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의 가마가 멈추는 곳
서태윤의 단도가 흙바닥에 쓰러진 군마의 목덜미를 사정없이 내리꽂으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푸슉! 하는 파열음과 함께 뿜어져 나온 뜨거운 선혈이 연무장의 자욱한 연기 속으로 흩뿌려졌다. 단상 아래에서 빗자루를 안고 비굴하게 쓰러져 있던 엽무강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흩날리는 핏방울 너머로 내무장로 서태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서태윤의 단정하던 회색 도포는 말들의 발길질에 채인 흙먼지로 더러워져 있었고, 놈이 내뿜는 소양진기의 붉은 아지랑이는 분노로 인해 기괴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삼월이가 필사본을 삼켜 증거를 인멸한 것은 천만다행이었으나, 날뛰는 군마들을 진압한 서태윤의 서슬 퍼런 안광은 이제 마구간 일꾼들을 향해 꽂혀 있었다.
"마구간의 빗장이 이토록 쉽게 풀릴 리가 없다! 어떤 쥐새끼가 의도적으로 말들을 풀어놓아 수색을 방해한 것이 분명하다!"
서태윤의 꼬장꼬장한 목소리가 연무장을 가득 채운 연기 속을 찢고 울려 퍼졌다. 놈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마구간 한구석에 엎드려 덜덜 떨고 있는 소칠과 늙은 마부 마씨 영감의 목덜미를 겨누었다. 무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그들의 목을 내리치려던 찰나였다.
"아이고! 장로님! 살려주십시오! 소인이 똑똑히 봤습니다요, 헤헤!"
연기 구덩이 속에서 엽무강이 부러진 오른다리를 질질 끌며 기어 나왔다. 진흙과 오물로 범벅이 된 가짜 다리 깁스가 돌바닥에 긁히며 뿌드득, 뿌드득 하는 불쾌한 골음을 요란하게 냈다. 왼팔은 여전히 삼베 밧줄로 몸통에 단단히 묶여 고정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엽무강은 입을 반쯤 벌리고 침을 흘리며, 서태윤의 가죽 장화 앞까지 기어가 머리를 조아렸다.
"이 미친 절름발이 놈이 어디서 기어 나와 지껄이는 거냐!"
무사 하나가 엽무강의 등덜미를 걷어차려 했으나, 서태윤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서태윤의 의심 많은 눈초리가 바닥에 엎드린 엽무강의 정수리에 꽂혔다.
"절름발이 무강이 네놈이 무엇을 보았단 말이냐?"
"헤헤, 장로님! 아까 천둥소리 같은 벼락이 마구간 뒤편에 쾅! 하고 떨어졌습니다요! 말들이 그 귀신 소리를 듣고 미쳐서 날뛰더니, 가장 크고 힘센 대장 말이 머리로 빗장을 쾅쾅 들이받았습니다요! 빗장이 부러지면서 문이 열렸고, 다른 말들도 전부 미쳐서 뛰쳐나왔습니다요! 소인이 무서워서 빗자루 뒤에 숨어 똑똑히 봤습니다요, 헤헤헤!"
엽무강은 멍청이 미소를 지으며 침을 흘렸고, 품속에 소중히 안고 있던 놋전 세 푼을 꺼내 보였다.
"귀신이 노해서 말들을 미치게 한 게 분명합니다요! 이 돈을 바치면 귀신이 물러갈까요, 장로님? 헤헤!"
서태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놈은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무사들에게 명령했다.
"마구간 문으로 가서 부러진 빗장의 단면을 확인해라."
급히 달려갔던 무사가 돌아와 서태윤의 귀에 속삭였다.
"장로님, 무강이 놈의 말대로 빗장의 한가운데가 강한 충격에 의해 안쪽으로 짓이겨지듯 부러져 있습니다. 칼날이나 도끼의 흔적은 없고, 짐승의 단단한 머리뼈에 부딪혀 으스러진 형태가 분명합니다."
서태윤은 짓이겨진 빗장의 단면이라는 물리적 증거를 전해 듣고 나직하게 신음했다. 사실 그 부러진 단면은 소칠이 말을 풀어놓기 직전, 엽무강이 미리 빗장 안쪽에 미세한 균열을 내어두고 군마가 들이받도록 유도한 치밀한 사전 공작의 결과물이었다. 엽무강의 바보 같은 증언과 조작된 흔적은 서태윤의 날카로운 지략을 완벽하게 기만했다.
"쯧, 미련한 짐승 놈들이 천둥소리에 놀라 광증을 일으킨 모양이군."
서태윤은 단도를 거두며 혐오스럽다는 듯 엎드린 엽무강을 내려다보았다.
"더러운 절름발이 놈, 평생 그렇게 똥물이나 치우며 살아라. 마구간 일꾼들은 경비 태만의 죄를 물어 태형 스무 대씩을 치고 감옥에 가두어라. 목숨을 살려주는 것만으로도 장문인 어른의 자비이신 줄 알라."
"아이고,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요, 장로님! 헤헤헤!"
엽무강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연신 조아렸다. 소칠과 마씨 영감의 목이 날아갈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가 가벼운 태형으로 감형되는 순간이었다. 서태윤과 무사들이 불타는 연무장을 정리하기 위해 멀어지자, 연기 속에서 엽무강의 흐릿하게 풀려 있던 동공이 일순간 얼음처럼 차갑고 예리하게 가라앉았다.
***
사흘 뒤, 무경산의 아침은 자욱한 음무로 가득했다.
산문 입구에 위치한 낡고 바람이 새는 목조 초소 안에서, 엽무강은 평상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왼팔은 여전히 삼베 옷 안쪽에 단단히 묶여 있었고, 가짜 다리 깁스를 한 오른다리는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며칠 전 군마 소동과 자해 연기의 여파로 무릎 관절의 염증이 가라앉지 않아, 뼈마디가 어긋날 때마다 지독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엽무강은 품속에서 한골산 가루가 담긴 작은 가죽 주머니를 매만졌다. 연희가 약방에서 목숨을 걸고 제조해 준 강력한 마비 독초 가루였다.
'오늘이다.'
정무맹의 감사관 제갈현이 화려한 가마를 타고 무경도문에 도착하는 날. 사공혁이 문파의 정통 무학과 현철 광맥을 정무맹에 바치고 찬탈의 명분을 사기 위해 마련한 추악한 위선의 가마가 멈추는 날이었다.
두두두두.
저 멀리 산길 아래에서 육중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화려한 금빛 깃발들이 안개를 찢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정무맹의 직인이 찍힌 백색 깃발을 앞세운 정예 호위무사 수십 명이 삼엄한 경계를 서며 산문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황금으로 장식된 거대하고 화려한 비단 가마가 공중에 떠 있는 듯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무맹 파견 감사단.
겉으로는 무림의 정의와 평화를 감사한다는 명목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사공혁에게 막대한 뇌물을 받고 문파 찬탈 과정을 묵인하러 온 부패한 위선자들의 무리였다.
산문 입구에는 엽무강과 함께 지능이 조금 떨어지는 하급 노예 개똥이가 삼베 누더기를 걸친 채 서 있었다. 개똥이는 원래 다리가 불편해 걸음걸이가 비틀거리는 사내였다. 화려한 가마와 정예 무사들의 삼엄한 기세에 압도당한 개똥이는, 가마가 산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순간 긴장한 나머지 발을 헛디디며 비틀거렸다.
스윽.
개똥이의 몸이 가마를 호위하던 정무맹 무사의 말 앞다리를 미세하게 가로막았다. 말이 놀라 앞발을 치켜들며 나직하게 울부짖었다.
"이 눈먼 개새끼가 어디서 정무맹 감사관 어른의 길을 가로막느냐!"
가마를 이끌던 수석 호위무사가 안안을 부라리며 검자루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놈의 전신에서 이류 절정 고수 특유의 강맹한 내공 기압이 뿜어져 나와 개똥이의 어깨를 짓눌렀다. 개똥이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흙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아이고! 살려주십시오, 대협님! 소인이 눈이 어두워 그만……!"
가마의 비단 휘장이 천천히 걷히며, 화려한 비단 도포를 입고 거만한 태도로 앉아 있는 40대 서생 풍모의 사내, 제갈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의 가늘게 뜬 눈동자에는 하찮은 평민과 노예들을 벌레만도 못하게 여기는 깊은 멸시가 담겨 있었다.
"정무맹의 감사관이 드나드는 신성한 산문에 이딴 더러운 절름발이 노예 놈이 길을 막고 비틀거리다니. 무경도문의 규율이 사공혁 장문인의 취임 이후 이토록 개차반이 되었단 말이냐?"
제갈현의 오만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산문에 가득한 안개를 얼려버릴 듯 울려 퍼졌다. 놈은 가마 옆에 걸려 있던 가죽 채찍을 직접 쥐어 들었다. 채찍 끝에는 미세한 소양진기의 붉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버릇을 고쳐놓지 않으면 정무맹의 명예가 더러워지겠구나. 저놈을 무릎 꿇리고 채찍으로 본보기로 삼아라."
무사들이 개똥이의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처박았다. 제갈현이 채찍을 들어 올려 개똥이의 등 가죽을 사정없이 내리치려던 그 찰나였다.
*절뚝, 절뚝.*
"아이고! 감사관 나리!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 바보 놈이 머리가 모자라서 귀한 가마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요! 소인이 대신 매를 맞겠습니다요, 헤헤헤!"
엽무강이 빗자루를 짚은 채 비틀거리며 끼어들었다. 놈은 바보처럼 침을 흘리며 개똥이의 머리를 자신의 넓은 어깨와 몸으로 감싸 안고 바닥에 엎드렸다.
지켜보고 있던 우문패와 사공혁 파벌의 무사들이 산문 초소 주변에서 차가운 비웃음을 흘렸다. 우문패의 날카로운 기감이 들이친 엽무강의 몸을 샅샅이 훑었으나, 엽무강은 이미 불가 비전의 참선법인 무심선(Mindless Zen)을 전개해 가슴속 끓어오르는 살의를 완벽하게 얼려 숨긴 상태였다. 손목의 굳은살도 빗자루 자루로 교묘하게 가렸고, 묵혼심법의 묵기는 척추 뼈 속에 침잠해 있어 느껴지는 것은 오직 평범한 절름발이의 비천한 생체 기척뿐이었다.
"어디서 절름발이 개새끼들이 무더기로 기어 나와 눈을 더럽히는가!"
제갈현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놈은 들고 있던 가죽 채찍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쫘아악!
가죽 채찍이 엽무강의 등 가죽을 가차 없이 내리쳤다. 채찍 끝에 실린 소양진기의 뜨거운 열기가 엽무강의 얇은 삼베 누더기를 찢고 살을 갈라놓았다. 붉은 선혈이 비산하며 흙바닥을 적셨다.
"커헉……!"
엽무강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등 뒤의 쇠가죽 압박대가 채찍 가시에 걸려 찢어질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으나, 엽무강은 연골유신술(Soft Bone Flow)을 미세하게 전개해 등 뼈 관절을 스스로 뒤틀어 채찍의 타격 각도를 흘려보냈다. 쇠가죽 압박대의 존재를 감추기 위한 처절한 신체 제어였다.
쫘아악! 쫘아악!
제갈현은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채찍질을 멈추지 않았다. 엽무강의 등 가죽이 갈라져 피투성이가 되었고, 정무맹 고수의 살기가 가슴 경맥을 압박해 목구멍으로 뜨거운 피가 울컥 솟구쳤다. 엽무강은 그 피를 입안으로 강제로 삼키며, 눈동자의 초점을 완전히 흐리는 무안훔쳐보기(Faceless Peeking Formula)를 전개했다.
'참아야 한다. 여기서 기를 흘리면 소칠도, 연희도, 문파의 미래도 전부 끝이다. 완벽한 바보가 되어 놈의 방심을 사야 한다.'
엽무강은 매질을 당하며 비굴하게 비명을 지르고 바닥을 기어 제갈현의 가마 바퀴 아래로 접근했다. 놈은 바닥에 흩어진 흙먼지를 양손으로 쥐어짜며 제갈현의 비단 도포 자락을 향해 구걸하듯 손을 뻗었다.
"아이고, 나리! 잘못했습니다요! 이 미천한 놋전 세 푼을 바칠 테니 개똥이만은 살려주십시오! 헤헤, 나리!"
그 비굴하고 가련한 몸짓 뒤편에서, 엽무강의 오른손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빗자루 먼지 구덩이의 흐름을 이용해 공기의 저항을 제로로 만드는 정적의 도법 '무풍'의 경지가 손가락 끝에서 아주 미세하게 응용되었다.
스륵.
엽무강의 손끝에서 날아간 투명하고 미세한 '한골산 가루'가, 채찍질을 하며 거만하게 서 있던 제갈현의 비단 도포 자락 끝 안감에 소리 소문 없이 스며들었다. 바람 한 점 일지 않는 극단적인 무음의 투척이었다. 한골산 가루의 독특하고 미세한 마취 향기는 제갈현의 도포 깊숙이 안착하여, 향후 청이안 감각으로 놈의 도주 경로를 정확히 추적할 결정적인 표식이 되었다.
제갈현은 채찍을 든 손이 아파오자 혀를 차며 채찍을 바닥에 팽개쳤다. 그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흙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채 엎드려 있는 엽무강의 얼굴을 가죽 군화 발로 사정없이 짓눌렀다.
지독한 흙먼지와 말똥 냄새가 엽무강의 코와 입안으로 밀려들었다. 제갈현은 군화 굽으로 엽무강의 뺨을 비비며 잔인한 광소를 터뜨렸다.
"이 문파는 문지기부터 쓰레기 절름발이뿐이구나. 사공혁이 이딴 폐물들을 거두고 있으니 문파의 기강이 서겠는가? 가자, 더러운 피가 묻기 전에 장문인 처소로 향하겠다."
제갈현은 침을 뱉으며 가마에 다시 올라탔고, 화려한 감사단의 행렬은 사공혁의 처소를 향해 장엄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흙바닥에 얼굴이 짓눌린 채 홀로 남겨진 엽무강은, 등 가죽이 찢어지는 극통 속에서도 입가에 멍청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러나 제갈현의 가마가 산문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순간, 진흙 속에 박혀 있던 엽무강의 외눈이 얼음처럼 차갑고 서늘한 복수의 안광을 뿜어내며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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