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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 불어닥친 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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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는 피비린내를 머금은 채 삼거리 대나무 숲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장대비는 바닥에 고인 붉은 웅덩이를 사정없이 때려 흐트러뜨렸다. 배무덕의 시신이 화골수에 녹아내려 검은 물로 변해 진흙탕 속으로 완전히 스며들기까지는 이제 불과 수십 호흡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저벅, 저벅, 저벅.


안개 너머에서 들려오는 야간 순찰대의 발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가늘게 떨리는 횃불의 붉은 불빛이 빗줄기를 뚫고 엽무강의 발밑까지 길게 드리워졌다. 거리는 불과 이십 장.


엽무강은 차가운 귀면 가면 뒤에서 숨을 멈췄다. 그의 청이안(Hearing-Eye)이 빗소리를 뚫고 다가오는 순찰 무사들의 호흡수를 세었다. 모두 네 명. 일류 고수는 없지만, 이대로 마주치면 모든 기만 작전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흙탕물 속에 반쯤 잠긴 채 번뜩이고 있는 황동 순찰패가 눈에 들어왔. 배무덕이 지니고 있던 문파 내부의 통행 증표였다. 엽무강은 손가락 끝에 미세한 내력을 실어 낚아채듯 순찰패를 품속으로 밀어 넣었다. 동시에 들고 있던 대나무 빗자루를 가볍게 휘둘러 진흙바닥을 쓸어내렸다. 빗자루 끝에 실린 정적의 도법 1성 무풍(Windless)의 기운이 바닥에 남은 그의 발자국과 미세한 신형의 흔적을 소리 없이 지워버렸다.


스윽.


안개 속으로 녹아들 듯 몸을 날린 엽무강은 절뚝이 환영보(Hwanyeongbo)를 전개했다. 오른다리의 골절로 인한 비정상적인 박자가 오히려 빗방울의 낙하 궤적을 비껴가는 기형적인 신법이 되어, 순찰대가 삼거리에 도달하기 직전 대나무 숲의 어둠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졌다.


“어이, 배 조장! 어디 있는 거야?”


순찰 무사들이 삼거리에 도착해 횃불을 치켜들었으나, 그곳에는 오직 거세게 쏟아지는 빗물과 진흙탕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배무덕의 흔적은 화골수에 녹아 강산성의 물이 되어 대지로 완전히 스며든 뒤였다.


엽무강은 귀식공(Turtle Breathing Technique)을 전개해 심장 박동을 극한으로 낮춘 채, 초소 뒷벽의 썩은 목판을 통해 소리 없이 자신의 문지기 초소 내부로 기어 들어왔다. 젖은 야행복과 귀면 가면을 바닥 목판 아래 깊숙이 숨기고, 가짜 다리 깁스를 다시 오른쪽 다리에 단단히 고정했다.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멍청이 미소를 지으며 잠든 척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초소 문이 거칠게 열리며 감시꾼 한구(한구)가 들이닥쳤다.


“야, 절름발이! 안에서 무슨 소리 안 났어?”


한구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가 엽무강의 이불을 훑었다. 엽무강은 눈을 비비며 바보 같은 표정으로 침을 흘렸다.


“헤헤, 사형님…… 천둥소리가 너무 무섭습니다요…… 귀신이 올 것 같습니다요, 헤헤.”


한구는 지독한 땀내와 오물 냄새에 코를 쥐며 혀를 찼다.


“쯧, 미친 새끼. 평생 그렇게 벌벌 떨다 뒈져라.”


문이 쾅 닫히고 한구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엽무강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품속에는 배무덕에게서 빼앗은 황동 순찰패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첫 번째 단죄는 끝났다. 하지만 진짜 광풍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다음 날 아침, 비는 그쳤으나 하늘은 여전히 납빛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무경도문 내부가 발칵 뒤집혔다. 순찰대 부조장 배무덕이 야간 순찰 도중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단순한 이탈이나 가출이 아님을 직감한 순찰대장 사공표(사공표)는 분노로 날뛰기 시작했다. 놈은 문파 내부에 찬탈자 사공혁의 숨통을 죄어오는 ‘귀신 살수’가 숨어있다고 확신했다.


“문파 내의 모든 잡역부, 노예, 하층민 놈들을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대연무장으로 집합시켜라!”


사공표의 성난 포효가 산문을 뒤흔들었다. 무시무시한 채찍을 든 순찰 무사들이 잡역부 처소와 마구간을 뒤엎으며 하층민들을 개처럼 몰아내기 시작했다.


엽무강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낡은 대나무 빗자루를 지팡이 삼아 짚고, 가짜 다리 깁스를 한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리며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비굴하고 멍청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바지 안쪽의 쇠가죽 압박대(쇠가죽 압박대)는 부러진 무릎 관절을 조여오며 지독한 통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무경도문 대연무장(무경도문 대연무장).


넓은 석조 연무장 바닥은 차가운 아침 공기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수백 명의 하층민들이 공포에 질려 무릎을 꿇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연무장 단상 위에는 사공표가 가시 박힌 뱀 가죽 채찍을 바닥에 내리치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찰싹, 하는 파열음이 들릴 때마다 하층민들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들 사이에서 마구간 소년 소칠(소칠)도 입술을 깨문 채 엎드려 있었다. 어제 배무덕에게 맞아 터진 얼굴이 시퍼렇게 부어오른 소칠은, 군중 속에 섞여 들어오는 엽무강을 발견하고 미세하게 눈빛을 흔들었다. 엽무강은 소칠과 눈이 마주치기 직전, 초점을 흐리며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


“배무덕이 어젯밤 산문 근처에서 사라졌다.”


사공표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놈의 안광에는 편집증적인 의심과 살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


“놈은 문파의 기밀을 들고 도망칠 위인이 아니다. 누군가 어둠 속에서 쥐새끼처럼 배무덕의 목을 베고 흔적을 지운 것이 분명해. 이 연무장 안에, 전대 장문인의 귀신을 자처하며 놈들과 내통하는 살수가 숨어있다.”


사공표의 시선이 바닥에 엎드린 하층민들을 훑었다.


“한 놈씩 심문하겠다. 대답이 막히거나 미세한 내력의 흔들림이라도 보이는 놈은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 연무장 기둥에 걸겠다.”


순찰 무사들이 하층민들을 한 명씩 일으켜 세우며 가혹한 심문을 시작했다. 공포에 질려 말을 더듬는 늙은 마부가 사공표의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비명과 신음 소리가 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감시꾼 한구는 사공표의 등 뒤에서 눈을 번뜩이며, 특히 다리가 불편하거나 거동이 수상한 자들을 매섭게 감시하고 있었다.


마침내, 사공표의 붉은 장화가 엽무강의 머리 앞으로 다가와 멈춰 섰다.


“너.”


사공표가 채찍 끝으로 엽무강의 턱을 치켜올렸다.


“절름발이 무강이. 너는 어젯밤 산문 초소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지. 배무덕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느냐?”


엽무강은 즉시 몸을 부르르 떨며 바보 같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고, 대장님! 소인은 아무것도 모릅니다요! 어젯밤에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천둥이 쳐서,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덜덜 떨기만 했습니다요! 배 조장님은 보지 못했습니다요, 헤헤, 흐윽!”


그는 침을 흘리며 사공표의 장화 깃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비굴함의 극치였다. 사공표는 혐오스럽다는 듯 엽무강의 손을 채찍으로 쳐냈다.


찰싹!


가죽 장갑을 낀 손등이 갈라지며 피가 배어 나왔으나, 엽무강은 그저 손을 부여잡고 연무장 석판 바닥에 머리를 들이받으며 용서를 구했다. 그의 안면 근육은 완벽하게 통제되어 있었고, 마음의 호수를 고요하게 유지하는 무심선(Mindless Zen) 공법 덕분에 살기나 분노의 파동은 단 한 톨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사공표의 의심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놈은 엽무강의 부러진 오른쪽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진흙과 나무껍질을 굳혀 만든 흉측한 가짜 다리 깁스가 바지 밑단 사이로 드러나 있었다.


“배무덕이 사라진 곳은 산문 앞 삼거리다. 네놈의 초소 바로 앞이지. 그런데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사공표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게다가 귀신 살수의 신법이 절름발이의 걸음걸이와 유사하다는 첩보가 있다. 네놈의 다리…… 진짜 부러진 불구인가, 아니면 힘을 숨기기 위한 기만인가?”


일촉질발의 위기였다. 사공표의 뒤에 서 있던 한구가 나직하게 밀고했다.


“대장님, 저놈은 매일 초소에서 졸기만 하는 바보이지만, 가끔 쓰레기장에서 수상한 거동을 보이곤 했습니다. 진짜 불구인지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사공표의 입꼬리가 잔인하게 올라갔다.


“그렇군. 진짜 뼈가 부러진 쓰레기라면, 내가 이 다리를 짓밟아도 내력의 반발이 일어나지 않겠지.”


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공표의 무거운 가죽 군화 발이 엽무강의 부러진 오른쪽 무릎 관절을 정면으로 내리눌렀다.


뿌드드득!


가죽 군화 굽이 엽무강의 가짜 깁스를 짓이기며, 그 안쪽의 진짜 무릎 관절을 사정없이 압박했다. 으스러진 뼈 조각들이 서로 마찰하며 지독한 골음(骨音)을 냈다. 무릎 뼈가 완전히 가루가 되어 내려앉을 듯한 극심한 육체적 고통이 뇌리를 강타했다.


‘으윽……!’


비명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전신의 신경이 비명을 지르고, 단전의 파편들이 요동치며 기경팔맥을 찔러왔다. 만약 여기서 아주 미세한 내공이라도 방출하여 다리를 보호하려 든다면, 사공표는 즉시 그 내력을 감지하고 엽무강의 목을 벨 것이다. 일류 고수의 예리한 기감 수색이 그의 다리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엽무강은 이빨을 악물었다. 어금니가 깨져 입안 가득 비린 피가 고였다. 그는 피를 삼키며 묵혼심법(Mukhon Mind Method)을 극단적으로 운기했다.


‘내력을 숨겨라. 다리가 아닌 척추 속으로.’


그는 다리 주변에 흐르던 모든 미세한 진기를 척추 속 깊은 골수로 강제로 밀어 넣었다. 척추를 새로운 단전 삼아 기운을 침잠시키는 기형적인 운기였다. 이로 인해 다리에는 단 한 톨의 내공 방어도 남지 않게 되었다. 오직 바지 안쪽에 착용한 강철 침이 박힌 쇠가죽 압박대만이 사공표의 군화 발 무게를 물리적으로 지탱해 줄 뿐이었다. 압박대의 강철 침이 엽무강의 살을 파고들어 깊은 자창을 냈고, 붉은 피가 바지 천을 적셨다.


동시에 그는 무심선을 전개했다. 고통으로 인해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 무인임이 들통난다. 그는 심장 근육을 내력으로 압박하여 박동수를 인위적으로 분당 30회 이하로 늦추었다. 안면 근육의 미세한 떨림까지 완전히 통제했다.


“아아아악! 대장님! 다리, 다리가 부러집니다요! 제발 살려주십시오! 으아아앙!”


엽무강은 바닥을 구르며 비명질렀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입가에는 침과 피가 뒤섞여 비참하게 번졌다. 그것은 무공을 익힌 무인의 반응이 아니었다. 그저 고통에 울부짖는 나약하고 비천한 하층민 노예의 처절한 발악일 뿐이었다.


사공표는 군화 굽에 내력을 실어 더욱 강하게 짓밟았다.


쩍,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가짜 깁스의 진흙이 깨져 나갔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삐걱거리는 고통 속에서도 엽무강은 완벽한 침묵의 내공 은닉을 유지했다. 그의 전신 내력은 척추 속 골수 깊은 곳에 가라앉아 호수 바닥의 흙처럼 고요히 숨어 있었다.


그러나 그 극한의 대치 속에서, 엽무강의 부러진 무릎 뼈마디 사이로 흘러나온 미세하고 차가운 묵기의 파동이 연무장 석판 바닥을 통해 아주 미세하게 진동했다. 일반 무인들은 느낄 수 없는 극도로 미미한 진동이었다.


엎드려 있던 소칠의 주먹이 피가 나도록 꽉 쥐어졌다.


소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소칠은 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그 기이하고 차가운 내력의 진동을 감지했다. 어제 배무덕이 매질을 당할 때 흘러나왔던 그 압도적이고 고요한 살기의 파동과 정확히 일치하는 기운이었다.


‘무강 사형…… 당신은…….’


소칠은 떨리는 고개를 더욱 깊숙이 숙였다. 사형이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참으며 힘을 숨기고 있음을 깨달은 소년은, 자신 역시 입술을 깨물며 비명을 참아냈다.


사공표는 엽무강의 다리에서 어떠한 내공의 반발도 느껴지지 않자, 미심쩍은 표정으로 군화 발을 거두었다. 엽무강은 연무장 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헐떡였다.


“진짜 불구 새끼가 맞군. 내력의 반발이 전혀 없어.”


사공표가 혀를 차며 채찍을 거두려던 찰나, 감시꾼 한구가 다시 한 번 사공표의 귓가에 속삭였다.


“대장님, 그래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저 가짜 다리 깁스 안쪽에 혹시 얇은 칼날이나 암기를 숨겨두었을지도 모릅니다. 저 단단한 진흙을 찢어서 확인해 보시는 것이 확실합니다.”


사공표의 눈빛이 다시 한 번 번뜩였다. 놈은 허리춤에서 서슬 퍼렇게 날이 선 예리한 단도를 뽑아 들었다.


“그렇군. 확실히 해두는 것이 좋겠지.”


사공표가 천천히 몸을 굽혀 쓰러진 엽무강의 다리 앞으로 다가왔다. 놈은 차가운 칼날을 엽무강의 핏빛으로 물든 가짜 다리 깁스 위에 올려놓았다.


“다리가 진짜 썩어 문드러진 불구인지, 아니면 이 단단한 진흙 속에 칼날을 숨겨둔 살수인지…… 내 직접 찢어서 확인해 보마.”


사공표가 단도의 칼끝을 가짜 깁스의 붕대 틈새로 밀어 넣어 거칠게 찢어발기기 시작하는 순간, 서늘한 칼날의 감촉이 엽무강의 맨살에 닿았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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