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양쯔강의 혈로
지하 감옥의 비상 경보음이 고막을 찢어발길 듯 울려 퍼졌다. 혜민원의 석조 벽면을 타고 진동하는 경보의 파동은 소하의 발밑에서부터 기분 나쁘게 전해져 왔다. 장부를 품속 깊이 밀어 넣은 진소하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스, 스승님……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이미 분타 전체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쇠사슬에서 풀려난 허팽이 비틀거리며 소하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백혈청안단의 독기에 노출되어 전신의 관절이 석고처럼 굳어가는 상태였기에, 소년의 호흡은 거칠었고 입술은 푸르게 질려 있었다.
“입을 다물고 기운을 보존해라. 네놈을 업고 갈 힘은 없다.”
소하는 냉혹하게 쏘아붙였지만, 이미 그의 손은 허팽의 겨드랑이를 단단히 부축하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에 정예 간수들을 침묵시키느라 양손 끝의 모세혈관이 파열된 상태였다. 손톱 밑으로 배어 나온 선혈이 검붉은 멍으로 변해 손가락 마디마디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은침을 쥘 때마다 뼛속을 찌르는 통증이 밀려왔으나, 소하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지하 통로의 음지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분타의 지하 하수도는 삼라파의 행동대장 마칠이 일러준 대로 어둡고 축축했다. 악취가 코를 찔렀지만, 소하는 청낭포의 후드를 깊게 눌러쓴 채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허벅지에 남아 있는 가시독의 마비 증상과 뺨의 미세한 자상이 걸음마다 무거운 족쇄가 되었으나, 심장 주변의 마지막 삼도은침이 내뿜는 미세한 진동이 그의 생존 의지를 사정없이 채찍질했다. 수명은 이제 겨우 구십 일 남짓.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지하 수로의 끝자락, 강남성 외곽의 양쯔강 나루터로 이어지는 비밀 배수구에 도달했을 때, 자욱한 안개 속에서 한 사내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구나, 소년 의원.”
구리빛 피부에 깊은 주름, 낡은 대나무 삿갓을 깊게 눌러쓴 늙은 어부, 백발어옹(白발어옹)이었다. 그의 곁에는 약초꾼 소녀 소란이 불안한 눈빛으로 마른침을 삼키며 소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하야! 무사했구나…… 허팽도!”
“소란, 쓸데없는 소리는 접어두어라. 어옹, 배는 준비되었는가?”
소하의 차가운 어조에 백발어옹은 허허롭게 웃으며 턱짓으로 강가에 대어 둔 낡은 고깃배를 가리켰다.
“이 안개라면 관군의 눈을 피해 강을 건너기엔 안성맞춤이지. 하지만 서둘러야 할 게야. 강바람을 타고 피비린내가 짙어지고 있으니.”
일행이 신속하게 배에 오르자, 백발어옹은 노를 젓기 시작했다. 장강의 거대한 물줄기 위로 짙은 안개가 장막처럼 내려앉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몽환적인 풍경이었지만, 소하의 청맥심술(聽脈心術)은 이미 물결의 비정상적인 진동을 포착하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안개 너머, 수십 척의 배가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규칙적인 노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그 소리는 군대식 진법의 질서를 띠고 있었다.
“어옹, 노를 멈추어라. 이미 포위당했다.”
소하의 나직한 경고가 떨어짐과 동시에, 자욱한 안개 속에서 거대한 붉은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철갑을 두르고 얼굴 전체를 가린 투구를 쓴 무사들이 탄 수십 척의 수상 순찰선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거대 전선의 갑판 위에는 피비린내를 풍기는 거구의 사내가 서 있었다.
황실 태의원에서 파견한 최정예 처형 집행관, 귀살(鬼殺)이었다.
“진소하. 대역죄인이자 혜민원 파괴범놈. 태의령 조충헌 님의 명에 따라 네놈의 목을 베어 압송하겠다.”
귀살의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차가웠고, 그의 손에는 피를 머금은 거대한 귀두도(鬼頭刀)가 들려 있었다.
“흥, 황실의 개들이 냄새를 잘도 맡는군.”
소하가 냉소하며 청동 침통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의 파열된 상처가 욱신거렸으나, 단전 내부의 구양진액이 분노에 반응하여 뜨겁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 처형하라!”
귀살이 귀두도를 허공으로 치켜들자, 순찰선에서 일제히 쇠뇌 화살 비가 쏟아졌다. 슈슈슈슉! 자욱한 안개를 뚫고 날아오는 수백 발의 화살이 소하 일행의 목숨을 노렸다.
“이 아래로!”
백발어옹이 거친 동작으로 고깃배 갑판의 비밀 판자를 밀어젖혔다. 그 아래에는 물속에서도 젖지 않도록 설계된 밀폐된 수중 격실이 숨겨져 있었다. 소하는 허팽과 소란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주저 없이 그 좁은 격실 속으로 밀어 넣었다.
“어옹, 이들을 부탁한다.”
“소년, 너는 어쩌려고!”
“나는 강물 속이 더 편하다.”
소하가 차갑게 중얼거리며 배가 완전히 쪼개지기 직전 강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쿠우웅-!
귀살이 휘두른 귀두도에서 뿜어져 나온 서슬 퍼런 붉은 도강(刀罡)이 백발어옹의 고깃배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굉음과 함께 목조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소하의 신형은 차갑고 어두운 양쯔강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훠어어억-
귀를 찢는 수압과 함께 뼛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장강의 한기가 소하의 전신을 덮쳤다. 이미 한독과 열독의 불균형으로 무너져가던 그의 경맥이 차가운 물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허파가 쪼그라들고 숨이 턱 막히는 고통이 밀려왔다.
‘지금 숨을 멈추지 않으면 폐가 터진다.’
소하는 침착하게 자신의 귀밑 기혈 두 곳에 정밀하게 자성 은침을 꽂았다.
수중 호흡구결(水中 呼吸口訣).
도가의 비전 호흡법이 활성화되며 허파의 산소 소모가 최소한으로 줄어들었다. 맥박이 극도로 느려지며 체온이 주변 수온과 일치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소하는 수중 은형술(水中 隱形術)을 전개했다. 강물 속의 흐름과 자신의 기척을 완벽하게 동조시키자, 물 위에서 비치던 횃불의 불빛조차 그의 위치를 포착하지 못했다.
수면 위에서 첨벙이는 소리가 들렸다. 귀살의 명령을 받은 벽혈위 정예 살수 수십 명이 단검을 입에 물고 강물 속으로 뛰어든 것이었다. 그들은 수중용 창을 쥐고 물속을 헤집으며 소하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
소하는 물속에서 눈을 떴다. 자욱한 안개와 흙탕물 때문에 시야는 흐렸지만, 물결의 미세한 진동이 그의 피부에 닿아 살수들의 위치를 삼차원 지도로 그려냈다.
‘첫 번째.’
소하는 물의 흐름을 타고 소리 없이 다가갔다. 손가락 끝에 자성 은침을 끼우고 진기를 모았다. 이미 손끝의 모세혈관이 파열되어 침을 튕길 때마다 신경을 찢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으나, 소하는 이빨을 악물며 침을 튕겼다.
탄지기침(彈指氣針).
피식, 하는 미세한 기포 소리와 함께 날아간 은침이 첫 번째 살수의 발목 대돈혈(大敦穴)을 정확히 관통했다. 수중에서의 수압을 역용한 정밀한 침격이었다. 발목의 혈도가 막힌 살수는 순간적으로 다리 근육이 경직되며 비명을 지르려 입을 벌렸고, 허파 가득 강물이 들이닥치며 소리 없이 심해로 가라앉았다.
‘두 번째, 세 번째.’
소하는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물속에서의 그의 신형은 마치 뼈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유연했다. 살수들이 물속을 향해 창을 찌를 때마다, 소하는 수류의 진동을 미리 읽고 깃털처럼 비켜섰다. 그리고 그들의 사각지대인 발목과 무릎 혈도에 가차 없이 은침을 꽂아 넣었다.
침에 맞은 살수들이 차례로 사지가 굳어 강물 속에서 버둥거리다 질식사했다. 붉은 선혈이 어두운 강물 속에서 먹물처럼 번져 나갔다.
그때였다. 수면 위에서 거대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처형 집행관 귀살이 물속의 핏자국을 발견하고 직접 강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서 서슬 퍼런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저놈의 목줄기를 끊어야 끝난다.’
소하는 물속에서 몸을 솟구치며 수면 부근에 대기 중이던 귀살을 향해 직접 은침 한 자루를 강력하게 튕겨냈다. 전신의 진기를 실은 일격이었다.
슈우욱!
은침이 수류를 가르며 귀살의 목덜미를 향해 고속으로 돌진했다. 그러나 귀살은 초일류의 고수였다. 수면을 뚫고 날아오는 미세한 은침의 파공음을 감지한 귀살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전신의 내력을 폭발시켰다.
귀살호체공(鬼殺護體功).
귀살의 전신을 감싸는 단단한 붉은색 호체강기가 물속으로 뿜어졌다. 소하가 날린 은침은 귀살의 목덜미에 닿기 직전, 단단한 기공의 장벽에 부딪혀 쩌적 소리를 내며 휘어진 채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내공의 질량이 너무 압도적이다…… 정면 침격은 통하지 않아.’
소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귀살은 튕겨 나간 은침의 궤적을 역추적하여 소하의 위치를 완벽하게 포착했다.
“쥐새끼가 여기 숨어 있었구나.”
귀살이 물속을 향해 귀두도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붉은 처형 검강이 수압을 찢어발기며 소하의 심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떨어졌다. 그 파괴적인 기세는 강물 자체를 반으로 갈라버릴 듯 무시무시했다.
소하는 급히 골격 이탈술을 시전하여 어깨뼈를 탈구시키며 궤적을 피하려 했으나, 검강이 내뿜는 강력한 수압의 충격파가 그의 가슴을 직격했다.
쿵-!
가슴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충격과 함께 소하의 입에서 거품과 함께 붉은 선혈이 울컥 뿜어져 나왔다. 단전 내부의 구양진액이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뒤틀렸고, 차가운 강물이 그의 허파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기 시작했다. 전신의 경맥에 얼어붙는 듯한 극심한 한독(寒毒)이 새겨지며 소하의 신형이 무력하게 강물 깊은 곳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의식이 흐려졌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고, 심장 주변의 마지막 삼도은침마저 차갑게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수면 위에서는 남은 살수들이 창을 치켜들고 소하의 숨통을 끊기 위해 물속 깊이 잠입해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서…… 끝인가.’
소하가 스스로 죽음의 심연으로 침잠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둡고 탁한 장강의 밑바닥,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예기치 못한 검은 기류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스사사사사사학!
물속임에도 불구하고, 빛조차 삼켜버릴 듯한 압도적인 검은색 검강(劍罡)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다. 그 검강은 물의 저항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키며 소하를 향해 좁혀오던 살수들의 목을 단숨에 베어버렸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며 살수들의 사지가 물속에서 분해되었다.
소하의 흐려지는 시야 속으로, 검은 장포를 휘날리며 조잡한 철가면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사내가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날이 검은 묵철검(墨鐵劍)이 쥐여 있었고, 검신에서는 서슬 퍼런 무영검강이 물속을 밝히고 있었다.
철면객(鐵面客)이었다.
철면객은 가라앉는 소하의 허리를 왼팔로 단단히 감싸 안으며, 묵철검을 수면을 향해 치켜들었다. 그의 철가면 너머로 빛나는 차갑고 예리한 안광이 소하의 심장에 박힌 마지막 보명 패를 응시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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