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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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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강철 보안 문이 비틀리며 열리는 순간, 격납고의 매캐한 스팀 사이로 기괴한 녹색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태오는 왼손으로 흡열 탄소강 대검을 꽉 움켜쥐었다. 대검 날에는 방금 전 레드-01의 화염방사기에서 빨아들인 주황색 열 에너지가 푸른 서리 아지랑이와 뒤섞여 위태롭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의 오른팔은 이미 팔꿈치를 넘어 어깨, 그리고 목덜미 피부까지 완전히 투명한 청색 유리 결정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아무런 촉각도,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죽은 유리의 팔. 움직일 수 없는 오른팔의 무게감이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태오 씨…… 저건 대체…….”


뒤따라오던 은서윤이 기침을 콜록이며 나직하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의 기계식 확대 렌즈가 달린 고글이 문 너머의 풍경을 비추며 쉴 새 없이 회전했다.


문 너머에 펼쳐진 지하 공간은 혹독한 바깥의 영하 80도 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눅눅하고 불쾌한 온기가 흐르는 연옥이었다. 사방으로 복잡하게 얽힌 황동 파이프라인과 정밀 기계 배관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기괴할 정도로 축축한 녹색 배양액이 가득 찬 대형 유리 실험관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보글, 보글보글.


점성 높은 녹색 액체 속에서 기포가 솟구칠 때마다, 불규칙하고 기괴한 기계 가동음이 동굴 같은 지하 공동을 울렸다. 태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군화가 바닥에 깔린 이끼와 축축한 오수 위를 밟을 때마다 서늘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태오는 머리에 얹은 개조형 열원 추적 안경의 다이얼을 왼손 끝으로 미세하게 돌렸다. 적들의 위치와 에너지 흐름을 읽기 위함이었다.


찡-


안경의 주파수가 동기화되자, 태오의 시야가 기괴한 광경으로 채워졌다.


유리 실험관 내부에 떠 있는 것들은 단순한 기계 부품이나 화학 물질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형체였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난민들, 슬럼가에서 실종되었던 하층민들이 녹색 액체 속에 둥둥 떠 있었다. 그들의 등 뒤, 정확히 척추 마디마디에는 기계식 송수관과 은빛 바늘들이 잔인하게 박혀 있었다.


안경의 디스플레이가 미친 듯이 점멸했다. 붉은색의 기계적 열원 주파수가 아니었다. 생명체가 고통 속에서 울부짖을 때 방출하는, 보라색과 진홍색이 뒤섞인 기괴한 생체 유전 물질의 파동이 배관 전체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기계 에너지가 아니야…….”


은서윤이 자신의 단말기 화면을 바라보며 손을 벌덜 떨었다.


“이 장치들 전부…… 사람의 체온을 빨아들이고 있어요. 척수 신경을 자극해서 인간이 스스로 낼 수 있는 마지막 대사 열량까지 극한으로 정제해 내고 있다고요. 이 배출관 끝에 연결된 건…….”


서윤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정제된 에너지가 압축되어 흘러들어가는 육각형 모양의 금속 케이스들이 적재되어 있었다.


그것은 태오가 아린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약탈해 왔던, 그리고 13구역 난민들이 하루의 생명을 연명하기 위해 전 재산을 바쳐 구매하던 ‘인공 열원 전지’였다.


쿵.


태오의 심장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인공 열원 전지의 잔혹한 진실. 제국이 독점하고 배급하던 그 미약한 온기의 실체는 석탄도, 청정 전기도 아니었다. 슬럼가에서 납치당한 낙오자들의 생명력과 척수를 가혹하게 짜내어 정제한 ‘추출형 생체 연료’였던 것이다.


태오의 뇌리가 하얗게 점멸했다.


자신이 아린을 살리기 위해 주입했던 그 전지들, 난민들이 따뜻함을 갈구하며 품에 안았던 그 체온 팩들이 결국 자신들과 같은 처지인 무고한 이웃들의 피와 비명으로 만들어진 괴물 같은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이 그의 영혼을 난도질했다.


지독한 도덕적 죄책감과 혐오감이 그의 목구멍을 타고 각혈처럼 치솟았다. 심장 속 엔트로피의 핵이 그의 가슴 문양을 차갑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태오의 숨결이 급격히 차가워지며 바닥의 이끼들이 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짝, 짝, 짝.


그때, 어둠 속에서 조롱 섞인 가벼운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대단하군. 내 정밀 보안 문을 물리적인 결빙 압력만으로 부수고 들어오다니. 장호열 보안관이 왜 그토록 네놈의 심장을 탐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가는구나.”


실험관들 사이의 어둠을 헤치고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헝클어진 백발에 피가 묻은 실험용 가운을 대충 걸친 늙은 과학자. 은색 안경 너머로 광기에 가득 찬 눈빛을 번뜩이는 자, 이 박사였다. 그는 태오의 목덜미까지 투명하게 유리화된 오른팔을 바라보며 황홀하다는 듯 입술을 핥았다.


“아름다워……! 스스로 냉기를 생성하지 못하면서 주변의 모든 열역학적 에너지를 빼앗아 절대영도를 구현하는 육체라니! 네놈의 심장에 박힌 그 엔트로피의 핵은 우주적인 아노말리(Anomaly)다. 그 심장만 있다면 인류는 더 이상 누추한 생체 연료 따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텐데!”


“닥쳐.”


태오의 목소리는 영하 80도의 칼바람보다 더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왼손이 대검 손잡이를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하강하며 이 박사의 발밑으로 하얀 성에가 기어올랐다.


“오호, 화가 났나? 하지만 네놈이 지금껏 그 가냘픈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썼던 전지들이 누구의 몸에서 나왔는지 생각해 보아라. 네놈들 역시 이 착취의 사슬 위에서 온기를 탐닉하던 공범들이지!”


이 박사가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옆에 놓인 철제 책상의 명부를 탁 쳤다.


태오는 안경의 줌 기능을 작동시켜 명부의 페이지를 투시했다. 피 묻은 가죽 표지 위로 익숙한 이름들이 붉은 액체로 기록되어 있었다.


[실험체 104호: 설진우 - 누출 열량 98% 추출 완료. 폐기.]


“……!!”


태오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뒤집혔.


설진우. 장호열의 폭정에 맞서다 광장에 산 채로 얼어붙어 전시되었던 그의 숙부였다. 그가 광장에 전시되기 전, 이 차가운 실험실에서 척수가 뽑히는 고통을 겪으며 전지가 되었다는 잔혹한 기록.


분노가 태오의 이성을 한순간에 집어삼켰다. 가슴팍의 빙정 문양이 눈이 멀 것 같은 푸른 서광을 뿜어내며 요동쳤다. 주변의 유리 실험관 표면에 쩌적 하는 불길한 결빙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태오는 대검을 비스듬히 세우며 이 박사를 향해 폭주하듯 발걸음을 내디뎠다. 당장 저 미치광이의 목을 잘라 이 끔찍한 연옥과 함께 얼려버릴 생각뿐이었다.


“멈춰라, 낙오자 놈아!”


이 박사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손이 제어반 중앙에 놓인 황동 레버를 움켜쥐었다. 그 레버는 가장 거대한 중앙 실험관의 비상 배출 밸브와 연결되어 있었다.


태오의 시선이 그 중앙 실험관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기계식 사제 칼라가 찢어진 채 녹색 액체 속에 잠겨 있는 남자가 있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거칠게 자란 턱수염.


요한 신부였다.


대동결 초기, 눈더미 속에서 자신과 아린을 제 손으로 파내어 살려주었던 생명의 은인. 저항군의 사상적 구심점이던 그가 전신에 바늘이 박힌 채 미약한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요한의 척추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라색 생체 에너지가 실시간으로 추출관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이 레버를 당기면 저 사제의 실험관 내부로 고농축 생체 분해 산성 액체가 주입된다. 3초면 척수와 뼈가 통째로 녹아내리지. 네놈이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저 사제는 뼈도 남지 않고 기화될 것이다!”


이 박사가 땀을 뻘뻘 흘리며 비열하게 웃었다.


태오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그의 오른팔은 목덜미까지 유리화되어 완벽하게 마비된 상태. 왼손 하나만으로는 이 박사의 손목을 자르는 동시에 요한 신부의 장치를 안전하게 정지시키는 두 가지 행동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었다.


극도의 불리함과 정신적 압박감이 태오의 심장을 조여왔다.


이 박사는 요한의 생명줄을 완벽한 인질로 삼고 있었다. 섣부른 물리적 타격이나 대검 참격은 요한의 죽음만을 초래할 뿐이었다.


‘냉철해져야 한다.’


태오는 마음속의 날뛰는 분노를 차가운 얼음 결정으로 시각화하며 이성을 억지로 붙잡았다.


그는 이 박사의 손가락 움직임과 제어반 내부의 황동 배관 흐름을 안경 너머로 정밀하게 스캔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냉기를 생성할 수 없는 한계 속에서, 그는 연구소 내부를 흐르는 고온의 생체 연료 액체의 열량 자체를 강탈해 배관 내부를 정밀 동결시키는 공식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태오가 왼손에 쥔 대검 끝을 바닥에 나직하게 내리찍었다. 차가운 냉기 주파수가 지면의 황동 파이프를 타고 이 박사의 제어반 하부로 은밀하게 뻗어 나갔다.


그러나 광기에 눈이 먼 이 박사는 태오의 미세한 마나 흐름을 눈치채지 못했다. 대신, 태오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적인 서리 아지랑이에 극도의 공포를 느낀 그는 이빨을 사납게 갈았다.


“어차피 장호열 보안관님이 오시면 네놈은 끝이다! 이 실험실의 데이터는 황실로 전송하면 그만이지!”


이 박사는 레버를 당기는 대신, 제어반 옆에 보호 캡으로 덮여 있던 밝은 붉은색의 비상 자폭 버튼을 향해 사납게 손바닥을 내리쳤다.


쿵-!


그와 동시에 연구소 전체의 녹색 배양액 관로가 붉은색 플라즈마 경고등으로 일제히 전환되며, 고열의 생체 연료 저장조가 과부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잉-!


파괴적인 경보음과 함께, 연구소 전체가 붉은색 플라즈마 대폭발의 초읽기에 돌입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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