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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이빨의 사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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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를 하자고. 내가 이 장비를 완성해 줄 테니, 당신 심장의 그 아름답고 차가운 에너지 데이터를 나에게 제공해 줘.”


은서윤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흥분과 탐욕에 가까운 호기심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기계식 렌즈가 태오의 투명한 얼음 팔에 반사되어 기괴한 푸른빛으로 빛났다.


태오는 대답 대신 침묵을 지켰다. 동결 억제제가 목덜미를 타고 흐르며 얼어붙었던 신경을 강제로 찢어발기는 고통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오른손 끝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미세한 감각이 돌아왔지만, 전완근 중간까지 투명한 유리처럼 변해버린 결정화는 여전했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은서윤을 응시했다. 이 여자는 아르카디아 돔 출신의 기술자다. 자신을 고발할 위험이 있는 제국의 첩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가슴속에서 칼날처럼 일어섰다. 하지만 지금 태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아린의 안티-프리즈-04 장치는 임시 발전기에 연결되어 겨우 숨만 붙이고 있었고, 억제제의 약효 역시 기껏해야 12시간 남짓이었다.


“좋아. 거래하지.”


태오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신 조건이 있다. 장비가 완성될 때까지, 그리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린이를 이곳 온열실에서 안전하게 돌봐줘. 만약 내 동생에게 손끝 하나라도 댄다면…… 네가 가진 그 기계 장치들과 함께 네 심장부터 얼려버리겠다.”


은서윤은 태오의 서늘한 협박에도 개의치 않고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무면허 의사 박선우가 담배를 입에 물며 혀를 찼다.


“걱정 마라, 청년. 김 간호사가 눈을 불을 켜고 지킬 테니까. 그보다 치료비 대가로 약속한 전지나 두고 가시지.”


태오는 왼손으로 품속을 뒤져 유상범 일당에게서 빼앗아 두었던 열원 전지 일부를 수술대 위에 툭 던졌다. 박선우의 눈빛이 만족스럽게 휘어지는 순간, 진료소 뒷문에서 다급하고 거친 노킹 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쾅! 쾅!


“태오 형! 안에 있어? 큰일 났어!”


익숙한 목소리였다. 태오가 즉시 문을 열자, 영하 80도의 칼바람과 함께 주근깨 투성이 소년 강이현이 눈더미를 뒤집어쓴 채 안으로 굴러 들어왔다. 12세 소년의 숨결이 하얗게 얼어붙어 흩날리고 있었다.


“이현아, 무슨 일이야?”


“하아, 하아……! 서리 이빨파 놈들이야! 독고룡이 부하들을 싹 다 이끌고 13구역 지하 보일러실 쪽 골목을 샅샅이 뒤지고 있어! 유상범 그 새끼가 손가락이 잘린 채로 도망치면서 독고룡한테 형 아지트 위치를 밀고한 게 분명해!”


이현의 말에 태오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푸른 서리빛으로 물들었다.


보일러실 아지트는 조부 설도현이 남겨준 유일한 유산이자, 제국의 감시를 피해 구축한 철옹성이었다. 비록 아린은 지금 이곳 진료소에 대피해 있었지만, 보일러실 내부의 스팀 설비와 흔적들이 독고룡의 손에 파괴된다면 앞으로의 생존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그들이 아지트가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면, 수색 범위를 넓혀 결국 이곳 박선우의 진료소까지 들이닥칠 터였다.


“놈들이 아지트 해치를 찾아냈나?”


“아직은 골목 입구에서 난민들을 협박하며 뒤지는 중이야! 하지만 시간문제야. 독고룡 그 인간 용광로 같은 괴물이 직접 횃불을 들고 설쳐대고 있다고!”


태오는 낡은 가죽 코트의 깃을 바짝 세웠다. 동결 억제제 덕분에 오른팔을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감각은 둔했고 힘은 온전히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적들이 아지트 내부를 확인하기 전에 외곽에서 순찰 조를 전멸시켜 수색의 단서를 원천 차단해야 했다.


“서윤, 약속대로 아린이를 부탁한다.”


태오는 은서윤을 흘겨본 뒤, 이현의 어깨를 잡았다.


“이현아, 동결 하수구 교차로를 통해 보일러실 배후로 진입한다. 길 안내를 맡아줘.”


“나만 믿어, 형! 그 깡패 새끼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자고!”


이현의 눈에 두려움을 넘어선 동경의 빛이 서렸다. 소년에게 태오는 슬럼가의 가혹한 질서를 깨부수는 유일한 영웅이었다.


두 사람은 진료소 뒷문을 통해 영하 80도의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 * *


하늘에서는 칼날 같은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지상의 모든 것이 얼어붙어 백색의 폐허로 변한 13구역의 밤.


태오는 미로처럼 얽힌 어두운 하수구 통로를 빠져나와 보일러실 인근 골목의 고철 더미 뒤에 몸을 숨겼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찌릿하게 얼어붙는 한기가 느껴졌지만, 민우진 스승에게 배운 열 보존 호흡법을 전개하며 체내 최소 온도를 유지했다.


그는 눈을 감고 자신의 고유 초능력인 ‘열량 감지’를 활성화했다.


스우우우-


시야가 암전되는 동시에, 대기 중의 미세한 온도 변화가 입체적인 에너지 지도로 재구성되었다. 주변의 얼어붙은 고철과 콘크리트 벽면은 차가운 청색과 회색으로 가라앉아 있었지만, 저 멀리 골목 입구 방향에서 불타는 석탄처럼 이글거리는 주황색 실루엣들이 보였다.


서리 이빨파 행동대원들이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횃불의 붉은 열기가 대기 중으로 어지럽게 아지랑이를 피워내고 있었다.


‘총 여덟 명. 그리고 저 뒤쪽에 유독 거대하고 붉게 이글거리는 열원…… 독고룡이다.’


독고룡의 체온은 일반 하층민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마치 체내에 작은 난로라도 품고 있는 것처럼 강렬한 열량이 시각화되어 고글 없이도 선명하게 투시되었다.


“이쪽 골목엔 아무것도 없는데? 정말 유상범의 밀고가 맞긴 한 거야?”


횃불을 든 행동대원 하나가 고철 더미를 발로 차며 투덜거렸다. 그들의 거친 숨결이 횃불의 불꽃에 닿아 붉게 물들었다.


태오는 낡은 코트 안쪽으로 오른손을 밀어 넣었다. 감각이 무딘 손가락 끝으로 대검의 손잡이를 가볍게 쥐었다. 지금은 정면 돌파를 시도할 때가 아니었다. 머릿수가 많고 횃불을 든 적들을 상대로 아린의 안전을 확보하려면 우회 암습으로 순찰 조를 하나씩 각개격파해야 했다.


태오는 숨을 멈추고 ‘체온 영하화’ 기술을 가동했다.


심장 속 엔트로피의 핵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태오의 체온을 급격히 떨어뜨렸다. 피부 표면의 온도가 주변 눈더미의 기온과 일치하는 영하 40도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열량 감지 센서를 가진 제국의 탐지기나 사냥개들이 있다면 그를 완벽한 무생물로 오인할 수준의 은신이었다.


그는 유령처럼 소리 없이 고철 더미 사이를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사락, 사락.


눈 밟는 소리조차 바람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어이, 저쪽 하수구 틈새에서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은데?”


낙오되어 골목 구석을 수색하던 대원 하나가 횃불을 비추며 다가왔다.


그 순간, 하수구 교차로 입구 쪽에서 깡! 하는 날카로운 금속 파열음이 울렸다. 강이현이 돌팔매질로 녹슨 가스관을 맞춘 것이었다. 소음은 좁은 수로를 타고 엉뚱한 방향으로 길게 울려 퍼졌다.


“무슨 소리지? 저쪽인가?”


대원의 시선이 완전히 쏠린 찰나, 태오는 눈보라 속에서 그림자처럼 솟구쳤다.


스윽.


태오의 차가운 왼손이 대원의 등 뒤에서 뻗어 나와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대원이 경보를 울리거나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태오의 심장이 본능적으로 요동치며 적의 체내 에너지를 빨아들였다.


‘열량 강탈.’


“……!!”


대원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확장되었다. 그의 목덜미를 움켜쥔 태오의 손끝에서부터 푸른 서리가 파고들었다. 대원의 체온과 혈류 속의 열량이 블랙홀 같은 태오의 심장 속으로 순식간에 역류했다. 흡수된 열기가 태오의 차가운 가슴팍에 미약한 온기를 불어넣는 것과 동시에, 대원의 전신은 단 2초 만에 완벽한 절대영도의 상태로 얼어붙었다.


쩍, 쩍, 쩍.


대원의 피부가 하얗게 결빙되더니, 그의 폐 속에 남아있던 마지막 공기마저 얼어붙어 비명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태오가 손을 놓자, 완벽한 얼음 조각상이 된 대원의 시신이 소리 없이 고철 더미 틈새로 쓰러졌다. 태오는 얼어붙은 시신 위로 눈더미와 고철 판때기를 덮어 완벽하게 은닉했다.


‘하나.’


심장에 미약한 온기가 차오르자, 오른팔의 마비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 에너지를 흡수할 때마다 심장 속 봉인이 요동치며 가슴뼈 안쪽이 조여드는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태오는 다시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이현의 교란과 태오의 소리 없는 암습은 기계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갔다. 골목 구석구석을 수색하던 서리 이빨파 대원들이 하나씩,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차가운 얼음 조각으로 변해 고철 더미 속에 파묻혔다. 두 명, 세 명, 네 명…….


하지만 수색망이 좁혀질수록 남아있는 대원들의 간격이 긴밀해졌고, 마침내 골목 중앙에서 대기하던 독고룡이 이상함을 감지했다.


“어이, 쇠파이프! 이빨! 왜 대답이 없어? 어디 간 거야!”


독고룡이 거친 목소리로 포효했다. 그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가 주변의 낙하하는 눈송이들을 미세하게 녹여 진흙물로 만들고 있었다. 그가 든 가시 박힌 철제 둔기 끝에서도 주황색 열선이 일렁였다.


“형님, 애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무전도 받지 않아요!”


남아있는 세 명의 대원들이 횃불을 사방으로 흔들며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 어둠 속에서 동료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기괴한 현상에 그들의 심장 박동 소리가 하수구 벽면을 타고 미세하게 진동했다.


“쥐새끼 같은 놈이 장난질을 치는군.”


독고룡이 콧방귀를 뀌며 철제 둔기를 지면에 내리찍었다.


쿵!


둔기에서 방출된 고열의 충격파가 눈더미를 녹이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숨어 있던 이현이 충격파에 놀라 헛디디며 녹슨 철판을 밟아 ‘쟁그랑!’ 하는 소음을 냈다.


“거기냐!”


독고룡이 소리치며 이현이 숨은 고철 더미 방향으로 거구에 걸맞지 않은 가공할 속도로 돌격했다. 그의 몸에 이식된 사설 열원 증폭기가 웅웅거리며 붉은 아지랑이를 내뿜었다.


이현이 겁에 질려 도망치려 했으나, 독고룡의 위압적인 포효와 고열의 충격파가 소년의 발목을 묶었다.


‘안 돼!’


태오는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체온 영하화를 해제하고, 가슴속 냉기를 발끝으로 모아 지면을 강타했다.


“극저온 서리 파동!”


쩍-!!


태오의 발끝에서 시작된 청색 서리 파동이 지면을 타고 폭발적으로 뻗어 나갔다. 독고룡의 돌격 경로를 가로막으며 순식간에 2미터 높이의 단단한 얼음 장벽이 솟구쳐 올랐다.


쿠우웅!


독고룡의 고열 둔기가 얼음 장벽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고열과 극저온의 냉기가 맞부딪히며 엄청난 양의 백색 수증기가 피어올라 골목 전체를 메웠다.


“크하하! 드디어 기어 나왔구나, 설태오!”


수증기 너머로 독고룡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태오는 수증기를 틈타 이현의 덜덜 떨리는 어깨를 낚아채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이현아, 하수구 교차로로 도망쳐. 아린이와 온열실을 지켜라. 여기는 내가 막는다.”


“하지만 형, 저 괴물은……!”


“어서 가!”


태오가 이현을 하수구 해치 안으로 밀어 넣는 순간, 수증기를 찢으며 독고룡의 거대한 둔기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태오는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다. 둔기가 지나간 자리가 고열로 인해 시멘트 바닥까지 녹아내리며 붉은 용암처럼 부글거렸다.


태오가 굴러 일어나 대검을 뽑아 들었지만, 전투 도중 방출한 과도한 냉기의 반동으로 인해 가슴속 보일러실 아지트 내부의 기온이 순간적으로 영하 3도 가량 급강하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아지트의 메인 증기 파이프가 미세하게 수축하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유상범의 손가락을 분질러 놓은 게 네놈이렷다? 감히 제국의 세무관에게 손을 대고도 이 구역에서 무사할 줄 알았더냐!”


독고룡이 둔기를 어깨에 걸치며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그의 온몸에 새겨진 문신들이 붉은 열기로 인해 핏빛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독고룡의 배후, 정확히 고철더미로 위장된 ‘13구역 지하 보일러실’의 입구 해치로 향했다.


독고룡은 태오의 시선을 눈치채고 비열하게 미소 지었다.


“아하, 네놈들의 쥐구멍이 바로 저기였군. 저 안에 네년의 그 병신 같은 여동생년이 숨어 있는 거지?”


“입 닥쳐라.”


태오의 목소리가 영하 80도의 바람보다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가슴팍의 가죽 코트 틈새로 푸른 빙정 문양이 미친 듯이 명멸하며 주변 온도를 강제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독고룡은 태오의 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대한 군화를 치켜들었다. 그의 발끝에 고열의 에너지가 집중되며 붉은 빛을 발했다.


“저 안을 통째로 구워버리면 기어 나오지 않고 배기겠냐!”


독고룡이 아린이 숨어 있다고 믿는 보일러실 바로 앞 골목까지 도달해, 굳게 닫힌 철제 해치 문을 향해 무거운 발을 내리치려 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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