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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추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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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이이익—!”


영하 80도의 혹한이 지배하는 그레이 웨이스트의 대지 위로 날카로운 마찰음이 찢어지듯 울려 퍼졌다.


눈보라를 뚫고 맹렬하게 질주하는 것은 밀수업자 이명훈의 개조형 빙판 썰매였다. 후면에 장착된 하이브리드 가스터빈 엔진이 시뻘건 화염을 내뿜으며 웅웅거렸고, 대동결의 빙판을 견디도록 특수 훈련된 여섯 마리의 거대 한란견(寒蘭犬)들이 발톱으로 얼음을 찍어 누르며 폭풍처럼 내달렸다.


“꽉 잡아! 놈들이 이미 장벽 외곽 수로를 완전히 포위했어!”


썰매의 운전대를 잡은 이명훈이 가죽 안대 너머의 외눈을 치켜뜨며 소리쳤. 그의 거친 목소리마저 칼바람에 얼어붙어 하얗게 부서지는 듯했다.


썰매 뒷좌석에 앉은 설태오는 왼팔로 여동생 설아린의 가녀린 몸을 부서져라 꽉 끌어안았다. 그의 오른팔은 이제 손끝부터 팔꿈치, 그리고 오른쪽 어깨와 목덜미 절반까지 완벽하게 유리처럼 투명한 청색 결정으로 변해 있었다. 아무런 감각도, 움직임도 없는 차가운 얼음 덩어리. 신체 결정화 1단계의 가혹한 페널티는 그의 몸 절반을 무생물로 만들어 놓았다.


뺨을 스치는 영하 80도의 칼바람조차 태오에게는 아무런 촉각적 자극을 주지 못했다. 미각과 촉각을 완전히 상실한 그의 세계는 지독할 정도로 고요하고 차가웠다. 오직 눈앞에 장착된 개조형 열원 추적 안경만이 사방의 열역학적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투시해 주며 그가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안경 너머의 시야에서, 그들의 후방 300미터 지점이 핏빛처럼 붉은 진홍색 열원으로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잉—!


눈보라 장벽을 찢으며 다가오는 것은 제국 안전국 수색 타격대의 중장갑 추격 차량들이었다. 서치라이트의 날카로운 백색 광선이 빙판 위를 쉴 새 없이 훑으며 태오의 썰매를 조준했다.


그리고 그 선두 차량의 루프 탑 위, 검은색 제국 안전국 코트를 휘날리며 단신으로 서 있는 사내가 보였다.


장호진.


소멸한 13구역 보안관 장호열의 친형이자, 제국 안전국의 베테랑 특수 수사관. 그의 왼쪽 안구에 이식된 은색 의안이 기계적인 붉은 빛을 깜빡이며 태오의 미세한 냉기 주파수를 정밀하게 록온하고 있었다. 동생을 잃은 사적인 증오와 제국의 공적인 집행 의지가 결합한 그의 살기는 대지의 혹한보다 더 매서웠다.


“도망칠 곳은 없다, 열량 강탈자.”


장호진의 나직한 목소리가 제어실 통신기를 타고 이명훈의 썰매 수신기에 대포 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동생의 목숨값은 네놈의 심장으로 받아내겠다. 포격을 개시하라!”


콰아아아앙—!


장호진의 명령과 함께 추격 차량에 장착된 열 감지 포탑이 고열의 플라즈마 탄환을 발사했다. 시뻘건 열선이 밤하늘을 가르며 썰매의 바로 옆 빙판을 강타했다. 폭발의 충격으로 거대한 얼음 파편들이 폭풍처럼 비산했고, 썰매가 중심을 잃고 크게 비틀거렸다.


“태오 씨! 적들의 포탑 충전 주파수가 너무 빨라요! 이대로 가면 3초 안에 직격당해요!”


태오의 곁에 웅크리고 있던 천재 공학자 은서윤이 단말기를 쥔 채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스캐너 화면에는 이미 다음 포탄의 궤적이 태오의 심장을 정조준하고 있음이 붉은 선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태오는 대검을 쥔 왼손에 힘을 주었다. 스스로 냉기를 창조할 수 없는 열역학 제2법칙의 제약. 적들이 방출하는 고열의 에너지는 오히려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태오는 안경 너머로 적들의 포탑에서 방출되는 열량의 흐름을 정밀하게 관측했다.


‘열을 빼앗아 차단한다.’


태오가 왼손을 번쩍 들어 허공을 향해 뻗었다. 그의 가슴팍에 새겨진 푸른 빙정 문양이 눈이 멀 것 같은 청색 서광을 뿜어내며 요동쳤다.


“서리 장막(Frost Veil)!”


태오의 손끝에서 방출된 극저온의 냉기 파동이 공기 중의 수분과 결합하여 순식간에 거대하고 반짝이는 얼음 입자의 장막을 형성했다. 장막은 빛과 열을 기하학적으로 굴절시키는 거울 방벽이 되어, 장호진의 의안 스캐너 조준선과 날아오던 플라즈마 탄환의 궤적을 허공에서 미세하게 꺾어버렸다.


쿠우우웅—!


굴절된 포탄이 썰매의 후방 50미터 지점에 떨어지며 허무하게 폭발했다.


“잔재주를 피우는군.”


장호진의 은색 의안이 차갑게 빛났다. 그는 허리춤에서 주먹만 한 황동빛 구체를 꺼내 들었다. 단순한 폭탄이 아니었다. 안전국의 최신 생체 개조 엔진과 연동되는 고밀도 중력 제어 수류탄이었다.


“가라앉아라.”


장호진이 수류탄을 던졌다. 황동빛 구체가 공중에서 회전하며 태오의 썰매 바로 후방 10미터 지점의 빙판에 떨어졌다.


그 순간, 폭발음 대신 기분 나쁜 공간의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우우우우웅—!


수류탄이 떨어진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20미터 이내의 중력이 순식간에 5배 이상 치솟았다. 대기 중의 눈보라가 지면을 향해 수직으로 곤두박질쳤고, 꽁꽁 얼어붙어 있던 두꺼운 강철 같은 빙판이 거대한 보이지 않는 발에 짓눌린 것처럼 쩍 갈라지며 순식간에 아래로 주저앉았다. 거대한 크레바스가 입을 벌린 것이다.


“으악! 썰매 접지력이 완전히 상실됐어! 뒤가 가라앉는다!”


이명훈이 비명을 질렀다. 썰매의 후면 가스터빈 엔진이 강제적인 고중력 배율에 걸려 빙판 아래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썰매의 러너가 허공에 뜨며 썰매 전체가 전복될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태오는 이를 악물었다. 심장 깊은 곳의 엔트로피의 핵이 과부하로 인해 비명을 질렀다. 목구멍에서 뜨거운 핏덩이가 솟구쳤지만, 그는 억지로 삼켜내며 왼손으로 썰매의 찌그러진 프레임을 잡았다.


‘성에 발판 생성(Frost Footing).’


태오가 차가운 냉기를 지면을 향해 폭발적으로 주입했다. 썰매가 추락하려던 공중에 순식간에 두껍고 단단한 청색 서리 결정 발판들이 계단 모양으로 얼어붙었다. 썰매의 러너가 공중의 얼음 발판을 딛고 미끄러지듯 공중 도약을 감행했다. 물리학적 관성을 비트는 기적적인 기동이었다.


콰드드득! 쾅!


썰매는 크레바스를 극적으로 뛰어넘어 반대편 빙판에 거칠게 착지했다. 그러나 그 반동으로 이명훈의 개조형 썰매 후면 가스터빈 엔진에서 불꽃이 튀며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엔진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었다.


“태오 씨! 저 앞이에요! 장벽 경비초소가 보여요!”


은서윤이 전방을 가리켰다.


눈보라 속에서 아르카디아 돔과 13구역을 가르는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이 거대 괴수의 성벽처럼 솟아 있었다. 그 장벽 바로 밑, 매수된 초병 철민이 근무하고 있는 13구역 장벽 경비초소 지하 환기구 해치가 붉은색 비상등을 깜빡이며 열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장호진 역시 그들의 목적지를 눈치챘다.


“장벽으로 진입하려 하는군. 어리석은 짓이다.”


장호진이 자신의 은색 의안의 출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그의 주변 공간이 중력 왜곡으로 인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는 마지막 중력 압착 레이저 포를 장전했다. 썰매를 통째로 짓눌러 가루로 만들 기세였다.


“이명훈! 엔진 출력을 최대로 올려라!”


태오가 나직하게 소리쳤다. 그의 가슴팍 빙정 문양이 검붉은 빛으로 오염되며 전신에 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몰아쳤지만, 그는 아린을 품에 더 꽉 안았다.


“나도 알아! 제발 버텨라, 내 새끼들아!”


이명훈이 한란견들을 향해 가죽 채찍을 휘둘렀고, 썰매는 마지막 남은 가스를 전부 연소시키며 장벽 지하 환기구를 향해 화살처럼 돌진했다.


바로 그 순간, 장호진이 발사한 거대한 중력 왜곡 레이저가 썰매의 바로 후방 빙판을 직격했다.


쿠우우우우웅—!


공간 자체가 뒤틀리며 대폭발이 일어났다. 썰매의 후반부가 중력 왜곡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순식간에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완전히 반파(半破)되었다. 가스터빈 엔진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붉은 파편이 튀었다.


“뛰어내려!!!”


이명훈이 소리쳤다.


태오는 폭발의 충격파가 그들을 덮치기 직전, 왼팔로 아린의 가녀린 몸을 감싸 안고, 오른발로 반파된 썰매 바닥을 강하게 걷어차며 은서윤의 옷자락을 낚아챘다.


세 사람의 신체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그들의 등 뒤에서 장호진의 중력 폭발이 남은 썰매 파편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기괴하게 짓뭉개버리는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철민이 열어둔 장벽 경비초소 지하의 환기구 해치 입구가 눈앞에 다가왔다.


태오는 주저 없이 아린을 품에 안은 채, 은서윤과 함께 어두운 지하 환기구의 아가리 속으로 몸을 던졌다.


슈우우우우웅—!


차가운 콘크리트 수로의 어둠이 그들의 신체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그들이 환기구 내부 슬라이드를 타고 지하 깊숙한 공동으로 굴러 떨어지는 순간, 장벽 외부에서 일어난 마지막 중력 폭발의 진동이 환기구 철문을 무겁게 때리며 통로 전체를 뒤흔들었다.


지독한 추위와 추격의 불꽃이 소멸한 어둠 속에서, 태오는 마비되어 단단하게 굳어버린 자신의 오른팔을 움켜쥔 채 아르카디아 돔 지하의 차가운 냄새를 맡았다.


새로운 지옥의 시작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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