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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역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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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독무는 끈질기게 목을 조여왔다. 붉은 안개 속에서 스네이크가 겨눈 총구가 차갑게 빛나는 순간, 민설아는 감전된 듯 마비되어 가는 손가락을 쥐어짜 방독면 필터를 슬롯에 밀어 넣었다. 철컥, 기분 좋은 금속음과 함께 은청색 성운의 광채를 뿜어내던 가슴팍의 동조기가 정화 필터와 공명했다. 맑은 산소가 허파 가득 차오르자 설아는 몸을 날려 스네이크의 독침 저격을 피했다.


“괴물 같은 년, 그 몸으로 움직인다고?”


스네이크가 혀를 찼지만 이미 시야가 흐려진 그의 조준선은 빗나갔다.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나 사슬을 끊고 일어선 돌쇠가 괴성을 지르며 스네이크의 앞을 가로막았다. 광산 노예 시절 단련된 완력으로 무너진 암석을 던져 엄호하는 사이, 설아는 남은 피난민들을 이끌고 고대 유적 동굴의 깊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몸을 숨겼다. 돌쇠는 설아의 압도적인 무력과 자비에 감복해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으며 저항군에 뼈를 묻겠노라 피로 맹세했다. 돌쇠의 합류는 든든한 무력이었으나,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동굴 내부의 임시 대피소에 도달했을 때, 통신 장비를 만지던 지호의 단말기에서 붉은 경고음이 울렸다. 지호가 사막 외곽의 정찰대 신호를 잡으려다 제국 정보부 특수 공작국의 감시망에 걸린 것이었다.


“누나, 송신망이…… 역추적당하고 있어. 내가 막을 테니까 피난민들을 이끌고 더 깊이 가.”


그것이 지호의 마지막 무전이었다. 지호는 추적대를 교란하기 위해 홀로 정찰 기동을 감행하다가, 제국 정보부 수색대장 그레이가 이끄는 기갑 사냥개 부대에 생포되었다. 지호가 끌려간 곳은 다름 아닌 카이로스 행성 지배의 상징이자 철벽의 요새, ‘시타델 카이로스’였다.


기지로 복귀한 저항군 제2소대장 준은 머리를 감싸 쥐며 단호하게 말했다.


“시타델 카이로스의 지하 고문실이다. 그곳은 한 번 들어가면 시체로도 나오지 못하는 지옥이야. 지호가 잡힌 건 비극이지만, 시타델에 침투하는 건 자살 행위다. 기지의 좌표가 털리기 전에 우린 이곳을 버리고 도망쳐야 해.”


“지호의 머릿속에는 피난민들의 생존로와 우리 기지의 마스터 코드가 들어있어.”


설아가 가슴팍의 은청색 성운 낙인을 움켜쥐며 차갑게 대꾸했다. 각혈의 후유증으로 가슴이 가쁘게 들썩였지만, 그녀의 눈빛은 사막의 밤보다 시렸다.


“데커드 그 인간 사냥꾼이 지호의 뇌를 나노 칩으로 헤집기 전에 내가 구해온다. 단독으로 잠입하겠어.”


“미쳤군! 제국 정보부 특수 공작국의 고문관 데커드가 어떤 자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냐? 그자의 손에 걸리면 영혼까지 해킹당해!”


준이 소리쳤지만 설아는 이미 제국군 장교에게서 탈취해 두었던 위조 신분 칩과 은빛 군복을 챙겨 들고 있었다. 돌쇠가 거구의 몸을 일으키며 같이 가겠다고 나섰으나, 설아는 그의 어깨를 짚어 말렸다.


“너는 기지에 남아서 준 소대장과 함께 피난민들의 방어선을 지켜줘. 잠입은 은밀할수록 성공률이 높아.”


설아는 제국군 하급 경비병의 신분증을 위조해 시타델 카이로스의 삼엄한 지상 검문소를 통과했다. 차가운 금속성 질감의 은빛 격벽과 촘촘한 레이저 감시망이 교차하는 요새 내부는 숨이 막힐 정도로 무겁고 적막했다. 그녀는 머리를 짧게 단장하고 군모를 깊게 눌러쓴 채, 지하 5층에 위치한 극비 심문 구역으로 내려갔.


중력 제어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진동음만이 복도를 메우고 있었다. 마침내 도달한 철제 격벽 너머로, 소름 끼치는 전기 스파크 소리와 함께 데커드의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


“꼬마야, 네 뇌 신경망은 참 정교하구나. 하지만 이 나노 고문 침이 네 뇌하수체를 관통하는 순간, 네가 숨겨둔 저항군 지하 요새 ‘아이언 아크’의 비상구 코드는 내 단말기에 실시간으로 업로드될 거다. 자, 고통을 멈추고 입을 열어라.”


격벽 틈새로 보이는 지호는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결박되어 있었다. 그 앞에는 회색 사이보그 안면 마스크를 쓴 데커드가 가죽 고문 장갑을 낀 손으로 푸른 전류가 흐르는 ‘나노 신경 고문 침’을 지호의 관자놀이에 대고 있었다.


설아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사제 소총 ‘모래바람’으로 격벽을 부수려 했으나, 시타델 특유의 나노 차단막이 모든 플라즈마 화력을 흡수할 것이 뻔했다. 물리적인 기습 외에는 답이 없었다.


퍼엉—!


설아가 격벽의 수동 개방 버튼을 파괴하며 내부로 기습 연막탄을 던졌다. 자욱한 백색 연기가 고문실을 가득 채웠고, 설아는 번개처럼 난입해 지호의 사슬을 끊으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발이 지면의 특정 구역을 밟는 순간, 바닥에서 붉은색 격자 모양의 레이저 장막이 솟구쳤다.


“윙—!”


“아앗……!”


강력한 전자기 압착 역장이 설아의 전신을 덮쳤다. 사지가 보이지 않는 중력 사슬에 묶인 것처럼 바닥에 완전히 밀착되었고, 손에 쥔 소총이 멀리 튕겨 나갔. 연막이 걷히며 데커드가 사이보그 마스크 너머로 비열하게 웃었다.


“크크크, 사막의 유령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군. 바란 소장이 네 목에 건 현상금도 탐났지만, 네 가슴속에서 빛나는 그 고대 양자 동조기가 더 탐나는구나.”


데커드가 육중한 가죽 장화로 설아의 어깨를 짓밟으며 그녀의 장교 제복 상의를 거칠게 찢어발겼다.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은청색 성운의 무늬를 그리며 빛나는 동조기 표식이 드러났다.


“이거였군. 대장군 레이븐과 목숨을 공유하게 만든 저주받은 장치. 황실에서도 이 장치의 데이터를 간절히 원하고 있지. 내가 네 뇌 신경망을 통째로 해킹해 그 비밀을 뜯어내 주마.”


데커드가 지호에게 겨누던 나노 신경 고문 침을 설아의 목덜미를 향해 가져갔다. 지호가 피를 흘리며 절규했다.


“누나! 안 돼! 도망쳐……!”


치이익—!


날카로운 고문 침이 설아의 왼쪽 목덜미 신경총을 사정없이 뚫고 들어왔다. 상상을 초월하는 극통이 척추를 타고 뇌로 직행했다. 뇌세포 하나하나가 미세한 바늘에 찔려 찢어지는 듯한 감각이었고, 시냅스가 타들어 가는 역한 타르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데커드의 나노 칩이 그녀의 뇌 신경망에 침투해 기억 데이터를 강제로 해킹하기 시작했다. 설아의 머릿속에서 카이로스의 비극, 동생 민우의 죽음, 그리고 레이븐의 유년 시절 기억 조각들이 어지럽게 뒤섞이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비명이 목구멍을 찢고 나오려던 찰나, 설아는 가슴속에 꽉 쥐고 있던 동생 민우의 군인 인식표를 떠올렸다. 은빛 인식표의 차가운 촉감이 그녀의 흐려지는 자아를 강제로 붙잡았다.


‘정신 차려, 민설아. 여기서 무너지면 끝이야.’


설아는 이빨을 악물고 ‘통각 분산 명상법’을 시전했다. 그녀는 뇌 신경으로 쏟아지는 고통의 전달 경로를 억지로 우회시켜 가슴팍의 양자 생명 동조기로 집중시켰다. 동조기 내부의 고대 AI 에테르가 그녀의 뇌리에 차가운 경고음을 울렸다.


[경고: 신경 오염도 급증. 역동조 주파수 개방 준비.]


설아는 고통의 경로를 차단하는 대신, 그 통로를 넓혀 궤도 위 기함 ‘블랙 레비아탄’에 있는 레이븐 대장군의 초인적인 군사 나노 뇌 신경망과 일직선으로 연결했다. 데커드가 주입한 해킹 프로그램이 동조기의 양자 링크를 타고 레이븐의 거대한 뇌 신경 데이터베이스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 순간, 영혼의 역류가 시작되었다.


레이븐이 평생 동안 제국 황실의 실험실에서 이식받은 최고위 등급의 나노 기계 지성과 군사 시뮬레이션 데이터, 그리고 고대 아르케의 초월적인 주파수 에너지가 역류 주파수를 타고 고문 침을 통해 데커드의 뇌로 폭풍처럼 역송신되었다.


“……어? 이게 무슨…… 끄아아악!”


데커드가 갑자기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그가 제어하던 나노 고문 침의 푸른 전류가 은청색과 피색이 뒤섞인 광폭한 양자 스파크로 변해 그의 손가락을 타고 역류했다.


데커드의 사이보그 안면 마스크 틈새로 붉은 나노 전류가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다. 일반적인 인간의 뇌 신경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제국 대장군 규격의 정신적 용량과 고대 동조기의 과부하 에너지가 데커드의 뇌 세포를 나노 단위로 불태워 버린 것이다.


“이, 이 주파수는…… 대장군의…… 끄으윽!”


데커드의 눈동자가 은청색으로 번뜩이다가 이내 초점을 잃고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의 뇌 신경망이 완벽하게 타버리며 사이보그 마스크에서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데커드는 단 한 마디의 자백도 받지 못한 채, 온몸을 경련하며 고문실 바닥으로 쓰러져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쿠웅—.


데커드가 쓰러지자 방 안을 억누르던 전자기 압착 역장이 일시에 해제되었다. 설아는 목덜미에서 고문 침을 뽑아내며 바닥에 주저앉아 격렬하게 각혈했다. 우뇌 신경망의 일시적인 감각 상실로 시야의 오른쪽이 흐릿하게 지워졌지만, 그녀는 정신을 다잡고 지호에게 다가갔다.


“지호야, 괜찮아?”


“누나…… 기적적으로 살았어. 데커드의 뇌가 완전히 타버렸어.”


지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설아는 신속하게 그의 사슬 구속구를 풀고 부축해 일으켰다. 그리고 방 한구석에 있는 데커드의 수석 고문 단말기로 다가가 데이터 로그를 지우기 위해 단말기를 켰다.


그때, 단말기 화면에 벨리알이라는 이름과 함께 암호화된 극비 통신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수신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설아는 지호의 도움을 받아 암호를 우회 해독했다.


[감찰관 벨리알: 데커드, 대장군 레이븐의 최근 생체 나노 수치가 불안정하다. 사막의 저항군 전사와 생명 연동을 맺었다는 심증이 확실하니, 그 전사 여성을 생포해 동조기를 뜯어내고 증거를 확보해라. 증거가 나오는 즉시 레이븐을 반역죄로 처단하겠다.]


설아는 숨을 죽였다. 제국의 황실 감찰관 벨리알이 레이븐을 실각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동조 비밀을 집요하게 캐내려 하고 있었다. 이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레이븐뿐만 아니라 카이로스의 모든 저항군과 피난민들이 황실의 정화 군대에 몰살당할 터였다.


설아는 단말기 옆 캐비닛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나노 치료제 ‘헬릭스-V’ 세 병을 발견하고 신속히 품속에 찔러 넣었다. 향후 동조기 오염으로 괴사해 갈 자신의 뇌세포를 재생할 유일한 생명선이었다.


위이이잉—!


그때, 고문실 내부의 비상 경보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데커드의 생체 신호 정지가 제국 사령부 중앙 컴퓨터에 감지된 것이었다. 격벽 너머 복도에서 수많은 제국군 친위대 요원들의 철갑 장화 소리가 고문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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