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떨어진 불꽃
독고룡의 고열 군화가 철제 해치에 닿기 직전, 태오의 왼손이 대검 손잡이를 부서져라 움켜쥐며 그림자처럼 도약했다.
쉬이익!
어둠을 가르는 것은 칼날의 파편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열을 탐하는 굶주린 심장의 갈증이었다. 태오는 독고룡의 무거운 신형 군화가 해치를 내리찍기 직전, 그 붉게 달아오른 부츠 측면의 열원 증폭기 배출구를 향해 맨손인 왼손을 뻗었다.
“무슨……?!”
독고룡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 태오의 손가락이 증폭기 표면에 닿았다.
찰나의 접촉.
스우우우웁!
대기 중의 모든 소음이 흡수되는 듯한 기괴한 침묵과 함께, 독고룡의 부츠에서 뿜어져 나오던 주황색 열선이 태오의 손바닥 안으로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갔다. 그것은 온기를 나누는 자비로운 손길이 아니었다. 분자 수준에서 운동 에너지를 통째로 강탈하는 절대영도의 진공이었다.
“크아아악!”
독고룡이 단발마의 비명을 질렀다. 부츠 내부의 초고온 코어가 순식간에 에너지를 빼앗겨 차갑게 식어 내렸고, 그 반동으로 주위의 수분이 급격히 결빙되며 두꺼운 성에가 독고룡의 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열기를 잃은 부츠는 순식간에 회색빛으로 얼어붙어 쩍쩍 갈라졌다.
태오는 강탈한 열량이 왼팔을 타고 심장으로 흘러드는 것을 느꼈다. 얼어붙었던 오른팔의 감각이 일시적으로 녹아내리는 기적 같은 온기. 하지만 가슴속 봉인 장치가 과부하로 인해 삐걱거리며 날카로운 통증을 유발했다. 태오는 고통을 씹어 삼키며 얼어붙은 독고룡의 무릎을 오른발로 강하게 걷어찼다.
와장창!
단단한 얼음으로 변해버린 독고룡의 무릎 보호대와 증폭기 장갑판이 유리 조각처럼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독고룡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사이, 태오는 하수구 해치 틈새로 몸을 던졌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소년 강이현이 녹슨 가스관의 밸브를 강제로 비틀어 가두어 두었던 압축 가스를 분출시켰다.
치이이이익!
급격한 온도차로 인해 하수구 전체에 자욱한 백색 수증기 장막이 펼쳐졌다. 서리 이빨파 대원들이 횃불을 휘두르며 시야를 확보하려 애썼지만, 태오와 이현은 이미 미로 같은 지하 수로의 어둠 속으로 완벽하게 모습을 감춘 뒤였다.
* * *
“하아…… 하아……”
박선우의 지하 진료소. 온열 격리실 내부의 공기는 긴장감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침대에 누운 아린의 척추에 이식된 ‘안티-프리즈-04’ 장치가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요동치고 있었다.
틱. 틱. 피이이이-
“태오 형, 아린이 장치 주파수가 완전히 꼬였어! 전압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역류가 시작되려고 해!”
김간호사가 땀을 흘리며 정밀 제어반의 다이얼을 돌렸지만, 붉은색 경고등의 점멸 속도는 빨라지기만 했다. 아린의 얇은 입술이 서서히 푸른빛으로 질려갔고, 그녀의 숨결에서 하얀 서리가 뿜어져 나왔다.
그 순간, 태오의 가슴팍이 찢어질 듯한 통증과 함께 뜨겁게 달아올랐다. 코트 너머로 푸른 빙정 문양이 아린의 장치 경고등과 정확히 일치하는 주파수로 명멸하기 시작했다. 아린의 생체 열량이 바닥날수록, 태오의 심장에 박힌 엔트로피의 핵 역시 폭주하듯 차가운 파동을 내뿜는 인과의 저주였다.
“비켜봐.”
태오가 차가운 손으로 김간호사를 밀쳐내고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오른팔 전완근은 동결 억제제 덕분에 마비가 풀렸지만, 피부 절반은 여전히 투명한 유리 결정 상태였다. 태오는 가죽 코트 안쪽 주머니에서 13구역에서 약탈해 두었던 마지막 고성능 인공 열원 전지를 꺼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최후의 생명줄이었다.
태오는 망설임 없이 전지를 아린의 장치 슬롯에 밀어 넣었다.
쿠웅.
장치가 둔탁한 가동음을 내며 고온의 에너지를 아린의 척수에 직접 주입하기 시작했다. 푸른빛으로 질려가던 아린의 뺨에 미약한 온기가 돌아왔고, 장치의 경고음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하지만 전지 잔량 표시등은 이미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기껏해야 반나절을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미련한 놈. 마지막 전지까지 써버리면 네 심장은 어쩌려고 그러냐?”
진료실 구석에서 담배를 입에 문 박선우가 혀를 찼다. 그 옆에서 휴대용 모니터를 조작하던 은서윤이 태오의 심장 파동 그래프를 가리키며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이 기하학적인 파형 좀 봐. 일반적인 초능력자의 에너지 방출 주파수가 아니야. 열을 빨아들일 때마다 그래프의 엔트로피 수치가 소수점 아래 8자리까지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어. 이건 자연계의 법칙을 강제로 비트는 물리적 왜곡이야. 당신 심장, 대체 정체가 뭐야?”
태오는 은서윤의 질문을 무시한 채, 마비가 풀려가는 오른손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했다. 손끝에서 뚝, 뚝 떨어지는 성에가 바닥의 시멘트를 차갑게 얼렸다.
그때, 진료소의 두꺼운 철문이 둔탁하게 울리며 거구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섰다. 13구역 고철 수거단장, 임찬영이었다. 그의 털가죽 코트에는 외곽 빙판 지대의 거친 서리가 잔뜩 묻어 있었다.
“태오, 무사해서 다행이군. 독고룡 그 새끼 무릎을 박살 냈다는 소문이 슬럼가에 벌써 자자해.”
임찬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품속에서 낡은 가죽 지도를 꺼내 수술대 위에 펼쳤다. 지도 위에는 붉은색 잉크로 외곽 만년빙 지대의 특정 좌표가 거칠게 표시되어 있었다.
“농담 따먹기 할 시간 없다. 방금 제국 외곽 장벽 경비대 놈들이 비상 경보를 울렸어. 사상 최악의 한파 폭풍이 몰아치면서, 아르카디아 돔에서 요새로 향하던 제국 제13 보급선단의 대형 수송선이 13구역 외곽 빙판에 추락했다.”
“수송선…….”
태오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확장되었다.
“그래. 단순한 보급품이 아니야. 군용 중화기와 함께 아르카디아 돔에서만 유통되는 최고급 의료 자재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더군. 그 말은 즉, 네 동생의 장치를 영구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는 ‘안티-프리즈-04 안정제’ 원액과 고농축 군용 플라즈마 전지들이 묻혀 있을 가능성이 99%라는 소리다.”
임찬영은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니었다. 그는 슬럼가의 생존을 위해 제국의 눈을 피해 물자를 빼돌리는 음지의 협력자였고, 태오의 무력이 제국의 철벽을 뚫어줄 유일한 열쇠임을 알고 있었다.
“제국 수색대가 현장을 봉쇄하기 전에 움직여야 해. 지금 출발하면 우리가 먼저 도착할 수 있다.”
태오는 대검 손잡이를 움켜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린에게 남은 시간은 반나절. 이 기회를 놓치면 동생의 심장은 영원히 얼어붙을 터였다. 홀로 눈보라 속으로 걸어가려는 태오의 앞을 은서윤이 가로막았다.
“혼자 가선 아무것도 못 가져와, 설태오.”
은서윤이 기계식 렌즈를 찡긋거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제국의 군용 수송선은 함락 시 보급품을 통째로 태워버리는 자폭 장치가 설계되어 있어. 게다가 조종실의 특수 보관함은 삼중 잠금장치로 묶여 있지. 내 정밀 해킹 장비와 기술 없이는 보관함 근처에 가기도 전에 다 같이 기화될걸?”
그녀는 태오의 가슴 문양을 가리켰다.
“나를 동행시켜 줘. 잠금장치는 내가 풀어줄 테니까. 대신 전리품 중 비의료용 군용 기술 부품은 내가 가져가고, 당신 심장의 그 아름다운 엔트로피 에너지 데이터를 계속 스캔하게 해줘. 서로 윈윈이잖아?”
태오는 은서윤의 맑은 눈동자 너머에 깔린 집요한 학구열과 영악한 계산을 읽어냈다. 위험한 동행이었지만,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홀로 장치를 강제로 부수다간 안정제가 파괴될 위험이 컸다. 태오는 짧은 계산 끝에 대검을 칼집에 밀어 넣었다.
“좋아. 동행을 허락하지. 하지만 내 뒤에서 한 발짝이라도 벗어나면 네 안전은 보장 못 한다.”
“걱정 마. 내 몸은 내가 지키니까.”
은서윤이 공구 가방을 어깨에 메며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었다.
태오는 낡은 가죽 방한 코트의 깃을 올리며 온열실 유리창 너머로 곤히 잠든 아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슴속 펜던트가 그의 심장에 전해지는 한기를 미세하게 억누르고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제국의 불꽃을 강탈하기 위한, 목숨을 건 여정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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