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연옥
화구의 거대한 총구가 설태오의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치이이이익-!
강 분대장의 손짓과 함께, 화염방사 특수병 레드-01이 등에 진 고압 연료 탱크의 밸브를 개방했다.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단순한 불꽃이 아니었다. 제국이 정제한 특수 화염 연료가 압축 공기와 만나 폭발하며 생긴, 1,500도가 넘는 초고온의 화염 줄기였다.
좁고 밀폐된 격납고 통로는 순식간에 산소를 집어삼키는 붉은 연옥으로 변했다. 불길이 콘크리트 벽면을 핥으며 나아가자, 천장에 엉켜 있던 배관들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붉게 달아오르며 휘어지기 시작했다.
“태오 씨! 뒤로 피해요!”
은서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미 삼중 방화벽이 차단된 통로 내부에는 피할 곳이 없었다. 사방의 밸브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압의 스팀 가스가 화염의 열기와 뒤섞이며 숨 막히는 열풍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커흑! 컥……!”
임찬영과 그의 수거단 대원들이 뜨거운 증기와 황산 가스를 들이마시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산소가 희박해지는 밀폐 공간에서 고열의 가스를 흡입하는 것은 곧 폐가 타들어 가 사망하는 것을 의미했다. 쓰러진 대원들의 피부가 순식간에 붉게 익어갔다.
태오의 개조형 열원 추적 안경의 렌즈가 붉은 경고음과 함께 과부하 수치로 가득 찼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온통 피처럼 붉은 진홍색의 에너지 흐름뿐이었다.
‘이 화력을 내 심장으로 직접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다.’
태오는 냉철하게 계산했다. 우 상병의 방패와 달리, 레드-01의 화염방사기는 무제한으로 고열을 쏟아내는 지속형 병기였다. 1단계 봉인 상태인 지금의 심장으로 이 거대한 화염 폭풍을 정면에서 흡수하려 했다가는, 열역학 제2법칙의 한계를 넘기 전에 심장이 먼저 과열되어 기화해 버릴 터였다.
스스로 냉기를 창조할 수 없는 한계. 태오는 주변에 존재하는 극소수의 열역학적 에너지를 긁어모아야 했다.
태오는 왼손으로 탄소강 대검을 바닥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리고 장벽 틈새로 스며들어 바닥에 얇게 깔려 있던 만년빙의 서리와 눈더미의 기운을 대검의 전도체로 끌어당겼다.
‘얼음 장막 방벽(Ice Curtain Barrier).’
태오의 왼손에서 뿜어져 나온 차가운 냉기 파동이 바닥의 수분과 결합했다. 순식간에 태오와 동료들의 전면으로 두껍고 단단한 청색 얼음 벽이 솟구쳐 올랐다.
콰아아앙-!
레드-01이 방사한 초고온의 화염이 얼음 장막 방벽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불꽃과 얼음이 맞부딪치자 격렬한 마찰음과 함께 엄청난 양의 백색 스팀이 격납고 통로를 가득 채웠다. 시야가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어리석은 놈! 불꽃 앞에서 얼음벽을 세우다니, 스스로 증기 가마솥에 갇히는 꼴이구나!”
방벽 너머에서 강 분대장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대로였다. 화염의 지속적인 열기 앞에서는 태오가 세운 얼음 방벽도 빠르게 녹아내리며 두께가 얇아지고 있었다. 방벽 표면에서 흘러내린 물이 바닥에서 끓어올랐다. 뜨거운 증기가 가득 차면서 은서윤과 수거단원들의 호흡 곤란은 더욱 심각해졌다.
남은 시간은 길어야 1분. 이대로 방벽 뒤에 갇혀 있다가는 전원 질식사하거나 끓는 물에 익어 죽을 터였다.
‘돌파해야 한다.’
태오는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냉기 통증 속에서 결단을 내렸다.
그는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전완근을 넘어 어깨 부근까지 투명한 청색 유리 결정으로 변해버린 ‘신체 결정화 1단계’의 육체. 감각도, 움직임도 전혀 없는 죽은 나뭇가지 같은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무리하게 체내 에너지를 회전시키면, 결정화가 심장으로 직접 기어올라 자가 동결사할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동료들의 쓰러지는 숨소리가 그의 귀를 때렸다. 진료소 온열실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린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
태오는 내면의 공허를 향해 소리치며 금단의 제어 공식을 가동했다.
‘체온 분배 역류 제어(Body Temperature Distribution Reverse Control).’
태오는 전신에 남아있는 미약한 생명 온기를 오직 심장과 뇌, 두 곳으로만 강제로 집중시켰. 사지 말단으로 향하는 모든 혈류와 열량을 차단하고, 오직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온도만을 사수하는 극단적인 호흡법.
그 대가는 가혹했다.
“……윽!”
태오의 입에서 차가운 성에가 낀 검붉은 핏덩이가 뿜어져 나왔다. 이미 마비되어 있던 오른팔의 신경망이 완벽하게 얼어붙으며, 피부 표면이 쩍쩍 갈라지는 듯한 극심한 유리화 통증이 전신을 엄습했다. 옷깃이 스치는 미세한 마찰에도 살점이 찢겨 나가는 듯한 지독한 고통이었지만, 태오는 소리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이제 인간의 감정이 거세된, 오직 푸른 서리빛의 안광만을 뿜어내고 있었다.
스우우우-
태오의 전신에서 빛조차 얼려버릴 듯한 극저온의 청색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태오는 녹아내리는 얼음 장막 방벽 옆으로 몸을 날렸다. 스팀으로 가득 찬 붉은 화염 속으로, 그는 단신으로 돌격했다.
“뭐냐?! 미쳤군!”
화염방사기를 휘두르던 레드-01이 자욱한 증기를 뚫고 나타난 태오의 실루엣을 보고 경악했다. 그는 즉시 화구를 태오의 안면을 향해 꺾고 트리거를 당겼다.
화아아아악-!
태오의 눈썹과 낡은 가죽 코트 자락이 고열에 그을리며 바스라졌다. 피부가 타들어 가는 지독한 열기가 밀려왔지만, 체온 분배 역류 제어로 인해 극대화된 심장의 냉기가 피부 표면에서 보이지 않는 극저온의 차단막을 형성했다. 태오는 화염의 직격을 온몸으로 버텨내며 앞으로 전진했다.
타앗!
태오의 왼발이 지면을 차고 도약했다. 그는 도망치거나 피하지 않고, 레드-01의 거대한 몸체 앞으로 순식간에 육박했다.
레드-01이 방열 슈트 너머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태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태오는 왼손을 뻗어 레드-01이 들고 있던 화염방사기의 고압 방출 노즐을 움켜쥐었다. 동시에, 감각이 완전히 사라져 단단한 얼음 몽둥이처럼 변해버린 오른팔을 내뻗어 레드-01의 가슴팍에 장착된 고압 연료 탱크의 메인 밸브를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쾅-!
단단한 유리 결정으로 변한 오른팔은 그 자체로 강철보다 단단한 둔기였다. 밸브 파이프가 우그러지며 가스가 누출되기 시작했다.
“안 돼! 폭발한다!”
레드-01이 가스 폭발의 공포에 질려 울부짖었다. 가스가 고열의 화구와 만나면 격납고 전체가 날아갈 대폭발이 일어날 터였다.
하지만 태오가 노린 것은 폭발이 아니었다.
‘접촉 즉시 동결(Contact Absolute Freeze).’
태오의 왼손과 결정화된 오른팔을 매개로 하여, 심장 속 엔트로피 핵의 무한한 냉기 파동이 연료 탱크 내부로 직접 흘러 들어갔다. 가스 배관과 탱크 내부에서 격렬하게 진동하던 고압 가스 분자들의 운동 에너지가 순식간에 빼앗기기 시작했다.
스우우우웁-!
배관 내부의 온도가 순식간에 영하 120도 이하로 급강하했다. 격렬하게 팽창하던 가스 분자들이 진동을 멈추고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화구 끝에서 뿜어 나오던 붉은 불꽃이 순간적으로 푸른 성에로 뒤덮이더니, 이내 툭 소리와 함께 불꽃의 형태 그대로 얼어붙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이럴 수가…… 불꽃이 얼었어?!”
레드-01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총구를 바라보았다.
냉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고압 배관을 타고 역류하여 레드-01의 전신 방열 슈트를 덮쳤다. 슈트 내부의 온도가 순식간에 절대영도로 떨어지며, 레드-01의 관절과 육체가 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쩍! 쩍! 쩍!
“아…… 아……”
레드-01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가슴을 움켜쥔 기괴한 자세 그대로 완벽한 백색 얼음 조각상이 되어 굳어버렸다.
“레드-01! 이 괴물 같은 녀석이……!”
뒤에서 대기하던 강 분대장이 경악하며 자신의 파이어 휩 채찍을 치켜들었으나, 태오가 방출한 극저온의 냉기 여파가 이미 격납고 바닥 전체를 하얗게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다. 바닥의 끓던 물이 순식간에 빙판으로 변하며 강 분대장의 발목을 덮쳤다.
“크윽…… 퇴각한다! 방어선을 뒤로 물려라!”
강 분대장은 발목에 서린 소름 끼치는 냉기에 겁을 먹고, 채찍을 거두며 특무대원들과 함께 통로 저편의 비상 해치를 열고 다급히 도망쳤다.
스우우우-
적들이 물러가자 격납고를 가득 채웠던 붉은 화염과 스팀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통로 전체가 하얗게 얼어붙은 성에의 방으로 변해 있었다.
태오는 대검을 바닥에서 뽑아 들었다. 그의 오른팔은 이제 어깨뼈 너머 목덜미 피부까지 완전히 투명하고 푸른 유리 결정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무런 촉각도,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동결 상태. 태오는 왼손으로 마비된 오른팔을 쓸어내리며, 찢어지는 듯한 신경 통증을 억누르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태오 씨…… 괜찮아요?”
은서윤이 기침을 콜록이며 다가와 태오의 투명한 팔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경외감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가야 한다. 더 깊은 곳으로.”
태오는 냉혹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통로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강 분대장 일당이 도망치며 미처 닫지 못한, 혹은 단단히 잠겨 있던 두꺼운 강철 보안 문이 존재하고 있었다. 발전소의 일반 구역과는 확연히 다른, 제국 안전국의 극비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문이었다.
태오는 왼손에 쥔 탄소강 대검의 끝을 강철 문의 잠금장치 틈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대검 날을 통해 남은 냉기 압력을 폭발적으로 주입했다.
쩍-! 콰아앙-!
얼어붙어 취약해진 강철 잠금장치가 태오의 물리적인 비틀림 한 번에 허망하게 깨져 나갔다. 육중한 강철 보안 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문이 열리자, 격납고의 차가운 공기와는 전혀 다른, 기괴할 정도로 축축하고 서늘한 녹색 광채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태오의 눈동자가 그 광채를 향해 고정되었다. 문 너머 어둠 속에는 사방으로 얽힌 정밀 기계 배관들과 함께, 기괴한 녹색 배양액이 가득 찬 대형 유리 실험관들이 끝없이 늘어선 거대한 비밀 지하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실험관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기괴한 기계 가동음이 태오의 심장을 무겁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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