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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 뒤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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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는 사정없이 어깨의 찢어진 살점을 때렸다. 약방 마당에서 담벼락을 넘어 산길로 접어든 엽무강은 오른다리를 진흙탕 속에 질질 끌며 어둠 속을 달렸다.


지독한 고통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뇌수를 헤집었다. 벽을 딛고 허공을 날아오르던 ‘벽 짚고 튀기’ 신법과 공기의 저항을 지워버리는 ‘묵흔도’ 참격을 억지로 쏟아낸 대가는 처참했다. 오른쪽 무릎 관절을 단단히 고정하고 있던 쇠가죽 압박대의 강철 침이 살을 파고들어 뼈마디가 어긋나는 소리가 뚝, 뚝 하며 어둠 속에 울렸다. 어깨의 검창에서는 뜨거운 선혈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도포를 적셨다.


하지만 무강의 눈빛은 밤안개 속에서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지금 고통에 굴복해 쓰러진다면, 약방에 홀로 남겨진 연희도, 그리고 자신도 개죽음을 면치 못한다. 연희의 눈동자에 서렸던 그 지독한 의심의 불씨가 떠올랐으나, 지금은 그것을 곱씹을 여유조차 없었다.


‘동이 트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 한구의 눈을 속여야 해.’


무강은 이빨을 악물고 묵혼심법의 묵기(Silent Qi)를 운기했다. 단전이 깨져 기맥이 꼬여버린 몸이었지만, 뼈 속 깊은 골수에 침잠해 있던 차가운 기운을 강제로 끌어올려 상처 주변의 혈도를 짓눌렀다. 쏟아지는 폭우가 피비린내를 씻어내고 발자국을 지워주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가까스로 무경도문 산문 입구에 도착했을 때, 사방은 푸르스름한 새벽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문지기 초소 앞 평상에는 감시꾼 한구가 술병을 쥔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폭우 소리에 취기까지 겹쳐 놈의 감각은 완전히 둔해져 있었다.


무강은 소리 없는 그림자가 되어 초소 뒷벽의 썩은 목판 틈새를 뜯어내고 내부로 기어 들어갔다. 빗물에 젖은 야행복과 귀면 가면에 묻은 피를 화골수로 녹여 흔적을 완전히 지운 뒤, 바닥 목판 아래 깊숙이 숨겼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품속에서 연희가 은밀히 챙겨주었던 약재 ‘골쇄초’를 꺼냈다. 거친 손길로 약초를 짓이겨 어깨의 검창과 재파열된 무릎 관절에 사정없이 발라 넣었다. 뼈마디 사이에 차가운 골기가 형성되며 타들어 가던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무강은 그 위에 진흙과 나무껍질을 굳혀 만든 가짜 다리 깁스를 다시 단단히 고정하고, 낡은 이불을 뒤집어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거친 군화 발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절름발이! 살아 있냐?”


한구가 초소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무강은 눈을 반쯤 감은 채 침을 흘리며 바보 같은 ‘멍청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헤헤, 사형님…… 천둥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한숨도 못 잤습니다요, 헤헤.”


한구는 초소 내부에 진동하는 약초 향과 땀내에 코를 찌푸리며 침을 뱉었다.


“더러운 새끼, 약초 썩는 냄새는 왜 이리 풍기는 거야? 사공표 대장님이 밟아놓은 다리가 곪아 터지기라도 한 모양이군. 뒈지려면 밖에서 뒈져라.”


문이 쾅 닫히고 한구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무강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고요하게 풀려 있던 그의 동공에 서슬 퍼런 살기가 다시 서렸다. 위기는 넘겼으나, 진짜 광풍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아침이 밝아오자 문파 전체가 찌는 듯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벽류가의 거물 포주 황만두가 어젯밤 자신의 침실에서 소리 소문 없이 처단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사공표의 비자금 세탁 통로이자 핵심 동맹이었던 황만두의 죽음은 사공혁 파벌의 목줄기를 쥐어짜는 일격이었다.


“이 개새끼들! 문파 내부에 첩자가 있는 게 분명하다!”


쿠우웅!


문지기 초소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사공표가 들이닥쳤다. 붉은 순찰대장 복장을 한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공포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의 뒤에는 매서운 눈빛을 지닌 마른 체구의 사내가 그림자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사공혁이 직접 보낸 직속 밀정, 은표(은표)였다.


은표는 누더기 잡역부 옷을 걸치고 있었으나, 굳게 다문 입술과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 끝에서 고수의 기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류 하기의 무공을 지녔으나, 은형공과 정보 송신술에 특화된 극도로 위험한 밀정이었다.


“대장님, 소인이 이 초소 주변을 밀착 감시하겠습니다. 귀신 살수가 문파를 드나들었다면 반드시 이곳에 흔적이 남았을 것입니다.”


은표의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차가웠다.


사공표는 흙바닥에 엎드려 덜덜 떨고 있는 무강을 가죽 장화로 걷어찼다.


“이 쓸모없는 절름발이 놈도 믿을 수 없다. 은표, 네놈이 이 초소 뒤편 우물가에 상주하며 저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라. 밤마다 자리를 비우는지, 누구와 접촉하는지 단 한 톨의 숨소리까지 기록해라.”


“명령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은표의 매서운 시선이 무강의 부러진 다리와 어깨 상처 부위를 집요하게 훑었다. 무강은 바닥에 머리를 조아린 채 비굴하게 오열했다.


“아이고, 대장님! 소인은 아무것도 모릅니다요! 살려주십시오, 헤헤헤!”


사공표가 혀를 차며 떠난 뒤, 은표는 초소 뒤편 오래된 우물가 대나무 숲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놈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 올가미처럼 무강의 목을 죄어왔다.


낮 동안 무강은 평소와 다름없이 연무장 마당을 쓸었다. 하지만 은표의 시선은 한순간도 그의 등 뒤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은표는 무강이 빗자루를 쥐는 각도, 절뚝이는 걸음걸이의 박자, 심지어 호흡의 깊이까지 관찰하고 있었다.


무강은 철저하게 무공이 없는 비천한 잡역부의 움직임을 유지했다. 마당을 쓸면서 일부러 바닥의 돌가루와 먼지를 크게 일으키는 ‘빗자루 먼지뿌리기’를 시전해 은표의 시야를 방해하는 척 비굴하게 웃었다.


‘보통 첩자가 아니다. 기감이 예민해 미세한 살기조차 잡아내는 놈이야.’


우물가 대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나뭇잎 스치는 소리, 은표의 규칙적인 호흡 박자가 청이안 감각을 통해 무강의 머릿속에 입체적인 지도로 그려졌다. 놈은 품속에 전서구를 지니고 있었다. 무강의 수상한 거동이 단 한 번이라도 포착되는 순간, 전서구가 날아가 사공표에게 보고될 터였다.


이대로 밤을 맞이할 수는 없었다. 오늘 밤 은표를 소리 없이 제거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이중생활도, 연희의 안전도 끝장난다.


***


자시(子時)의 어둠이 깊어지자, 산문 주변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초소 내부에서 무강은 이불 속에 옷가지와 가짜 진흙 깁스 조각들을 겹쳐 놓아 사람이 누워 있는 형상을 정교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빗자루 자루 끝에 미세한 실을 연결해, 바람이 불 때마다 이불이 미세하게 들썩이며 규칙적인 가짜 코골이 소리가 나도록 기계 장치를 가동했다.


준비를 마친 무강은 초소 뒷벽의 비밀 목판을 열었다.


스으읍.


그는 숨구멍을 완전히 닫고 심장 박동을 분당 수 회 이하로 낮추는 귀식공을 전개했다. 전신의 체온이 식어 내리며 생명의 온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뼈 속 골수 깊은 곳에 묵기를 가라앉히자, 일류 고수조차 감지할 수 없는 완벽한 무(無)의 상태가 되었다.


무강은 바닥을 기어 대나무 숲 속으로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으스러진 무릎의 고통이 비명을 질렀으나, 그의 이성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은표는 우물가 낡은 돌담 뒤에 몸을 숨긴 채 초소 창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놈의 손에는 이미 사공표에게 보낼 보고서가 적힌 종이 조각이 쥐여 있었다.


스스스.


대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미세한 소리 속에서, 은표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초소 안에서 규칙적인 코골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온도 저하에 놈의 척추가 바짝 긴장했다.


은표는 영민한 첩자였다. 놈은 더 확인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품속에서 작은 대나무 통을 꺼냈다. 전서구 통통이(전서구)였다. 놈은 종이 조각을 전서구의 다리에 묶고 허공으로 날려 보내려 했다.


‘날아가게 둘 순 없다.’


대나무 숲 어둠 속에서 무강의 눈동자가 차갑게 번뜩였다. 오른다리를 쓸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는 무게중심을 왼발에 두고 상체를 비틀며 손가락 끝에 묵혼심법의 진기를 실었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튕겨 나갔다.


피빅!


빛을 반사하지 않는 검은 묵철 침(묵철 침) 한 자루가 밤공기를 소리 없이 가르며 날아갔다.


푸학!


은표의 손귀에서 날아오르려던 전서구의 가냘픈 목덜미를 묵철 침이 관통했다. 침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전서구를 쥐고 있던 은표의 검지손가락 마디를 그대로 꿰뚫어 뒤편 대나무 줄기에 깊숙이 박혔다.


“윽……!”


비명이 은표의 목구멍을 찢고 나오려는 찰나였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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