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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방의 피비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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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구멍이라도 난 듯 폭우가 쏟아지는 자시(子時)의 깊은 밤.


산 아래 가파른 비탈길 구석에 자리 잡은 혜민서 약방(혜민서 약방)은 거센 빗줄기와 밤안개에 휩싸여 형체조차 흐릿했다. 지붕 처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바닥의 진흙탕을 세차게 때리며 사방으로 흙탕물을 튕겨냈다. 약방 마당 구석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거친 사내들의 숨소리와 비열한 광소가 비바람 소리에 묻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이, 빨리 묶어! 황만두 형님이 마차를 대기시켜 놓으셨다. 날이 새기 전에 벽류가 기루로 넘겨야 해."


"이년이 겉보기와 달리 약초를 캐러 다녀서 그런지 몸집에 비해 악착같이 버티는군. 얌전히 굴지 못해!"


거친 가죽 무복을 입은 사공표 파벌의 하급 무사들이 가녀린 소녀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밧줄에 온몸이 단단히 묶인 채 진흙탕 바닥으로 쓰러진 소녀는 바로 연희였다. 그녀의 수수한 삼베 옷은 이미 차가운 빗물과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입에는 더러운 헝겊이 물려 있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읍읍거리는 신음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연희의 맑은 눈동자에는 지독한 공포와 함께 절망이 서려 있었다. 양아버지가 독살당하고 문파가 배신자들에게 도륙당하던 그 피비린내 나는 밤의 악몽이 다시금 그녀의 전신을 짓눌렀다. 사내들이 그녀를 밧줄로 묶어 포장마차 안으로 강제로 밀어 넣으려는 찰나였다.


쿠우우웅!


갑작스러운 바람의 흐름이 뒤틀리며, 약방 마당을 둘러싼 좁은 흙벽 위로 검은 그림자가 솟구쳐 올랐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번뜩이는 붉은 안광. 그것은 악귀의 얼굴이 그려진 차가운 쇠가죽 가면, 바로 귀면 가면(귀면 가면)이었다.


엽무강은 약방 흙벽 위에 내려앉아 어둠 속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오른쪽 무릎 관절은 한골고(한골고)의 약효가 급격히 연소되며 뼈마디가 타들어 가는 듯한 지독한 통증을 뿜어내고 있었다. 쇠가죽 압박대의 강철 침이 살 속 깊숙이 박혀 들어와 도포 안쪽으로 뜨거운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의 이성은 얼음처럼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오직 연희를 지키겠다는 피의 맹세만이 그의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누구냐!"


마차를 지키던 삼류 무사 하나가 위를 올려다보며 검을 뽑아 들려 했다.


그 순간, 엽무강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오른다리를 쓸 수 없는 기형적인 신체였지만, 그는 왼다리의 폭발적인 탄력과 상체의 유연성만을 이용해 좁은 약방 담벼락을 연속으로 딛고 날아오르는 벽 짚고 튀기(벽 짚고 튀기) 신법을 전개했다. 공중에서 몸을 기괴한 각도로 회전시키며 하강하는 그의 손끝에서 대나무 빗자루 자루가 가볍게 비틀렸다.


스스슥.


자루 속에서 뽑혀 나온 얇고 날카로운 묵철 칼날, 철척비(Iron Broom Blade)가 폭우를 갈랐다. 칼날이 공기를 가를 때 발생하는 바람 소리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무음의 참격, 묵흔도(Dark Trace Blade)가 어둠 속을 그었다.


서걱!


첫 번째 무사의 목덜미가 잘려 나갔다. 쇳소리도, 비명 소리도 없었다. 사내는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른 채 목에서 검은 피를 뿜으며 진흙탕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분출된 피는 사정없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씻겨 즉시 진흙 속으로 스며들었다.


"으, 으악! 귀신이다! 귀면 살수다!"


동료가 찰나에 목이 잘려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두 번째와 세 번째 무사가 경악하며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들의 검날이 빗방울을 반사하며 날카롭게 번뜩였다. 두 사내가 동시에 엽무강의 좌우 사각지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엽무강은 오른다리로 착지하는 순간, 뼈마디가 어긋나며 '뚝' 하는 지독한 골음과 함께 중심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찰나의 틈을 타 적들의 검날이 그의 어깨와 가슴을 향해 들이쳤다.


체중을 지탱할 수 없는 위기의 순간, 엽무강은 전신의 관절을 스스로 탈골시켜 충격을 흘려보내는 연골유신술(Soft Bone Flow)을 전개했다. 그의 어깨 관절과 척추가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두 무사의 칼날이 그의 살갗을 미세하게 스쳐 지나갔다. 검날을 아슬아슬하게 흘려보낸 엽무강은 몸이 비틀린 상태에서 손가락 끝을 강하게 튕겼다.


피빅! 피빅!


빛을 반사하지 않는 칠흑의 암기, 두 자루의 묵철 침(묵철 침)이 소리 없이 날아가 두 무사의 안구를 정확히 관통했다. 뇌 깊숙이 박힌 암기의 위력에 두 사내는 단 한 마디의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제자리에 굳어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순식간에 세 명의 동료를 잃은 납치조의 우두머리가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그는 바닥에 묶여 있던 연희를 거칠게 잡아끌며 그녀의 목덜미에 단도를 들이댔다.


"움직이지 마! 한 걸음만 더 움직이면 이 가시나의 목줄기를 따버리겠다!"


우두머리의 손이 덜덜 떨리며 연희의 하얀 목덜미에 붉은 핏자국이 미세하게 맺혔다. 폭우와 자욱한 밤안개 때문에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상황. 평범한 무인이라면 인질의 안전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하지만 엽무강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시각을 완전히 차단한 그의 뇌리에 주변 10장 이내의 모든 진동이 입체적인 지도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바람의 흐름과 빗방울이 사물의 표면에 부딪혀 튕겨 나가는 미세한 마찰음을 읽어내는 특수 감각, 청풍이청(Wind Hearing)의 경지였다.


투두둑, 투둑.


거센 빗방울이 우두머리의 떨리는 손목과 단도의 차가운 철 표면, 그리고 그의 가쁜 호흡으로 들썩이는 흉부에 부딪혀 발생하는 주파수가 엽무강의 귀에 서늘하게 꽂혔다. 적의 정확한 심장 위치와 칼날의 각도가 머릿속에서 붉은 선으로 이어졌다.


스슥.


엽무강은 망설임 없이 손목을 튕겨 철척비를 투척했다.


얇고 예리한 묵철 칼날이 빗줄기를 소리 없이 관통하며 어둠 속을 날아갔다. 우두머리가 단도를 내리치기도 전, 철척비의 예리한 칼끝이 그의 왼쪽 가슴팍을 정확히 관통했다.


푸학!


심장이 관통당한 사내는 눈을 부릅뜬 채 연희의 위로 쓰러졌다. 그의 등 뒤로 튀어나온 칼날 끝이 약방 마당의 낡은 나무 기둥에 깊숙이 박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우두머리의 시신이 진흙 바닥으로 힘없이 미끄러져 내렸다.


마당에는 오직 세찬 빗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가득했다. 네 명의 납치 무사들은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완벽하게 도살당했다.


엽무강은 절뚝거리며 다가와 연희를 묶고 있던 밧줄을 철척비의 잔날로 부드럽게 끊어냈다. 밧줄이 풀리고 입에 물려 있던 헝겊이 벗겨지자, 연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엎드렸다. 그녀는 공포와 안도감이 뒤섞인 눈물로 범벅이 된 채, 자신을 구해준 살수를 올려다보았다.


귀면 가면의 붉은 안광이 어둠 속에서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살수의 어깨에서는 적들의 검날에 스친 검창(검창) 때문에 붉은 피가 흘러내려 비에 씻기고 있었고, 그의 오른쪽 무릎은 부러진 뼈 조각들이 완전히 뒤틀려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여 있었다.


엽무강은 연희에게 어떠한 말도 건내지 않은 채, 깨진 철척비를 수습하여 자루 속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한 걸음을 내디뎠다.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뚝이며, 왼발에 무게중심을 두고 몸을 좌우로 크게 흔드는 그 기형적인 걸음걸이.


그것은 낮 동안 문파 산문 입구에서 매일 뺨을 맞으며 비굴하게 마당을 쓸던, 세상에서 가장 비천하고 무능한 그녀의 오라버니 '무강'의 뒷모습과 너무나도 똑같았다.


연희의 동공이 경악으로 크게 흔들렸다. 오라버니는 다리가 완전히 으스러진 불구자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떻게 이런 극강의 살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무학적인 모순과 지독한 의심이 그녀의 뇌리를 세차게 때렸다.


"오라버니……?"


연희가 빗소리를 뚫고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불렀다.


귀면 가면을 쓴 엽무강의 신형이 찰나의 순간 멈칫했다. 그러나 그는 대답 대신 차갑게 몸을 돌려 담벼락을 딛고 어둠 속으로 도약했다. 붉은 안광이 빗줄기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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