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 뒤에 숨겨진 칼날
삭풍이 무경산(無景山)의 가파른 절벽을 타고 내려와 무경도문(無景刀門)의 거대한 산문을 사정없이 때렸다. 한때 중원 무림에서 가장 고결하고 예리한 도법을 자랑하던 문파였으나, 지금의 산문은 그저 피비린내와 탐욕으로 가득 찬 가축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산문 입구의 바닥은 얼어붙은 흙과 자갈로 거칠었다. 그 위를 한 사내가 쓸고 있었다.
낡은 청색 삼베옷을 입고 산발을 한 사내, 엽무강(葉武剛)이었다. 그의 오른쪽 다리는 기괴한 각도로 꺾여 있었고,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몸 전체가 크게 뒤틀렸다.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는 볼품없기 짝이 없었으며, 그의 손에 쥔 대나무 빗자루는 자루가 군데군데 갈라져 테이프 대신 낡은 노끈으로 겨우 묶여 있었다.
스슥. 스스슥.
흙바닥을 쓰는 빗자루 소리가 고요한 산문에 울려 퍼졌다. 지나가는 하급 무사들이 그의 절뚝이는 뒷모습을 보며 비웃음을 던졌지만, 엽무강은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비질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 비질은 평범한 노역이 아니었다.
엽무강의 손목은 미세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빗자루가 지면에 닿는 순간, 손목의 탄력과 상체의 유연성이 완벽한 각도를 이루며 흙먼지를 단 한 톨도 일으키지 않고 쓸어내렸다. 빗자루 끝에 실린 미세한 내력이 공기의 저항을 제로로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전대 장문인 엽천웅(葉天雄)이 남긴 도법의 정수, ‘정적의 도법’ 중 제1성인 ‘무풍(無風)’의 경지를 일상 속에서 단련하는 ‘무음 빗자루질 수련’이었다.
‘바람을 소유하려 하지 말고, 바람의 일부가 되라.’
양아버지이자 스승이었던 엽천웅의 목소리가 환영처럼 뇌리를 스쳤다. 엽무강은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통증을 억누르며 비질의 속도를 조절했다. 그의 단전은 이미 수년 전, 찬탈자 사공혁(司空赫)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일반적인 기공 수련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망치로 내려쳐 부러뜨린 뒤, 그 으스러진 뼈마디와 골수 속에 기운을 침잠시키는 기형적인 운기법을 고안해 냈다.
낮의 그는 침을 뱉어도 실실 웃는 비천한 절름발이 문지기 ‘무강’일 뿐이었다.
“어이, 절름발이 개새끼야. 마당 구석에 낙엽이 그대로잖아!”
거친 고함 소리와 함께 무거운 군화 발이 엽무강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퍽, 하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엽무강의 몸이 흙바닥 위로 볼품없이 굴러 떨어졌다. 빗자루가 손에서 빠져나가 먼지 구덩이 속으로 처박혔다.
그를 걷어찬 자는 무경도문의 신임 순찰대장이자 찬탈자 사공혁의 사촌 동생인 사공표(司空彪)였다. 붉은색 순찰대장 복장을 한 그의 허리에는 가시가 박힌 뱀 가죽 채찍이 매달려 있었고, 얼굴에는 비열한 탐욕이 가득했다. 그의 뒤에는 심복인 부조장 배무덕(裵武德)이 비웃음을 지으며 버티고 서 있었다.
“아이고, 대장님! 소인이 미처 눈이 어두워 그곳을 보지 못했습니다요! 용서해 주십시오, 대장님!”
엽무강은 바닥에 엎드린 채 즉시 멍청이 미소(Idiot Smile)를 지었다. 입술을 반쯤 벌려 침을 흘리고, 초점을 잃은 흐릿한 눈동자로 사공표의 장화를 바라보며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단전의 파편들이 피비린내를 풍기며 요동쳤지만, 그의 안면 근육은 완벽하게 통제되어 있었다. 어떠한 살기도, 무인의 기개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쯧, 더러운 놈. 엽천웅이 거둔 고아 새끼라더니, 다리가 부러지면서 대가리까지 완전히 돌아버렸군.”
사공표는 혐오스럽다는 듯 혀를 차며 엽무강의 부러진 오른쪽 무릎을 가죽 장화 굽으로 짓밟았다.
뿌드득.
으스러진 무릎 관절의 뼈 조각들이 서로 마찰하며 지독한 골음(骨音)을 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척추를 타고 뇌리를 때렸지만, 엽무강은 비명 대신 더욱 기괴하게 헤실헤실 웃었다.
“헤헤, 대장님 장화가 참으로 멋지십니다요. 헤헤헤.”
“미친 새끼. 배무덕, 저 더러운 개뼈다귀에게 놋전 몇 푼 던져주고 가자. 냄새나서 더는 못 서 있겠구나.”
사공표의 지시에 배무덕이 품속에서 하찮은 놋전 세 푼을 꺼내 엽무강의 머리 위로 던졌다. 챙강, 소리를 내며 흙먼지 속에 떨어진 동전 조각들을 향해 엽무강은 기어갔다. 손톱 밑에 흙이 박히는 줄도 모르고 놋전을 소중하게 품에 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사공표와 배무덕은 호탕하게 웃으며 산문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엽무강은 흙바닥에 엎드린 자세를 유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바닥을 기던 엽무강의 상체가 천천히 일으켜 세워졌다. 멍청하게 풀려 있던 눈동자에서 비굴함이 씻겨 나가고, 얼음보다 차갑고 예리한 살기가 안광을 채웠다. 그는 부러진 무릎에서 흐르는 핏물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고통은 이미 그의 오랜 동반자였다.
그는 더러워진 빗자루를 수습해 가슴에 안고, 산문 옆에 딸린 낡고 바람이 새는 작은 목조 문지기 초소로 절뚝거리며 걸어 들어갔다.
***
밤이 찾아왔다.
무경산의 밤은 유독 칠흑 같았다. 찬탈자 사공혁이 장문인 처소에 등불을 밝히고 연회를 즐기는 동안, 산문 입구의 문지기 초소는 어둠과 추위 속에 완전히 방치되어 있었다.
초소 내부의 공기는 얼어붙을 듯 차가웠다. 엽무강은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가부좌를 틀었다.
바지 밑단을 걷어 올리자, 흉측하게 뒤틀린 오른쪽 무릎이 드러났다. 뼈가 어긋난 채 굳어버린 다리는 낮 동안의 매질로 인해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는 품속에서 수양 누이동생 연희(延姬)가 전해준 특제 고약인 ‘한골고’를 꺼내 상처 부위에 두껍게 발랐다. 뼈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지독한 한기가 고통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켰다.
이어 그는 무릎 관절을 강하게 고정해 주는 강철 침이 박힌 쇠가죽 압박대를 다리에 단단히 조여 맸다. 가죽 끈이 살을 파고들 때마다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이 압박대가 없으면 밤의 암살자로서 도약할 때 뼈가 완전히 어긋나 버릴 터였다.
채비가 끝나자, 엽무강은 초소 구석의 썩은 바닥 목판을 들어 올렸다.
그 어두운 틈새 속에서 차가운 묵빛의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낮에는 마당을 쓸던 평범한 대나무 빗자루였으나, 자루의 손잡이 끝 홈을 손목의 탄력으로 가볍게 비틀어 당기자 사각, 하는 소리와 함께 가느다랗고 예리한 묵철 칼날이 부드럽게 전개되었다.
그의 유일한 주무기이자 복수의 칼날, 철척비(Iron Broom Blade)였다.
엽무강은 품속에서 자성을 띤 검은 숫돌인 ‘자성 묵철 숫돌’을 꺼냈다. 철기방 비밀 보관소에서 철노인이 목숨을 걸고 빼돌려준 특수 숫돌이었다. 쇳소리를 빨아들이는 기이한 자성을 지니고 있어, 칼날을 갈아낼 때 발생하는 날카로운 마찰음을 완벽하게 상쇄했다.
슥. 슥.
어둠 속에서 철척비의 얇은 칼날이 숫돌 위를 미끄러졌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오직 자성 묵철 숫돌이 빨아들이는 미세한 진동만이 엽무강의 손끝을 타고 뇌리로 전해질 뿐이었다.
‘사공혁, 사공표, 배무덕…….’
엽무강은 밤마다 칼날을 갈며 가슴속에 새겨둔 배신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되뇌었다. 양아버지를 독살하고, 사형제들을 도륙하며, 자신을 절름발이 노예로 만든 자들. 그들의 목을 벨 날이 머지않았음을 칼날의 서늘한 촉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칼날을 수습한 엽무강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는 시각을 완전히 차단하고, 전대 장문인의 비전 감각 경지인 ‘청이안(Hearing-Eye)’을 전개했다.
초소 벽면의 틈새로 흘러드는 바람 소리가 지워졌다. 대나무 잎이 서로 마찰하는 소리, 밤이슬이 석판 바닥에 떨어지는 미세한 파동이 그의 귀와 피부 표면으로 입체적인 지도가 되어 그려졌다.
삼십 장(丈) 밖, 무경도문 연무장 주변을 순찰하는 삼류 무사들의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다.
‘여섯 명. 걸음걸이가 무겁고 호흡이 불규칙하다. 내공의 깊이는 이류 하기에 미치지 못하는 졸개들.’
엽무강은 그들의 순찰 동선과 호흡 박자를 머릿속으로 기록했다. 밤의 사냥을 위해 적들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은 그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때였다.
스스슥.
대나무 숲의 흔들림과는 다른, 지극히 미세하고 기묘한 마찰음이 청이안의 감각 영역 가장자리에 걸려들었다.
일반적인 순찰 무사들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흙을 딛는 무게중심의 변화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고도의 신법을 익힌 자의 움직임이었다. 그 기척은 문지기 초소 외곽의 자욱한 안개 속을 맴돌며 서서히 엽무강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지? 사공혁의 밀정인가? 아니면…….’
엽무강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그는 즉시 숫돌과 철척비를 바닥 목판 아래로 밀어 넣고 썩은 판자를 덮었다.
동시에 그는 숨구멍을 완전히 닫고 심장 박동을 분당 수 회 이하로 낮추는 극단적인 은신 비술, ‘귀식공(Turtle Breathing Technique)’에 들어갔다.
초소 내부의 온도가 차갑게 식어 내렸다. 엽무강의 호흡과 맥박은 완전히 멈추어, 겉보기에는 차가운 시체와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었다.
뚝. 뚝.
초소 지붕에서 떨어진 밤이슬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그리고 그 기묘한 인기척은, 마침내 엽무강이 누워 있는 문지기 초소의 얇은 목조 벽 바로 바깥에 멈춰 섰다. 얇은 창지문 너머로 안개에 젖은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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