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의 메스
태오는 마비되어 감각이 사라진 오른팔을 낡은 코트 안으로 억지로 밀어 넣으며, 아린의 가녀린 몸을 왼팔로 단단히 안아 올렸다.
지상으로 통하는 철제 계단을 오르는 매 순간이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로웠다. 파손된 해치 틈새로 영하 80도의 칼바람이 들이닥쳐 얼굴을 찢어발겼다. 허공을 메운 백색 눈보라는 시야를 완전히 차단했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가 얼어붙는 오한이 느껴졌다.
틱. 틱. 피이이이-
아린의 등 뒤에서 울리는 ‘안티-프리즈-04’의 경고음이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배터리 잔량은 이제 20분도 남지 않았다. 기계가 방전을 경고할 때마다, 태오의 가슴팍에 새겨진 푸른 빙정 문양이 기괴할 정도로 완벽한 주파수로 공명하며 명멸했다. 심장이 요동칠 때마다 폐 깊은 곳에서 피비린내가 솟구쳤다. 유상범의 온기를 강제로 빨아들인 반동으로 체내의 엔트로피 핵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버텨야 한다. 여기서 쓰러지면 아린이도 죽는다.’
태오는 이를 악물었다. 감각이 사라진 오른팔은 낡은 방한 코트 안에서 그저 무거운 얼음덩어리처럼 매달려 있었다. 오른손 손가락부터 전완근 절반까지 투명한 푸른빛 결정으로 변해버린 ‘신체 결정화 1단계’의 저주. 억지로 힘을 주려 할 때마다 살점이 안쪽에서부터 찢어지는 듯한 기괴한 마찰음과 함께 고통이 뇌리를 찔렀지만, 태오는 왼팔 하나에 모든 힘을 집중한 채 눈더미를 헤치며 나아갔.
목적지는 단 한 곳, 13구역 슬럼가 구석에 숨겨진 ‘박선우의 무면허 진료소’였다.
버려진 약국 건물의 녹슨 철문을 왼발로 강하게 걷어찼다. 쾅! 무거운 소음이 눈보라 속으로 흩어지자, 안쪽에서 급박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아주 미세하게 열리며 두꺼운 숄을 두른 여성이 얼굴을 내밀었다. 박선우 의사를 돕는 무면허 간호사, 김윤아였다.
“태오 씨? 세상에, 아린이 상태가 왜 이래요!”
김윤아의 맑은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태오의 왼팔에 안겨 의식을 잃어가는 아린의 창백한 얼굴과, 등 뒤에서 미친 듯이 점멸하는 붉은 경고등을 보자마자 문을 활짝 열었다.
“빨리 안으로 들어와요! 장치 주파수가 완전히 꼬였어요!”
태오는 지하실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아린을 김윤아의 품에 조심스럽게 넘겨주었다. 김윤아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아린을 안아 들고, 진료소 안쪽에 위치한 간이 온열 격리실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아린의 장치에 임시 전력을 공급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응급 처치가 시작되는 모습을 보며, 태오는 그제야 긴장이 풀려 진료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하아…… 하아……”
오른팔의 마비가 심장으로 역류하는 듯한 극심한 오한이 전신을 덮쳤.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에 태오는 왼손으로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코트 안쪽에서 덜덜 떨리는 손끝에 닿은 것은 ‘어머니의 차가운 펜던트’였다. 대동결 이전 가문에서 전해지던 고대 금속 목걸이. 태오는 펜던트를 필사적으로 움켜쥐며 마음속의 날뛰는 냉기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미세한 냉기 억제 파동이 가슴속에서 희미하게 퍼져나가며 심장의 폭주를 겨우 붙잡아주었다.
“어이, 거기 누더기 청년. 아직 죽을 때는 아니잖아?”
진료실 안쪽의 어둠을 뚫고 까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헝클어진 머리에 둥근 안경을 쓴 사내, 박선우가 피가 묻은 의사 가운을 걸친 채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눈은 피로에 찌들어 있었지만, 태오의 오른팔을 바라보는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팔 꼴이 그게 뭐냐. 당장 수술대로 올라와.”
박선우는 태오를 거칠게 이끌어 낡은 수술용 침대에 앉혔다. 그리고 태오의 낡은 가죽 코트를 가차 없이 찢어발기며 오른팔을 드러내게 했다.
“……!!”
침묵이 방 안을 채웠다.
태오의 오른팔은 전완근 중간까지 완전히 투명한 푸른색 얼음 결정으로 뒤덮여 있었다. 피부 안쪽의 미세한 신경망과 혈관이 얼음 속에 박제된 것처럼 비쳐 보였다. 그것은 단순한 동상이 아니었다. 생명체의 유기물 세포 자체가 무기물인 얼음 결정으로 치환되는, 우주적 법칙의 침식이었다.
“신체 결정화 1단계가 벌써 여기까지 진행됐어.”
박선우가 차가운 금속 메스로 태오의 투명한 팔을 툭툭 두드렸다. 틱, 틱, 하는 무기질적인 소리만 날 뿐, 태오는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유상범 그 인간 말종의 열량을 빨아들였지? 내가 능력을 쓸 때마다 심장에 이식된 엔트로피 핵이 네 세포를 얼려버릴 거라고 경고했잖아. 이대로 가다간 팔 전체가 유리처럼 깨져 나갈 거다.”
박선우는 혀를 차며 약장으로 걸어가 정밀 정제기에서 푸른빛이 도는 화학 주사기를 꺼냈다. 슬럼가에서는 금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특수 내한 주사제, ‘동결 억제제’였다.
“이걸 놓으면 마비는 풀리겠지만, 임시방편일 뿐이야.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르카디아 돔 지하에 있는 고성능 안정제를 구하는 것뿐이다. 알겠냐?”
박선우가 태오의 목덜미에 주사바늘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치이이익-
동결 억제제의 화학 물질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순간, 태오의 전신이 불타는 듯한 고통에 휩싸였다. 얼어붙었던 신경망이 강제로 녹아내리며 겪는 지옥 같은 감각이었다. 태오는 침대 시트를 왼손으로 꽉 쥐며 비명을 참아냈다. 서서히, 완벽한 무감각 속에 잠겨 있던 오른손 끝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미세한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저 구석에 있는 불청객은 언제까지 지켜만 볼 생각이지?”
태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진료실 구석의 어두운 그림자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비록 오른팔은 마비되었을지언정, 그의 육감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그림자 속에서 나직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쪽 눈에 기계식 확대 렌즈를 착용하고,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공구 벨트를 두른 20대 초반의 여성이 걸어 나왔다. 아르카디아 돔에서 추방당한 천재 공학자, 은서윤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돔 내부의 기술이 적용된 정밀 생체 측정기가 들려 있었다. 측정기 화면에는 태오의 심장에서 방출되는 비정상적인 극저온 에너지 파동이 기하학적인 그래프를 그리며 요동치고 있었다.
“정말 흥미로워.”
은서윤이 태오의 오른팔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광기에 가까운 기술적 호기심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스스로 냉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주변의 모든 물리적 분자 진동을 정지시키는 에너지 파동이라니. 이건 돔 내부의 최신 열역학 학설로도 설명이 안 돼.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야?”
태오는 차가운 눈빛으로 은서윤을 쏘아보았다. 비록 동결 억제제 덕분에 오른팔의 마비가 조금씩 풀리고 있었지만,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은 극에 달해 있었다. 그는 왼손을 천천히 허리춤의 칼날로 가져가려 했다.
“진정해, 약탈자 청년.”
은서윤은 두 손을 들어 적의가 없음을 표시하더니, 공구 벨트에서 홀로그램 단말기를 꺼내 전개했다. 공중에 푸른빛의 입체 청사진이 펼쳐졌다. 그것은 제국 순찰대원들이 사용하는 구형 야간 투시 고글을 복잡한 에너지 회로로 개조한 장치의 설계도였다.
“당신이 장호열의 추격대를 피하고 싶다면, 내 기술이 필요할 거야. 이건 사물의 미세한 열 분포와 생체 에너지의 흐름을 완벽히 시각화해 주는 ‘열원 추적 안경’의 설계도야. 당신의 그 기이한 냉기 능력과 결합하면, 벽 너머의 적들이 열량을 충전하는 타이밍까지 간파할 수 있어.”
은서윤이 태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태오의 오른팔에 돋아난 투명한 청색 얼음 결정의 표면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절대영도의 한기에 그녀가 가볍게 몸을 떨었지만,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거래를 하자고. 내가 이 장비를 완성해 줄 테니, 당신 심장의 그 아름답고 차가운 에너지 데이터를 나에게 제공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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