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구원의 손길
차갑고 검은 물속. 장강의 지류는 가사(假死) 상태에 빠진 진소하의 육체를 가차 없이 삼켜 들었다. 스스로 목덜미의 아문혈(啞門穴)을 찔러 단전을 대폭발시켰던 대가는 가혹했다. 전신의 신경망은 완벽하게 얼어붙었고, 손가락 끝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암흑이 소하의 영혼을 옥죄었다.
‘이대로 가라앉는 건가.’
의식이 고요한 심연으로 가라앉는 찰나, 소하의 심장 주변에 박혀 있던 마지막 삼도은침(三道銀針)이 쩌적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진동했다. 이미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한 마지막 보명 침이 소하의 뇌 신경이 완전히 붕괴하는 것을 간신히 막아내며 생명의 불씨를 붙들고 있었다. 독무천의 유황 산성수로 인해 짓물러 터진 피부와 뇌신암의 전격으로 엉망이 된 상반신이 차가운 수류에 쓸려 나갔다. 석두의 죽음과 소란의 비명 소리가 무의식의 수면 위로 흩어졌다.
그때,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수면 위에서 찬란한 황금빛 등불 기류가 뿜어져 나왔다.
풍덩!
거센 물살을 가르며 물속으로 뛰어든 이들이 소하의 겨우 매달려 있는 신형을 단단히 붙잡았다. 대황상단의 잠수부들이었다. 그들은 소하를 물 밖으로 건져 올려 강변에 대기하고 있던 거대하고 화려한 흑송 마차 안으로 신속하게 이송했다.
“소하야! 소하야!”
마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란이 피투성이가 된 소하의 몸을 감싸 안으며 통곡했다. 그녀의 목덜미에는 여전히 늑태의 대도가 남긴 붉은 자상 흔적이 선명했다.
“조용히 하거라. 관군들의 귀가 사방에 열려 있다.”
마차 상석에 앉아 있던 미녀가 차갑고 영민한 어조로 소란을 제지했다. 화려한 자색 비단옷을 입고, 병약해 보이는 투명한 안색 뒤로 거대 상단을 이끄는 매서운 안광을 빛내는 여인. 대황상단의 소저, 하연옥(河蓮玉)이었다. 과거 지독한 해수병을 소하의 침술로 고쳤던 그녀는, 은혜를 갚기 위해 관군의 삼엄한 포위망을 뚫고 직접 마차를 몰고 온 것이었다.
하연옥은 마차 바닥의 이중 격실을 열어 소하를 뉘었다.
“진 의원의 몸이 얼음처럼 차갑군. 아문혈을 스스로 찔러 기혈을 정지시킨 모양이다. 허팽, 어서 한빙 석판을 확인해라.”
“예, 예! 소저!”
허팽이 떨리는 손으로 소하의 가슴팍을 수색했다. 뇌진의 부식 독에 노출되어 표면이 미세하게 부식된 한빙 석판이 소하의 심장 부근에서 차가운 냉기를 방출하고 있었다. 소하의 호흡은 멈춰 있었으나, 심맥 봉쇄의 응급 비술과 삼도은침의 보명 기전 덕분에 뇌는 아직 살아 있었다.
“성문을 닫아걸기 전에 강남성을 탈출해야 한다. 출발해라.”
하연옥의 명령과 함께 호화 마차가 빗길을 뚫고 강남성 동문을 향해 신속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
강남성 동문 앞은 그야말로 철통같은 요새로 변해 있었다.
“마차를 멈춰라! 판관 대감의 명에 따라 성내의 모든 통행을 금지한다!”
철갑을 두른 관군 수십 명이 쇠뇌를 장전한 채 마차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성문은 거대한 무쇠 사슬로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중심에는 기름진 비단 관복을 걸친 뚱뚱하고 탐욕스러운 사내, 판관 팽무도(彭武濤)가 거만하게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청낭방의 사설 칼잡이들과 벽혈위의 잔당들이 살기를 번뜩이며 대기하고 있었다.
“팽 판관, 감히 누구의 마차를 가로막는 것이냐?”
마차의 문이 열리며 하연옥이 우아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는 황금빛 낙인이 선명하게 새겨진 대황상단 금패(大黃商團 金牌)가 쥐여 있었다. 황실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천하제일 상단의 최고 신용 증표가 밤하늘의 횃불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
팽무도가 뚱뚱한 몸을 일으키며 비열하게 웃었다.
“아하, 대황상단의 하 소저 아니십니까. 하지만 지금 강남성 내부에는 전염병을 퍼뜨리고 관부를 습격한 극악무도한 대역죄인 진소하가 도주 중입니다. 황실 태의원의 엄명이 있으니, 소저의 마차라 할지라도 수색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팽무도가 손짓하자 관군들이 마차를 향해 창끝을 겨누며 다가왔다. 이중 바닥 격실에 숨어 있던 소란과 허팽은 숨을 죽인 채 소하의 차가운 손을 꼭 쥐었다. 소하의 전신은 여전히 마비되어 가사 상태에 빠져 있었고, 미세한 기척이라도 새어 나간다면 즉시 몰살당할 위기였다.
하연옥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그녀는 금패를 팽무도의 눈앞에 들이대며 매서운 일갈을 날렸다.
“팽 판관. 이 금패가 보이지 않는가? 대황상단의 마차를 강제로 수색하겠다는 것은, 우리 상단이 황실에 납부하는 매년 수십만 냥의 세액과 조정의 군량 보급을 거부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는가? 감히 네놈의 얄팍한 목숨줄로 대황상단의 신용을 실추시킨 대가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 그것이 아니라…….”
팽무도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하연옥의 말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대황상단이 Gangnam 관부의 대출금을 회수하고 보급을 끊어버린다면, 팽무도는 태의원의 신임을 얻기도 전에 조정의 탄핵을 받아 사지가 찢길 터였다.
그 틈을 타 하연옥의 대행수가 슬그머니 팽무도의 곁으로 다가갔다. 대행수는 팽무도의 소맷자락 속에 묵직한 가죽 주머니를 밀어 넣었다. 주머니 내부에서 짤랑이는 둔탁한 금속음. 고순도 은으로 주조된 강남 관은(江南 官銀) 삼천 냥의 어음과 황금 수십 냥의 무게였다.
“대감, 우리 소저께서 몸이 불편하시어 급히 요양처로 향하시는 길입니다. 번거로운 절차는 생략해 주시는 것이 서로에게 이롭지 않겠습니까.”
팽무도의 탐욕스러운 눈동자가 가죽 주머니의 묵직함에 반응하여 가늘게 떨렸다. 금패가 지닌 거대한 권력적 압박과 눈앞에 제시된 막대한 재화. 부패한 관료에게 이보다 더 완벽한 퇴로는 없었다.
“허허…… 대황상단의 애국심과 신용을 내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성문을 열어라! 하 소저의 마차를 통과시킨다!”
팽무도의 호령에 무거운 무쇠 사슬이 풀리며 굳게 닫혀 있던 동문이 서서히 열렸다. 관군들이 창을 거두고 길을 비켰다. 하연옥은 차가운 눈빛으로 팽무도를 내려다본 뒤, 마차 내부로 몸을 돌렸다.
타닥! 채찍 소리와 함께 마차가 성문을 빠져나와 칠흑 같은 안개 속 산길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강남성의 삼엄한 포위망이 상단의 압도적인 자금력과 신용의 힘 앞에 완벽하게 마비되는 순간이었다.
마차가 성문을 빠져나와 험준한 산악 지대로 접어드는 순간, 이중 바닥 격실 틈새로 서늘하고도 기이할 정도로 맑은 향기가 흘러들기 시작했다. 속세의 피비린내와 유황 냄새를 단숨에 씻어내는 극도로 정순한 돌꽃의 향.
강남 무림의 비밀스러운 영기가 모여드는 천혜의 비경이자 정화의 동굴, 연화동(蓮華洞)의 맑은 연화향(蓮華香) 기운이 가사 상태에 빠진 소하의 콧날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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