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묘지의 유골 비록
오른쪽 가슴을 짓누르는 한빙 석판(한빙 석판)의 냉기는 매서웠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포 깊숙한 곳에서부터 서리가 서리는 감각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그와 정반대로, 왼쪽 전신을 지배하는 구양진액(九陽津液)의 열독은 용암처럼 끓어오르며 살을 태우려 했다. 푸르고 붉은 핏줄이 기괴하게 뒤엉킨 상반신은 그 자체로 시한폭탄과 같았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심장을 경계로 대치하는 기태적인 상태, 바로 역천의 평형(逆天平衡)이었다.
“콜록!”
소하가 낮게 기침을 뱉자, 입술 사이로 자잘한 얼음 조각이 섞인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수명은 약 구십 일 남짓으로 늘어났으나, 가슴에 밀착된 석판의 한독이 모세혈관을 얼려가고 있었다. 이 기괴한 대치 상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면, 사혈이 열리기도 전에 심장이 먼저 얼어붙어 죽을 터였다.
‘두 번째 사혈, 은백혈(隱白穴)을 개방해야 한다.’
은백혈은 엄지발가락 끝에 위치한 생사의 요처. 하지만 단전의 1차 폭주를 겪으며 뒤틀린 경맥 상태에서 무턱대고 침을 찔렀다가는 전신의 뼈와 관절이 스스로 으스러져 즉사할 터였다. 뼈의 뒤틀림을 최소화하며 사혈을 열 정밀한 각도와 공식을 얻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남성 외곽의 음침한 공동묘지, 백골총(백골총) 지하에 묻힌 전대 천재 의원의 유골 비록이 필요했다.
소하는 동굴 안쪽에서 지쳐 잠든 소란과 허팽의 호흡 소리를 들으며 청낭포(靑囊袍)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찢어진 틈새를 소란이 정성껏 기워준 푸른 도포가 차가운 새벽바람에 펄럭였다. 소하는 조용히 동굴을 빠져나와, 미리 접촉해 두었던 도굴꾼 묘공(廟空)과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
강남성 외곽, 안개가 축축하게 내려앉은 황량한 언덕배기에 백골총이 있었다. 수천 명의 무명 무인들이 한데 뒤엉켜 묻힌 공동묘지. 사방에 널린 썩은 널빤지와 부서진 비석들이 자아내는 음산함은 밤안개 속에서 더욱 기괴하게 일렁였다.
“희희, 제시간에 맞춰 왔군, 꼬마 의원.”
흙먼지가 가득 묻은 가죽 장포를 걸친 마른 노인이 어둠 속에서 슥 튀어나왔다. 쥐를 닮은 음침한 상판에, 손톱 끝이 까맣고 예리하게 갈라진 사내. 백골총의 지형과 고대 유골의 경맥 변형을 꿰뚫고 있는 늙은 도굴꾼 묘공이었다. 그의 손에는 묵직한 청동 자(靑銅 尺)가 들려 있었다.
“약속한 물건은 지하 깊은 곳에 있나?”
소하의 차가운 목소리에 묘공은 기괴한 웃음을 흘렸다.
“내 평생 수많은 무덤을 파헤쳤지만, 그 전대 천재 의원의 무덤만큼 기이한 곳은 없었지. 뼈마디가 완전히 뒤틀린 채 죽은 유골 옆에 기이한 침술 책자가 놓여 있더군. 하지만 그곳은 강시독(殭屍毒)과 해괴한 기관 장치들로 가득해 나조차도 더 깊이 들어가진 못했어. 네놈이 지닌 침술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묘공은 청동 자로 지면의 방위를 정밀하게 측정하더니, 썩은 흙더미와 잡초로 가려진 구덩이 안쪽을 가리켰다. 미로처럼 얽힌 흙구덩이 아래로 음습한 바람이 불어 나오고 있었다.
소하와 묘공은 좁고 축축한 흙구덩이를 기어 지하 무덤 내부로 진입했다. 사방에서 썩은 백골들이 부서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고, 공기는 시체 썩는 비린내로 가득했다. 뼛속까지 시리는 한기가 소하의 오른쪽 가슴을 자극해 한빙 석판이 파르르 떨렸다.
“희희, 다 왔군. 저 돌문 너머가 바로 그 천재 의원의 안식처라네.”
묘공이 청동 자의 끝으로 썩은 흙더미 속에서 고대 무덤의 비밀 석문을 발견하고 가리켰다. 석문 표면에는 기경팔맥의 흐름을 본뜬 기이한 문양들이 음각되어 있었다.
“비켜라.”
소하가 나직하게 말하며 석문 앞으로 다가갔다. 묘공이 청동 자를 틈새에 끼워 넣고 힘을 주자,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석문이 서서히 열렸다.
스우우우!
석문이 열림과 동시에, 무덤 내부에 갇혀 있던 지독한 녹색의 강시독 가스가 수풀 밖으로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공기 중에 닿는 순간 주변의 잡초들이 순식간에 검게 부식되어 녹아내리는 치명적인 독기였다.
“커흑! 독 가스다!”
묘공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소하는 당황하지 않고 청낭포 자락을 들어 코와 입을 완벽하게 가렸다. 특수 미세 섬유와 한방 약재로 짜인 도포가 독기를 일차적으로 걸러냈다. 하지만 미세하게 스며드는 독기가 전신의 기혈을 옥죄어 오자, 소하는 소매 속에서 작은 종이 쌈지를 꺼냈다. 서역에서 공수해 온 희귀 마취 분말, 천마가루(天麻가루)였다.
소하는 천마가루 한 꼬집을 혀밑에 털어 넣었다.
싸한 한기와 함께 전신의 중추신경이 순식간에 마비되며 고통과 감각이 차단되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가혹했다. 천마가루의 강한 마취 성분이 뇌 신경을 자극하자, 눈앞의 시야가 일시적으로 일렁이며 환각이 밀려왔다. 불타오르는 가문의 전경, 피를 흘리며 쓰러지던 어머니의 일그러진 얼굴이 어둠 속에서 조각조각 피어올랐다.
‘의식을 붙잡아라. 지금 흔들리면 즉사다.’
소하는 어금니를 깨물어 혀끝을 찔렀다. 비린 피 맛과 함께 환각을 억누르며 무덤 내부로 발을 디뎠다.
쿠구구구!
그때, 무덤 중앙에 서 있던 고대 무덤 수호석상(守護石像)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석상의 눈 부분에서 기공의 푸른 빛이 일렁이더니, 전신에 장치된 기계 태엽이 맞물리며 은침 발사 기관 함정이 작동했다.
슈슈슈슈슉!
사방에서 수백 개의 강철 침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바람의 저항을 뚫고 날아오는 침들의 궤적은 정교한 살상 진법을 형성하고 있었다.
“희희! 꼬마야! 피해라!”
묘공이 바위 뒤로 몸을 숨기며 소리쳤다.
하지만 소하는 눈을 감았다. 시각을 차단하자 천마가루의 환각 속에서도 심안(心眼)의 감각이 극대화되었다. 날아오는 강철 침들의 바람 진동 소리가 고막을 타고 뇌리에 정밀하게 그려졌다.
소하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허리춤에서 녹슨 청동 침통(녹슨 청동 침통)을 열고 자성 은침(자성 은침) 세 자루를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이 기관 장치는 고대 의가 종사들이 설계한 것. 그렇다면 물리적인 파괴가 아닌, 기혈의 흐름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동력을 차단해야 했다. 동인 혈도 인형(동인 혈도 인형)의 자성 원리를 응용한 기공 중심 혈도의 폐쇄였다.
소하는 탄지기침(彈指氣針)을 시전해 세 자루의 은침을 수호석상의 관절 틈새로 날렸다.
핀, 핀, 핀!
정교하게 날아간 은침들이 석상 내부의 기공이 흐르는 중심 혈도이자 동력 축인 나사 홈에 정확히 박혔다. 은침에 실린 미세한 자성이 태엽의 철력을 끌어당겨 톱니바퀴의 회전을 강제로 묶어버렸다. 끼이이익- 하는 귀를 찢는 마찰음과 함께 수호석상이 완벽하게 동작을 멈췄다.
“이, 이게 무슨…… 침술로 기계를 멈췄다고?”
묘공이 바위 뒤에서 기어 나오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소하는 대답하지 않고 석상 너머의 중앙 석실로 걸어갔다. 천마가루의 마비 기운 때문에 다리가 무거웠다. 그 순간, 바닥에 깔린 썩은 널빤지를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밟았다.
빠드득!
“크윽.”
썩은 나무가 부서지며 소하의 왼쪽 발목이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발목 뼈가 탈구되는 가벼운 관절 부상이었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겠지만, 천마가루의 마취 효과 덕분에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소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뻗어 탈구된 발목 뼈를 우직하게 잡아당겨 ‘툭’ 소리와 함께 제자리로 맞춰 넣었다. 뼈마디가 맞물리는 둔탁한 소리가 어두운 석실에 울려 퍼졌다.
소하는 절뚝거리며 석실 중앙의 석관 앞으로 다가갔다. 석관 뚜껑은 이미 반쯤 열려 있었고, 그 내부에는 백골이 된 전대 천재 의원의 유골이 누워 있었다.
백골의 형태는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척추는 나선형으로 꼬여 있었고, 갈비뼈들은 안쪽으로 무너져 내려 심장을 찌르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 사혈인 은백혈을 개방하려다 뼈가 뒤틀려 자멸한 흔적이었다. 소하는 백골의 뒤틀린 관절 마디마디를 손끝으로 더듬어 나갔다. 묘공이 전수한 골격 제어의 지식이 소하의 머릿속에서 삼차원 삼차원 구조로 재구성되었다.
‘이자는 침을 찌를 때 족궐음간경의 흐름을 계산하지 못했어. 그래서 뼈의 장력이 안쪽으로 몰려 무너진 것이다.’
유골의 앙상한 손가락뼈 사이에 낡은 비단 두루마리가 쥐여 있었다. 소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수습했다. 먼지를 털어내자 빛바랜 글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천침보(逆天針報).
사혈 개방 시 뼈와 관절의 마찰을 줄이고, 뒤틀리는 기혈의 방향을 정방향으로 정렬해 주는 전대의 비전 침구 구결이었다.
소하는 품속에서 동인 혈도 인형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역천침보에 적힌 구결을 인형의 엄지발가락 부근, 은백혈의 좌표에 대조하기 시작했다. 침을 찔러야 할 정밀한 각도와 깊이, 그리고 뼈의 저항을 흘려보낼 부채꼴 모양의 삼침(三針) 배치 공식이 소하의 뇌리에 완벽하게 계산되어 안착했다.
“희희, 기어코 찾아냈군 그래. 이제 그 무서운 침술을 완성할 수 있겠나?”
묘공이 침을 흘리며 다가왔다.
그러나 소하가 역천침보를 수습해 동인 혈도 인형에 연습을 시작하는 순간, 백골총 지하의 어둠 속에서 뇌진이 보낸 또 다른 낭인 살수의 살기가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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