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닿은 서리
황동 밸브를 움켜쥔 유상범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지하 보일러실의 공기가 비정상적으로 비틀렸다.
“안 돼!”
설태오의 목구멍에서 짐승 같은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 밸브가 잠기는 순간, 이 초라한 아지트를 채우고 있던 미약한 스팀 배관의 온기는 완전히 차단된다. 영하 80도의 지옥 같은 혹한이 지상의 해치 틈새를 타고 해일처럼 밀려들어 올 것이고, 척추에 이식된 ‘안티-프리즈-04’의 배터리가 방전 직전인 여동생 아린은 단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동사할 터였다.
그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이 쥐새끼가 어디서 감히!”
유상범이 야비하게 윽박지르며 밸브를 시계 방향으로 강하게 비틀려 했다. 그의 등 뒤에 서 있던 하급 순찰대원 중 한 명이 태오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고열 증기가 일렁이는 가열 봉을 치켜들며 앞을 가로막았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가열 봉 끝에서 수백 도에 달하는 인위적인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제국이 독점한 온기의 폭력적인 단면이었다.
태오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물러설 수 없었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폐부 깊숙이 차가운 공기가 들어차는 순간, 스승 민우진에게 배웠던 ‘열 보존 호흡법’을 전개했다. 날숨을 억제하고 체내의 미약한 온기를 심장과 뇌 주변으로 강제로 응축시키는 호흡. 이 호흡이 유지되는 동안만큼은 외부의 열적 타격으로부터 장기를 보호할 수 있었다.
스윽.
태오의 신형이 유령처럼 매끄럽게 움직였다. 민우진에게 전수받은 ‘접촉식 흡열 타격 격투술’의 보법이었다.
가열 봉을 들이밀던 순찰대원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눈앞에 있던 깡마른 청년이 순식간에 자신의 시야 사각지대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태오는 가볍게 상체를 비틀어 가열 봉의 붉은 열기를 흘려보냈다. 동시에 왼손 손날로 대원의 손목 관절을 정확하게 타격했다.
퍽!
“윽!”
단단한 타격음과 함께 대원의 손에서 가열 봉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또 다른 대원이 가죽 코트 품속에서 날카로운 군용 나이프를 뽑아 들고 태오의 옆구리를 향해 찔러 들어왔다. 칼날 끝에는 고열의 플라즈마 열선이 미세하게 흐르고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살점이 기화될 무기였다.
시간이 극도로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태오의 심장 깊은 곳에 박혀 있던 ‘1단계 봉인 상태’의 엔트로피의 핵이 미친 듯이 박동했다. 주변의 모든 열 에너지를 강탈하려는 우주적 공허의 본능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가슴팍의 낡은 가죽 코트 너머로 기하학적인 청색 빙정 문양이 눈이 멀 것 같은 푸른 서광을 뿜어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태오는 오른손을 뻗었다. 그의 오른손 손끝은 이미 손톱부터 시작해 투명하고 차가운 얼음 결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신체 결정화 1단계’의 징후였다. 이 손으로 적을 만지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태오 자신도 완벽히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린의 침대 앞으로 군화발을 디디려는 적들을 보는 순간, 이성은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타앗!
태오의 왼발이 지면을 강하게 디뎠다. 나이프를 찌르려던 대원의 손목을 왼손으로 쳐내 궤도를 꺾어버린 뒤, 결정화가 진행 중인 오른손을 뻗어 유상범의 손목을 직접 움켜쥐었다.
그것은 단 0.1초의 접촉이었다.
“……!!”
유상범의 거만한 미소가 순식간에 기괴한 경악의 표정으로 굳어졌다.
태오의 심장이 유상범의 신체와 그가 입고 있던 고온 슈트의 모든 열량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히 얼음을 쏘아 상대를 얼리는 저급한 마법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분자 운동 에너지 자체를 강탈하여 절대영도의 상태로 떨어뜨리는 물리 법칙의 왜곡이었다.
스우우우웁!
공기 중의 수분이 유상범의 손목 주변으로 급격히 결빙되며 ‘쩍! 쩍!’ 하는 기괴한 결빙음이 지하실을 가득 채웠다. 유상범의 가죽 장갑이 순식간에 백색 서리로 뒤덮이더니, 가죽 내부의 피부와 근육, 혈관 속의 수분이 단 찰나에 완전한 고체로 얼어붙었다.
“아, 아아……?”
유상범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의 손목을 타고 흐르던 온기가 순식간에 소멸하자, 그의 전신 신경망이 극도의 한파 쇼크로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황동 밸브를 쥐고 있던 유상범의 손가락 전체가 완벽한 절대영도의 얼음 조각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가 원래 가하려 했던 미세한 물리적 힘(토크)의 반동을 견디지 못하고-
바스락.
기괴할 정도로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상범의 다섯 손가락이 황동 밸브에 붙은 채로, 마치 잘 구워진 비스킷처럼 툭툭 부러져 나갔다. 단면에서는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혈액조차 흐르기 전에 분자 수준에서 얼어붙어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잘려 나간 손가락 조각들이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며 ‘쨍그랑’ 하는 유리 깨지는 소리를 냈다.
“끄아아아아아악!!”
그제야 지옥 같은 고통이 유상범의 뇌리를 강타했다. 유상범은 잘려 나간 자신의 손목을 움켜쥐고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단면에서 서서히 녹아내리는 푸른빛 서리 혈액이 바닥의 먼지와 뒤섞였다.
“괴, 괴물이다! 열량 강탈자다!”
나이프를 들고 있던 대원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13구역에서 수많은 반항민을 얼려 죽여 보았지만, 이토록 압도적이고 기괴한 냉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손을 대는 것만으로 인간의 신체를 유리 조각으로 만들어버리는 힘이라니.
“살려, 살려줘!”
대원들은 무기를 내팽개치고 바닥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유상범을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그들은 파손된 철제 해치 계단을 향해 미친 듯이 기어 올라갔다. 유상범은 잘려 나간 손목을 움켜쥔 채, 계단 위로 도망치며 핏발 선 눈으로 지하실 지하를 내려다보았다.
“설태오……! 네놈이 정체를 드러냈구나! 보안관실에…… 장호열 보안관님께 당장 보고하겠다! 네놈과 저 계집년은 이제 산 채로 가죽이 벗겨져 동사자의 숲에 매달릴 것이다!”
그들이 도망치며 내지른 비명 소리가 차가운 바람 소리에 묻혀 서서히 멀어졌다.
지하실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하지만 평화는 없었다.
툭.
태오는 대검을 쥘 힘조차 잃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아…… 윽!”
가슴을 찢는 듯한 극심한 과열 통증이 밀려왔다. 유상범의 슈트 코어와 생체 에너지를 급격하게 빨아들인 반동이었다. 강탈한 열량이 심장 속 엔트로피의 핵으로 흘러 들어가며 내부의 냉기 압력과 충돌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불규칙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반동은 고스란히 그의 육체로 돌아왔다.
태오는 자신의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오른손 손끝에서 시작되었던 투명한 푸른빛 결정이, 이제는 손등을 타고 올라와 손목과 전완근 절반까지 급격하게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다. 피부가 완벽한 청색 유리처럼 변해 있었고, 그 내부의 미세한 혈관과 신경망이 얼음 속에 갇힌 박제처럼 투명하게 비쳐 보였다.
‘신체 결정화 1단계…….’
태오는 오른손 손가락을 움직이려 힘을 주었다. 하지만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타인의 차가운 의수를 억지로 이어 붙인 것처럼, 오른팔 전체가 완벽한 무감각의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억지로 팔을 굽히려 하자, 결정화된 피부 경계선에서 살점이 미세하게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극심한 신경통이 뇌리를 찔렀.
“하아…… 하아……”
태오는 마비되어 가는 오른팔을 왼손으로 꽉 움켜쥐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의 빙정 문양은 여전히 차가운 푸른빛을 발산하며 명멸하고 있었다.
그 순간, 구석의 침대에서 미약한 기계음이 다시 울렸다.
틱. 틱. 피이이이-
안티-프리즈-04의 배터리 경고등이 더욱 빠른 주기로 깜빡이고 있었다. 유상범 일당은 쫓아냈지만, 바닥에 굴러 떨어진 마지막 인공 열원 전지는 이미 균열 사이로 온기가 모두 빠져나가 방전된 상태였다.
아린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20분 내외.
태오는 이가 부딪히는 오한 속에서 아린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비되어 가는 오른팔을 부여잡은 그의 눈동자에, 푸른 서리빛의 집념이 다시금 서늘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정체가 들통났으니 이제 13구역 보안관실의 추격대가 이 아지트로 진격해 올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그리고 아린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곳을 떠나 더 강력한 열원을 약탈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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