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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비가 내리는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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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비린내를 품은 먹구름이 고개 너머에서부터 밀려들고 있었다.


남쪽 산길 고개는 이미 어둠과 안개, 그리고 우문패가 내뿜는 푸른 뇌전의 불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쿠르릉! 콰아아앙!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대기가 거칠게 진동했다. 엽무강의 오른손에 쥔 철척비의 얇은 묵철 칼날이 우문패의 거대한 뇌절도와 맞부딪칠 때마다, 손끝을 타고 뼈가 저리는 충격이 밀려왔다. 철척비의 몸체에 가늘게 금이 가는 소리가 그의 기민한 청각을 사정없이 때렸다.


‘버틸 수 없다. 다음 격돌에서 이 칼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난다.’


엽무강은 냉혹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물리적 한계를 계산했다. 우문패의 양강한 뇌전 진기는 얇은 묵철로 제련된 철척비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게다가 그의 왼팔은 우문패의 이전 타격으로 인해 완벽하게 마비되어 몸통에 삼베 밧줄로 단단히 묶인 채 죽은 고기처럼 늘어져 있었다. 오직 오른손 하나와 왼발의 지지력만으로 이 지옥 같은 전장을 헤쳐 나가야 했다.


“하하하! 쥐새끼 놈, 결국 무기가 한계에 달했구나! 어디 한 번 더 막아보아라!”


우문패가 미친 듯이 폭소를 터뜨리며 뇌절도를 크게 회전시켰다. 푸른 번개 줄기들이 사방으로 튀며 대나무 숲을 불태웠고, 빗줄기는 그 열기에 닿아 붉은 안개처럼 기화했다.


같은 시각, 진설아는 안개 속을 신속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그녀는 가문을 멸망시킨 정무맹을 향한 들끓는 증오를 청강수선검에 실어, 제갈현의 마차를 호위하던 삼류 무사 세 명의 목을 단숨에 베어 넘겼다.


“제갈현! 네놈의 추악한 목숨도 오늘이 끝이다!”


진설아의 청강수선검이 마차의 휘장을 찢어발기자, 마차 내부에서 비단 도포를 입은 소심한 제갈현이 비명을 지르며 붉은 가죽 주머니를 품에 안고 뒤편 문으로 기어 나갔다.


“우문 협객! 당장 나를 구원하시오! 이 미친 자들이 나를 죽이려 하오!”


제갈현의 다급한 비명이 산길에 울려 퍼지자, 우문패의 애꾸눈이 번뜩였다. 놈은 제갈현이 죽으면 사공혁에게 약조받은 거액의 은자를 받지 못할 것임을 알고 즉시 몸을 돌려 마차 쪽으로 도약하려 했다.


“어딜 보느냐.”


가면 뒤에서 흘러나온 엽무강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우문패가 뇌절도를 가로지르며 엽무강의 전신을 찢어발기기 위해 광포한 뇌전 강기를 사방으로 방출했다. 피할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맞서면 철척비가 부러지고, 뒤로 물러서면 제갈현을 놓친다.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치명상을 감수한 돌격.


엽무강은 극단적인 신체 조절법인 연골유신술(Soft Bone Flow)을 전개했다.


드드득! 뚝!


기괴한 관절 마찰음과 함께 엽무강의 왼쪽 어깨와 척추 마디마디가 스스로 탈골되며 기형적인 각도로 꺾였다. 몸의 부피가 순식간에 줄어들며 우문패가 예측한 참격의 궤적에서 비껴갔다. 콰아아앙! 푸른 뇌전의 불꽃이 엽무강의 오른쪽 옆구리와 등 가죽을 사정없이 스쳐 지나가며 살을 태우고 뼈를 그을렸다.


지독한 탄내가 진동했고, 으스러진 무릎 관절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왔지만 엽무강은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묵혼심법(Mukhon Mind Method)의 묵기를 골수 깊숙이 밀어 넣어 통증을 강제로 억눌렀다. 뇌전의 충격을 온몸으로 흡수하며 몸을 비틀어 비껴 맞은 찰나, 그는 우문패의 삼엄한 방어망 내부로 완전히 파고들었다.


“이, 미친놈이……!”


우문패가 경악하기도 전에, 엽무강은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왼발 끝에 전신의 모든 내력을 폭발적으로 집중시켰다. 외발 무게중심 경지의 도약력이 대지를 폭파하듯 박찼다.


슈우우욱!


바람 소리조차 나지 않는 진공의 신법이 허공을 갈랐다. 엽무강의 신형은 가볍게 우문패의 머리 위를 가로질러, 도망치던 제갈현의 마차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마차 문을 뚫고 흙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제갈현은 공포에 질려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의 품에는 정무맹의 음모가 담긴 약소 문파 병합 계획서와 사공혁에게서 빼앗은 비전 도보 조각들이 든 붉은 가죽 주머니가 단단히 안겨 있었다.


“살려, 살려주시오! 돈이라면 원하는 만큼 주겠소!”


제갈현이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린 순간, 공중에서 하강한 엽무강의 차가운 외눈이 귀면 가면 틈새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스스스슥.


공기의 저항을 제로로 만들어 바람 소리를 완전히 지워버린 정적의 도법 최종 발도, 무음발도 참(Silent Draw)이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그어졌다.


서걱.


쇳소리도, 바람 소리도 없었다. 오직 제갈현의 가슴팍이 부드러운 두부처럼 뚫리는 소리만이 나직하게 울렸다. 철척비의 예리한 묵철 칼날이 제갈현의 심장을 정확히 관통하여 등 뒤로 붉은 피를 토해냈다. 제갈현은 눈동자의 초점을 잃은 채 단 한 마디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엽무강은 오른손을 번개처럼 뻗어 제갈현이 안고 있던 붉은 가죽 주머니를 낚아채 품속 깊숙이 밀어 넣었다. 드디어 복수의 결정적 물증과 빼앗겼던 도문의 유산을 손에 넣은 것이다.


“제갈현-!!!”


등 뒤에서 우문패의 광기 어린 포효가 고개를 흔들었다. 고용주이자 거액의 은자를 보증할 감사관이 참수당하는 모습을 본 우문패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놈의 뇌절도 위로 푸른 번개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흉포하게 요동쳤다.


“네놈을 갈가리 찢어 죽이겠다!”


우문패가 대지를 박차며 날아와 뇌절도를 수평으로 휘둘렀다. 피할 시간도, 무기를 막아설 여력도 없었다.


엽무강은 몸을 비틀어 치명상을 피하려 했으나, 한계에 달한 오른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콰아아앙! 콰드득!


우문패의 무거운 도날이 엽무강의 오른쪽 무릎 관절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강철 같은 내력과 번개의 파동이 으스러진 무릎 뼈를 관통하며, 다리뼈가 완전히 베이고 으스러지는 처참한 파멸이 찾아왔다. 쇠가죽 압박대의 가죽 끈들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고, 기형적으로 겨우 버티고 있던 관절의 뼈 조각들이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크으으윽……!”


엽무강의 입에서 마침내 핏물 섞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전신이 마비되는 듯한 극통이 뇌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제갈현의 품에서 뺏은 주머니를 단단히 움켜쥔 채, 남은 왼발로 대지를 밀쳐 가파른 낙조애 절벽 아래를 향해 몸을 던졌다.


“도망치지 못한다!”


우문패가 절벽 끝까지 쫓아와 검을 내리쳤으나, 엽무강의 신형은 이미 천 척 높이의 안개 자욱한 낙조애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추락하는 찰나의 순간, 엽무강은 오른손을 뻗어 절벽 중간 소나무에 고정해 두었던 낙조애 비밀 밧줄을 움켜쥐었다. 마비된 왼팔 대신 오직 오른손의 완력만으로 질긴 누누실 밧줄을 잡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마찰열에 손바닥의 가죽이 타들어 가며 붉은 피가 밧줄을 적셨으나, 그는 이빨을 악물고 버텼다.


절벽 중간의 비밀 동굴 수로 구멍이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엽무강은 밧줄을 놓고 차가운 지하 수중 수로의 급류 속으로 몸을 던졌다.


쿵! 푸화학!


차가운 오수가 사정없이 엽무강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으스러진 무릎 관절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가 차가운 지하 수로의 물결을 따라 붉게 번져 나갔다.


엽무강은 물속에서 급류를 타고 소리 없이 흘러가며, 멀어지는 낙조애 절벽 위를 향해 차가운 안광을 번뜩였다. 제갈현의 단죄는 끝났고, 장부는 확보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뼈를 깎는 참혹함이었다.


지하 수로의 어두운 바위 구석에 몸을 의지한 채 물 위로 머리를 내민 엽무강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무릎 관절은 완전히 베이고 으스러져 형태를 잃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으스러진 무릎 뼈 조각들이 차가운 수중 한기 속에서 제멋대로 뒤틀리더니, 마치 무쇠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며 기형적인 박자로 단단하게 고정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으으윽…….”


뼈마디가 어긋나며 기괴한 각도로 고정되는 지독한 통증에, 엽무강은 차가운 어둠 속에서 나직하게 신음했다. 그것은 파멸의 끝이자, 새로운 기적의 서막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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