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를 품은 도발
단전이 스스로 폭발하려는 구양역맥의 화독은 차가운 밤공기조차 뜨겁게 달구어 냈다.
진소하는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켰다. 강남성의 번화한 대로를 걷는 그의 걸음걸이는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병적으로 창백한 안색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삼베 무복 아래로 드러난 손목의 푸른 힘줄들이 기괴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심장 바로 옆, 스승 갈홍이 남겨둔 마지막 삼도은침(三道銀針)이 미세하게 떨릴 때마다 전신을 찢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남은 시간은 백 일. 아니, 화독의 팽창 속도를 고려하면 그보다 훨씬 적다.’
한천초를 모두 잃은 지금, 스스로 내공을 쌓을 수 없는 소하가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자신의 첫 번째 사혈(死穴)인 어깨의 광명혈(光明穴)을 강력한 외력으로 관통당해 단전의 봉인막을 안쪽에서 찢어발기는 것.
소하의 뒤에서 짐을 짊어진 채 쩔쩔매며 따라오는 사내가 있었다. 오가였다. 아문혈에 찔린 독침의 마비 통증과 소하가 먹인 가짜 독약의 공포에 완벽히 굴복한 배신자는, 이제 소하의 눈빛만 보아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소, 소하 도련님…… 몸은 좀 어떠십니까? 조금만 천천히 걸으십시오.”
“입 닫아라, 오가.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안다.”
소하의 목소리는 서리발처럼 차가웠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강남성 대로변에 위치한 약재상의 문을 두드렸다. 어떻게든 기혈을 진정시킬 한천초 한 잎이라도 구해야 했다.
“한천초나 빙천수가 있소?”
약재상의 늙은 점원은 소하의 창백한 얼굴과 낡은 행색을 훑어보더니, 이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없소! 그런 귀한 약재는 백의련(白衣聯)의 허가 없이는 사사로이 유통할 수 없다는 금법을 모르시오? 어서 나가시오, 관부의 눈총을 받기 싫으니!”
탁!
문이 매정하게 닫혔다. 백의련의 약재 통제령. 세상의 위선적인 의가 단체들이 약재를 독점하고 민초들의 생명줄을 쥐고 흔드는 현실이 소하의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냉소적인 실소였다.
‘결국 기연 따위로 연명할 수는 없다는 뜻이군. 그렇다면 판을 짜야지.’
소하는 붉게 물든 눈동자를 번뜩이며 골목길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개방의 하급 정보꾼 풍개(風介)가 운영하는 비밀 거점, 청풍서점(聽風書店)이었다.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낡은 종이 냄새와 먼지가 코를 찔렀다. 서점 구석, 때에 찌든 누더기 장포를 걸친 사내가 대나무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며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풍개였다. 그의 영악한 눈빛이 소하와 그의 뒤에 선 오가를 날카롭게 훑었다.
“어이쿠, 이게 누구신가? 망우곡의 병약한 청소부 소년이 아니신가? 옆에 있는 험상궂은 놈은 또 누구고?”
“내 하수인이다. 풍개, 농담할 시간 없다. 정보가 필요하다.”
소하는 청풍서점의 삐걱이는 목조 탁자 앞에 앉았다. 풍개는 지팡이를 짚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정보라? 돈은 가져왔겠지? 개방의 정보는 공짜가 아니라는 걸 잘 알 텐데.”
“강남 삼류 문파 철도방(鐵刀방)의 방주, 사웅(沙雄)에 대한 모든 것이 필요하다. 그의 성격, 무공의 궤적, 그리고 그가 숨기고 있는 아킬레스건까지.”
사웅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풍개의 얼굴에서 장난기 어린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풍개는 지팡이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소하를 노려보았다.
“사웅? 미쳤군. 그자는 평범한 삼류 맹주가 아니다. 성격이 불같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어, 제 마음에 안 들면 사람 뼈를 철퇴로 으스러뜨려 고기반패로 만드는 미치광이야. 네 그 뼈만 남은 몸뚱이로 그자에게 접근하겠다고? 자살하고 싶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라.”
“그건 내가 상관할 바다. 정보를 내놔라.”
“싫다. 목숨을 버리려는 놈에게 정보를 팔아 개방의 명예를 더럽힐 순 없지. 게다가 그 정보는 비싸다. 최소 은자 백 냥은 주어야 해.”
풍개는 일부러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며 소하를 쫓아내려 했다.
그러나 소하는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열었다.
청맥심술(聽脈心術).
풍개의 호흡 주기, 심장의 미세한 박동 변화, 그리고 지팡이를 쥔 손가락 끝의 긴장 상태가 소하의 뇌리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풍개의 심박수가 미세하게 빨라지고 있었다. 그는 돈을 더 뜯어내려는 욕심과 동시에, 소하의 창백한 얼굴 뒤에 도사린 기괴한 살기에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거짓말이군. 은자 백 냥은커녕, 오십 냥만 줘도 침을 흘릴 놈이다. 게다가 사웅에 대해 무언가 큰 약점을 쥐고 있어.’
소하는 품속에서 묵직한 가죽 주머니를 꺼내 탁자 위에 던졌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주머니가 벌어지며 황실 주조소의 선명한 낙인이 찍힌 강남 관은(江南 官銀) 오십 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전 재산의 절반이다. 그리고 하나 더.”
소하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풍개의 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청낭방이 망우곡을 기습할 때 사용한 독침의 성질을 분석했다. 그들은 황실 태의원의 비밀 지령을 받고 있었고, 그 배후에는 철도방이 불법으로 채굴한 고순도 철광석을 청낭방의 독약 무기 주조에 밀거래하는 경로가 얽혀 있지. 이 사실이 무림맹에 알려지면 사웅뿐만 아니라 청낭방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개방이 이 정보를 독점하면 얼마나 큰 이득을 볼 수 있을까?”
풍개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의 호흡이 순간적으로 턱 막혔다. 소하가 던진 정보는 강남 무림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극비 중의 극비였다. 풍개는 소하가 단순한 약골이 아니라, 적들의 목줄을 정확히 짚어내는 무서운 괴물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우위는 완전히 소하에게로 넘어왔다.
“너…… 그걸 어떻게 알았지?”
“알 필요 없다. 정보를 내놔라, 풍개.”
풍개는 마른침을 삼키며 탁자 위의 은자 주머니를 신속하게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서랍 깊숙한 곳에서 먼지 낀 비밀 수첩과 양질의 한지를 꺼내 글을 적기 시작했다.
“사웅의 무공은 철도벽력참(鐵刀霹靂斬)이다. 백 근 무게의 무쇠 대도와 가시 철퇴를 동시에 휘두르지. 그의 공격은 직선적이고 파괴력이 압도적이지만, 오른쪽 어깨 기혈이 막혀 있어 공격을 시작할 때 우측 하단에 미세한 사각지대가 생긴다. 성격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고 무식하게 포악해서, 제 무공을 비웃거나 권위를 건드리면 이성을 잃고 전력으로 상대를 죽이려 들지.”
풍개는 붓을 멈추고 소하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네가 말한 밀거래 장부 말인데…… 사실 사웅이 직접 작성한 불법 무기 밀거래 문서 사본이 내 수첩에 기록되어 있다. 청낭방의 독수 뇌진에게 보낸 서신 사본이지. 이걸 보여주면 사웅은 널 살려두지 않을 거다. 진짜로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냐?”
소하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올라갔다. 창백한 뺨에 붉은 핏기가 미세하게 돌았다. 생존에 대한 광기 어린 집착이 그의 눈동자 속에서 푸른 불꽃으로 타올랐다.
“그 장부 사본을 이 한지에 그대로 필사해라. 사웅을 내 앞으로 완벽하게 끌어내 줄 가장 치명적인 미끼가 될 테니까.”
풍개는 소하의 광기 어린 눈빛에 압도되어 말없이 붓을 움직였다. 잠시 후, 사웅의 붉은 낙인까지 정교하게 위조된 불법 밀거래 장부 문서가 완성되었다.
소하는 완성된 문서를 손에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심장 주변에서 마지막 삼도은침이 다시 한번 날카로운 진동을 울렸다. 마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경고하는 비명 같았다.
“오가, 너는 여기서 대기해라.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네 해독제는 영원히 구할 수 없을 거다.”
“도, 도련님! 진짜로 철도방 본타로 가시려는 겁니까? 거긴 수백 명의 도끼 무사들이 상주하는 지옥입니다!”
오가가 바닥에 엎드리며 애원했지만, 소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청풍서점을 빠져나왔다.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어두컴컴했고, 강남성의 거리는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다. 소하는 품속에 사웅의 명줄을 쥘 밀거래 장부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의 손가락 끝은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머릿속은 사웅이 내지를 철퇴의 궤적을 소수점 단위로 계산하며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터벅, 터벅.
창백한 소년의 가녀린 그림자가 강남성 외곽에 위치한 거대하고 음침한 목조 요새, 철도방 본타의 철문을 향해 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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