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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끝의 피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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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의 거친 물살이 남긴 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밤이었다.


진소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낡은 짚더미가 깔린 오두막의 천장이 흔들리고 있었다. 틈새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는 소금기와 썩은 갯벌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귓가에는 잔잔한 파도 소리와 멀리서 울리는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강남성 외곽의 가난하고 조용한 어촌 마을, 파릉현(巴陵縣)이었다.


“……으극.”


몸을 움직이려 하자마자 전신의 뼈마디가 비명을 질렀다. 장강 깊은 물속에서 Gwisal의 붉은 도강(刀罡)에 정면으로 얻어맞았던 가슴뼈가 삐걱거렸고, 뼛속 깊숙이 침착된 장강의 지독한 한독(寒毒)이 온몸의 신경을 얼려버릴 듯 날카로운 통증을 유발했다. 기경역맥(起經逆脈)의 저주받은 체질에 스며든 한기는 단순한 통증을 넘어 전신의 관절을 석고처럼 굳히고 있었다.


“소하야! 움직이지 마!”


화들짝 놀란 목소리와 함께 소란(小蘭)이 다가와 소하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눌렀다. 그녀의 얼굴은 아궁이 연기에 그을려 거뭇했고, 손끝은 온통 약재를 다듬느라 푸르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소란의 무릎 위에는 찢어지고 해진 푸른색 도포, 청낭포(靑囊袍)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소하가 의식을 잃은 동안 거친 수중 전투로 갈가리 찢겼던 청낭포의 미세 섬유를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기워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팽이는…… 어찌 되었느냐.”


소하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목구멍이 바싹 타들어 가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긁혀 나왔다.


“허팽은 저쪽 방에서 잠들어 있어. 백혈청안단의 독기 때문에 아직 관절이 뻣뻣하긴 하지만, 네가 놓아준 침 덕분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대. 백발어옹 영감님이 생선 죽을 끓여다 먹여서 지금은 곤히 자고 있어.”


소란은 떨리는 손으로 소하의 이마를 짚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이마와 달리, 소하의 단전 부근에서는 기이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최악의 상태였다.


강물 속에서 흡수했던 차가운 한독(寒毒)이 전신 경맥을 장악하고 있는 와중에, 단전 깊은 곳에 갇혀 있던 구양진액(九陽津液)이 그에 반발하여 폭발적인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뜨거운 열독과 차가운 한독이 경맥 내부에서 정면으로 충돌하며 쩌적 소리를 내며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사혈이 열리기도 전에 몸 안쪽에서부터 터져 나갈 터였다.


‘기공을 순행시켜 열독을 억누른다.’


소하는 이를 악물고 단전의 기운을 끌어올려 뒤틀린 기혈을 바로잡으려 했다. 무인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운기조식의 시도였다.


그러나 그 순간, 단전이 미친 듯이 팽창하며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크아아악!”


소하의 입에서 처절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스스로 내공을 연마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구양역맥의 저주받은 기전이 멋대로 폭주하여, 역류한 진기가 가슴의 뼈마디를 안쪽에서부터 사정없이 때려 부쉈다. 붉은 황금빛의 열기가 전신 피부 위로 혈관을 뱀처럼 솟구치게 만들었다. 자가 운기조식은 오히려 독이었다.


“안 돼! 소하야, 제발 기운을 쓰지 마! 네 몸은 스스로 내공을 돌리면 돌릴수록 단전이 터지게 되어 있단 말이야!”


소란이 울부짖으며 아궁이 옆에서 펄펄 끓고 있던 약탕기를 들고 왔다. 가마솥 가득 달여낸 한천초(寒天草) 약탕이었다. 망우곡 절벽 틈새에서 채취해 보관해 두었던 마지막 한천초 줄기들을 모두 털어 넣고 달인 극음(極陰)의 보명 약탕이었다.


소란은 뜨거운 약탕 대접을 입술이 데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하의 입가로 가져갔다.


“어서 마셔, 제발!”


소하는 소란의 손을 붙잡고 약탕을 들이켰다. 뼛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차가운 냉기가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 단전으로 직행했다. 치이이익, 하는 기이한 기화음이 몸속에서 들리는 듯했다. 한천초의 극음 냉기가 단전 내부에서 날뛰던 구양진액의 뜨거운 순양 열독을 일시적으로 얼려 누르기 시작했다.


팽창하던 단전이 서서히 가라앉고, 요동치던 기혈이 임시방편으로 안정되었다. 피부 위로 돋아났던 기괴한 핏줄들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소하는 거친 숨을 내쉬며 오두막 벽에 기대어 앉았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간신히 막았군.”


소하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가슴을 짚었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두 번째 사혈인 은백혈(隱白穴)을 제때 개방하지 못해 단전의 봉인막이 스스로 부풀어 오르는 물리적인 압박은 여전했다. 한천초로 열기를 얼려두는 것은 고작 수십 시간 동안 폭발을 유예하는 것일 뿐, 시간은 끊임없이 소하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수명은 이제 겨우 구십 일 남짓.


그때였다.


두근. 두근. 두근.


소하의 심장 깊은 곳에서 불길한 공명음이 울렸다. 스승 약선 갈홍이 심장 주변에 심어두었던 세 개의 보명 은침 중, 마지막 하나 남은 삼도은침(三道銀針)이 미세하게 떨리며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은침의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단전의 대폭주를 강제로 억제해 주던 마지막 은침마저 수명의 한계에 도달해가고 있었다.


“크윽……!”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에 소하의 신형이 다시 한번 꺾였다.


‘이대로 누워 있을 수는 없다. 심맥을 강제로 묶어 폭주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소하는 떨리는 오른손을 뻗어 허리춤의 녹슨 청동 침통을 열었다. 손가락 끝의 모세혈관이 파열되어 검붉은 멍이 든 손 끝이 은침을 쥘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으나, 소하는 이빨을 악물며 자성 은침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소하는 거울도 보지 않은 채 자신의 심장 주변의 보조 혈도 네 곳을 정밀하게 찔러 넣었다.


심맥 봉쇄(心脈 封鎖).


내공의 역류를 방지하고 생명 활동을 임시로 최소화하는 응급 비술이 시전되었다. 심장을 조여오던 폭발적인 고열의 흐름이 일시적으로 차단되며 맥박이 극도로 고요해졌다. 그러나 시전 후 24시간 동안 전신의 내공 사용이 완벽하게 금지되는 치명적인 대가가 뒤따랐다. 이제 소하는 일류 무사의 가벼운 타격 한 번에도 즉사할 수 있는 극도로 취약한 상태가 되었다.


소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찢어진 청낭포 자락을 여몄다.


이 가난하고 평화로운 어촌 마을 파릉현의 어부들은 대역죄인 수배범인 자신들을 외면하지 않고 따뜻한 죽을 대접해 주었다. 세상의 모든 무인과 관부를 불신하며 냉소적으로 살아온 소하였지만, 이 소박한 민초들의 따뜻한 호의만큼은 그의 차가운 마음속 깊은 곳에 인간성의 온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이곳에 화를 미치게 할 수는 없었다.


“소하야…….”


소란이 바느질하던 청낭포를 내려놓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소하의 허파 깊은 곳에서 거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쿨럭! 쿨럭……!”


소하가 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으나, 손가락 틈새로 검붉은 선혈이 울컥 뿜어져 나왔다. 피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것은 놀랍게도 하얀 서리꽃 같은 얼음 파편들이었다. 전신 경맥에 침착된 한독이 심장 주변의 열독과 반응하여 기혈을 파괴하고 있었다.


“소하야! 피, 피가……!”


소란이 대접을 떨어뜨리며 비명을 질렀다. 바닥에 떨어진 사기대접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났고, 흩어진 한천초 약탕 위로 소하의 검붉은 피가 번져 나갔다.


소란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하의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소하의 심장 박동은 마치 꺼져가는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심장 주변에 박힌 마지막 삼도은침의 끝자락이 살갗을 뚫고 나올 듯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 삼도은침의 보명 수명이 완전히 끝나가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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