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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 된 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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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서 부러진 무릎 뼈마디가 무쇠 창살을 향해 미끄러져 들어가는 찰나, 엽무강은 왼발 끝의 내력을 폭발시키며 바퀴처럼 몸을 비틀었다.


지독한 한기(寒氣)가 으스러진 오른쪽 무릎 관절을 송곳처럼 쑤셔댔다. 지하 수로의 썩은 오수는 얼음보다 차가웠고, 그 물속에 섞인 음습한 한독(寒毒)은 이미 가죽 압박대 틈새를 뚫고 뼈마디 깊숙한 골수까지 침투해 있었다. 당장이라도 다리가 마비되어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의 극통이었으나, 엽무강은 이빨을 악물며 이성을 붙잡았다.


‘여기서 부딪히면 끝이다.’


무쇠 창살에 연결된 미세한 구리 실. 그 실 끝에 매달린 청동 경보 방울들이 수면 위에서 찰랑거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른다리가 무쇠에 닿는 순간, 미세한 금속 마찰음이 수중의 진동을 타고 방울을 울릴 터였다.


엽무강은 마비되어 쓸 수 없는 왼팔을 삼베 밧줄로 가슴팍에 더 단단히 고정했다. 그리고 오직 하나 남은 왼발 끝의 지면 반발력을 수중에서 폭발시켰다. 동시에 전신의 관절을 스스로 탈골시켜 충격을 흘려보내는 비술, 연골유신술(Soft Bone Flow)을 전개했다.


*드득.*


물속이라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엽무강의 골반과 허벅지 관절이 기형적인 각도로 꺾이며 부러진 오른다리를 수면 위로 가볍게 띄웠다. 물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그 흐름의 일부가 되어 몸을 둥글게 말아 쥔 것이다. 으스러진 무릎 뼈는 창살을 불과 반 인치 남겨두고 허공에 뜬 채 미끄러지듯 비껴갔다.


위기를 넘긴 찰나, 엽무강은 오른손 끝에 묵혼심법의 진기인 묵기(Silent Qi)를 다시 한 번 가늘게 모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주변 10장 이내의 진동을 입체적인 지도로 그려내는 청이안(Hearing-Eye) 감각이 수중의 구리 실들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파스스.*


엽무강의 손끝이 마지막 구리 실의 장력 점을 스쳤다. 진동도, 소리도 없이 묵기의 차가운 기운이 구리 실을 녹여내듯 끊어버렸다. 수면 위의 청동 방울들은 단 한 번의 떨림도 없이 고요함을 유지했다.


엽무강은 무쇠 창살 틈새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수로의 끝, Heukmuga의 지하 비밀 아지트로 연결되는 배수구 구멍이 위쪽을 향해 뚫려 있었다. 그는 물속에서 마지막으로 숨을 들이쉬며 귀식공(Turtle Breathing)을 유지한 채, 소리 없이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스륵.*


물이 뚝뚝 떨어지는 붉은 귀면 가면 뒤로, 엽무강의 차가운 안광이 어두운 밀실 내부를 훑었다.


이곳은 벽류가 구석의 폐기된 창고 지하에 위치한 Heukmuga의 비밀 지부였다. 사방이 두꺼운 석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의 소리가 차단된 완벽한 밀실. 방 한가운데에는 철기방에서 밀수해 온 무쇠 상자들이 쌓여 있었고, 벽면에는 기괴한 독침 장치들이 어둠 속에서 둔탁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청이안 감각이 밀실 내부의 호흡 소리들을 잡아냈다.


총 네 명. Heukmuga의 정예 살수들이 무기를 정돈하며 느슨하게 앉아 있었다. 수중 경보 장치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믿었기에, 그들의 방심은 머리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이번 달 사공혁 장문인이 정무맹 감찰관에게 바칠 은자가 벌써 이 상자에 가득 찼군.”


“쉿, 목소리가 크다. 사공표 대장님이 어젯밤 귀신 살수에게 당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문파 내부가 흉흉하니 우리도 입을 조심해야 해.”


살수들이 칼날을 숫돌에 갈며 나직하게 나누는 대화가 엽무강의 귀에 똑똑히 박혔다. 사공혁이 정무맹과 내통하며 문파의 비전 도보를 넘기려 한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엽무강은 물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한독이 침투한 오른쪽 무릎이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으나, 묵혼심법의 차가운 내력으로 통증을 강제로 억누르며 발걸음을 옮겼다. 절뚝이는 걸음걸이였으나, 바닥의 젖은 목판을 딛는 소리는 단 한 톨도 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소리 없는 유령이었다.


*스스슥.*


가장 외곽에 서 있던 살수의 등 뒤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사내가 위화감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였다.


엽무강의 오른손에 쥔 철척비가 번개처럼 뽑혀 나왔다. 공기의 저항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무음의 참격, 묵흔도(Dark Trace Blade)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검은 선을 그었다.


*서걱.*


비명 소리조차 없었다. 살수의 목덜미가 소리 없이 갈라지며 검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사내가 바닥으로 쓰러지기도 전에, 엽무강은 왼발로 사내의 옷자락을 낚아채 소리 없이 바닥에 눕혔.


“어라? 무슨 소리…….”


맞은편에 앉아 있던 세 명의 살수가 미세한 피비린내를 감지하고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동료가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모습을 목격한 그들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침입자다! 살진을 전개해라!”


살수들이 품속에서 단검을 뽑아 들며 일제히 포위 진법을 짜기 시작했다. 세 자루의 단검이 엽무강의 상하좌우 사각지대를 완벽하게 가로막으며 들이쳤다.


하지만 엽무강은 이미 그들의 움직임보다 한 박자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른다리를 쓸 수 없는 불구의 몸이었으나, 그는 오히려 그 장애를 기만으로 삼는 절뚝이 환영보(Jeolttugi Hwanyeongbo)를 전개했다.


*뚝, 뿌드득.*


일부러 무릎 관절을 어긋나게 만들며 몸을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였다. 살수들의 단검이 엽무강의 비어 있는 잔상을 허무하게 가르고 지나갔다. 그 순간, 엽무강은 왼발 끝에 내력을 집중시켜 제자리에서 바퀴처럼 기형적으로 회전했다. 좁은 밀실의 나무 탁자를 딛고 허공으로 솟구친 그의 신형이 검은 참격을 사방으로 뿌렸다.


*스사사삭!*


철척비의 예리한 묵철 칼날이 공기를 찢는 마찰음마저 소멸시킨 채 가차 없이 휘둘러졌다.


“크헉……!”


“커흑!”


두 명의 살수가 목덜미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잘려 나간 기도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만이 나직하게 울릴 뿐,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의 살수가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사내는 귀면 가면에 서린 붉은 안광을 보며 이것이 전대 장문인의 원혼이 돌아온 것임을 직감했다. 사내는 살기 위해 책상 위에 놓인 사공혁의 극비 장부와 암살 의뢰서 상자로 몸을 던졌다. 횃불을 떨어뜨려 모든 증거를 불태워버리려는 수작이었다.


‘어림없다.’


엽무강은 오른손 손가락 사이에 끼워두었던 얇고 강인한 암기, 묵철 침(Mukcheol-chim) 한 자루를 묵혼심법의 기운을 실어 튕겨냈다.


*슝!*


빛을 반사하지 않는 검은 침이 안개를 뚫고 날아가 살수의 손목 관절을 정확히 관통했다.


*퍽!*


“아아악!”


살수의 손목이 두꺼운 오크나무 벽면에 단단히 박혀 고정되었다. 사내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엽무강은 이미 휠체어에서 내린 듯한 고속의 보법으로 사내의 등 뒤에 당도해 있었다. 철척비의 차가운 칼날이 사내의 목줄기를 깊숙이 가르고 지나갔다.


사내가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쓰러지자, 밀실 내부에는 다시 한 번 무거운 정적이 찾아왔다.


엽무강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한골산 가루의 부작용과 한독이 겹치며 폐부 깊은 곳에서 뜨거운 피가 울컥 솟구쳐 올랐다. 그는 검은 피를 바닥에 조용히 토해낸 뒤, 맹렬하게 뛰는 심장을 무심선(Mindless Zen)으로 다시 가라앉혔.


그는 벽면에 박힌 살수의 손목에서 묵철 침을 회수하고, 책상 위에 놓인 철제 금고를 향해 걸어갔.


철척비의 칼날 끝에 묵기를 실어 금고의 정밀한 자물쇠 홈을 사정없이 쑤셔 넣었다. 내력의 파동이 자물쇠 내부의 톱니바퀴들을 소리 없이 파괴했다.


*쩌적.*


금고 문이 열리며 내부의 극비 문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사공표가 직접 작성한 ‘귀신 살수 암살 의뢰서’였다. 자신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Heukmuga의 일류 살수들을 고용하려 했던 구체적인 계약서였다.


그리고 그 아래, 엽무강의 눈동자를 분노로 이글거리게 만든 진짜 물증이 나타났다.


사공혁이 정무맹 파견 감찰관 제갈현에게 막대한 뇌물과 밀수 은괴를 바치고, 가문의 정통 비전 도보인 ‘무경도보’의 핵심 구결을 통째로 넘겨주기로 약속한 비밀 밀약 장부였다.


장부의 마지막 장에는 정무맹의 붉은 직인과 사공혁의 수결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단순한 문파 내부의 반란이 아니라, 정파의 맹주 백무현의 묵인 아래 무경도문을 통째로 집어삼키려 한 거대한 음모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배신자 놈들…… 결국 가문을 통째로 팔아넘겼구나.”


엽무강은 장부와 암살 의뢰서를 방수포 가죽 주머니에 소중히 싸서 품속 깊숙이 밀어 넣었다. 이것이야말로 향후 1단계 최종장에서 정무맹의 위선을 만천하에 폭로할 결정적인 무기가 될 터였다.


그는 밀실 구석에 놓인 기름 항아리들을 아지트 천막과 목조 가구 사방에 뿌렸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횃불을 던졌다.


*화르륵!*


순식간에 붉은 불길이 밀실 전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가 천장으로 솟구치며 아지트의 썩은 흔적들을 태워버렸다. 엽무강은 연기 속에서 기침을 참으며, 천장의 좁은 환기구 들보 위로 소리 없이 신형을 날려 숨었다.


그때였다.


밀실 외부의 철제 문 너머에서 대지를 흔드는 듯한 강력한 내력의 파동이 밀려왔다. 푸른 번개의 기운, 뇌전진기(⚡)의 날카로운 파동이 불타는 연기 속을 뚫고 엽무강의 청이안 감각을 사정없이 때렸다.


우문패였다.


Heukmuga의 비밀 지부가 불탄다는 첩보를 듣고 폭풍처럼 달려온 일류 고수. 놈이 뿜어내는 가공할 만한 뇌전의 기운이 불타는 입구 너머에서 서서히 좁혀오고 있었다.


불타는 아지트 대들보 위에서 장부를 품에 넣은 엽무강이, 멀리서 달려오는 우문패의 매서운 뇌전 기운을 느끼며 조용히 미소 짓는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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