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영도의 재림
노심 제어반에 닿은 태오의 왼손 끝에서부터, 끓어오르던 붉은 플라즈마 전류가 기괴한 푸른빛 서리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이, 이놈이…… 무슨 짓을!”
장호열의 은색 의안이 경악으로 물들며 사정없이 흔들렸다. 인페르노의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던 화염의 해일이 허공에서 일시적으로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 정지한 것이 아니었다. 태오의 왼손바닥이 노심의 강철 제어반에 밀착되는 그 찰나의 순간, 제어실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수천 도의 플라즈마 에너지가 거대한 깔대기에 빨려 들어가듯 태오의 팔을 타고 무섭게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타오르는 고통이 아니었다.
육체의 세포 하나하나가 분자 단위로 해체되어 심장 속으로 강제로 주입되는 듯한, 영혼이 찢겨 나가는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파멸적인 고통이었다. 태오의 왼손 피부가 순식간에 시커멓게 타들어가며 살점이 기화되려 했지만, 심장 깊은 곳에 박혀 있던 엔트로피의 핵이 그 무한한 열량을 강제로 빨아들이며 기괴한 냉기 에너지로 역치 변환해 냈다.
스우우우웁!
발전소 노심에서 방출되던 수천 도의 고온 플라즈마가 푸른빛 전류의 형태로 태오의 왼팔 신경망을 관통했다. 태오의 심장에 새겨진 제국 황실의 가혹한 억제 장치가 그 엄청난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날카로운 경고음을 울렸다.
가슴팍의 낡은 가죽 코트 틈새로 비쳐 보이던 빙정 문양이 푸른빛에서 검붉은빛으로, 그리고 다시 눈이 멀 것 같은 백색의 광채로 빠르게 색을 바꾸었다. 심장 주변의 혈관들이 급격히 팽창하다가 이내 얼어붙기를 반복하며 검붉은 피가 태오의 목구멍을 타고 끊임없이 울컥거렸다. 각혈한 피는 바닥에 닿기도 전에 차가운 얼음 결정이 되어 툭툭 굴러다녔다.
“미친 새끼! 당장 손을 떼지 못해! 노심이 폭주하면 이 구역 전체가 통째로 증발한다!”
장호열이 비명을 지르며 화염이 실린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주먹에 깃든 초고온의 화구는 태오의 머리를 통째로 기화시켜 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태오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오른팔 전체가 목덜미까지 투명한 유리 결정으로 굳어버린 ‘신체 결정화 1단계’의 육체. 감각이 완전히 소실되어 옆구리에 무겁게 매달려 있는 오른팔의 얼음 결정에 화염의 열기가 닿자, 급격한 온도차로 인해 쩌적거리는 불길한 마찰음과 함께 깊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뼈가 통째로 부서지는 듯한 신경 통증이 뇌리를 찔렀지만, 태오는 왼손 끝에 피가 흐르도록 제어반을 움켜쥐며 심장 속 봉인을 완전히 개방했다.
‘부서져라.’
태오는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심장에 심어놓았던 저주이자 기적, 엔트로피의 핵을 묶고 있던 제국의 가혹한 사슬을 향해 역류시킨 플라즈마 에너지를 한곳으로 집중시켰다. 수천 도의 열기와 엔트로피의 극저온이 심장 한가운데에서 격돌하는 순간, 태오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 깨어지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쨍그랑—!
그것은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옭아매고 있던 제국 황실의 억제 장치가 완벽하게 박살 나는 소리였다.
동시에, 태오의 뇌리 속에 하나의 물리적 이정표가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열역학 제1임계점(First Thermodynamic Critical Point) 돌파.]
가슴팍에서 눈이 멀 것 같은 푸른 광채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푸른 서광은 노심 제어실의 벽면을 뚫고, 발전소 요새 전체를 넘어 반경 50m 이내의 공간을 순식간에 집어삼켰.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정지했다.
“……!!”
장호열의 은색 의안이 경악으로 고정되었다. 그의 주먹 끝에서 무섭게 타오르던 인페르노의 화염 폭풍이, 허공으로 치솟던 시뻘건 불꽃의 해일이 마치 시간의 흐름이 멈춘 것처럼 그대로 굳어버렸다. 주황색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던 화염은 한 장의 유화 그림처럼 흑백의 색조로 다운톤되더니, 이내 차가운 서리 결정으로 뒤덮여 백색의 조각상처럼 변해버렸다.
필살 권능, ‘절대영도의 정적(Absolute Zero Silence)’이 제어실 전체를 완벽하게 지배한 것이었다.
이 영역 안에서는 물리적인 모든 분자 진동과 에너지의 흐름이 허용되지 않았다. 공기조차 진동을 멈추어 그 어떤 가열 배관의 가스 누출음도, 발전기의 웅웅거리는 가동음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정적의 장막만이 흘렀다. 날아오던 불꽃조차 차가운 얼음 조각이 되어 공중에 정지해 있는 기괴한 신의 영역.
태오는 제어반에서 타들어 가던 왼손을 천천히 떼어냈다.
그의 발걸음이 정지된 공간을 향해 나아갔다. 걸음을 디딜 때마다 바닥의 강철판이 절대영도의 냉기에 노출되어 쩍쩍 갈라지며 푸른 성에를 피워 올렸다. 태오는 공중에 멈춰 선 채 공포에 질려 눈동자조차 굴리지 못하는 장호열의 코앞에 도달했다. 장호열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초고온 슈트의 플라즈마 배리어는 이미 에너지를 모두 빼앗겨 쓸모없는 백색 서리 판때기로 변해 있었다.
태오는 마비되어 감각이 사라진 오른팔 대신, 화상으로 문드러진 왼손을 가볍게 치켜들었다.
체내에 비축된 극저온의 엔트로피 냉기 파동을 왼주먹 끝으로 미세하게 집중시켰다. 손끝에서 기하학적인 빙정 문양이 날카롭게 회전하며 주변의 미약한 잔열조차 전부 빨아들였다.
“빙정 붕괴권(Ice Crystal Collapse Fist).”
서늘한 나직함과 함께, 태오의 왼주먹이 장호열의 가슴팍, 정확히 그의 군용 열량 증폭 코어가 박혀 있는 중심부를 강타했다.
깡—!
밀폐된 제어실 내부에 맑고 날카로운 크리스탈 마찰음이 단 한 번 울려 퍼졌다.
타격이 가해진 장호열의 가슴팍에서부터 푸른색 균열이 거미줄처럼 전신으로 빠르게 뻗어 나갔다. 그의 은색 의안도, 붉은색 털가죽 망토도, 등에 지고 있던 무거운 인페르노 연료 탱크도 예외는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스스스스—
13구역을 공포로 지배하며 수많은 난민들을 동사시켜 광장에 전시했던 폭군 장호열은,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한 채 수백만 개의 미세한 백색 서리 조각이 되어 사방으로 무너지며 허망하게 처단당했다. 그가 남긴 것은 바닥에 흩어진 차가운 얼음 가루 더미뿐이었다.
쿠우우웅…….
장호열의 소멸과 동시에, 발전소의 심장부였던 중앙 노심 코어의 주황색 플라즈마 빛이 완전히 소멸했다. 발전소 요새를 지탱하던 모든 기계 장치들이 에너지를 완벽히 빼앗겨 동결 정지되었고, 제어실 내부에는 어둠과 함께 뼈를 깎는 혹한만이 내려앉았다.
태오는 대검을 바닥에 짚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팍의 빙정 문양은 마침내 폭주를 멈추고 희미한 푸른빛으로 돌아왔지만, 전신을 타고 흐르는 피로감과 통증은 아득한 심연과도 같았다. 태오는 떨리는 눈빛으로 천천히 자신의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서서히 냉기를 거두어들이는 과정에서, 그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오른팔 전체가, 그리고 어깨뼈와 목덜미의 절반까지가 유리처럼 완벽하게 투명한 얼음 결정으로 변해 있었다. 피부 안쪽으로 흐르는 뼈와 미세한 신경망마저 푸른 얼음 기둥처럼 훤히 투시해 보였다.
태오는 왼손을 뻗어 투명하게 변해버린 오른팔의 살가죽을 세게 움켜쥐었다.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꼬집는 통증도, 살을 짓누르는 압력도, 그 어떤 촉각조차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무(無)의 상태. 오른팔은 이제 육체가 아닌, 그저 몸에 매달려 있는 차가운 얼음 조각상에 불과했다.
어둠이 가득 찬 발전소 제어실의 폐허 속에서, 태오는 마비된 오른팔을 쥔 채 비장하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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