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잠식하는 한기
지독한 어둠이 깔린 벽류가의 지하 수중 수로는 인간의 생기를 송두리째 빨아들이는 거대한 얼음 구덩이와 같았다.
흑무가의 아지트를 재로 만들어 버리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삼켜야 했던 지하의 오수는 단순한 차가운 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뼈마디를 파고들어 골수를 얼려 버리는 지독한 한독(寒毒)이었다.
*우드득, 뚝.*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엽무강의 오른쪽 무릎 관절에서 기괴한 파열음이 울릴 때마다,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는 극통이 밀려왔다. 이미 사공혁에 의해 한 번 부러졌던 무릎이었다. 그 부러진 뼈마디 틈새로 침투한 한독은 마치 수천 개의 얼음 송곳이 되어 그의 골수를 사정없이 쑤셔대고 있었다.
게다가 우문패의 가공할 만한 내력 타격을 입어 완전히 마비된 왼쪽 팔은 여전히 감각이 죽은 채 삼베 밧줄로 몸통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오직 오른손 하나와 왼발 끝의 탄력만으로 가파른 진흙 비탈을 기어올라야 하는 처절한 사투였다.
‘큭……!’
엽무강은 입술을 깨물며 덮쳐오는 각혈을 강제로 삼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피비린내가 뜨거웠지만, 지금 피를 흘리면 바닥에 흔적이 남아 우문패의 사냥개들에게 꼬리를 잡히게 된다. 그는 묵혼심법(Mukhon Mind Method)의 기운을 극한으로 쥐어짜 전신의 기맥을 단단히 닫아걸었다. 골수 속 깊은 곳에 가두어 둔 묵기(Silent Qi)만이 그의 심장을 겨우 뛰게 만들고 있었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며 무경산 기슭에 축축한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기 시작했다.
산문 초소로 복귀하기 전, 이 뼈를 잠식하는 한독을 다스리지 못하면 낮 동안 비굴한 절름발이 문지기 연기를 해낼 수 없다. 당장이라도 다리가 굳어 흙바닥에 쓰러질 것 같은 한계 상황 속에서, 엽무강은 산 아래 위치한 혜민서 약방(Hyeminseo Pharmacy)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그의 유일한 안식처인 누이동생 연희와 든든한 조력자 허의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
*끼이익.*
혜민서 약방의 낡은 목조 문이 가늘게 열리며 엽무강의 신형이 안개와 함께 내부로 스며들었다.
약방 안은 매캐하면서도 쌉싸름한 약초 향이 가득 차 있었다. 등잔불 밑에서 초조하게 서성거리던 연희가 문소리에 놀라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오라버니……!”
연희의 맑은 눈동자가 경악으로 크게 벌어졌다.
문 앞에 서 있는 엽무강의 몰골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전신은 지하 수로의 오수로 젖어 축축했고, 얼굴은 한독에 중독되어 푸르스름하게 질려 있었다. 눈썹과 속눈썹 끝에는 미세한 서리가 하얗게 맺혀 있었으며, 숨을 쉴 때마다 차가운 백색 김이 뿜어져 나왔다. 무엇보다 오른쪽 다리는 기형적으로 뒤틀려 부어올라 있었다.
“의원님! 빨리 은침을……!”
연희가 눈물을 흘리며 엽무강의 무너지는 몸을 가녀린 어깨로 지탱했다. 약방 구석에서 약재를 정리하던 허의원 역시 안경을 고쳐 쓰며 급히 다가왔다.
“이런…… 기경팔맥이 통째로 얼어붙고 있네! 단전이 깨진 상태에서 이 정도의 한독을 품었다니,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심장이 굳어 죽었을 걸세!”
허의원이 엽무강의 오른손 맥을 짚으며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연희야, 서둘러라! 사공혁 놈들이 유통을 전면 통제하고 있어 숨겨두었던 골쇄초(Golsaecho)를 꺼내와라! 화로에 불을 피우고 한기를 녹여내야 한다!”
“예, 의원님!”
연희는 눈물을 훔치며 약방 깊숙한 비밀 약장 아래 숨겨두었던 골쇄초 조각들을 꺼내어 급히 탕약을 달이기 시작했다. 골쇄초는 부러진 뼈마디 사이에 골기를 형성하고 한독을 몰아내는 데 탁월한 비약이었지만, 최근 사공혁 파벌이 약재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어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엽무강은 바닥에 주저앉아 굳어가는 오른쪽 무릎을 쓸어내렸다.
*드드득, 뚝.*
관절을 만질 때마다 뼈마디가 어긋나는 소리가 기괴하게 울렸다. 한독이 뼈 속 골수까지 잠식하여 내력의 순환이 완벽히 동결되어 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약방 외부의 자욱한 안개 속에서 둔탁하고 육중한 군화 발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벅, 벅, 벅, 벅.*
단순한 행인의 걸음걸이가 아니었다. 일사불란하게 대형을 짜며 약방의 사방 퇴로를 가로막는 무인들의 발소리였다.
엽무강의 청이안(Hearing-Eye) 감각이 번뜩이며 뇌리 속에 약방 주변의 지도를 그렸다. 최소 열 명 이상의 무사들이 약방을 포위하고 있었다.
“안에 의원 놈이 있느냐! 문을 열어라! 장문인의 지령을 받드는 순찰대다!”
거친 고함 소리가 창지문을 흔들었다. 우문패의 직속 부하들이었다. Heukmuga 아지트가 불탄 흔적을 발견한 우문패가 문파 내부의 모든 약방과 의원을 이 잡듯 뒤지며 부상당한 절름발이를 수색하기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오라버니, 숨어야 해요……!”
연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지금 상태의 엽무강이 발각된다면 온몸의 상처와 무공의 흔적으로 인해 즉시 반역죄로 처형당할 터였다.
하지만 약방 내부는 사방이 트여 있어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유일한 공간은 거대한 약재 보관함과 벽면 사이의 불과 1인치 남짓한 좁은 틈새뿐이었다.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이조차 들어갈 수 없는 좁은 사각지대였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엽무강은 이빨을 악물었다. 그는 연골유신술(Soft Bone Flow)을 전개했다.
*드드득, 우드득!*
한독에 의해 딱딱하게 굳어버린 오른쪽 무릎 관절과 골반 뼈를 스스로 강제로 탈골시켰다. 인대가 찢어지고 뼈마디가 어긋나는 지옥 같은 고통이 뇌를 강타했으나, 엽무강은 단 한 톨의 신음도 내뱉지 않았다. 마비된 왼팔을 몸통에 더욱 밀착시킨 채, 그는 기형적으로 꺾인 몸뚱이를 약장 뒤편의 가느다란 틈새 속으로 쑤셔 넣었다.
“연희야, 어서 약초를……!”
허의원의 다급한 목소리에 연희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화로 위에 덜 익은 독초 가루와 축축한 쑥 더미를 한 움큼 던져 넣었다.
*쉬이이익!*
순식간에 쌉싸름하고 매캐한 황색 약초 연기가 약방 내부를 가득 채우며 피어올랐다. 엽무강의 어깨와 무릎 상처에서 풍겨 나오던 미세한 피비린내를 완벽하게 차단하기 위한 임기응변이었다.
*쾅-!*
약방의 목조 문이 거칠게 부서지며 우문패의 심복 무사 세 명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놈들의 손에는 서슬 퍼런 철검이 쥐어져 있었다.
“콜록! 쿨럭! 이게 무슨 연기냐!”
무사들이 연기를 헤치며 칼끝을 번뜩였다.
“아이고, 나으리들! 가난한 병자들의 역병을 치료하기 위해 독초를 태우는 중입니다요!”
허의원이 비굴하게 허리를 굽히며 무사들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무사들은 허의원을 거칠게 밀쳐내며 약방 내부의 침상과 약장 밑을 검으로 쑤셔대기 시작했다.
“최근 벽류가에서 귀신 살수가 나타나 장문인의 재물을 훔치고 도망쳤다. 놈이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라는 첩보가 있으니, 이 약방에 들른 자가 없는지 샅샅이 뒤져라!”
한 무사가 엽무강이 숨어 있는 약장 뒤편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놈의 매서운 눈빛이 약장 뒤의 어두운 틈새를 향했다.
*스으윽-!*
무사가 장검을 치켜들고 약장 뒤편의 좁은 틈새를 향해 사정없이 검날을 밀어 넣었다.
차가운 철검의 칼날이 연골유신술로 구겨져 숨어 있는 엽무강의 콧등 바로 앞을 스쳐 지나갔다. 쇠붙이의 서늘한 감촉이 뺨의 맨살에 닿았고, 미세한 출혈이 다시 시작되려 했다.
엽무강은 즉시 무심선(Mindless Zen)을 전개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지옥 같은 통증과 분노를 차가운 심연 속으로 가라앉혔다. 동시에 귀식공(Turtle Breathing Technique)을 극단적으로 발동해 심장 박동을 분당 수 회 이하로 늦추었다. 생명의 온기도, 기맥의 흐름도 완전히 지워버린 한 구의 차가운 시체가 된 것이다.
*서걱, 서걱.*
무사의 검끝이 엽무강의 누더기 옷자락을 찢으며 약장 뒷벽을 가혹하게 찔러댔으나, 틈새 속에서는 어떠한 생명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쯧, 여기도 비어 있군. 연기 때문에 냄새도 안 맡아지는군.”
무사가 투덜거리며 검을 거두었다. 놈들은 약방 바닥에 침을 뱉고는 서둘러 문밖으로 빠져나갔다.
“다른 구역으로 이동한다! 쥐새끼가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놈들의 군화 발소리가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약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스륵, 툭.*
무사들이 완전히 멀어지자, 엽무강은 약장 뒤편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연골유신술의 힘이 풀리며 어긋났던 관절들이 제자리로 맞춰지는 순간, 극심한 고통에 그의 전신이 파르르 떨렸다. 엽무강은 입가로 흘러내리는 검은 피를 오른손으로 닦아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오라버니……!”
연희가 울부짖으며 화로 위에서 끓고 있던 골쇄초 탕약 사발을 들고 그에게로 달려왔다. 사발 속의 검은 약탕에서는 한독을 녹여낼 뜨거운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희가 떨리는 손으로 엽무강에게 약재 사발을 건네받으려는 바로 그 찰나였다.
*쿠우웅-!!!*
약방의 정문이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가공할 만한 힘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자욱한 아침 안개를 찢으며, 푸른 뇌전의 기운이 흐르는 무거운 도를 어깨에 멘 사내들의 그림자가 약방 내부로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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