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간의 검은 약속
단도의 차가운 끝부분이 엽무강의 맨살에 닿는 순간, 연무장의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단 일 인치. 그 얇은 바지 천과 가짜 진흙 깁스의 틈새만 완전히 찢어발기면, 그 안쪽에 숨겨진 강철 침이 박힌 쇠가죽 압박대와 기형적으로 비틀린 진짜 무릎 관절이 사공표의 눈앞에 고스란히 드러날 판이었다. 그것은 곧 엽무강이 대낮에 펼쳐온 비굴한 절름발이 가면극의 종말이자, 전대 장문인의 비전 무공을 수련해 온 ‘귀신 살수’의 정체가 폭로됨을 의미했다.
사공표의 비열한 안광이 단도의 날을 타고 섬뜩하게 빛났다. 등 뒤에서 코를 킁킁거리며 독촉하는 한구의 숨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여기서 끝인가.’
엽무강은 차가운 석판 바닥에 뺨을 댄 채, 눈동자의 초점을 흐린 멍청이 미소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얼음처럼 차갑게 요동치고 있었다. 단전의 파편들을 척추 속 골수로 우회시켰던 묵혼심법(Mukhon Mind Method)의 진기가 그의 의지에 따라 급격하게 뒤틀렸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했다. 사공표를 이곳에서 베어버린다 해도, 대연무장을 포위한 수백 명의 배신자 무사들과 그 배후에 도사린 찬탈자 사공혁의 감시망을 뚫고 연희와 함께 살아남을 길은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제 살을 깎아 적을 속이는 자학적인 기만뿐이었다.
‘터져라.’
엽무강은 무릎 관절 주변의 기맥을 강제로 역류시켰다. 전날 밤 사공표에게 무자비하게 짓밟혀 뼈마디 사이에 고여 있던 썩은 핏주머니와, 한골고의 독한 약성이 엉겨 붙어 있던 내상 부위가 그의 미세한 내력 타격에 의해 내부에서 폭발했다.
퍼억!
기괴한 파열음과 함께, 사공표가 단도로 찢어발기던 깁스의 틈새에서 검붉은 피고름과 썩은 진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지독한 악취가 사방으로 진동했다.
“으악! 이 더러운 새끼가!”
사공표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질 듯 물러섰다. 놈의 은빛 단도와 가죽 장갑 위로 시커덓고 끈적이는 피고름이 잔뜩 묻어 있었다. 썩은 고기 썩는 냄새에 연무장에 모여 있던 무사들이 일제히 코를 쥐며 인상을 찌푸렸다.
“대, 대장님! 괜찮으십니까!”
한구가 황급히 품속에서 비단 수건을 꺼내 사공표의 손을 닦아내며 호들갑을 떨었다. 사공표는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침을 뱉으며 엽무강의 다리를 단도로 거칠게 내리쳤다. 퍽, 소리와 함께 단도가 진흙 깁스를 완전히 부수고 들어갔으나, 드러난 것은 이미 한독과 염증으로 시커덓게 죽어가는 끔찍한 맨살뿐이었다. 쇠가죽 압박대는 교묘하게 뼈 안쪽 사각지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젠장! 다리가 완전히 썩어 문드러진 폐물 놈이잖아! 한구, 이 쓸모없는 놈이 내 귀한 장갑을 더럽히게 만들어?”
“사, 사죄드립니다, 대장님! 저놈이 쓰레기장에서 너무 수상하게 굴기에 소인이 그만…….”
사공표는 피고름이 묻은 단도를 바닥에 팽개치고는 엽무강의 가슴을 군화 발로 사정없이 걷어찼다.
“퉤! 더러운 노예 새끼. 이딴 썩은 다리로 신법을 펼친다는 게 말이 되느냐? 밥벌레 같은 놈, 당장 내 눈앞에서 치워라!”
엽무강은 바닥을 구르며 피고름 섞인 침을 흘렸다. 입으로는 바보 같은 비명을 지르며 놋전 세 푼을 흙바닥에서 소중히 주워 품에 안았다.
“헤헤…… 소인의 다리…… 대장님이 고쳐주신 겁니까요? 헤헤헤…….”
그 처참하고 비굴한 몰골에 사공표는 고개를 돌렸고, 심문은 그렇게 종결되었다. 무사들은 엽무강을 개처럼 끌고 가 산문 구석의 진흙탕 속에 던져버렸다.
***
깊은 밤, 먹구름은 걷혔으나 대지에는 여전히 차가운 습기가 안개처럼 자욱했다.
무경도문의 한구석에 위치한 문파 마구간(문파 마구간). 가축들의 배설물 냄새와 축축한 짚단 냄새가 뒤섞인 어두운 마구간 뒤편에 엽무강은 홀로 웅크리고 있었다.
“으윽…….”
억눌린 신음이 그의 이빨 사이로 새어 나왔다. 사공표의 군화 발에 짓밟히고 단도에 찢긴 오른쪽 무릎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올라 있었다. 바지 안쪽의 쇠가죽 압박대의 강철 침이 뼈를 찔러 들어오는 고통은 한골고의 마비 약효가 떨어지자 뼈를 깎는 아픔으로 변해 전신을 엄습했다. 땀방울이 비 오듯 흘러내려 흙먼지 묻은 뺨을 적셨다.
사공표의 의심은 겨우 넘겼으나, 다리의 부상은 한계에 달해 있었다. 이대로 뼈가 어긋나 굳어버린다면 밤의 복수극은커녕 며칠 뒤에는 정말로 걷지도 못하는 진짜 불구가 될 터였다.
스스슥.
그때, 짚단이 쓸리는 미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일반 무인이라면 짐승의 움직임으로 치부했을 작은 기척이었으나, 청이안(Hearing-Eye)을 개방하고 있던 엽무강의 귀에는 그 발소리의 주인공이 품은 가쁜 호흡과 미세한 체온 변화까지 고스란히 감지되었다.
엽무강은 소리 없이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빗자루 자루 속에 숨겨둔 철척비(Iron Broom Blade)의 손잡이에 그의 손가락이 닿았다.
“……사형.”
안개를 헤치고 나타난 것은 작은 체구의 소년, 마구간 잡역부 소칠(소칠)이었다. 소칠의 얼굴은 어제 배무덕에게 맞은 상처로 엉망이었으나, 소년의 눈빛만큼은 낮의 연무장에서 보았던 그 기괴한 진동을 기억하듯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소칠은 엽무강의 앞에 도달하자마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차가운 진흙바닥 위에 무릎을 꿇었다.
“사형…… 아니, 소장주님.”
소년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으나, 그 안에는 꺾이지 않는 단단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소칠아, 무슨 헛소리냐. 바보 사형에게 왜 절을 하느냐? 어서 들어가 자거라.”
엽무강은 여전히 초점을 흐리며 멍청한 말투로 대꾸했다. 하지만 소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엽무강의 부러진 다리를 바라보았다.
“낮에 연무장에서 보았습니다. 사공표 대장이 사형의 다리를 짓밟을 때, 바닥 석판을 통해 전해지던 그 고요하고 차가운 진동을…… 저는 기억합니다. 어젯밤 배무덕이 사라지기 직전, 대나무 숲에서 느껴졌던 그 소리 없는 살기와 똑같은 기운이었습니다.”
소칠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사형이 고통을 참아내며 사공표를 올려다보던 그 찰나의 눈빛…… 그것은 바보의 눈빛이 아니었습니다. 과거 제 부모님을 구해주셨던 전대 장문인, 엽천웅 어르신의 그 고결하고 매서운 눈빛과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소년은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흐느꼈다.
“사공혁 일파는 제 부모님을 죽이고 저를 이 마구간에 가두어 짐승처럼 부렸습니다. 복수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힘이 없습니다. 소장주님, 제발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사형의 밤을 돕는 사냥개가 되겠습니다.”
마구간의 어둠 속에서 소년의 피 맺힌 애원이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
엽무강은 빗자루 자루를 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의 눈동자에서 비굴함과 총기 없음이 걷히고, 심연처럼 깊고 차가운 살기가 피어올랐다. 평범한 절름발이 문지기 ‘무강’은 사라지고, 밤의 사신 귀면도객의 위엄이 어둠 속에서 드러났다.
“복수라고 했느냐.”
엽무강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예, 소장주님. 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처단할 수만 있다면, 제 목숨 따위는 언제든 버릴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놈.”
엽무강이 차갑게 읊조렸다.
“복수의 길은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적의 목을 베기 전에 네 발바닥이 먼저 피투성이가 되고, 결국에는 영혼까지 타들어 가 한 줌의 재가 되는 지옥이다. 스스로 다리를 부러뜨리고 개처럼 기어 다니는 내 몰골을 보고도 그 길을 걷겠다고 하는 것이냐?”
“걷겠습니다. 개가 되든 귀신이 되든, 사공혁 일파의 목줄기를 끊을 수만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소칠의 눈빛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부모를 잃은 소년의 가슴속에 쌓인 원한은 이미 평범한 두려움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엽무강은 묵묵히 소년을 응시했다. 무경도문이 배신자들의 손에 넘어가고 충신들이 도륙당한 지금, 문파의 미래를 이어받을 새싹이 필요했다. 소칠의 눈빛에서 그는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좋다. 네 충성심과 복수심을 믿어보마. 하지만 기억해라. 단 한 번이라도 네 입에서 숨소리가 새어나가거나 정체가 탄로 난다면, 그날로 네 목은 내 손에 잘릴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엽무강은 손을 뻗어 소칠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손끝에서 차갑고 고요한 묵혼심법(Mukhon Mind Method)의 진기가 소칠의 경맥 속으로 부드럽게 흘러들었다.
“지금부터 내가 전수하는 것은 도문의 비전 심법이자, 어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교다. 귀식공(Turtle Breathing Technique)의 기초 호흡법이지. 내력의 흐름에 따라 숨을 들이쉬고, 맥박의 고동을 뼈 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혀라.”
엽무강은 소칠의 가슴과 등 뒤의 혈도를 짚어주며 소리 없이 숨 쉬는 법을 가르쳤다. 소칠은 스승의 지도에 따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숨을 내쉬었다. 신기하게도, 묵기의 기운이 전신을 감싸자 소년의 거칠던 호흡 소리가 서서히 지워지기 시작했다. 마구간의 말들이 쌕쌕거리는 소리 속에 소칠의 기척은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이 호흡을 하루에 천 번씩 반복해라. 낮 동안 매질을 당할 때도 이 호흡을 유지하면 내상의 타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소칠은 눈물을 닦으며 굳게 다짐했다. 소년은 이제 단순한 노예가 아니었다. 밤의 사신의 눈과 귀가 될 충직한 비밀 전령이자, 무경도문의 진짜 후계자였다.
***
소칠을 돌려보낸 뒤, 엽무강은 문지기 초소로 돌아왔다.
새벽이 오기 전에 산 아래 표국 무사 장건(장건)과의 비밀 접선이 예정되어 있었다. 사공표가 흑무가의 살수들을 끌어들이려 한다는 동태를 파악하고, 향후 밤사냥을 위한 외부의 무기와 정보를 조달받아야 하는 중요한 약속이었다.
하지만 초소 밖 상황은 최악이었다.
초소 창문 너머로 붉은 등불 빛이 일렁였다. 그 빛 아래, 사공표의 지시를 받은 감시꾼 한구(한구)가 초소 앞 평상에 앉아 도검을 무릎에 올린 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배무덕의 실종 이후, 한구는 엽무강의 일거수일투족을 밀착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은 터였다.
‘한구의 기감은 삼류 무사 수준이지만, 초소 문을 나서는 미세한 발소리나 흙먼지 소리조차 놓치지 않으려 신경이 극도로 곤두서 있다.’
평범한 신법으로는 저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나갈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기척을 내거나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면 즉시 경보가 울릴 것이고, 산 아래 장건과의 접선은커녕 정체마저 탄로 날 위기였다.
엽무강은 이불 속에 가짜 다리 깁스와 옷가지를 교묘하게 덧대어, 마치 자신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한 사람의 실루엣을 만들었다. 등불 빛에 비치는 창문 너머의 그림자를 속이기 위한 눈속임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구의 예리한 청각과 감시의 눈초리를 완벽히 피할 수 없었다. 초소를 나서는 찰나, 생명체의 미세한 온기와 숨소리마저 지워야만 했다.
‘시체가 되지 않으면, 이 초소를 살아서 빠져나갈 수 없다.’
엽무강은 초소 바닥의 썩은 목판을 열고 어두운 흙바닥 위에 엎드렸다. 그리고 최후의 극단적인 비술을 결심했다.
“심박 정지(Heart Halt).”
자신의 심장을 인위적으로 멈추는 비술이었다.
귀식공의 최종 극의에 달한 이 기술은, 묵혼심법의 차가운 묵기를 심장 근육의 특정 혈도에 직접 주입하여 박동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자학적인 기교였다. 심장이 멈추면 전신의 온도가 식어 시체처럼 변하고, 호흡이 완전히 멎어 천하의 어떤 고수도 생명체의 기척을 감지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위험성이 극도로 높은 비술이었다. 일각(15분) 이상의 시간 동안 심장이 멈춘 상태가 지속되면 뇌 세포에 산소 공급이 끊겨 영구적인 뇌 손상을 입거나, 진짜 시체가 되어 단전이 완전히 파괴될 수 있었다. 게다가 으스러진 무릎의 자창에서 피가 역류해 경맥이 막히면 주화입마의 파멸에 직면하게 된다.
‘버텨내야 한다.’
엽무강은 입술을 깨물며 오른손 검가락 끝에 차가운 묵기를 모았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팍, 심장 바로 위의 혈도를 사정없이 찔러 들어갔.
푹.
둔탁한 충격과 함께 온몸의 뼈마디가 얼어붙는 듯한 지독한 오한이 휘몰아쳤다.
두근.
두근.
……쿵.
그리고, 완벽한 침묵이 찾아왔.
엽무강의 심장이 멈추었다. 허파의 호흡이 정지했고, 전신의 온도가 찰나의 순간 차갑게 식어 내려갔다. 눈앞의 시야가 흐려지고 극심한 두통이 뇌를 조여왔지만, 그의 영혼만은 차가운 얼음처럼 깨어 있었다.
그는 한 구의 소리 없는 유령이 되어, 초소 뒷벽의 썩은 목판 틈새를 뜯어내고 안개 낀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기어 나가기 시작했다. 평상에 앉아 감시의 눈초리를 번뜩이던 한구는, 바로 등 뒤에서 생명의 온기가 완전히 사라진 시체가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단 한 톨도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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