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역학의 파괴자
화염의 해일이 시야를 온통 진홍빛으로 메웠다.
13구역 인공 열원 발전소 최상층, 사방이 황동 파이프와 가압 밸브로 가득 찬 노심 제어실은 이미 인간이 디딜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장호열의 등에 장착된 개조 화염방사기 ‘인페르노’의 포구에서 뿜어져 나온 1,500도의 초고온 화염 폭풍은 대기 중의 산소를 통째로 삼키며 팽창했다. 쉭쉭거리는 가스 압축음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렸고, 폭풍의 전면에서 밀려오는 복사열만으로도 온몸의 가죽이 기화해 버릴 것 같은 극도의 열적 압박이 설태오를 덮쳤.
‘피할 곳은 없다.’
태오는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왼손에 쥔 흡열 탄소강 대검을 고쳐 잡았다. 오른팔은 이미 손가락 끝부터 목덜미까지 투명하고 차가운 유리 결정으로 뒤덮여 완전히 마비된 상태. 쓸 수 있는 무기는 오직 왼손 하나와 대장장이 허건이 제련해 준 이 대검뿐이었다.
태오는 대검 끝을 비스듬히 세우며 바닥에 디딘 왼발에 힘을 주었다. 스스로 냉기를 생성할 수 없고 오직 주변의 에너지를 강탈해야만 절대영도를 구현할 수 있는 ‘열역학 제2법칙의 벽’. 태오는 정면으로 쇄도하는 화염의 열기 자체를 빨아들이기 위해 대검의 흡열 회로를 가동했다.
파아아아앗!
대검 칼날 전면에 새겨진 미세한 서리 결정들이 주황색 불꽃을 집어삼키며 푸른 아지랑이를 뿜어냈다. 화염 폭풍의 선두가 대검에 부딪치는 순간, 무시무시한 열량이 칼날을 타고 태오의 왼손을 거쳐 가슴속 심장으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크윽……!”
태오의 입술 사이로 신음과 함께 검붉은 핏덩이가 쏟아졌다.
심장에 새겨진 ‘1단계 봉인 상태’의 엔트로피의 핵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요동치고 있었다. 가슴팍의 낡은 가죽 코트 틈새로 보이는 빙정 문양이 검붉은 빛으로 오염되며 심장을 파고드는 내상 통증이 전신을 난도질했다. 흡수된 열량이 냉기로 역치 변환되는 속도보다, 장호열이 쏟아내는 화력이 훨씬 더 빨랐다.
장호열은 발전소 중앙 노심에서 실시간으로 붉은 플라즈마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었다. 무한에 가까운 동력을 등에 업은 그의 화력은 태오가 대검을 통해 빨아들일 수 있는 흡열 한계선을 아득히 초과하고 있었다.
“하하하! 겨우 그 정도로 내 인페르노를 막아서겠다고? 낙오자 새끼가 제국의 기술을 얕봤구나!”
장호열이 미치광이처럼 웃으며 인페르노의 출력 다이얼을 최대로 돌렸다.
쿠우우우웅-!
화염 폭풍의 밀도가 두 배로 치솟았다. 뿜어져 나온 불꽃이 제어실 천장의 철판들을 녹여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영상 80도를 넘어선 제어실 내부의 살인적인 기온은 태오가 입고 있던 낡은 가죽 방한 코트의 전면 자락을 순식간에 검게 태워버렸다. 방한 기능을 상실한 코트 틈새로 뜨거운 열풍이 직접 피부를 핥았고, 왼쪽 어깨에 남은 화상 흉터가 다시 불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하지만 진짜 지옥은 따로 있었다.
“쩍…… 쩌적!”
기분 나쁜 마찰음이 태오의 귓가를 때렸다.
목덜미와 오른팔을 덮고 있던 투명한 유리 결정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극저온으로 얼어붙어 있던 신체 결정화 부위가 외부의 1,500도 고열에 직접 노출되자, 급격한 온도차로 인해 팽창하며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얼음 결정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균열이 신경망을 직접 건드릴 때마다, 오른팔 전체가 통째로 뜯겨 나가는 듯한 지옥 같은 통증이 몰아쳤.
비명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태오는 억지로 삼켰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각혈한 피가 입가에서 검붉은 서리가 되어 굳어졌다.
‘여기서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난다.’
태오는 왼손을 뻗어 코트 안쪽 주머니에 들어있는 어머니의 차가운 펜던트를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 손끝에 닿은 구리의 서늘한 감촉이 뇌리에 미세한 안정의 파동을 흘려보냈다.
동시에 그는 매일 아침 아린의 가녀린 손을 잡으며 되새겼던 수칙을 떠올렸다.
‘약속의 이행 감각 각인.’
자신이 왜 이 지옥 같은 한파 속에서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남아야 하는지, 왜 이 심장 속 저주를 견뎌내야 하는지. 동생 아린에게 차가운 얼음 고치가 아닌 진짜 따뜻한 봄날을 선물하겠다는 그 단 하나의 약속이 태오의 얼어붙어가던 이성을 단단히 붙잡아 맸다.
태오는 눈을 부릅떴다. 개조형 열원 추적 안경 너머로 장호열의 에너지 흐름이 다시금 시각화되어 보였다. 장호열의 몸은 온통 진홍색 플라즈마로 뒤덮여 있었고, 그의 발밑 강철판을 통해 발전소 중앙 노심의 에너지가 끊임없이 공급되고 있었다.
대검을 통한 간접적인 흡열로는 저 무한한 화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대로 방어만 하다가는 대검의 전도체가 먼저 과열로 융해되거나, 자신의 오른팔 결정이 완전히 부서져 사망할 터였다.
이 판을 뒤집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방법뿐이었다.
간접적인 매개체를 통하지 않고, 발전소의 심장부인 중앙 노심 코어에 자신의 육체를 직접 접촉시키는 것. 수천 도의 플라즈마 열량을 심장 속 엔트로피 핵으로 직접 빨아들여 봉인 장치를 파괴하는 자멸적인 도박.
“설태오! 이제 그만 네 아비의 죗값을 치르고 재가 되어라!”
장호열이 도약했다. 인페르노의 연료 탱크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이 그의 주먹에 실렸다. 주황색 아지랑이를 휘날리는 화염의 주먹이 태오의 얼어붙은 오른팔을 향해 내리꽂혔.
태오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검을 쥔 왼손에 피가 흐르도록 힘을 주며, 제어실 한가운데에서 소용돌이치는 붉은색 플라즈마 노심 코어를 향해 몸을 던졌다.
장호열의 화염 주먹이 태오의 어깨를 스치며 코트를 완전히 불태우는 순간, 태오의 왼손이 노심의 강철 제어반을 향해 뻗어나갔다.
눈먼 광채가 제어실을 가득 채우기 직전, 태오의 차가운 눈동자가 장호열의 은색 의안을 똑바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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