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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향에 숨겨진 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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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안개는 피비린내를 쉽게 지우지 못했다. 산문 기둥에 걸려 있던 사공표의 머리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며 남긴 붉은 흔적은, 아침 이슬에 녹아 석판 틈새로 검붉게 스며들고 있었다.


엽무강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 낡은 대나무 빗자루를 쥐었다. 빗자루 자루를 쥔 그의 오른손 손목에는 우문패가 지적했던 깊은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평범한 잡역부라면 결코 가질 수 없는, 수만 번의 극단적인 발도와 참격이 만들어낸 피의 흉터였다.


‘의심을 사기 시작했다.’


엽무강은 빗자루질을 하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젯밤 낙조애 절벽에서 사공표와 사투를 벌이며 입었던 상처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가죽 압박대로 억지로 고정해 둔 오른쪽 무릎 관절은 디딜 때마다 뼈마디가 서로 갈리는 듯한 극통을 유발했고, 왼쪽 어깨에 깊숙이 박혔던 채찍의 검창(劍槍) 상처는 옷자락을 적시며 뜨거운 피를 찔끔찔끔 흘려보내고 있었다.


한골고의 약효는 이미 끝난 지 오래였다. 전신 뼈마디가 무너지듯 아려오는 고통 속에서, 엽무강은 오직 정신력 하나로 비굴한 멍청이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터벅, 터벅.


그때, 가벼우면서도 대지를 찌르르 울리는 기괴한 발소리가 안개 속에서 걸어 나왔다.


검은 가죽 무복을 입고 거구의 체구를 지닌 사내, 우문패였다. 그의 등 뒤에 천으로 묶인 거대한 뇌절도에서는 미세한 푸른 뇌전의 기운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밤안개를 태우고 있었다. 일류 고수의 삼엄한 살기가 산문 입구를 가득 채웠다.


“어이, 절름발이.”


우문패의 차가운 목소리가 엽무강의 정수리 위로 떨어졌다. 엽무강은 즉시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입가를 반쯤 벌리고 침을 흘리며, 초점을 잃은 흐릿한 눈동자로 그의 가죽 장화를 바라보았다.


“아, 아이고! 우문 대협님! 새로 오신 위대한 대협님이시군요! 소인이 마당을 깨끗이 쓸어 놓겠습니다요, 헤헤!”


“말은 번지르르하군.”


우문패가 엽무강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매서운 안광이 엽무강의 왼쪽 어깨와 오른쪽 다리를 집요하게 훑었다.


“어젯밤 낙조애에서 사공표가 목이 잘려 죽었다. 놈의 몸뚱이는 절벽 아래로 사라졌고, 머리만 산문에 걸렸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낙조애 주변에 떨어진 핏자국 중에는 사공표의 것이 아닌, 미세하게 다른 맥박의 피가 섞여 있더군.”


우문패의 손이 번개처럼 뻗어 나와 엽무강의 왼쪽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콰아아아!


그의 손끝에서 푸른 뇌전진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와 엽무강의 어깨 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은 기맥을 강제로 탐색하여 무공 수위를 확인하려는 일류 고수의 악랄한 수법이었다.


‘큭……!’


엽무강은 심장이 멎는 듯한 극통을 느꼈다. 뇌전의 열기가 어깨의 검창 상처를 자극해 당장이라도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피가 얇은 누더기 옷을 적시는 순간, 그의 정체는 탄로 나고 모든 복수극은 여기서 종결될 터였다.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엽무강은 즉시 불가 비전의 참선법인 무심선(Mindless Zen)을 전개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살의와 분노를 얼음처럼 차갑게 얼려 심연 속으로 가라앉혔다. 동시에 묵혼심법 1단계인 묵기(Silent Qi)를 발동해, 전신의 미세한 내공을 깨진 단전이 아닌 척추와 골수 깊은 곳으로 가라앉혀 평범한 범인(Phàm인)의 체취만을 남겼다.


그와 동시에, 엽무강은 연골유신술(Soft Bone Flow)을 극단적으로 전개했다. 우문패가 움켜쥔 어깨 관절을 스스로 미세하게 탈골시켜 뒤틀어 버린 것이다. 관절이 뒤틀리며 상처 부위의 혈관이 강제로 압착되었고, 뿜어져 나오려던 피가 뼈마디 사이에 갇혀 멈췄다.


“아아악! 대협님! 아픕니다요! 뼈가 부러집니다요! 살려주십시오!”


엽무강은 흙바닥에 주저앉아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얼굴 근육을 완전히 풀어 침과 눈물을 범벅으로 흘리는 바보의 몰골이었다.


우문패는 엽무강의 어깨를 쥔 채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뇌전진기가 엽무강의 기맥을 헤집었으나, 느껴지는 것은 으스러진 뼈마디와 아무런 내공 반발도 없는 텅 빈 경맥뿐이었다. 묵기는 골수 속에 완벽히 숨겨져 있었고, 뒤틀린 관절 덕분에 출혈조차 감지되지 않았다.


“정말로 개뼈다귀 같은 불구자 놈이군. 내력의 반발이 전혀 없어.”


우문패가 혀를 차며 손을 거두려던 찰나, 그의 예리한 눈초리가 엽무강의 옷자락 안쪽으로 미세하게 스며드는 붉은 핏기운을 포착했다. 우문패의 눈빛이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놈이 다시 도검을 쥐려 했다.


“아이고, 우문 나으리! 새로 오신 귀한 손님께서 왜 이리 비천한 절름발이를 붙잡고 힘을 쓰십니까요!”


그때, 구수한 만두 향과 함께 자욱한 하얀 김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산문 밖 삼거리에서 허름한 만두 노점을 운영하는 귀먹은 일매 노파였다. 그녀는 낡은 무명 옷을 입고 허리가 굽은 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무쇠 만두 판을 들고 넉살 좋게 끼어들었다.


“새벽부터 찐 따뜻한 고기만두요! 우리 문파를 지켜주러 오신 위대한 대협님께 대접하려 가져왔으니, 어서 맛 좀 보시구려!”


일매 노파가 만두 판을 우문패의 코밑으로 들이밀었다. 만두 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욱한 수증기와 기름진 냄새가 우문패가 펼쳐두었던 예리한 기류 흐름을 완벽하게 교란했다. 우문패는 미간을 찌푸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시끄러운 노파로군. 치워라.”


우문패는 경멸 어린 눈빛으로 엽무강을 한 번 더 노려본 뒤, 뇌절도를 고쳐 매며 장문인 처소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놈의 거대한 신형이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엽무강은 진흙바닥에 엎드린 채 바들바들 떨었다.


“에구, 불쌍한 우리 무강이. 다리가 이 지경인데 매일 매질을 당하니 원.”


일매 노파가 혀를 차며 엽무강을 부축해 일으켰다. 그녀의 거친 손길이 엽무강의 부러진 오른쪽 무릎과 어깨 상처를 스쳤다.


“가게로 가자꾸나. 따뜻한 만두라도 먹어야 몸이 풀리지.”


엽무강은 비틀거리며 빗자루를 지팡이 삼아 일매 노파의 뒤를 따랐다. 산문을 벗어나 삼거리 모퉁이에 위치한 허름한 포장마차에 도착하자마자, 엽무강은 긴장이 풀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입가로 검붉은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우문패의 뇌전진기를 맨몸으로 받아내느라 내장이 미세하게 뒤틀린 탓이었다.


“무식한 놈의 진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구나.”


일매 노파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차갑게 변했다. 평소의 귀먹고 어리숙한 노파의 음색이 아니었다.


그녀는 엽무강의 왼쪽 어깨와 오른쪽 무릎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일매 노파의 손끝에서 얼음처럼 차갑고 맑은 진기, 전대 무경도문의 비전인 빙하 내력(빙심결)이 흘러나왔.


스으으으.


차가운 한기가 엽무강의 상처 부위를 감쌌다. 우문패의 뇌전진기에 의해 불타오르던 경맥의 열기가 가라앉았고, 연골유신술로 억지로 막아두었던 어깨의 검창 상처가 미세한 얼음막으로 덮이며 출혈이 완전히 멎었다. 으스러진 무릎 관절 내부의 염증과 고여 있던 피 역시 빙하 진기에 의해 소리 없이 가라앉았다.


“큭…….”


엽무강은 이가 맞부딪히는 오한 속에서도 전신 골격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일매 노파의 빙하 진기는 그의 묵혼심법 골수 속 묵기와 기묘한 상성으로 맞물려, 흐트러졌던 묵기를 더욱 단단하고 깊숙하게 골격 속으로 침잠시켰다.


“고맙습니다, 사숙(師叔).”


엽무강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일매 노파는 말없이 따뜻한 고기만두 한 알을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사공혁이 불러들인 우문패는 보통내기가 아니다. 놈의 뇌절도는 공기의 흐름을 찢어 발기는 성질을 지녔으니, 네 정적의 도법이 완벽하지 않다면 일격에 파해당할 게야. 당분간은 칼을 뽑지 말고 몸을 웅크려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놈들의 수색망이 좁혀오기 전에 문파의 비전 서고에 잠입해 무경도보의 나머지 구결을 찾아내야 합니다. 단전을 우회하는 기맥을 완성하려면 시간이 없습니다.”


그때, 허름한 만두 가게 안으로 회색 무복을 단정하게 입은 중년 무인 하나가 들어섰다. 사공혁 파벌의 눈치를 보며 기회를 엿보고 있던 내부의 동조자, 한무길(韓武吉)이었다.


한무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탁자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만두를 주문하는 척하며 엽무강의 옆자리에 비스듬히 앉아 나직하게 읊조렸다.


“서고의 늙은 쥐들이 오늘 밤 자시(子時)에서 축시(丑時) 사이에 교대를 한다더군. 사공혁이 수색망을 넓히느라 비각 주변의 정예 경비 무사들을 대거 낙조애 쪽으로 이동시켰네. 오늘 밤이 서고 깊은 곳으로 침투할 유일한 기회야.”


엽무강은 만두를 입에 넣으며 눈빛을 빛냈다. 한무길이 건넨 정보는 비각 잠입의 완벽한 틈새를 가리키고 있었다.


“알겠네. 흔적은 남기지 않겠네.”


“조심하게. 서태윤 장로가 서고 장부를 매일 검사하고 있으니, 책장 하나라도 흐트러지면 즉시 들통날 걸세.”


한무길은 만두 값을 탁자에 내려놓고 소리 없이 가게를 빠져나갔다.


엽무강은 마지막 만두를 씹어 삼키며 빗자루를 다시 쥐었다. 일매 노파의 치료 덕분에 다리의 통증은 일시적으로 가라앉았으나, 왼팔의 감각은 우문패의 내력 충격으로 인해 미세하게 마비되어 있었다. 이틀 동안은 왼팔을 쓰기 힘들 터였다. 오직 오른손 손목의 탄력만으로 비각의 기관 장치와 경비병들을 제압해야 했다.


“조심히 가거라, 무강아. 바람이 차구나.”


일매 노파의 귀먹은 척하는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엽무강은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를 더욱 과장하며 산문 입구의 문지기 초소를 향해 느릿느릿 걸어갔.


자욱한 안개 속을 헤치며 초소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쉬이이익!


갑작스럽게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안개 속에서 명동했다.


탁!


엽무강이 디디려던 가짜 다리 깁스가 채워진 오른쪽 발가락 바로 1인치 앞 진흙바닥에, 푸른 뇌전의 기운이 서린 예리한 단도 한 자루가 수직으로 깊숙이 박혀 들어왔다. 단도의 손잡이가 파르르 떨리며 주변의 진흙을 까맣게 태워갔다.


엽무강은 걸음을 멈춘 채 바들바들 떨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히, 히익! 귀신이다! 벼락 귀신이 또 나타났다요!”


그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들자, 안개 너머 초소 지붕 위에 뇌절도를 메고 걸터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우문패의 잔인한 외눈과 마주쳤다. 우문패의 손끝에서 또 다른 번개 기운이 파르르 타오르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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