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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더미 속에서 찾은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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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지문 너머의 그림자가 문고리를 잡고 미세한 쇳소리를 내며 문을 열기 시작했다.


바스락.


안개에 젖은 문고리가 천천히 돌아가는 소리가 엽무강의 청이안(Hearing-Eye)에 벼락처럼 내리쳤다. 귀식공(Turtle Breathing Technique)을 전개한 그의 몸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심장은 멈췄고, 허파의 움직임 또한 완전히 정지했다. 초소 바닥에 엎드린 그의 모습은 그저 매질을 견디다 못해 잠든 비천한 늙은 노예, 혹은 숨이 끊어진 송장과 다름없었다.


끼이익.


낡은 목조문이 열리며 밤안개와 함께 축축하고 비린 바람이 초소 안으로 밀려들었다. 문틈으로 들어온 희미한 등불 빛이 엎드린 엽무강의 등덜미를 비추었다. 가죽 장화가 흙바닥을 딛는 소리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한 놈. 호흡이 얕고 발끝이 가볍다. 하지만 내력의 깊이는 삼류 수준에 불과해.’


엽무강은 피부 표면으로 전해지는 기류의 미세한 떨림만으로 침입자의 신분을 파악했다. 순찰대장 사공표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하급 감시꾼, 한구(韓九)였다. 낮 동안 엽무강의 주변을 맴돌며 쥐새끼 같은 눈초리를 빛내던 자가 결국 야간 순찰의 틈을 타 초소까지 기어들어 온 것이다.


한구는 코를 킁킁거리며 초소 안을 두리번거렸다. 그의 손에는 낮게 가라앉은 초롱불과 함께 칼자루가 쥐여 있었다. 엽무강이 숫돌에 칼을 갈던 미세한 피비린내나 쇳가루 냄새를 맡으려는 심산이 분명했다.


툭. 툭.


한구가 장화 끝으로 엎드려 있는 엽무강의 갈비뼈를 거칠게 걷어찼다.


“어이, 절름발이. 죽었냐, 살았냐?”


지독하리만큼 차가운 침묵이 초소를 지배했다. 엽무강은 귀식공의 상태를 유지한 채, 전신의 모든 감각을 고요한 무심선(Mindless Zen)의 영역으로 밀어 넣었다. 심장이 뛰지 않으니, 살의도 분노도 맥박을 타고 흘러나오지 않았다. 한구의 눈에 비친 엽무강은 그저 온기가 가셔가는 고깃덩어리일 뿐이었다.


“쯧, 정말로 뒈진 건가? 사공표 대장님이 너무 세게 밟아놓긴 했지.”


한구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엽무강의 목덜미에 손을 대려던 찰나였다. 엽무강은 찰나의 순간, 뼈 속 깊은 골수에 가두어 두었던 묵기(Silent Qi)를 아주 미세하게 풀어 심장 근육을 자극했다.


쿵.


멈추었던 심장이 아주 느리고 무겁게 한 번 뛰었다. 동시에 엽무강은 입술을 반쯤 벌리고 침을 흘리며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아이고! 귀신이야! 장문인 선조님의 귀신이 나타났다요!”


그는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초소 구석의 흙벽에 몸을 들이받았다. 초점을 잃고 흐릿하게 풀린 눈동자, 입가에 허옇게 번진 침, 그리고 공포에 질려 덜덜 떠는 온몸의 떨림까지. 그것은 완벽한 광인의 모습이었다.


“으악! 이 미친 절름발이 새끼가!”


갑작스러운 비명에 놀란 한구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검을 반쯤 뽑아 들었다. 등불 빛에 드러난 엽무강의 얼굴에는 오직 비굴함과 광기만이 가득했다.


“헤헤, 대장님? 대장님이 귀신을 쫓아내 주신 겁니까요? 소인이 밤마다 무서운 꿈을 꿉니다요, 헤헤헤!”


엽무강은 부러진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며 한구의 장화 깃을 붙잡으려 기어갔다. 그의 바지 밑단 틈새로 진흙과 나무껍질을 굳혀 만든 가짜 다리 깁스(부목)가 흉측하게 드러나 있었다. 지독한 오물 냄새와 땀내가 한구의 코를 찔렀다.


“더러운 새끼! 저리 꺼져!”


한구는 혐오감에 침을 뱉으며 엽무강의 가슴을 발로 차버렸다. 엽무강은 뒤로 벌렁 자빠지며 흙바닥을 굴렀지만, 여전히 바보 같은 멍청이 미소(Idiot Smile)를 지으며 놋전 세 푼을 품에 소중히 안아 들었다.


“헤헤, 돈이다. 대장님이 주신 귀한 돈…….”


“미친놈, 밤낮으로 지랄을 하는구나. 냄새나서 더는 못 있겠네.”


한구는 코를 막으며 침을 한 번 더 뱉고는 서둘러 초소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멀어져 가는 그의 발소리가 삼십 장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엽무강은 흙바닥에 누워 헤실헤실 웃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방이 고요해진 순간.


누워 있던 엽무강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입가의 침을 낡은 소매로 닦아내며, 그는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한구의 의심을 임시방편으로 넘기긴 했으나, 놈의 쥐새끼 같은 눈초리가 언제 다시 초소를 향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한구…… 놈이 사공표에게 쓸데없는 밀고를 하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


다음 날 아침, 무경산 서쪽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듯한 음산한 날씨 속에서, 엽무강은 평소보다 더욱 심하게 다리를 절뚝거리며 문파 서쪽 구석으로 향했다.


그가 자처한 오늘의 노역 구역은 바로 ‘도문 쓰레기장’이었다.


과거 무경도문의 영광이 서려 있던 전대 장문인 엽천웅의 처소 뒤편, 이제는 온갖 깨진 기와와 부러진 목검, 오물과 쓰레기들이 투기 되어 악취가 진동하는 황량한 구덩이였다. 사공혁 일파가 문파를 장악한 이후, 그들은 전대 장문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그의 유품과 서적들을 모두 무가치한 쓰레기라며 이곳에 내다 버렸다.


“어이, 절름발이. 거긴 냄새가 지독할 텐데 제 발로 청소를 가겠다고?”


산문 초소 옆을 지나던 조기풍이 엽무강을 보며 낄낄거렸다.


“헤헤, 사형님. 소인이 냄새나는 걸 좋아합니다요. 깨진 기와 조각이라도 주워서 초소 벽 틈새를 막으려 합니다요, 헤헤.”


“미친놈, 평생 오물이나 치우며 살아라.”


조기풍의 비웃음을 뒤로하고, 엽무강은 거대한 대나무 빗자루와 낡은 쓰레기 자루를 든 채 쓰레기장 구덩이로 내려갔다. 가파른 흙비탈을 내려갈 때마다 부러진 오른쪽 무릎 관절에서 기괴한 마찰음이 울렸지만, 그는 무심선의 내력으로 통증을 억누르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구덩이 안은 생각보다 더 참혹했다. 전대 문도들이 연마하던 수많은 목검과 철도 조각들이 녹슨 채 오물 속에 처박혀 있었고, 엽천웅이 평생을 모았던 수많은 서책이 썩어가고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구덩이 한구석에서 쇠붙이를 수거하는 맑은 금속음이 들려왔다. 등짐을 지고 돋보기를 쓴 채 고철을 분류하는 늙은 사내, 폐품 수집상 황씨(黃氏)였다. 그는 사공혁 일파의 묵인 아래 문파의 고철과 부러진 무기들을 수거해 가는 상인이었으나, 실상은 전대 장문인에게 은밀한 보은의 마음을 품고 있는 사내였다.


황씨는 엽무강이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것을 보았지만, 아는 척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가볍게 기침을 하며 주변을 순찰하는 무사들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를 몸으로 은밀히 가려주었다.


스슥. 스스슥.


엽무강은 빗자루질을 하는 척하며 오물과 썩은 종이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의 청이안 감각이 쓰레기더미 밑바닥에 묻힌 미세한 종이의 질감을 찾아 나섰다. 사공혁 일파가 불태우고 찢어버린 엽천웅의 유품들 중, 그들이 미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버린 무경도문의 진짜 정수, ‘무경도보 잔해’가 어딘가에 묻혀 있을 터였다.


‘어디에 있지? 스승님의 숨결이 깃든 진짜 도법의 구결이…….’


그는 빗자루 끝에 미세한 묵기를 실어 흙더미를 조심스럽게 헤집었다. 먼지가 일어나지 않도록 공기의 흐름을 제어하는 그의 비질은 지극히 정교했다. 황씨는 엽무강의 움직임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위화감을 눈치챘지만, 묵묵히 고철을 자루에 담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때였다. 오물과 썩은 가죽 주머니 사이에서 칠흑 같은 가죽 표지의 찢어진 책장 조각이 엽무강의 손끝에 닿았다. 물에 젖어 얼룩덜룩해졌으나, 그 종이의 재질은 일반 서책과 달리 강철보다 질긴 영수(靈獸)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엽무강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는 빗자루를 비스듬히 쥐고 엎드려 쓰레기를 줍는 척하며 그 가죽 조각을 집어 올렸다. 썩은 개밥 그릇 밑에 깔려 있던 가죽 조각에는 붉은 안료로 기괴하게 그려진 도법의 초식 궤적과 함께 가느다란 구결이 적혀 있었다.


‘칼끝이 공기를 가를 때, 진동의 파동을 스스로 상쇄하라.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오직 참격의 실체만이 남으리니…….’


무경도문의 정통 도법이자 금기시된 무학, ‘정적의 도법’ 제1성 무풍(Windless)의 핵심 구결이었다. 사공혁 일파가 무가치한 고서 조각이라 여겨 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엽무강은 가슴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끼며 그 가죽 조각을 품속의 낡은 옷자락 안감 틈새로 신속하게 밀어 넣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바스락.


구덩이 위쪽 흙비탈에서 낙엽을 밟는 불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엽무강의 청이안이 즉시 반응했다. 발소리의 무게중심, 째진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집요한 시선.


한구였다.


놈은 낮 동안에도 엽무강을 감시하라는 사공표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엽무강이 쓰레기장을 청소하겠다고 자처한 것 자체를 의심쩍게 여겨 뒤를 밟은 것이다.


“어이, 절름발이 무강이.”


한구가 가죽 채찍을 손가락에 감으며 비탈을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그의 한 손은 이미 허리의 칼자루를 꽉 쥐고 있었다. 째진 눈에는 독기 어린 의심이 가득했다.


“너 방금 품속에 뭘 집어넣었냐?”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고철을 줍던 황씨의 손길이 멈췄지만, 황씨 역시 감히 일류 무사들의 눈앞에서 나설 수 없는 삼류 상인에 불과했다.


엽무강은 빗자루를 쥔 채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실실 웃었다.


“헤헤, 사형님? 소인이 썩은 개밥 그릇을 주웠습니다요. 초소에서 밥그릇으로 쓰려고…….”


“개소리 마라.”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한구가 검을 반쯤 뽑아 들었다. 시퍼런 칼날이 먹구름 낀 하늘빛을 받아 번뜩였다. 한구는 삼류 무사였지만, 엽무강처럼 단전이 깨진 불구를 제압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똑똑히 봤다. 가죽 조각 같은 걸 품속에 쑤셔 넣더군. 사공혁 장문인께서 전대 장문인의 유품이나 도법 서적을 소지하는 자는 반역죄로 다스린다고 하셨다. 당장 품속에 숨긴 걸 꺼내라.”


한구가 한 걸음씩 다가왔다. 그의 검끝이 엽무강의 목덜미를 겨냥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 자리에서 참수할 기세였다. 품속의 무경도보 잔해가 발각되는 순간, 모든 복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연희의 목숨까지 위험해진다.


‘여기서 놈을 베어야 하는가?’


엽무강의 손가락이 철척비의 손잡이 끝 홈을 향해 미세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청이안 감각이 쓰레기장 위쪽 언덕 너머에서 순찰을 도는 다른 무사들의 발소리를 감지했다. 지금 한구를 죽이면 비명 소리가 나지 않더라도 실종 사건이 너무 일찍 터져 문파 전체가 조기에 폐쇄될 터였다. 그렇게 되면 사공표를 단죄할 기회조차 잃게 된다.


살아서 이 위기를 넘겨야 한다. 철저히 불구의 신체를 이용한 기만으로 놈의 의심을 꺾어야만 했다.


엽무강은 결단을 내렸다. 그의 뇌리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사, 사형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소인이 잘못했습니다요!”


엽무강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는 척했다. 그리고 일부러 오른쪽 다리를 기괴한 각도로 꺾으며 흙바닥 위로 자빠졌다.


동시에, 그는 뼈 속 골수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묵기를 오른쪽 무릎 관절로 급격히 밀어 넣었다. 어긋나 있던 무릎 뼈마디를 내력의 강한 압박으로 강제로 비틀어 어긋나게 만드는 비전 기술, 골음 기만(骨音 기만)이었다.


우득! 뿌드득!


구덩이 내부에 소름 끼치는 뼈 부러지는 파열음이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진짜 다리가 으스러질 때 나는 끔찍한 물리적 충격음이었다.


“아아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가 부러진다요!”


엽무강은 바닥을 뒹굴며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으스러진 무릎 관절에서 뼈 조각들이 서로 마찰하며 엄청난 통증이 척추를 타고 뇌리를 때렸다. 그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지고 전신이 덜덜 떨렸다. 그것은 연기가 아닌, 뼈를 깎는 실제 고통이 동반된 처절한 자학이었다.


“으, 으악! 더러운 소리 내지 마라!”


한구는 엽무강의 무릎에서 울려 퍼진 지독한 뼈 파열음과 기괴하게 꺾인 다리의 형태를 보고 순간적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 혐오감과 소름이 그의 전신을 감쌌다.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한구의 시선이 뒤틀린 엽무강의 다리와 가짜 다리 깁스의 딱딱한 진흙 부목으로 완전히 쏠린 그 일 촉 즉 발의 찰나.


엽무강의 왼손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공기의 흐름조차 찢지 않는 무풍의 속도였다. 그는 품속에서 무경도보 잔해를 꺼내어, 자신이 들고 있던 낡은 쓰레기 자루 밑바닥의 썩은 음식물과 오물 더미 깊숙한 곳으로 소리 없이 밀어 넣었다. 슥, 하는 미세한 마찰음조차 한구의 귓가에는 들리지 않았다. 엽무강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쓰레기장의 정적을 완전히 찢어발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사형님! 다리가 완전히 조각났습니다요! 제발 살려주십시오!”


한구는 침을 뱉으며 검을 거칠게 거두고 엽무강에게 다가왔다.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은 놈은 엽무강의 낡은 옷자락을 억척스럽게 움켜쥐고 위로 잡아당겼다.


찌익!


낡은 삼베옷이 찢어지며 엽무강의 앙상한 가슴팍이 드러났다. 한구는 거친 손길로 엽무강의 품속을 샅샅이 뒤졌다. 그가 품에서 꺼낸 것은 썩은 나무 개밥 그릇과, 바닥에 뒹굴던 먼지 묻은 놋전 세 푼이 전부였다.


“……이게 전부냐?”


한구가 허탈한 표정으로 썩은 밥그릇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나무 그릇이 깨지며 구더기 몇 마리가 기어 나왔다. 지독한 악취에 한구는 미간을 찌푸렸다.


“헤헤, 사형님…… 소인의 소중한 밥그릇인데…….”


엽무강은 눈물과 침으로 범벅된 얼굴을 한 채 부러진 다리를 움켜쥐고 비굴하게 조아렸다. 그의 뒤틀린 다리 깁스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려 흙바닥을 적셨다. 한구가 직접 손으로 다리를 만져보아도 완전히 뼈가 어긋나 움직이지 않는 무능력자 불구의 신체일 뿐이었다.


“퉤! 재수 없는 절름발이 새끼. 평생 썩은 쓰레기나 뒤지다 뒈져라.”


한구는 더럽다는 듯 엽무강의 뺨을 가죽 장화 끝으로 가볍게 차버린 뒤, 침을 뱉고 구덩이 위로 걸어 올라갔다. 놈의 발소리가 쓰레기장 멀리 사라질 때까지, 엽무강은 진흙바닥에 엎드린 채 신음했다.


고요함이 다시 찾아왔다.


고철을 분류하던 황씨가 조용히 다가와 엽무강의 쓰레기 자루를 묶어주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조심하게, 무강이. 놈들의 눈은 사방에 있네.”


황씨는 엽무강의 품에서 나온 것이 진짜 썩은 그릇뿐이었음을 보았음에도, 더 이상 묻지 않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갔다. 전대 장문인의 은혜를 아는 노인은 엽무강의 눈빛에 담긴 깊이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엽무강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비굴하게 울부짖던 그의 얼굴에서 모든 감정이 씻겨 나갔다. 어깨와 무릎의 상처가 터져 피가 흘렀지만, 그의 눈빛은 오히려 칼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그는 쓰레기 자루 밑바닥에 숨겨둔 무경도보 잔해를 다시 꺼내어 품속 깊은 곳에 안전하게 밀어 넣었다. 비록 다리를 강제로 꺾어 관절 마찰음을 내는 과정에서 오른쪽 무릎 뼈마디가 완전히 어긋나 지독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도보의 구결을 손에 넣은 대가로는 지극히 하찮은 것이었다.


그는 찢어진 옷자락을 여미며 빗자루를 지팡이 삼아 짚고 일어섰다. 한구의 의심은 완전히 꺼지지 않았을 터였다. 놈은 분명 사공표에게 돌아가 문지기의 거동이 미세하게 수상하다고 보고할 터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엽무강은 멀어지는 한구의 등 뒤를 바라보며, 그의 목덜미를 베어버릴 밤의 순간을 머릿속으로 정밀하게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 쓰레기장 위쪽 안개 속에서 한구가 멈춰 서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놈의 매서운 목소리가 구덩이 아래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야, 절름발이 무강이. 품속에 든 거, 진짜 그게 전부냐? 이리 와서 다시 보여줘 봐.”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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