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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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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이이이잉-!


찢어지는 듯한 경보음이 지하 연구소의 두꺼운 철벽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천장에 매달린 비상등이 일제히 핏빛으로 붉게 물들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 박사가 광기 어린 비명을 지르며 내려누른 자폭 버튼의 대가는 즉각적이었다. 바닥을 가로지르는 수십 개의 황동 배관 속에서 끓어오르던 붉은색 고열 플라즈마 용액들이 일제히 역류하기 시작했다.


“미친 노인네가 진짜로 미쳐버렸군!”


은서윤이 제어 콘솔의 홀로그램 화면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콘솔의 열기에 닿아 치익 소리를 내며 증발했다.


“태오 씨! 콘솔이 물리적으로 완전히 파괴됐어요! 이 박사 그 인간이 버튼을 누르면서 회로 기판을 통째로 으깨버렸다고요! 시스템 해킹으로 자폭을 취소하는 건 불가능해요! 자폭 시퀀스 완료까지 남은 시간은 단 10초!”


“하하하! 늦었다! 이미 늦었어!”


제어반 너머, 비밀 비상 탈출구 해치 앞까지 도망친 이 박사가 백발을 산발한 채 턱이 빠져라 웃어댔다.


“이 연구소 지하에 매장된 생체 연료 저장조가 통째로 과부하를 일으킬 것이다! 수천 도의 플라즈마 화염이 이 지하 공동을 가득 채우는 순간, 네놈도, 저 쓸모없는 저항군 버러지들도 흔적조차 남지 않고 기화되겠지! 자, 함께 지옥으로 가자꾸나!”


그의 외침과 동시에, 요한 신부가 갇혀 있는 대형 추출관을 비롯해 수십 개의 유리 실험관 내부로 붉은색 고열 플라즈마 용액이 역류해 들어갔다.


보글, 보글보글!


녹색의 배양액이 순식간에 끓는 핏빛으로 변해갔다. 실험관 안에 갇힌 난민들이 고통에 눈을 부릅뜨며 유리를 두드렸다. 요한 신부 역시 전신에 박힌 은빛 바늘들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고온의 에너지 과부하에 척추를 비틀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콰아아아앙-!


가장 외곽에 있던 배관 하나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다. 뿜어져 나온 붉은 플라즈마 화염이 천장을 핥았고, 연구소 내부의 기온이 순식간에 영상 60도를 돌파했다.


지독한 열기가 밀려들자, 태오의 가슴팍에 새겨진 푸른 빙정 문양이 미친 듯이 요동쳤.


태오의 심장에 박힌 엔트로피의 핵은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할수록 그 열량을 블랙홀처럼 흡수하려 폭주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밀려드는 열량은 태오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초과하고 있었다.


“끄윽……!”


태오의 목구멍에서 끓어오른 검붉은 핏덩이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핏방울이 시멘트 바닥에 닿기도 전에 반쯤 얼어붙어 툭툭 소리를 내며 굴렀다.


그의 오른팔 전체와 목덜미까지 투명한 유리 결정으로 뒤덮인 ‘신체 결정화 1단계’의 육체는 이미 한계였다. 오른팔은 감각이 완전히 소실되어 무거운 얼음 덩어리처럼 옆구리에 대롱거리고 있었고, 그 얼어붙은 한기가 척수를 타고 올라와 심장마저 정지시키려 하고 있었다.


안팎으로 가해지는 고열과 극저온의 이중 살인적인 압박.


탈출구는 막혔고, 남은 시간은 이제 7초였다.


‘여기서 도망치면 요한 신부도, 저 난민들도 모두 기화된다.’


대동결 초기, 차가운 눈더미 속에서 자신과 여동생 아린을 제 손으로 파내어 살려주었던 생명의 은인 요한. 그리고 자신들이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썼던 전지가 실은 이들의 비명으로 만들어졌다는 잔혹한 진실.


태오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음을 깨달았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괴물이 될 바에는, 차라리 이 자리에서 심장을 터뜨리는 편이 나았다.


‘차갑게 식혀라.’


태오는 눈을 감았다.


민우진 스승 밑에서 뼈를 깎으며 배웠던 정신 통제법, ‘빙정 심상 명상법’을 뇌리에 전개했다.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 숙부의 죽음에 대한 증오, 다가오는 폭발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를 모조리 차가운 얼음 거울로 시각화했다.


그리고 그 거울을 머릿속에서 단숨에 깨뜨려 버렸다.


쨍그랑-!


유리 파편이 흩어지듯, 태오의 감정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의 심장 박동이 분당 40회 이하로 급격히 떨어졌다. 눈을 뜬 태오의 눈동자는 이제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동공 깊은 곳에서 정교하게 대칭을 이룬 푸른 빙정 문양이 차갑게 회전하고 있었다.


태오는 마비된 오른팔을 낡은 가죽 코트 안쪽으로 밀어 넣은 채, 왼손 하나로 대검을 짚고 바닥으로 무릎을 꿇었다.


스스로 냉기를 생성할 수 없다면, 이 폭발하려는 모든 플라즈마의 열량을 통째로 집어삼켜 멈추면 그만이었다. 우주의 물리 법칙이 정한 엔트로피의 방향을, 강제로 역전시키는 신격의 권능을 개방할 때였다.


태오가 왼손 바닥을 바닥의 메인 전력 배관에 직접 접촉시켰.


“분자 진동 정지(Molecular Vibration Halt).”


서늘한 주문이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태오의 왼손 끝에서 시작된 푸른색 미세 냉기 주파수가 황동 배관을 타고 연구소 전역의 전력선과 기계 장치들로 무섭게 전도되었다. 웅웅거리며 폭주하던 발전기 기어들의 미세한 분자 진동이 순간적으로 정지하며 가동 소음이 뚝 끊겼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배관을 가득 채우고 역류하는 플라즈마의 엄청난 열팽창 에너지를 막을 수 없었다. 배관 표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태오의 왼손바닥 가죽을 태우기 시작했다. 치익 소리와 함께 살점이 타들어 가는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태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감정은 이미 절대영도로 얼어붙어 있었다.


“열려라.”


태오가 가슴속 깊은 곳, 엔트로피의 핵을 묶고 있던 1단계 봉인 장치의 빗장을 스스로 풀어 헤쳤.


두근-!


심장이 단 한 번 세차게 요동쳤다. 그의 가슴팍 피부 위로 새겨진 기하학적인 푸른 빙정 문양이 눈이 멀 것 같은 푸른 서광을 폭발적으로 내뿜었다. 그것은 제국의 기후 위성조차 감지할 수밖에 없는, 우주적 법칙 왜곡의 신호탄이었다.


“절대영도의 정적(Absolute Zero Stillness).”


그 순간, 연구소 내부의 모든 물리 법칙이 정지했다.


파아아아앗-!


태오의 몸을 중심으로 반경 5m, 아니 연구소 전체를 뒤덮는 거대한 냉기 장막이 순식간에 팽창했다.


빛조차 얼어붙는 왜곡이 공간을 지배했다. 천장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 플라즈마 화염이 공중에서 그대로 형태를 유지한 채 투명한 붉은색 얼음 결정으로 고정되었다. 터져 나가던 배관의 파편들이 허공에 둥둥 뜬 채 멈추어 섰고, 회전하던 비상등의 붉은 빛줄기마저 공기 중에 그대로 얼어붙어 기하학적인 선을 그리며 정지했다.


은서윤이 비명을 지르려던 벌려진 입, 이 박사가 탈출구 앞에서 발을 내딛으려던 그 찰나의 기동, 실험관 속 난민들의 울부짖음까지.


모든 소리와 진동, 열량과 시간의 흐름이 완벽한 흑백의 무(無)의 공간 속에서 일시에 정지했다.


오직 태오만이 그 정적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아…… 하아……”


태오는 왼손으로 대검을 지팡이 삼아 짚으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숨결조차 나오지 않았다. 공기 중의 분자 운동이 완전히 정지했기에 호흡할 산소조차 얼어붙어 버린 탓이었다.


그는 마비된 오른팔의 무게를 견디며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요한 신부의 대형 실험관 앞으로 다가갔다.


유리관 표면은 이미 절대영도의 냉기로 인해 극도로 취약해져 있었다. 태오가 왼손 주먹을 가볍게 쥐고 유리를 톡 건드렸다.


쩌적, 와장창-!


단단했던 특수 강화 유리가 마치 얇은 설탕 과자처럼 산산조각 나며 쏟아져 내렸다. 태오는 녹색 액체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지는 요한 신부의 가녀린 몸을 왼팔로 단단히 받아 안았다. 전신에 박혀 있던 은빛 바늘들이 동결 압력으로 인해 저절로 툭툭 빠져나갔다. 요한의 호흡은 멈춰 있었지만, 심장의 미약한 잔열은 절대영도 고치와 같은 원리로 얼음 속에 완벽히 보존되어 있었다.


태오는 요한을 바닥에 조심스럽게 눕힌 뒤, 탈출구 해치 앞에서 얼어붙어 있는 이 박사에게로 향했다.


이 박사는 한쪽 발을 허공에 든 채, 얼굴에 광기와 공포가 기묘하게 뒤섞인 표정 그대로 정지해 있었다. 태오는 그의 깃덜미를 왼손으로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를 질질 끌고 가, 비어 있는 대형 유리 실험관 내부로 사정없이 쳐넣었다. 유리관의 해치를 왼손으로 굳게 닫고 잠금장치를 걸어버렸다. 자폭을 가동하고 무고한 이들을 죽이려 했던 미치광이 과학자에게 어울리는 완벽한 감옥이었다.


마지막으로 태오는 이 박사의 철제 책상 위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피 묻은 가죽 표지의 일지가 놓여 있었다. [설지평 박사의 비밀 연구 일지 사본]. 태오의 부친이자, 그의 심장에 이식된 엔트로피 핵의 안정 장치 설계를 담당했던 수석 과학자의 유산이었다.


태오는 왼손을 뻗어 그 일지를 품속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리고 수납장 한구석에 보관되어 있던 푸른색 약물 앰플들, 아린의 생명을 유지해 줄 ‘안티-프리즈-04 안정제’ 원액 상자까지 완벽하게 챙겨 넣었다.


모든 목적을 완수했다.


쿠우우웅…….


태오가 대검을 거두어들이자, 절대영도의 정적 영역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정지했던 분자들의 운동이 다시 시작되며 공간에 색채가 돌아왔다. 공중에서 멈춰 있던 화염 파편들이 힘을 잃고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고, 과부하를 일으키던 배관들은 완전히 식어버린 채 회색 서리를 뒤집어쓰고 침묵했다.


“컥……! 으아아악!”


이 박사가 실험관 내부에서 가동되는 냉각 장치와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유리를 두드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그의 목소리는 두꺼운 유리를 통과하지 못했다.


“태오 씨! 요한 신부님이……!”


정신을 차린 은서윤이 바닥으로 달려와 요한 신부의 맥박을 짚었다. 미약하지만 규칙적인 박동이 손끝에 전해지자 그녀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감돌았다.


“살아있어요……! 실험실의 폭주도 완전히 멈췄어요! 대체 어떻게 이런 짓을…….”


서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태오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태오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


태오의 전신이 굳어졌다.


무리하게 절대영도의 권능을 정식으로 시전한 대가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의 심장 주변을 감싸고 있던 제국의 억제 장치가 금속이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박동할 때마다 가슴을 칼로 난도질하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태오는 대검을 바닥에 떨어뜨린 채 왼손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태오 씨!”


서윤이 비명을 지르며 다가왔지만, 태오의 가슴팍 피부는 이미 인간의 살결이 아니었다. 옷자락 틈새로 보이는 기하학적인 청색 빙정 문양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서서히 검붉은 빛(Dark Red)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심장 내부의 엔트로피 핵이 완전히 오염되어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으윽…… 끄아아악-!”


태오의 입과 코에서 붉은 피가 아닌, 얼어붙은 검붉은 핏덩이들이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의 시야가 흐려지고 전신이 급격히 차가워지며 자가 동결의 심연으로 가라앉으려 했다.


그때, 지하 연구소 천장의 환기 배관망 전체가 요란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궁-!


머리 위의 두꺼운 철판들이 열기로 인해 주황색으로 달아오르며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발전소 최상층에서 장호열이 직접 자신의 개조 화염방사기 ‘인페르노’의 출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며, 침입자들을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 지하로 내려오기 시작한 전조였다.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붉은 용융 액체들의 열기가 태오의 뺨을 스쳤다. 심장이 붕괴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태오는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으며 천장을 향해 대검을 겨누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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