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의 약탈자
태오의 군화발이 수송선의 찢어진 강철 해치 틈새를 밟는 순간, 등 뒤의 폭풍 속에서 도겸의 사나운 고함 소리가 흩날렸다.
“놓치지 마라! 쥐새끼들이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해치를 무너뜨려서라도 생매장시켜!”
지옥 같은 눈보라가 개구멍 같은 해치 틈새로 휘몰아쳤다. 구본혁은 침투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해치 입구에 남아 얼음 송곳을 지면에 박아 넣으며 엄호 태세를 갖추었고, 태오는 은서윤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수송선 내부의 어둡고 좁은 격납고 통로로 몸을 던졌다.
쿵! 무거운 강철 해치가 등 뒤에서 닫히는 순간, 몰아치던 바람 소리가 일시적으로 차단되며 기괴한 정적이 찾아왔다. 수송선 내부는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오직 파손된 배선에서 흘러나오는 주황색 스파크와, 선체 깊은 곳에서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엔진의 미약한 잔열만이 어렴풋한 빛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아, 하아…….”
은서윤이 무릎을 꿇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오른쪽 발목은 아까 도겸이 설치한 와이어 덫에 걸려 가벼운 타박상을 입은 상태였다.
“태오 씨, 괜찮아요? 아까 와이어를 손으로 직접 만졌잖아요.”
“괜찮아.”
태오가 나직하게 대답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가죽 코트 안쪽으로 숨긴 그의 오른팔이 기분 나쁜 박동을 치고 있었다.
진료소에서 박선우가 주사해 준 동결 억제제의 약효가 벌써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무리하게 왼손으로 와이어의 열역학적 에너지를 빨아들여 얼려 부순 반동이 심장을 타고 오른팔로 역류하고 있었다. 전완근 중간까지 고정되어 있던 투명한 유리 결정이 팔꿈치를 향해 아주 미세하게 기어오르는 고통이 느껴졌다. 피부가 쩍쩍 갈라지는 듯한 극독의 부작용이었다.
‘벌써 부작용이 도지는 건가. 시간이 없다.’
태오는 대검 손잡이를 쥔 왼손에 힘을 주었다. 오른손은 이미 손가락 마디마디가 투명하게 변해 아무런 촉각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였다.
바로 그때, 어두운 격납고 저편에서 서늘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스슥, 슈우우우-
“어디 숨었나, 13구역 누더기 쥐새끼들.”
어둠 속에서 뺨에 칼자국이 가득한 도겸의 비열한 얼굴이 붉은 아지랑이와 함께 떠올랐다. 그는 수송선의 다른 파손된 틈새로 이미 침투해 있었던 것이다. 도겸의 양손에는 주황색 열선이 일렁이는 고열의 비수가 쥐어져 있었다. 그가 비수를 가볍게 휘두를 때마다 주변의 얼어붙은 강철 벽면이 찌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녹아내렸다.
“내 열 감지 고글은 거짓말을 안 하거든. 네놈의 그 뜨겁게 끓어오르는 심장 궤적이 이 어둠 속에서도 아주 선명하게 보여.”
도겸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의 눈가에 장착된 제국제 열 감지 고글이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태오는 은서윤을 철골 구조물 뒤로 밀쳐내며 대검을 치켜세웠다.
“서윤, 조종실로 가. 잠금장치를 풀어야 해.”
“하지만 태오 씨는…….”
“내가 막는다. 당장 가.”
태오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도겸이 신형 고열 비수를 던졌다.
슈우우욱- 콰아앙!
비수가 허공을 가르며 격납고의 철문을 직격했다. 단순한 물리적 투척이 아니었다. 비수에 발린 고온의 폭발 가스가 일시에 터져 나오며 엄청난 열풍과 함께 철문이 녹아내려 은서윤이 도망칠 통로를 가로막았다.
태오는 급히 대검으로 정면 격돌하려 몸을 날렸다. 대검 칼날이 도겸의 두 번째 비수와 맞부딪히는 순간, 비수에서 뿜어져 나온 고온의 폭발 가스가 태오의 대검 날을 타고 역류했다.
치이이이익!
“윽……!”
태오는 급격한 과열로 인해 대검을 쥔 왼손바닥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대검의 탄소강 칼날이 일시적으로 주황색으로 달아오르며 냉기 전도율이 급감했다. 오른팔의 결정화가 능력을 남용하기도 전에 고열의 자극으로 인해 팔꿈치 관절 부근까지 빠르게 침식해 들어왔다. 손가락 끝이 완벽하게 투명한 유리 조각처럼 변해갔다.
“하하핫! 무기마저 뜨겁게 달궈지니 아무것도 못 하는군! 그 잘난 얼음 초능력도 결국 주변에 열이 없으면 쓰지 못하는 반쪽짜리 저주잖아!”
도겸이 태오의 물리적 한계인 ‘열역학 제2법칙의 벽’을 정확히 짚어내며 조롱했다. 주변에 빨아들일 온기가 부족한 극저온의 선체 내부에서, 오히려 적의 고열 무기가 태오의 냉기 발현을 방해하고 있었다.
태오는 무너진 화물 상자 뒤로 몸을 숨겼다. 등 뒤의 철판에 등을 기대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가슴속 심장의 억제 장치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전신에 오한을 뿌려대고 있었다.
‘적은 내 체온을 읽고 움직인다. 그렇다면…….’
태오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민우진 스승에게 배웠던 열 보존 호흡법을 역으로 비틀었다. 체내의 모든 온기를 심장 깊은 곳으로 강제로 밀어 넣고, 피부 표면의 온도를 영하 이하로 떨어뜨리는 극단적인 기만술.
‘체온 영하화.’
태오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던 미약한 서리 김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피부는 곁에 있는 얼어붙은 강철 벽면과 완벽하게 동일한 온도로 가라앉았다. 심장 박동은 분당 20회 이하로 느려졌고, 체온은 영하 15도까지 급강하했다. 오른팔의 유리 결정이 신경을 찌르는 듯한 극심한 마비 고통이 몰려왔지만, 태오는 이빨을 악물고 소리를 죽였다.
“……어라?”
철골 너머에서 도겸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갔지? 갑자기 열 신호가 사라졌어. 기화라도 한 건가?”
도겸은 열 감지 고글을 연신 두드리며 어둠 속을 헤맸다. 고글의 화면에는 온통 푸른색의 극저온 노이즈만 가득할 뿐, 방금 전까지 붉게 타오르던 태오의 실루엣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정밀한 기계 장치에 의존하는 자들의 치명적인 맹점이었다.
태오는 소리 없이 움직였다. 마찰력이 제로에 수렴하는 빙판 기동을 활용해, 어두운 격납고의 철골 사이를 유령처럼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도겸은 허공에 비수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나와라! 어디 숨어서 쥐새끼처럼 떨고 있는 거냐!”
도겸의 등 뒤, 어둠 속에서 푸른 안광이 소리 없이 번뜩였다.
태오는 도겸의 완벽한 사각지대를 확보했다. 그는 마비된 오른팔을 왼손으로 붙잡아 고정시킨 뒤, 왼발에 모든 냉기 압력을 집중했다.
‘빙정 붕괴권.’
스우우웁-
주변 공기 중에 남아 있던 미세한 마찰열과 도겸의 등 뒤에서 새어 나오는 온기가 태오의 발끝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극저온의 진공 상태가 형성되는 찰나, 태오가 도겸의 오른쪽 발목을 강하게 걷어찼다.
카강!
“아아악!”
비명 소리가 격납고 철벽을 울렸다. 태오의 발끝이 닿는 순간, 도겸의 부츠와 발목 피부의 수분이 순식간에 절대영도로 얼어붙어 투명한 얼음 결정으로 치환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물리적 충격파에 의해, 얼어붙은 도겸의 발목 뼈와 장갑이 유리창이 깨지듯 쩍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났다.
도겸은 바닥을 구르며 자신의 깨져나간 발목을 움켜쥐고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내 다리……! 내 다리가……! 이 괴물 자식!”
도겸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태오를 바라보았다. 태오의 가슴팍 낡은 가죽 코트 틈새로 기하학적인 청색 빙정 문양이 기괴할 정도로 밝은 서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차가운 기운은…… 단순한 초능력이 아니야…….”
도겸이 부들부들 떨며 뒤로 기어갔다.
“너…… 네놈 심장에 박힌 거…… 제국 황실이 극비리에 연구하던 그 금지된 유산…… Helios의…….”
태오가 차가운 눈빛으로 대검을 들어 올리며 한 걸음 다가섰다.
“누가 보내서 왔지?”
“으, 윽……!”
도겸은 대답 대신 품속에서 붉은색 연막탄을 꺼내 바닥에 내리쳤.
펑!
초고온의 열기를 품은 붉은 연막이 순식간에 격납고 내부를 가득 채웠다. 열량 감지 시각이 연막의 고열 노이즈로 인해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다. 수송선 외부에서 대기하던 도겸의 부하들이 찢어진 해치 틈새로 총격을 가하며 도겸을 쇠사슬로 끌어당겼다.
“도겸 대장님을 구해라! 후퇴한다!”
자욱한 연막 속에서 도겸의 비참한 신음 소리가 멀어져 갔다. 태오는 추격을 포기했다. 무리하게 능력을 연사한 대가로 그의 오른팔 전완근 피부가 완전히 유리처럼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손가락 끝은 이제 딱딱한 얼음 조각이 되어 가죽 코트의 지퍼를 잡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태오 씨! 이쪽이에요! 조종실 문을 열었어요!”
연막 너머에서 은서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오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조종실 내부로 진입했다.
조종실 내부의 메인 제어 콘솔은 반쯤 파손되어 있었지만, 조종석 옆에 위치한 두꺼운 티타늄 보관함은 삼중 잠금 상태로 굳건히 닫혀 있었다. 은서윤은 이미 휴대용 단말기를 보관함 전선에 연결해 해킹 프로토콜을 가동하고 있었다.
“자폭 장치가 가동되려고 해요! 3분 안에 해제 주파수를 맞추지 못하면 이 수송선 전체가 플라즈마로 기화될 거예요!”
은서윤의 손가락이 단말기 키보드 위를 미친 듯이 날아다녔다.
태오는 조종석 바닥을 살피다, 파일럿의 발밑에 떨어져 있는 낡은 금속제 고글을 발견했다. 렌즈 부위가 깨져 있고 배선이 노출된 구형 장비였지만, 직관적으로 그것이 제국 순찰대원들이 사용하던 야간 투시용 광학 장비임을 알아챘다.
‘구형 열원 추적 안경.’
태오는 그것을 주워 은서윤의 군장 가방 옆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서윤, 이걸 챙겨. 나중에 개조할 수 있겠어?”
“어…… 어라? 이건 제국군 순찰대 고글이잖아요! 렌즈 내부의 에너지 필터를 역설계하면 태오 씨의 냉기 주파수에 맞춘 완벽한 추적 안경으로 개조할 수 있어요! 일단 챙길게요!”
그 순간, 보관함의 삼중 잠금장치가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마침내 개방되었다.
두꺼운 티타늄 문이 열리며,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밝은 주황색 광채가 조종실의 어둠을 몰아냈다. 보관함 내부에는 규격화된 일반 전지와는 차원이 다른, 육각형 모양의 두꺼운 메탈 케이스들이 늘어서 있었다.
‘군용 플라즈마 전지.’
아린의 안티-프리즈-04 장치를 수개월 동안 완벽하게 가동시키고도 남을, 제국 정규군 기동 슈트용 초고출력 에너지 셀이었다. 주황색으로 빛나는 전지 표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열이 태오의 차가운 뺨에 닿았다.
태오는 홀린 듯 손을 뻗었다. 마비되어 감각이 사라진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군용 플라즈마 전지 상자를 움켜쥐었다.
바로 그 순간.
전지 상자의 표면에 닿은 태오의 손끝을 통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고농축의 플라즈마 열량이 대규모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윽!”
태오의 가슴팍이 찢어질 듯한 고통과 함께 뜨겁게 타올랐다. 그의 심장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던 ‘엔트로피의 핵’이 갑작스러운 거대 열량의 유입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며 폭주하듯 날뛰기 시작했다. 심장의 억제 장치가 삐걱거리며 요동쳤다.
“아, 아악……!”
태오는 전지 상자를 쥔 채 조종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가슴팍에서 명멸하던 푸른 빙정 문양이 전례 없는 속도로 밝아지더니, 눈이 멀 것 같은 청색 서리 아지랑이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와 조종실 벽면과 유리창을 순식간에 얼려버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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