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자의 반격
대연무장의 아침은 얼어붙을 듯 차가웠다. 자욱하게 내려앉은 새벽안개가 석판 바닥을 축축하게 적셨고, 문파의 배신자 무사들이 들고 있는 횃불의 불꽃만이 서늘한 공기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절름발이 문지기, 무강이 놈부터 당장 이 앞으로 끌고 나와라!”
우문패의 거칠고 포악한 목소리가 연무장 한복판에 쿵쿵 울려 퍼졌다. 그의 어깨에는 한눈에 봐도 수십 근은 나갈 법한 둔중한 검은 무쇠망치가 들려 있었다. 망치의 머리 부분이 돌바닥을 긁을 때마다 지독한 금속 마찰음이 안개 속으로 흩어졌다.
“아이고, 장로님! 살려주십시오! 소인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요!”
엽무강은 가혹하게 마구간 진흙탕으로 밀쳐져 질질 끌려 나왔다. 그의 왼쪽 팔은 이틀 전 우문패의 내력 공격으로 완전히 마비되어 삼베 밧줄로 몸통에 단단히 묶여 고정된 상태였고, 오른쪽 다리에는 황토 진흙과 나무껍질을 굳혀 만든 가짜 다리 깁스가 지저분하게 얹혀 있었다.
그는 흙바닥을 기며 침을 질질 흘렸고, 초점을 잃은 흐릿한 눈동자로 우문패의 장화를 바라보며 비굴한 ‘멍청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변을 둘러싼 배신자 파벌의 하급 무사들이 그 처참하고 더러운 몰골을 보며 낄낄거리며 침을 뱉었다.
“더러운 개새끼가 따로 없군. 저런 병신이 귀면도객일 리가 있겠나?”
우문패는 무사들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애꾸눈을 번뜩이며 엽무강의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놈은 무쇠망치를 바닥에 쿵 내려놓으며 엽무강의 뒤틀린 오른쪽 무릎을 가죽 장화 굽으로 지긋이 짓눌렀다.
“무강이라 했지. 제갈현 감찰관이 죽던 날 밤, 낙조애 절벽 아래에서 다리를 저는 쥐새끼 하나가 장부를 훔쳐 달아났다는 제보가 있었다. 만약 네놈이 그 귀신 살수라면, 내 망치가 네 무릎을 내리치는 순간 본능적으로 단전에서 내력을 끌어올려 뼈를 보호하려 들 터.”
우문패의 목소리는 낮고 잔인했다.
“하지만 진짜 썩어 문드러진 불구자라면, 내력이 없어 뼈가 통째로 가루가 되겠지. 자, 보여라. 네놈이 진짜 똥통에서 뒹구는 개새끼인지, 아니면 감히 문파를 뒤흔드는 살수인지.”
우문패가 거대한 무쇠망치를 높이 치켜들었다. 망치 머리 주위로 푸른 뇌전진기의 미세한 아지랑이가 지이잉 소리를 내며 이글거렸다. 일류 고수의 삼엄한 기감이 엽무강의 단전과 전신 기맥을 샅샅이 감시하기 시작했다. 미세한 내공의 흐름이라도 포착되는 순간, 즉시 뇌절도가 그의 목을 칠 터였다.
‘단전의 기운을 절대 흘려보내선 안 된다.’
엽무강은 속으로 차갑게 읊조렸다. 그는 무심선의 심상으로 내면의 끓어오르는 살의와 분노를 얼음 호수 아래로 완벽하게 가라앉혔다. 묵혼심법의 묵기를 전신 골격 속으로 깊숙이 침잠시켜 범인의 체취만을 남겼다.
그에게는 단전이 없었다. 대신 어젯밤 허의원의 침술과 천청단의 약력으로 으스러진 무릎 뼈 조각들을 정교한 기형 회전축으로 고정하는 ‘골수 제련법’을 완수했다. 겉보기에는 여전히 썩어가는 불구의 다리였지만, 무릎 관절 내부의 뼈는 웬만한 철병기보다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오직 맨몸의 골격만으로 망치의 타격을 버텨내야 했다.
“죽어라, 쥐새끼!”
우문패가 광소를 터뜨리며 무쇠망치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콰아앙!
연무장 석판 바닥이 움푹 패이며 사방으로 돌가루가 비산했다. 지독한 충격파가 엽무강의 오른쪽 무릎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망치 머리가 깁스를 박살 내며 살가죽을 찢고 들어가 뼈에 직접 부딪혔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뼈가 통째로 가루가 되어 비명을 지르며 절명했을 타격이었다. 하지만 천청단으로 벼려진 골수 제련법의 무쇠 뼈는 우문패의 망치 충격을 둔탁하게 흡수하며 버텨냈다. 뼈는 부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엽무강은 가만히 서 있지 않았다. 그는 충격이 닿는 찰나, 극단적인 신체 조절법인 ‘골음 기만’ 기술을 발동했다. 무릎 관절을 스스로 미세하게 비틀어 뼈마디가 어긋나게 만들며 지독한 마찰음을 의도적으로 발생시킨 것이다.
콰직! 뿌드득!
진짜 뼈가 산산조각이 나 부서지는 듯한 끔찍한 파열음이 연무장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으스러진 피부 틈새로 붉은 생혈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우문패의 장화와 망치를 적셨다.
“아아아악! 다리가! 소인의 다리가 부서집니다요! 장문인님! 살려주십시오!”
엽무강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는 고통을 이기지 못한 척 흰자위를 드러내며 연무장 진흙 바닥으로 머리를 처박고 기절한 척 연기했다. 입가에는 허연 침과 검붉은 피가 버무려져 흙먼지와 함께 뭉개졌다.
우문패가 망치를 거두며 혀를 찼다. 놈의 예리한 기감으로도 엽무강의 체내에서는 단 한 톨의 내공 반발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기절해 버린 무능한 불구자의 맥박만이 전해질 뿐이었다.
“……단전의 저항이 전혀 없군. 정말로 뼈가 완전히 부서진 모양이다.”
우문패는 가죽 장갑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혐오스럽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장문인 장로님, 이놈은 진짜 병신이 확실합니다. 귀면도객의 무공 수위라면 이 타격을 내력 없이 맨몸으로 버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때, 단상 위에서 초조하게 지켜보던 사공혁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걸어 나왔. 제갈현 감사관의 참혹한 죽음과 밀약 장부의 유실 소식은 그를 미치기 일보 직전의 광기로 몰아넣고 있었다. 정무맹주 백무현의 대규모 토벌군이 사흘 뒤면 이 무경산으로 진격해 올 터였다.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우문 장로, 그럼 그 귀신 살수 놈은 대체 어디 숨었단 말이냐! 내일 정무맹의 군대가 들이닥치면 우리 파벌은 통째로 도륙당할 것이다!”
사공혁이 벽력도의 자루를 움켜쥐며 광기 어린 신음을 뱉었다. 놈의 안광에는 편집증적인 공포가 서려 있었다. 놈은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이내 연무장 바닥에 쓰러진 엽무강을 차갑게 걷어차며 소리쳤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놈이 전대 장문인의 도법을 쓰는 쥐새끼라면, 전대의 충신들을 미끼로 던지면 제 발로 기어 나올 터!”
사공혁이 검을 치켜들며 연무장에 모인 무사들을 향해 선포했다.
“내일 정오, 대연무장 처형대에서 지하 감옥에 갇힌 전대 대제자 도지명과 늙은 충신 놈들의 목을 모조리 베겠다! 귀면도객 그 쥐새끼에게 전해라. 내일 정오까지 나타나지 않는다면, 도문의 정통파 놈들은 단 한 명도 살려두지 않고 씨를 말릴 것이다!”
광기 어린 선포가 가파른 절벽 사이로 메아리쳤다.
***
깊은 밤, 문지기 초소 안은 바람이 샐 때마다 기괴한 비명 소리를 냈다.
연무장에서 개처럼 끌려와 초소 바닥에 던져졌던 엽무강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낮 동안의 비굴한 바보 연기는 온데간데없고, 그의 두 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서슬 퍼런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천청단의 약효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전신 경맥이 뒤틀리는 극심한 내상 통증이 몰려왔지만, 그는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스륵.
초소 뒷벽의 좁은 틈새로 미세한 흙더미가 떨어지더니, 소칠이 안개 속에서 고개를 밀어 넣었다. 소년의 눈빛은 무강을 향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비장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사형, 장건 사형의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내일 처형장 주변에 우문패의 정예 살수들과 사공혁의 직속 무사들이 삼중으로 매복할 계획이랍니다. 단상 바로 옆에는 전신 철갑을 두른 괴물 무사, 철귀가 버티고 서서 장문인을 호위할 예정이라 합니다. 이건 완벽한 함정입니다.”
소칠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장건 사형은 내일 정오, 표국 무인들을 동원해 연무장 외곽에 대규모 화재를 일으켜 교란하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우문패와 철귀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사형의 만신창이 몸으로는 무리입니다. 제발 이번만큼은 후퇴하십시오.”
엽무강은 말없이 품속에서 피 묻은 가죽 조각 하나를 꺼냈다. 양아버지이자 스승이었던 엽천웅이 독살당할 때 입고 있던 피 묻은 백색 도포의 가슴 자락이었다.
거친 손가락 끝으로 피 얼룩을 쓸어내리는 엽무강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도지명 사형과 늙은 충신들…… 가문의 마지막 불씨들을 저 찬탈자들의 칼날 아래 내버려 둘 순 없다.’
그는 알고 있었다. 내일 전투에서 자신의 수명을 3년이나 단축시키고 전신 경맥을 완전히 파괴하는 비술, 생사폭기(Life-Burning Qi)를 전개해야만 우문패의 뇌전과 철귀의 철갑을 뚫고 사공혁의 목을 벨 수 있음을. 육체적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지언정, 도문의 명예와 동료들을 구하기 위한 대의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복수의 칼날을 갈아온 밤들이 바로 내일을 위한 것이었다.
“소칠.”
엽무강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고요하게 울렸다.
“장건 사형에게 전해라. 내일 정오, 신호탄이 터지는 순간 계획대로 움직인다. 내가 연무장 한가운데로 직접 걸어 들어가 놈들의 목줄기를 끊어놓을 것이다.”
그는 초소 바닥의 썩은 목판을 들어 올렸다. 그 깊숙한 진흙 속에 숨겨져 있던 부러진 대나무 빗자루 자루를 꺼내 들었다.
자루 끝의 홈을 오른손 손목의 탄력으로 가볍게 비틀어 당기자, 서슬 퍼렇게 날이 선 얇고 예리한 철척비의 진짜 묵철 칼날이 소리 없이 인출되며 어두운 초소 내부를 서늘하게 비추었다.
엽무강은 피 묻은 스승의 도포 조각을 품속 깊은 곳에 소중히 밀어 넣으며, 철척비의 칼날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빗자루를 들고 살아남은 절름발이 문지기의 처절한 복수극, 그 첫 번째 장막의 피비린내 나는 종막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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