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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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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쯔강 지류의 축축한 강바람이 밤안개를 타고 허파 깊숙한 곳까지 시리게 파고들었다. 진소하는 질질 끌리는 오른쪽 다리를 억지로 앞으로 내디뎠다. 은백혈(隱白穴)을 강제로 개방한 부작용으로 발목의 힘줄이 걸레짝처럼 찢어져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뼛조각이 살을 후벼 파는 듯한 격통이 척수를 타고 뇌리를 때렸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창백한 턱끝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스승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거의 다 왔습니다.”


옆에서 소하의 어깨를 단단히 부축하고 있던 허팽이 이빨을 악물며 말했다. 청낭방의 지하 감옥에서 모진 고초를 겪고 백혈청안단의 독기에 노출되었던 소년이었으나, 자신을 구하기 위해 사지에 뛰어든 스승을 향한 경외감 하나로 무거운 약상자를 짊어진 채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소하의 다른 한편에서는 약초꾼 소녀 소란이 주위를 경계하며 길을 이끌었다. 그녀의 손에는 소하의 찢어진 청낭포(靑囊袍) 자락이 들려 있었고, 가녀린 어깨는 밤바람에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대황상단의 전령이 남긴 유언이 소하의 머릿속을 차갑게 맴돌았다.


‘판관 팽무도가…… 혈랑대(血狼隊)의 대장 늑태(늑태)를 고용했습니다…….’


늑태. 돈을 위해서라면 젖먹이 아이의 목을 베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비열하고 잔혹한 현상금 사냥꾼. 그자가 이끄는 용병단이 이미 강줄기를 봉쇄하고 자신들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소하는 자신의 가슴팍을 가만히 짚었다. 뇌진의 부식 독에 노출되어 표면이 미세하게 긁힌 한빙 석판(寒冰 石板)이 차가운 냉기를 내뿜으며 단전의 대폭주를 억누르고 있었지만, 석판의 한독(寒毒)이 뼛속 깊이 스며들어 시종일관 기침이 터져 나오려 했다.


“소하야, 저기야! 주가객잔(周家客棧)의 깃발이 보여!”


소란이 낮게 속삭이며 전방의 어둠 속을 가리켰다.


자욱한 밤안개 사이로 낡고 거무스름한 이층 목조 건물의 실루엣이 유령처럼 솟아 있었다. 강남성 외곽의 황량한 습지 가장자리에 홀로 서 있는 주가객잔. 은퇴한 도가 무인 주선생(周先生)이 운영하는 위장 주막이자, 세상의 눈을 피해 일시적으로 숨을 수 있는 마지막 안전가옥이었다. 건물의 외벽은 썩어가는 듯 보였지만, 소하의 예리한 눈은 그것이 단순한 목재가 아니라 도검의 참격을 견디도록 특수 처리된 흑송(黑松)임을 단숨에 간파했다.


스스스슥.


그들이 객잔 정문에 다다르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거대한 바위 같은 그림자가 소리 없이 솟아올랐다. 소란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려 하자, 소하가 그녀의 어깨를 짚어 제지했다.


“……의원님?”


안개 속에서 드러난 얼굴은 멧돼지처럼 우람하고 단단한 풍채를 지닌 거구의 사내였다. 얼굴 곳곳에 거친 흉터가 가득하고, 숱이 많은 수염을 기른 사내. 소하에게 어머니의 불치병을 치료받고 목숨을 빚졌던 의리파 표사, 석두(石頭)였다.


석두의 둥글고 커다란 눈에 순식간에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그는 무거운 무쇠 곤봉을 바닥에 내려놓고, 소하의 피투성이가 된 무복과 흙먼지로 뒤덮인 안색을 보며 무릎을 꿇으려 했다.


“의원님! 무사하셨군요! 청낭방 분타가 불타고 관군들이 사방을 메웠다는 소식을 듣고 제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소인의 어머니를 살려주신 은혜를 아직 반도 갚지 못했는데……!”


“시끄럽다. 무릎 꿇을 시간 있으면 빗장이나 열어라. 내 다리가 부러진 게 보이지 않느냐.”


소하가 차갑고 냉소적인 어조로 말을 잘랐다. 그의 음성은 낮고 병약해 보였지만, 그 속에 담긴 서늘한 지배력은 거구의 표사를 단숨에 움직이게 만들었다. 석두는 깜짝 놀라 급히 몸을 일으켜 소하의 팔을 부축했다. 석두의 바위 같은 팔뚝에 몸을 기대자, 찢어진 다리에 가해지던 압박이 겨우 덜어졌다.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주선생님께서 이미 지하 약탕실을 준비해 두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석두가 묵직한 객잔의 정문을 조심스럽게 밀어젖혔다.


끼이이익.


낡은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열린 객잔 내부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탁자와 의자들은 오랫동안 손님이 들지 않은 듯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구석구석 배치된 가구들의 각도가 묘하게 비틀려 있었다. 침입자가 들어왔을 때 즉시 무기나 방패로 활용할 수 있도록 주선생이 설계해 둔 철저한 방어 진형이었다.


안쪽 주방 문을 열고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허리가 약간 굽었으나, 먼지 낀 등불 불빛 아래서 번뜩이는 눈빛만큼은 얼음송곳처럼 예리한 노인. 은퇴한 이류 무인이자 주가객잔의 주인, 주선생이었다.


“진 소협, 기어코 사달을 내고 돌아왔구려.”


주선생은 소하의 뒤틀린 다리와 가슴팍의 한빙 석판을 훑어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손가락 끝은 오랜 세월 동안 기관 장치를 다뤄온 탓에 딱딱한 굳은살로 덮여 있었다.


“팽무도가 이끄는 관군 포교들이 강남성 하수도까지 이 잡듯 뒤지고 있소. 게다가 혈랑대의 늑태라는 미치광이 사냥개까지 풀렸다니, 이곳도 오래 안전하지는 못할 게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내 다리와 허팽의 독기부터 다스려야 합니다. 주선생, 지하 탈출 장치는 건재합니까?”


소하의 질문에 주선생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카운터 뒤편의 낡은 목조 장식장을 특정 순서대로 잡아당겼다. 스으으릉,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바닥의 두꺼운 나무 판자가 갈라지며 지하로 이어지는 어두운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실 깊은 곳에서 은은한 한방 약재 냄새와 따뜻한 온탕의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내려가시오. 맹한의 민병대원들이 구해다 준 한천초와 온탕 약재들을 미리 끓여두었소. 석두, 너는 정문을 지키며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하지 못하게 해라.”


“예, 선생님! 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의원님이 계신 지하실 입구는 그 누구도 통과하지 못할 것입니다!”


석두는 자신의 가슴팍을 쾅쾅 치며 우직한 충성심을 보였다. 그의 눈빛에는 소하를 위해서라면 당장이라도 혈랑대 전체와 맞서 싸우겠다는 단호한 기개가 서려 있었다. 소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허팽의 부축을 받으며 지하 계단으로 몸을 옮겼다. 타인의 호의를 신뢰하지 않는 소하였지만, 석두의 바위 같은 등 뒤에서 풍기는 우직한 의리만큼은 차가운 가슴 한구석을 기묘하게 데워주었다.


지하 약실은 좁고 습했지만, 주선생이 준비한 온탕 욕조가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허팽은 소하를 조심스럽게 욕조 가장자리에 앉히고, 그의 부러진 발목 주변의 무복을 조심스럽게 찢어냈다.


“크윽…….”


상처가 드러나자 소란이 입을 틀어막았다. 은백혈이 개방된 발가락 끝에서부터 발목까지, 피부가 푸르스름하게 죽어 있었고 미세한 서리 조각이 살갗 아래에 박혀 있는 것처럼 기태적인 역천의 평형 상태가 유지되고 있었다. 구양진액의 폭발적인 순양 열기와 한빙 석판의 극음 냉기가 발목 경맥에서 정면으로 충돌하며 혈관들을 짓찢어 놓은 결과였다.


소하는 떨리는 손으로 허리춤의 녹슨 청동 침통을 열었다. 침통 내부에 수납된 은침은 이제 정확히 90개. 손가락 끝의 모세혈관이 파열되어 검붉게 멍이 든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소하는 이빨을 악물고 은침 세 자루를 뽑아 들었다.


“허팽, 동인 혈도 인형을 가져와라. 그리고 내 발목의 태계혈(太溪穴)과 삼음교(三陰交)를 고정해라.”


“예, 스승님!”


허팽은 배낭에서 청동 인형을 꺼내 들고 소하의 지시에 따라 정밀한 혈도 좌표를 대조했다. 소하는 스스로 자신의 발목 기혈에 은침들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찌이이익!


뼛속을 송곳으로 뚫는 듯한 고통에 소하의 전신이 활처럼 꺾였다. 입술을 깨물어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는 단 한 마디의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침 끝을 통해 막혀 있던 기혈이 뚫리며, 단전 내부의 사웅의 내력이 미세하게 요동쳤다. 뒤틀렸던 경맥의 벽이 자가 침술에 의해 강제로 고정되자, 터질 듯 팽팽했던 다리의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소하야…… 좀 괜찮아?”


소란이 젖은 수건으로 소하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며 물었다. 소하는 차가운 눈동자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괜찮을 리가 있겠느냐. 임시방편일 뿐이다. 한빙 석판의 냉기가 내 심장 주변을 잠식하기 전에 은백혈의 부작용을 완전히 안착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주가객잔에서 제공하는 온탕 요양이 최소 하루는 필요해.”


소하는 온탕 속에 다리를 담근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몸의 왼쪽은 여전히 불타는 듯 뜨거웠고, 오른쪽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기태적인 역천의 평형 상태 속에서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혜우 스님에게 전수받은 불가 청심결(淸心訣)을 마음속으로 나직하게 읊조렸다. 머릿속을 조여오던 살기 어린 광기가 고요하게 가라앉으며, 오감이 기이할 정도로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청맥심술(聽脈心術).’


소하는 귀를 미세하게 열었다. 지하 약실의 습한 공기, 바닥을 타고 흐르는 지하수의 진동, 그리고 객잔 외부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의 흐름이 그의 고막을 두드렸다.


바스락, 바스락.


객잔 뒤편의 울창한 대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나뭇잎의 마찰음. 평범한 바람 소리 같았지만, 소하의 청맥심술은 그 속에 숨겨진 이질적인 진동을 잡아냈다.


그것은 바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고도로 기척을 죽인 무인들이 풀숲을 헤치며 대형을 좁혀오는 미세한 발걸음 소리였다.


소하의 눈동자가 번쩍 뜨였다. 그의 고요하던 안광에 서늘한 광기가 서려 들었다.


“……놈들이 왔다.”


“예? 스승님, 그게 무슨……?”


허팽이 놀라 묻자, 소하는 온탕에서 다리를 건져 올리며 젖은 청낭포 자락을 거칠게 여몄다.


“거친 숨소리. 맥박수가 분당 구십 회를 넘나드는 굶주린 사냥개들의 호흡이다. 적어도 서른 명 이상. 객잔의 사방을 겹겹이 포위하며 바람의 상류 방향을 장악하고 있어.”


소하의 청맥심술에 포착된 것은 단순한 관군이 아니었다. 살기를 완전히 감추지 못하고 짐승처럼 헐떡이는 거친 기공의 흐름. 현상금 사냥꾼 늑태가 이끄는 혈랑대(血狼隊)의 용병들이 분명했다. 그들은 객잔의 정면 돌파 대신, 퇴로를 완전히 차단한 채 자신들을 고사시키기 위한 정밀한 포위 진법을 전개하고 있었다.


“주선생에게 알려라. 늑태는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한 놈이다. 객잔의 좁은 입구를 석두의 외가기공으로 막아서고, 내부에 함정을 파서 유인하는 것 외에는 전멸을 피할 길이 없다.”


소하가 차갑게 지시하자, 허팽은 사색이 되어 지하실 위로 뛰어 올라갔다.


지상으로 올라온 소하의 눈앞에 객잔 정문의 삼엄한 풍경이 펼쳐졌다. 주선생은 이미 카운터 밑에서 특수 주조된 벽력탄(霹靂彈) 세 자루를 꺼내 들고 있었고, 그의 굽은 허리는 전투를 준비하는 도가 무인의 기세로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문 앞.


거구의 표사 석두가 거대한 무쇠 곤봉을 양손으로 꽉 쥔 채 가로막아 서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 혼원외가기공(混元外家氣功)의 묵직한 기류가 뿜어져 나오며 대리석 바닥을 미세하게 진동시켰다. 철포삼(鐵布衫)의 호체강기가 그의 구리빛 피부 위로 팽팽하게 솟구쳤다.


“의원님, 걱정 마십시오.”


석두가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굵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뼈가 가루가 되더라도 이 문은 절대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넓은 등판은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든든해 보였지만, 소하의 청맥심술은 객잔 외부의 밤안개 속에서 흐르는 불길한 진동을 놓치지 않았다.


스으으으.


바람의 상류를 타고 기괴하고 습한 사향 냄새가 객잔의 문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늑태가 대동했다는 흔적 추적용 사냥개들의 기분 나쁜 체취였다.


이윽고.


우우우우-


객잔 뒤편 대나무 숲 깊은 곳에서, 안개를 찢는 기괴하고 날카로운 야수들의 울음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굶주린 늑대들의 이빨이 밤안개 속에서 하얗게 드러나는 듯한 서늘한 전율이 주가객잔 전체를 덮쳤다.


쿵! 쿵! 쿵!


정문 밖의 무거운 흙바닥을 짓밟는 수십 명의 거친 발소리가 객잔 정면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석두는 이를 악물며 무쇠 곤봉을 치켜들었고, 주가객잔의 무거운 정문 빗장 너머로 혈랑대의 서슬 퍼런 대도 날들이 허공을 가르는 파공음이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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