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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를 주고 살을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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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성 외곽을 둘러싼 먹구름이 마침내 무거운 비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철도방(鐵刀방) 본타의 거대한 목조 요새를 사정없이 때려눕혔다. 축축한 흙먼지와 비린내가 진동하는 정문 앞, 진소하는 홀로 서서 거대한 무쇠 철문을 올려다보았다.


쿵, 쿵, 쿵.


심장 바로 옆, 뼈마디 깊숙이 박힌 마지막 삼도은침(三道銀針)이 기이한 진동을 울리고 있었다. 단전이 스스로 팽창하여 전신 경맥을 불태우려 하는 구양역맥의 화독이 목구름의 냉기마저 증발시키고 있었다. 창백하다 못해 투명한 소하의 이마 위로 빗물인지 식은땀인지 모를 액체가 흘러내렸다.


‘남은 수명은 백 일 미만. 사웅의 저 묵직한 무쇠 대도만이 내 쇄골 아래 광명혈(光明穴)을 꿰뚫어 단전의 봉인막을 찢어발길 수 있다.’


소하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허파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뜨거운 열기가 기침이 되어 터져 나왔다. 쿨럭, 쿨럭.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으나 손가락 사이로 붉은 핏방울이 배어 나왔다. 소하는 피를 옷소매에 대충 문질러 닦고는, 품속에 들어 있는 위조된 불법 밀거래 장부를 단단히 쥐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손을 뻗어 철문의 무거운 고리를 잡아당겼다.


쿠우우웅!


육중한 철문이 열리며 칠흑 같은 본타 내부의 정경이 드러났다. 요새 중앙 연무장에는 수백 명의 도끼 무사들이 양옆으로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가죽 조끼를 걸치고 무거운 낙양도를 든 사내들의 눈빛에서 서슬 퍼런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침입자의 기척을 느낀 이류 무사(二流武士)들의 거친 호흡 소리가 비바람 소리를 뚫고 소하의 귀를 때렸다.


터벅, 터벅.


소하는 병약한 청소부 소년의 행색 그대로, 빗물에 젖은 삼베 무복을 적시며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 들어갔다. 수백 자루의 도끼와 철퇴가 그의 머리 위를 겨냥하고 있었지만, 소하의 눈동자에는 한 점의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냉철한 이성과 생존을 향한 광기 어린 미소만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


연무장 끝, 호랑이 가죽이 깔린 거대한 의자 위에 한 사내가 거만하게 걸터앉아 있었다. 붉은 얼굴에 우람한 체구, 어깨에 호랑이 가죽을 걸친 철도방주 사웅(沙雄)이었다. 그의 발치에는 철도방의 상징인 백 근 무게의 무쇠 대도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의 우측에는 바위처럼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백 근 무게의 가시 철퇴를 쥔 채 서 있었다. 철도방의 제일호법, 맹강(맹강)이었다.


“어떤 쥐새끼가 겁도 없이 철도방의 문을 두드렸나 했더니, 뼈만 남은 해골 바가지가 기어 들어왔군.”


사웅이 걸걸한 목소리로 비웃었다. 수백 명의 무사들이 일제히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요새 내부가 비웃음 소리로 가득 찼다.


소하는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열었다.


청맥심술(聽脈心術).


사웅의 호흡은 겉보기에는 웅장했으나 오른쪽 어깨 기혈이 막혀 있어 불규칙한 마찰음이 들렸다. 맹강의 심박수는 바위처럼 무거웠으나 무릎 관절의 인대가 느슨해져 움직임의 첫 마디에 미세한 지체가 발생하고 있었다. 수백 명의 도끼 무사들의 맥박 소리가 소하의 머릿속에서 삼차원 지도가 되어 정교하게 그려졌다.


“사웅 방주.”


소하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연무장의 비바람 소리를 뚫고 사웅의 귀에 똑똑히 박혔다.


“네놈이 불법으로 채굴한 고순도 철광석을 청낭방의 독수 뇌진에게 밀거래한 대가로 받은 은자 오만 냥은 어디에 숨겨두었지?”


순간, 사웅의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그의 붉은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청낭방과의 무기 밀거래는 철도방의 명줄이 걸린 극비 중의 극비였다. 주변의 도끼 무사들이 동요하며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이 미친놈이 무슨 헛소리를……!”


“헛소리인지 아닌지는 이 장부가 증명하겠지.”


소하는 품속에서 위조된 불법 밀거래 장부 사본을 꺼내 허공으로 던졌다. 촤르르륵! 빗물에 젖은 한지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연무장 바닥에 떨어졌다. 장부의 첫 페이지에는 사웅의 선명한 붉은 인장과 청낭방 독수 뇌진의 필체가 정교하게 위조되어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장부를 훑어본 사웅의 안광이 살기로 번뜩였다. 비밀이 폭로된 당혹감과 분노가 그의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맹강! 저 주둥이를 당장 찢어발겨라!”


사웅의 고함과 동시에, 우측에 서 있던 제일호법 맹강이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외가 기공의 풍압이 사방의 빗줄기를 사정없이 흩뿌렸다.


“죽어라, 쥐새끼야!”


맹강이 양손으로 쥔 백 근 무게의 가시 철퇴가 소하의 머리 위로 직격해 들어왔다. 철퇴가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은 마치 뇌성이 치는 듯했다. 일반적인 이류 무사라면 그 풍압만으로도 고막이 터지고 뼈가 으스러졌을 일격이었다.


그러나 소하의 머릿속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육참골단 보법(肉斬骨斷 步法).


소하는 발끝을 우측 하단으로 정확히 1인치 비틀었다. 맹강의 무릎 관절이 꺾이는 마찰음을 청맥심술로 미리 읽었기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철퇴의 거대한 가시가 소하의 코끝을 스치며 수직으로 낙하했다.


그 찰나의 순간, 소하는 몸의 모든 인대와 관절의 제어를 풀었다.


골격 이탈술(骨格 離脫術).


뚝, 뚜둑!


기괴한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소하의 오른쪽 어깨 관절이 스스로 탈구되며 아래로 꺾였다. 무시무시한 가시 철퇴의 날카로운 끝이 탈구되어 내려앉은 소하의 어깨 가죽을 겨우 1밀리미터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쿠우우우웅!


철퇴가 연무장 바닥의 두꺼운 돌판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폭발적인 충격파와 함께 사방으로 돌가루와 흙더미가 비산했다. 날카로운 돌 파편들이 소하의 창백한 뺨을 스치며 깊은 자상을 남겼다.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크하하핫!”


돌가루와 핏빛 자욱한 먼지 속에서 소하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깨 관절이 탈구되어 인대가 찢어지는 극심한 고통이 전신 신경망을 타고 뇌를 자극했지만, 소하는 오히려 그 고통을 비웃듯 입꼬리를 기괴하게 찢어 올렸다. 뺨에서 흐르는 피가 그의 턱끝을 타고 삼베 무복을 붉게 물들였다. 맹강은 자신이 전력으로 내지른 철퇴를 이 약골 소년이 뼈를 접어가며 피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소하는 탈구된 오른쪽 어깨를 왼손으로 붙잡고 거칠게 밀어 올렸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관절이 제자리를 찾아갔지만, 인대의 파열로 인한 극심한 마비 통증이 손끝을 타고 요동쳤다. 소하는 그 고통을 억누르며, 의자 위의 사웅을 똑바로 응시했다.


“맹강이라는 저 무식한 덩치 뒤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는 꼴이라니. 사웅 방주, 그 나이 먹고 강남 무림의 맹주를 자처하더니 결국 부리는 무공은 삼류 도법만도 못한 쓰레기였군. 늙고 병든 개처럼 짖어대기만 할 뿐, 스스로 칼 한 자루 쥐지 못하는 겁쟁이였단 말인가?”


소하의 날카로운 독설이 연무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수백 명의 무사들이 숨을 죽였다. 방주의 권위가 부하들 앞에서 완벽하게 짓밟히는 순간이었다.


사웅의 얼굴이 검붉게 타올랐다. 그의 눈동자에 핏발이 가득 섰다.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사웅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이 발치에 놓인 거대한 무쇠 대도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스으으릉!


빗속에서 무쇠 대도가 서슬 퍼런 검강의 붉은 기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사웅은 백 근 무게의 대도를 치켜들고, 오직 소하의 숨통을 끊어버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대지를 찢어발기며 무서운 기세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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