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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의 굶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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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추위는 소리조차 얼려버린다.


영하 80도. 대동결이 시작된 이래 지구의 외곽 슬럼가인 ‘13구역’에서 바람은 더 이상 대기의 흐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갗을 찢고 뼈를 갉아먹는 무형의 칼날이었다. 사방을 둘러싼 거대한 콘크리트 폐허와 버려진 공장 지대는 백색의 서리 더미 아래 완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오직 이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들이 뼈에 새긴 ‘영하 80도 행동 수칙’만이 그 비참한 침묵 속에서 나직하게 숨 쉬고 있을 뿐이었다.


‘금속 장비를 절대 맨손으로 만지지 마라. 피부가 닿는 순간 얼어붙어 뜯겨 나간다.’

‘숨을 들이쉴 때는 반드시 가죽 목도리로 입가를 가려라. 허파가 얼어붙어 각혈하게 될 것이다.’


설태오는 두꺼운 양모 장갑을 낀 손으로 입가의 가죽 목도리를 고쳐 잡았다. 그의 거친 숨결이 목도리 틈새로 비집고 나오자마자 공기 중에서 하얀 서리 결정이 되어 바닥으로 흩어졌다. 낡고 찢어진 방한 코트를 겹겹이 입은 그의 깡마른 체구는 슬럼가의 매서운 바람을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다.


태오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13구역 지하의 깊숙한 보일러실이었다. 과거 제국 열차 배관의 예비 스팀 압력 조절실로 쓰였던 이 좁고 어두운 지하 공간은 현재 태오와 그의 여동생 설아린의 유일한 보금자리이자 최후의 요새였다. 입구는 고철 더미로 철저히 위장되어 있어, 제국 순찰대의 열량 감지 정찰선조차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였다.


철제 해치를 조심스럽게 열고 지하로 내려가자, 미약한 스팀 배관의 잔열이 피부에 닿았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여전히 오한을 느낄 영하 5도의 온도였지만, 바깥의 영하 80도에 비하면 이곳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태오의 표정은 지하로 내려올수록 점점 더 어둡게 가라앉았다.


지하 보일러실의 구석, 낡은 솜이불을 덮고 수동식 휠체어에 의지해 누워 있는 소녀가 보였다. 연하늘색 머리칼에 창백하다 못해 투명한 피부를 가진 14세의 소녀, 설아린이었다. 아린의 감긴 눈꺼풀 위로 미세한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녀는 선천적 열 부족증을 앓고 있어, 스스로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는 시한부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의 척추 가죽에 이식된 톱니바퀴 모양의 금속 장치, ‘안티-프리즈-04’가 불규칙한 기계음을 내며 붉은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틱. 틱. 피이이이-


장치 후면의 전지 슬롯에서 흘러나오는 경고음이었다. 척수에 직접 열량을 주입해 전신 마비와 동사를 막아주는 이 생명 유지 장치는 현재 배터리가 거의 방전된 상태였다. 붉은색 표시등의 깜빡임 주기가 빨라질 때마다, 아린의 얇은 입술이 푸르게 질려갔다.


태오는 가슴이 조여오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의 심장 깊은 곳에서도 차가운 냉기가 요동치고 있었다. 태오의 심장에 새겨진 ‘1단계 봉인 상태’의 엔트로피의 핵. 우주 만물의 운동을 정지시키는 절대영도의 신격이 봉인된 육체. 그는 스스로 냉기를 만들어낼 수 없었지만, 주변의 열을 강탈하지 않으면 심장이 스스로 얼어붙어 사망하는 저주를 품고 있었다. 동생의 생명줄이 꺼져가는 것을 보는 정신적 고통과, 자신의 심장이 식어가는 물리적 고통이 그를 동시에 덮쳤다.


“아린아….”


태오가 아린의 곁으로 다가가 낡은 솜이불을 여며주었다. 아린은 미약하게 눈을 뜨며 오빠의 가슴에 손을 얹으려 했다. 그녀의 초감각적 온기 감지 능력은 태오의 가슴팍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푸른빛과, 그 이면에 숨겨진 죽음 같은 냉기를 본능적으로 읽어내고 있었다.


“오빠… 차가워… 하지만 괜찮아….”


아린은 짐이 되기 싫다는 듯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녀의 손끝은 이미 얼음장처럼 식어 있었다. 안티-프리즈-04의 배터리 잔량은 이제 소수점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당장 새로운 열원을 주입하지 않으면 아린은 30분 내로 전신이 동결되어 사망할 것이다.


태오는 주머니 속을 뒤적였다. 손에 잡히는 것은 오직 하나, 지난번 폐허 수색에서 간신히 구해온 규격화된 소형 ‘인공 열원 전지’ 한 칸뿐이었다. 13구역 슬럼가에서 난민들의 하루 생명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화폐이자 생명줄. 하지만 이 낡은 전지 한 칸으로는 아린의 기계를 서너 시간 가동하는 것이 한계였다. 더 강력한 군용 전지나 열원 코어가 필요했다.


바로 그 순간, 아지트 상부의 철제 해치가 거칠게 흔들리며 쿵쾅거리는 소음이 지하 공동을 울렸다.


쾅! 쾅! 쾅!


“세무국 수색이다! 안에 있는 쥐새끼들은 당장 기어 나와라!”


살을 에이는 듯한 목소리가 위쪽에서 내리꽂혔다. 태오의 전신이 본능적으로 긴장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13구역 난민들에게 가혹하게 체온세를 징수하며, 세금을 내지 못하는 가구의 보일러 밸브를 잠가 얼려 죽이기로 악명 높은 제국 세무관, 유상범이었다.


태오는 신속하게 아린의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 기계의 점멸등을 가렸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팍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푸른빛을 가리기 위해 낡은 가죽 방한 코트의 전면 지퍼를 목끝까지 올렸다. 심장의 봉인이 요동치며 주변의 미약한 온기를 빨아들이려 하자, 태오는 민우진 스승에게 배웠던 열 보존 호흡법을 전개해 체내 온도를 강제로 억눌렀다. 지금 초능력을 들키면 제국 안전국(ISD)에 ‘열량 강탈자’로 찍혀 아린과 함께 지옥으로 끌려가게 된다.


철제 해치가 강제로 뜯겨 나가며 외부의 영하 80도 혹한의 냉기가 지하 보일러실로 거침없이 들이닥쳤다. 찬바람과 함께 하얀 서리 김을 품은 군화발 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깔끔한 제국 세무국 마크가 찍힌 검은 가죽 코트를 입은 사내, 유상범이 거만한 태도로 서류판을 든 채 지하실로 들어섰다. 그의 뒤에는 고압 분사기를 장착한 하급 순찰대원 두 명이 철저한 진압 태세를 갖춘 채 버티고 서 있었다. 유상범의 야비한 눈동자가 좁고 초라한 보일러실 내부를 빠르게 훑었다.


“허, 역시 여기 쥐새끼들이 숨어 있었군. 설태오, 네놈이 이번 달 체온세를 계속 체납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유상범은 서류판을 툭툭 치며 태오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시가 담배의 매캐한 연기와 고열 슈트의 인위적인 온기가 교차하며 태오의 뺨을 때렸다. 제국의 비호를 받는 자들만이 누리는 사치스러운 온기였다.


태오는 주먹을 꽉 쥐었으나, 이내 감정을 억누르고 주머니에서 마지막 남은 인공 열원 전지 한 칸을 꺼내 밀어 보였다.


“이걸로… 이번 달 세금을 갈음해 주십시오. 저희에게 남은 마지막 열원입니다.”


태오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건조하고 낮았다. 유상범은 태오가 내민 전지를 흘끗 보더니, 코웃음을 치며 서류판으로 태오의 손을 거칠게 쳐냈다.


탁!


낡은 전지가 바닥의 차가운 시멘트 위로 굴러 떨어졌다. 전지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가며 내부의 미약한 온기가 외부 공기 중으로 소실되기 시작했다. 아린의 목숨을 몇 시간이라도 연장할 수 있었던 소중한 자원이 허무하게 파괴되는 순간이었다.


“장난하나, 설태오?”

유상범이 얼굴을 찌푸리며 가죽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태오의 가슴을 찔렀.

“이런 방전 직전의 쓰레기 전지 한 칸으로 제국의 공식 체온세를 퉁치겠다고? 네놈들이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는 이 지하 보일러실의 스팀 배관 요금만 해도 전지 백 칸은 넘는다. 당장 규격 크레딧을 내놓지 않으면 압류 절차를 집행하겠다.”


“더 이상 가진 것이 없습니다. 고철 수거단에 넘길 부품이라도 가져가십시오.”

태오가 한 걸음 물러서며 낡은 작업대 위의 구리 파이프와 황동 밸브들을 가리켰다. 하지만 유상범은 발길질로 고철 더미를 걷어찼다. 깡그리 깨지는 쇳소리가 좁은 지하실을 사납게 울렸다.


“이딴 고철 쓰레기는 세무국에서 취급 안 해!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지.”

유상범의 눈동자가 태오의 어깨 너머, 이불 속에 누워 미세하게 떨고 있는 아린의 휠체어로 향했다. 그의 시선이 아린의 등 뒤에서 깜빡이는 붉은빛, 안티-프리즈-04 장치에 고정되었다.


“어라? 저 기계는 제국군 특수 생체 제어 장치잖아? C급 규격품이군. 슬럼가 낙오자 계집의 몸뚱이에 박아두기엔 지나치게 과분한 물건인데.”

유상범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뒤에 서 있던 순찰대원들이 즉시 앞으로 나섰.

“저 기계를 적출해서 압류해라. 제국 경매장에 넘기면 세금 체납분은 물론이고 내 술값까지 충분히 나오겠군.”


그들의 군화발이 아린의 침대를 향해 움직였다.


그 순간, 설태오의 눈빛이 완벽한 정적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 박혀 있던 엔트로피의 핵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열량을 빨아들이려는 우주적 공허의 본능이 그의 이성을 잠식하려 했다. 태오의 가슴팍 피부 위로 기하학적인 청색 빙정 문양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낡은 코트 안감 너머로 푸른 서광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지하실의 온도가 급격히 하강하며 벽면의 습기가 순식간에 하얀 성에로 변해 쩍쩍 갈라졌다.


태오는 몸을 날려 아린의 침대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차가운 살기가 유상범과 대원들의 발걸음을 강제로 멈추게 만들었다.


“손대지 마라.”


태오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만년빙의 심연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종말의 메아리 같았다. 유상범은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영하 80도의 겨울 속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영혼 자체를 얼려버릴 듯한 절대적인 극저온의 위협이었다.


하지만 유상범은 이내 침을 뱉으며 자신의 고열 화염 장치를 가동했다. 그의 가죽 코트 마크에서 주황색 열기가 피어오르며 주변의 냉기를 억누르려 했다.


“이 쥐새끼가 눈깔을 그렇게 뜨면 어쩔 건데? 감히 제국의 공무 집행을 막아서겠다는 거냐?”

유상범은 태오를 밀쳐내려다, 이내 벽면에 연결된 메인 스팀 보일러 밸브로 시선을 돌렸다.

“좋아, 반항하는 벌레들에게는 처방이 따로 있지. 이 방으로 들어오는 모든 미온수와 스팀 공급을 원천 차단하겠다. 세금도 못 내는 쓰레기들은 영하 80도의 맨몸으로 제국의 위엄을 느껴봐라!”


유상범이 거칠고 녹슨 황동 재질의 메인 보일러 밸브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가죽 장갑이 밸브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는 순간-


태오의 가슴속 빙정 문양이 눈이 멀 것 같은 푸른 빛을 발산하며, 그의 오른손 손끝이 투명한 얼음 결정으로 변해 가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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