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의 얼어붙은 밤
붉은 레이저 조준선이 태오의 심장 위에서 가늘게 떨리는 순간, 마 대장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지시했다.
피할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 태오의 개조형 열원 추적 안경 너머로 철문을 관통해 들어오는 에너지의 궤적이 선명한 진홍색 선으로 그려졌다. 그것은 단순한 탄환이 아니었다. 제국 안전국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고열 플라즈마 탄환. 닿는 모든 물질을 분자 수준에서 기화시켜 버리는 죽음의 열선이었다.
“서윤, 엎드려!”
태오는 오른팔의 마비된 통증을 억누르며 왼팔로 은서윤의 어깨를 거칠게 낚아챘다. 그녀를 바닥의 탈출용 해치 밑으로 밀쳐냄과 동시에, 그의 몸이 반사적으로 옆으로 굴렀.
콰아아앙-!
귀를 찢는 듯한 폭음과 함께 두꺼운 강철 해치 문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섭씨 1,500도에 달하는 열기가 격납고 내부를 휩쓸었다. 태오가 입고 있던 낡은 가죽 방한 코트의 자락이 열풍에 스치며 타들어 갔고, 그의 왼쪽 어깨 가죽이 검게 그을리며 살을 에는 듯한 화상이 새겨졌다.
“아윽……!”
신음이 새어 나왔지만 멈출 여유는 없었다. 관통된 탄환은 안전가옥 내부의 메인 서버 랙에 직격했고, 이내 거대한 폭발과 함께 붉은 불길이 사방으로 치솟았다. 붉은 불꽃의 정밀 장비들이 차례로 터져 나가며 매캐한 유독가스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태오 씨! 어깨가……!”
해치 아래 통로에서 은서윤이 경악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난 괜찮아. 앞장서!”
태오는 타오르는 화재의 열기를 바라보며 심장을 진정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방을 뒤덮은 화염의 온기가 그의 차가운 심장을 자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머물다간 불길에 휩싸이거나, 뒤이어 들이닥칠 수색 타격대의 총구 앞에 무릎을 꿇게 될 터였다.
두 사람은 무너져 내리는 콘크리트 잔해를 피해 지하 환기구를 따라 미친 듯이 달렸다. 환기구의 끝은 13구역 외곽의 버려진 폐허 철도 야적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 * *
바깥은 영하 80도의 지옥이었다.
폐허 철도 야적장 위로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사방에 널린 녹슨 기관차들의 잔해와 얼어붙은 화물 열차들이 마치 거대한 괴수의 뼈대처럼 어둠 속에 솟아 있었다. 하늘에서는 제국 안전국의 정찰 드론들이 뿜어내는 푸르고 붉은 탐색등 불빛이 눈바람을 뚫고 쉴 새 없이 지면을 훑고 있었다.
“서윤,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야 해.”
태오가 철도 차량의 바퀴 뒤에 몸을 숨기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의 숨결이 공중에 닿자마자 하얀 서리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태오 씨, 그 몸으로 저들을 혼자 상대하겠다는 건가요? 저들은 13구역의 깡패들과는 달라요. 정규 군사 교육을 받은 정예 병력이라고요!”
“알고 있어. 그래서 더더욱 네가 있으면 방해가 돼.”
태오는 냉혹할 정도로 차가운 눈빛으로 은서윤을 바라보았다. 촉각을 잃어가는 그의 오른손은 대검의 손잡이를 느낄 수 없었기에, 그는 왼손으로 대검을 단단히 고쳐 쥐었다.
“박선우의 진료소로 가. 아린이를 지켜라. 그게 내 조건이다.”
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태오의 눈에 서린 서늘한 고집을 꺾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품속에서 소형 감청 단말기를 꺼내 태오의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었다.
“……꼭 살아남으세요. 아직 분석해야 할 데이터가 많으니까.”
서윤이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려 폐철로의 사각지대로 사라졌다. 태오는 그녀의 붉은 열원 실루엣이 완전히 멀어지는 것을 안경 너머로 확인한 뒤, 천천히 철로 중앙으로 걸어 나갔.
눈보라를 뚫고 붉은색 방한 전투복을 입은 제국 안전국 수색 타격대원들이 그를 에워쌌다. 그들의 중심에서, 한 사내가 차가운 눈빛을 번뜩이며 걸어 나왔다. 순찰대 지휘관, 마 대장이었다.
“기어코 쥐새끼처럼 도망쳐 나온 곳이 여기인가, 열량 강탈자 설태오.”
마 대장이 들고 있는 ‘스파크-X’ 열 감지 저격 소총의 총구에서 푸른색 플라즈마 전류가 지지직거리며 불꽃을 튀겼.
“도겸의 다리를 그렇게 만든 힘이 돌연변이 초능력인 줄 알았더니, 과분한 장난감을 주웠더군. 네 가슴팍에서 뛰고 있는 그 심장…… 황실의 극비 자산이지? 얌전히 내놓는다면 네 여동생의 목숨만은 고통 없이 끊어주마.”
그 제안은 태오의 역린을 건드렸다.
태오의 가슴팍 너머로 푸른 빙정 문양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그의 심장 깊은 곳에 봉인된 엔트로피의 핵이 주변의 모든 에너지를 정지시키려는 우주적 공허의 갈증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주변의 눈보라가 그의 살기에 반응하듯 기괴한 소리를 내며 휘몰아쳤다.
“내 동생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
태오의 목소리는 얼어붙은 강철을 긁는 듯한 극저온의 음성으로 변해 있었다.
“건방진 놈. 즉시 사살하라!”
마 대장의 명령과 동시에 수색대원들이 일제히 화염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고열의 플라즈마 탄환들이 어둠을 가르며 태오를 향해 빗발쳤다.
태오는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왼손을 전방으로 뻗었다. 그의 눈에 착용된 개조형 열원 추적 안경이 날아오는 탄환들의 열적 궤적과 내부 에너지를 색상의 흐름으로 완벽하게 분할해 보여주고 있었다.
‘에너지 역류 흡수(Energy Backflow Absorption).’
그것은 단순히 얼음 장막으로 탄환을 막아내는 저급한 방어가 아니었다. 우주의 열역학 제2법칙을 일시적으로 왜곡하여, 날아오는 고열 에너지 자체를 자신의 심장이라는 거대한 싱크(Sink)로 빨아들이는 권능이었다.
슈우우우웁-!
마 대장의 총구에서 발사된 섭씨 1,500도의 플라즈마 탄환이 태오의 왼손바닥에 닿는 찰나, 기괴한 현상이 일어났다. 폭발해야 할 탄환의 진홍색 불꽃이 순식간에 빛을 잃더니, 푸른색 서리 입자로 변해 공중에서 스러졌다. 탄환이 품고 있던 격렬한 분자 운동 에너지가 태오의 손바닥을 통해 그의 심장으로 직결된 것이다.
“……!!”
마 대장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커졌다.
“무슨…… 탄환의 열량을 직접 빨아들였다고?!”
하지만 대가는 가혹했다. 규격화된 정규군의 고출력 플라즈마 에너지가 체내로 급격히 유입되자, 태오의 가슴속 억제 장치가 삐걱거리며 극심한 과부하를 일으켰다. 심장이 터질 듯이 뜨거워졌다가, 이내 뼛속까지 얼려버리는 극독의 냉기로 역류했다.
“우욱……!”
태오는 입안 가득 고이는 얼어붙은 핏덩이를 억지로 삼켰다. 가슴팍의 빙정 문양이 눈이 멀 것 같은 푸른 서광을 뿜어냈다. 전신이 유리처럼 굳어가는 고통 속에서, 그는 강탈한 막대한 열량을 냉기 에너지로 역치 변환했다.
지금 그의 발밑에는 완벽한 열 전도체인 철도 레일이 깔려 있었다.
“모두 얼어붙어라.”
태오가 왼발로 얼어붙은 철로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극저온 서리 파동(Cryogenic Frost Wave).’
쿠구구구구-!
지면을 때리는 둔탁한 진동음과 함께, 철로를 전도체 삼아 청색의 기하학적인 서리 파동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 속도는 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서리 파동 범위는 순식간에 반경 30미터를 넘어 수색대원들의 발밑을 덮쳤.
“어, 억……! 발이……!”
“움직이지 않아! 철로에 들러붙었다!”
수색대원들의 군화발이 철로와 지면에 순식간에 결빙되어 고정되었다. 냉기는 그들의 방한 슈트를 타고 급격히 기어올라 무기와 팔다리를 얼려버렸다. 공중에서 서치라이트를 비추던 정찰 드론들 역시 배터리 셀이 극저온으로 인해 순식간에 방전되며, 퍽, 퍽 소리를 내며 추락해 빙판 위로 박살이 났다.
단 몇 초 만에, 삼삼오오 대형을 갖추었던 정예 수색 타격대는 움직일 수 없는 차가운 조각상들로 변해버렸다.
“괴물 같은 놈……!”
마 대장은 자신의 정예 병력이 단 한 번의 파동에 무력화되는 모습을 보며 이성을 잃었다. 그는 결빙된 다리의 통증을 무시하고, 저격 소총 스파크-X의 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총신 내부의 플라즈마 코어가 터질 듯이 주황색 빛을 발했다.
“죽어라!”
하지만 마 대장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태오는 이미 눈보라를 뚫고 그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스우우욱-
태오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서리 아지랑이가 마 대장의 시야를 가렸다. 마 대장이 비명을 지르며 저격총 끝에 달린 총검 칼날을 휘둘렀지만, 태오는 피하지 않았다.
태오의 왼손이 날카롭게 빛나는 총검의 칼날을 정면으로 움켜쥐었다.
“……!!”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태오의 왼손바닥에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피는 흐르자마자 푸른 서리가 되어 굳어버렸다.
“이 장난감은 내가 회수하지.”
태오가 나직하게 읊조리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저격총 전체에 흐르던 모든 열역학적 에너지가 태오의 손바닥을 통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 총신 내부에서 격렬하게 진동하던 플라즈마 분자들이 순식간에 운동을 멈추었다. 주황색으로 빛나던 총몸이 순식간에 회색빛으로 다운되더니, 이내 하얗게 성에가 끼기 시작했다.
쩍, 쩍쩍-!
극단적인 온도차로 인한 열충격을 견디지 못한 저격 소총의 강철 프레임에 기하학적인 균열이 갔다. 태오가 손가락을 가볍게 비틀자, 제국의 자랑이던 최첨단 저격총 스파크-X가 유리 조각처럼 산산조각 나며 바닥으로 바스러졌다.
“아아악-!”
비명이 야적장에 울려 퍼졌다.
저격총을 잡고 있던 마 대장의 오른손 역시 절대영도의 냉기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의 손가락 피부가 순식간에 투명한 청색 결정으로 변하더니, 이내 손목뼈까지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았다. 마 대장이 급히 손을 빼려 했지만, 이미 동결된 세포들은 가벼운 마찰에도 견디지 못했다.
바스락.
기괴하고 건조한 파열음과 함께 마 대장의 오른손 전체가 얼음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흩날렸다. 손목 잘린 단면에서는 피조차 흐르지 못하고 푸른 얼음 결정이 맺혀 있을 뿐이었다.
“괴물…… 괴물 같은 놈……!”
마 대장은 잘려 나간 오른팔을 움켜쥔 채 눈더미 위로 자빠졌다. 그의 얼굴은 공포와 경악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살기 서린 눈동자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태오의 모습은, 인간이 아닌 우주의 종말을 고하는 동결의 신 그 자체였다.
“살려…… 살려다오…….”
제국의 오만하던 장교는 비참하게 목숨을 구걸했다. 태오는 대검을 내려다보며 잠시 침묵했다. 그를 완전히 끝장낼 수도 있었지만, 그의 심장 속 억제 장치가 다시 한번 날카로운 통증을 경고하고 있었다. 무리한 능력 사용으로 인해 그의 오른팔은 이제 어깨 부근까지 완벽한 유리화가 진행되어 굳어 있었다. 이대로 더 힘을 썼다간 심장 자체가 멈출 위험이 있었다.
“돌아가서 네 주인에게 전해라.”
태오가 차갑게 얼어붙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동생을 건드리는 자는, 이 철도처럼 영원히 정지하게 될 것이다.”
마 대장은 잘린 팔을 부여잡고, 결빙에서 간신히 풀려난 몇 안 되는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눈보라 속으로 비참하게 도망쳤다. 그들이 남긴 붉은 피 흔적은 매서운 칼바람에 이내 하얗게 덮여갔다.
태오는 대검을 칼집에 꽂아 넣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가슴속에서 명멸하는 푸른 빛이 서서히 가라앉았지만, 어깨의 화상 통증과 전신을 짓누르는 동결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마 대장의 패배 보고를 받은 보안관 장호열이 13구역 전체에 어떤 피바람을 몰고 올지, 태오는 안경 너머의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겨울은 이제 겨우 시작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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