 지키겠다고 참으로 눈물겨운 짓을 하는구나.”


매화검이 장검을 비스듬히 세우며 소하를 노려보았다. 그의 등 뒤에서는 벽혈위의 정예 살수 수십 명이 이미 절벽 위를 장악한 채 소하 일행의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은사조가 흑풍령 정상에 촘촘한 최후의 그물망을 쳐둔 것이 분명했다.


“진소하, 네놈이 기이한 침술로 뇌진 장로를 처단했다 들었다. 하지만 이 흑풍령의 돌풍 앞에서도 그 얇은 바늘 장난이 통할 것 같으냐? 네놈의 침들은 내 검강에 닿기도 전에 바람에 날려 벼랑 아래 똥통으로 떨어질 것이다!”


매화검의 조롱 섞인 포효와 함께, 그의 장검 끝에서 다시 한번 서슬 퍼런 붉은 매화 검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소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전신의 유황 화상 흉터가 돌풍에 쓸려 쓰라린 통증을 유발했고, 한독의 여파로 가슴 깊은 곳에서 각혈이 치밀어 올랐다. 소하는 소매 안쪽에서 녹슨 청동 침통을 거꾸로 쥐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정면으로 침을 날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람의 저항이 은침의 물리적 궤적을 완전히 뒤틀어버리니까.’


소하의 뇌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매화검은 소하가 바람을 거슬러 침을 던질 것이라 믿고 방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바람을 거스르는 대신, 바람 자체를 내 무기의 비행 동력으로 삼는 역발상.


소하는 청맥심술의 감각을 피부의 모든 모공으로 확장했다. 흑풍령의 거센 돌풍이 바위벽에 부딪쳐 굴절되는 방향, 공기 중의 자기장이 뒤엉켜 흐르는 기류의 상류 지점이 머릿속에 정밀한 기하학적 지도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바람의 상류 방향으로 던진다. 자성 은침 고유의 척력을 전하 기류와 융합시킨다면…….’


소하는 손가락 사이에 임철수가 단조해 준 자성 은침(自性 銀針) 세 자루를 끼워 넣었다. 침 끝에 미세한 진기를 주입하자, 자성 모래 성분이 반응하며 푸른 아지랑이 같은 전류가 미세하게 피어올랐다.


“죽어라, 대역죄인 놈!”


매화검이 대지를 박차고 쇄도하며 매화삼십육검의 살인적인 검초를 전개했다. 그의 장검 끝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검강들이 소하의 청낭포 소맷자락을 순식간에 갈가리 찢어발겼고, 그의 날카로운 검기가 소하의 다리 경맥을 직격하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낙하했다.


슈우우욱!


그 절체절명의 순간, 소하는 매화검의 정면이 아닌, 바람이 불어오는 가파른 절벽 위 허공, 즉 바람의 상류 방향을 향해 자성 은침 세 자루를 동시에 튕겨냈다.


“하하하! 공포에 질려 조준마저 잃었구나!”


매화검이 소하의 침들이 엉뚱한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호탕하게 비웃었다.


그러나 그의 비웃음은 일 초를 가지 못했다.


허공으로 날아간 세 자루의 자성 은침들은 흑풍령의 무자비한 돌풍을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순간, 바람에 쓸려 날아가는 대신 돌풍의 압력을 고스란히 흡수했다. 은침 내부에 합금된 자성 모래가 절벽의 자기장 파동과 공명하며, 바람의 흐름을 타고 기괴한 궤적으로 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곡선침격(曲線針擊)!


돌풍을 타고 반원을 그리며 휘어 들어온 자성 은침들은, 매화검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그의 우측 사각지대 기혈을 향해 유도탄처럼 날아들었다.


픽! 픽! 픽!


“끄아악……!”


매화검의 오만한 비명이 흑풍령의 바람 소리를 찢었다. 그의 우측 어깨 대추혈과 심장 주변의 보조 기혈 세 곳에 푸른 전류를 머금은 자성 은침들이 정확하게 박혀 들어갔다. 침에 담긴 미세한 전하 기운이 매화검의 전신 신경망을 순간적으로 마비시켰고, 그의 손가락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수축하며 쥐고 있던 명검 매화검이 돌바닥 위로 요란한 금속음과 함께 굴러떨어졌다.


“이, 이 괴물 같은 놈이…… 침을 휘어 날렸단 말인가!”


매화검이 오른팔을 움켜쥔 채 피눈물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전신 호체강기가 소하의 변칙적인 곡선침격 한 방에 완벽하게 붕괴한 상태였다. 뒤를 지키던 벽혈위 살수들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기이한 침술 궤적을 목격하고 일제히 경악하며 주춤거렸다.


그러나 타락한 검객의 최후 발악은 집요했다. 매화검은 왼손으로 품속에서 붉은 은침 통을 꺼내 들며 피눈물 섞인 노성을 질렀.


“내가 이 지옥 같은 고개에서 네놈의 목을 베어 태의령 조충헌 님께 바치고 화산의 이름을 되찾을 것이다!”


매화검이 자신의 남은 전신 내력을 폭발시키며, 매화 형상의 거대하고 붉은 검강 수십 개를 소하의 목덜미를 향해 무차별로 방출하기 시작했다. 붉은 검강의 해일이 흑풍령의 돌풍과 뒤엉켜 소하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릴 듯 사정없이 몰아쳤다.


절체절명의 순간, 소하는 피가 섞인 마른침을 뱉어내며 청동 침통을 거꾸로 움켜쥐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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